[전시트렌드④] 다시 인물화다…살만 투르가 미술관에 들여놓은 ‘오늘의 사람들’

유럽 첫 개인전 ‘Someone Like You’ 19점…클럽·술집·친구의 방을 오늘의 풍속화로 고전 회화의 인물 배치와 몸짓을 동시대 도시생활로 전환…녹색 밤이 만든 새로운 인물화 디지털 이미지 넘치는 시대에도 다시 사람을 그리는 회화…미술관이 기록하는 얼굴도 변화

2026-10-12     김성은 기자

[KtN 김성은기자]사람을 그리는 일은 회화의 가장 오래된 역사 가운데 하나다. 왕과 귀족, 성인과 영웅이 캔버스의 중심을 차지했고, 가족과 연인, 술집과 거리의 사람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그 자리를 넓혀왔다. 살만 투르(Salman Toor)의 그림에는 오늘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친구와 연인, 이민자와 성소수자의 밤이 들어온다. 술집과 클럽, 자동차와 방 안에서 서로 기대고 춤추고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이제 미술관의 큰 벽을 차지한다.

런던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의 ‘Someone Like You’는 투르의 유럽 첫 개인전이다. 19점의 회화는 최근 작업만 나열하기보다 작가가 지난 10여 년 동안 구축해온 인물화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밤의 군중과 사적인 실내, 친밀한 접촉과 혼자 남은 사람이 반복되지만 작품을 묶는 힘은 특정한 장소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투르는 현대적인 생활을 그리면서도 인물을 화면 안에 조직하는 방식에서는 오래된 회화의 기억을 끌어온다. 여러 사람을 한 공간에 모으고, 한 인물의 손과 시선이 다른 인물로 이어지며, 배경의 조각과 가구가 인물의 위치를 잡아준다. 고전적인 인물화와 풍속화가 사용해온 구도 안으로 오늘의 몸과 옷, 술잔과 휴대전화가 들어온다.

고전 조각과 현대의 인물을 한 공간에 배치한 살만 투르(Salman Toor)의 회화. 오래된 미술의 신체와 오늘의 인물이 같은 시야에 놓이며 인물화의 역사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사진=Courtauld Gallery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조각과 인물이 함께 놓인 작품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한 공간에 겹친다. 밝은 조각의 몸은 오래된 미술관의 기억을 불러오고, 그 주변에 놓인 현대 인물은 전혀 다른 옷과 자세를 취한다. 사람과 조각을 크기와 위치에서 크게 분리하지 않으면서 살아 있는 몸과 미술사의 몸이 자연스럽게 같은 시야 안에 들어온다.

고전 조각은 배경 장식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몸을 어떻게 세우고, 손을 어디에 놓고, 인물을 어느 방향으로 돌릴 것인지에 대한 오래된 미술의 기억을 현재의 인물 옆에 세운다. 투르가 그리는 사람들은 고전 조각처럼 이상적인 신체를 갖지 않는다. 자세는 느슨하고 때로는 어깨가 처져 있으며, 피곤하거나 머뭇거리는 몸이 많다. 완벽하게 정리된 몸과 지금을 살아가는 몸의 차이가 한 작품 안에서 드러난다.

인물화의 역사에서 누가 그림의 중심에 설 수 있었는지는 사회의 권력과도 연결돼 있었다. 초상화를 의뢰할 경제력이 있는 사람, 정치와 종교의 권위를 가진 사람, 미술사에서 영웅으로 기억될 인물이 오랫동안 큰 화면을 차지했다. 현대미술이 그 범위를 넓혀온 뒤에는 익명의 시민과 노동자, 가족과 친구, 주변부의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투르의 인물들은 이런 변화의 현재에 놓여 있다. 클럽에서 만난 친구와 연인, 술을 마시는 남자, 다른 사람의 어깨에 기대는 몸이 과거의 권력자와 같은 크기의 캔버스를 차지한다. 개인의 특별한 업적을 기념하기보다 평범한 관계와 감정이 기록된다. 초상화의 가치가 ‘누구를 그렸는가’에서 ‘어떤 삶을 남겼는가’로 넓어진 모습이다.

투르의 그림에는 고전 회화를 공부한 흔적과 현대적인 이미지 감각이 동시에 남는다. 신체는 정확한 해부학을 따라 단단하게 묘사되지 않고 붓질 속에서 흐려진다. 한 사람의 얼굴이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에 옆 사람의 몸과 색이 섞이고, 공간의 깊이도 부분적으로 압축된다. 사진처럼 순간을 고정하기보다 기억 속에서 여러 시간이 겹친 듯한 인상을 만든다.

녹색은 이런 인물화를 한눈에 구별하게 하는 색이다. 피부색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얼굴과 몸, 옷과 벽까지 녹색으로 물들인다. 실제 클럽의 조명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현실적인 장소를 그대로 옮긴 풍경에서는 멀어진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도시의 어느 술집에 있으면서 동시에 기억과 감정이 뒤섞인 공간에 놓인다.

색이 인물을 현실에서 조금 떼어놓으면서 한 사람의 피부색이나 외모를 세세하게 분류하려는 시선도 약해진다. 얼굴의 정확한 색보다 고개를 기울인 방향과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자세, 손의 위치가 더 중요해진다. 투르의 인물화에서 사람을 설명하는 것은 외형의 정확한 재현보다 관계의 몸짓이다.

디지털 이미지가 넘치는 시대에 회화가 다시 인물을 붙잡는 방식도 흥미롭다. 휴대전화와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얼굴을 본다. 사진과 영상은 실제 인물의 표정을 즉시 기록하고 몇 초 만에 공유한다. 회화가 사진보다 정확하게 사람을 기록해야 할 이유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투르의 그림은 사진이 하지 못하는 시간을 가져온다. 여러 순간을 한 사람의 기억처럼 겹치고 실제보다 몸을 늘리거나 흐리며, 한밤의 녹색을 화면 전체로 확장한다.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의 정확한 기록보다 시간이 지나고 남은 감정에 가까운 장면이 된다. 회화가 살아남는 이유를 현실의 복제보다 기억과 감정의 재구성에서 찾는 방식이다.

인물화의 귀환도 과거 초상화의 복원과는 다르다. 오늘의 화가들은 권력자의 얼굴을 영구히 남기기보다 관계와 생활을 그린다. 한 사람이 어떻게 앉고, 누구와 술을 마시고, 어떤 순간 혼자 남는지를 기록한다. 얼굴의 닮음보다 한 시대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얼마나 멀어지는지가 중요해졌다.

술집에 여러 인물이 모여 있는 살만 투르의 작품. 술잔과 대화, 서로 겹친 몸을 통해 오늘의 도시생활을 집단 인물화로 담고, 짙은 녹색을 사용해 군중 속 친밀함과 개인의 거리를 함께 드러냈다. 사진=Courtauld Gallery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술집을 가득 채운 군중은 이런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누구도 완전한 중심인물로 고정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다른 쪽에서는 술잔이 오가며, 인물의 얼굴과 몸은 서로의 뒤로 겹쳐진다. 한 명의 초상보다 한 시대의 관계망을 그린 집단 인물화에 가깝다.

과거 유럽 회화의 카페와 무도회, 술집에도 사람들이 모였다. 근대 도시가 성장하면서 화가들은 거리와 카페, 극장과 사교장의 군중을 그렸다. 투르의 술집은 같은 회화적 전통을 오늘의 도시로 가져온다. 달라진 것은 화면의 중심에 들어온 사람과 관계의 모습이다.

친구와 연인의 신체는 가까이 붙고, 성별과 관계의 경계도 과거 풍속화보다 훨씬 유연하다. 휴대전화와 현대적인 옷차림, 밤문화의 조명은 작품을 현재에 놓는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사람이 모인 공간’이라는 회화의 주제는 유지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달라졌다.

투르는 사람들을 이상적인 공동체로 묶지 않는다. 같은 술집 안에서도 대화에 깊이 들어간 사람과 멀찍이 떨어진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만 시선이 돌아오지 않는다. 군중은 하나의 집단이라기보다 각자 다른 감정을 가진 개인들이 잠시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상태로 남는다.

이런 그림이 코톨드 갤러리의 전시장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인물화의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미술관은 과거의 명작을 보존하는 장소인 동시에 어떤 동시대 이미지를 오래 기억할 것인지 선택하는 곳이다. 오늘의 사람을 그린 회화가 역사적인 미술관의 벽에 걸리는 순간 현재의 생활도 미술사의 긴 시간 속에 놓인다.

동시대 작가의 개인전은 작품을 보여주는 행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미술관이 어떤 작가에게 전시공간을 내어주고, 어떤 작품을 한 시대의 중요한 회화로 제시하는지는 이후 작가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미술시장의 인기와 별개로 미술관 전시는 작품을 긴 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읽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유럽 첫 개인전이라는 위치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투르의 회화가 런던의 미술관 안에서 19점 규모로 묶이면서 작가의 작업은 단편적인 이미지보다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게 된다. 클럽의 밤과 조용한 실내, 군중과 고립된 인물을 함께 보아야 투르가 사람을 어떻게 그려왔는지가 선명해진다.

인물화가 다시 강해지는 흐름은 동시대 미술에서 사람의 존재가 다시 중요해졌다는 의미와도 맞닿는다. 기술과 데이터, 인공지능과 가상 이미지가 빠르게 늘어날수록 실제 몸과 관계를 그리는 회화는 다른 속도를 가진다. 사람을 한 번 더 바라보고, 표정과 자세를 천천히 해석하도록 만든다.

투르의 붓질은 사람을 완성된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는다. 얼굴은 부분적으로 흐려지고 몸의 윤곽은 다른 색과 섞인다. 사람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정리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존재로 남는다. 그림을 오래 볼수록 인물의 사회적 범주보다 그 순간의 감정과 관계가 먼저 들어오는 이유다.

오늘의 미술관이 기록하는 인물도 이런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역사적 영웅과 유명인의 얼굴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모르는 친구와 연인, 술집에서 보낸 밤과 잠들지 못한 새벽까지 미술사의 자료가 된다.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하루도 한 시대의 삶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인식이 인물화와 전시 안에서 자리를 넓힌다.

‘Someone Like You’는 새로운 인물화를 발명한 전시라기보다 오래된 회화의 형식을 지금의 삶으로 다시 가져온 전시에 가깝다. 사람을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공간을 그리고, 몸짓과 시선으로 관계를 보여주는 회화의 오래된 방법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안에 들어오는 얼굴과 사랑, 밤의 풍경이 달라졌다.

살만 투르의 회화에서 미술사의 변화는 거창한 선언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고전 조각 옆에 오늘의 인물이 서고, 과거 카페와 무도회가 차지했던 자리에 현대의 술집과 클럽이 들어온다. 그림의 중심에 놓이는 사람이 달라지면서 인물화의 역사도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는다.

코톨드 갤러리에 모인 19점은 회화가 여전히 사람을 기록하는 강한 매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과 영상보다 느리고 정확한 재현에서도 멀어졌지만,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시간을 한 화면에 붙잡는다. 오늘의 인물화가 기록하는 것은 한 사람의 외모만이 아니다.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살아가고 어떤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지까지 함께 남긴다.

미술관 벽에 걸리는 얼굴이 달라진다는 것은 미술사가 기억하는 삶의 범위가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살만 투르의 술집과 클럽, 친구와 연인들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거리가 멀다. 평범한 밤과 사적인 관계가 미술관의 기록으로 남으면서 오늘의 인물화는 다시 사람들의 생활 가까이로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