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 ‘누드’, 몸보다 먼저 들어온 생활의 공간

인체를 이상화하지 않은 1983년 색채 리놀륨 판화…실내의 사물과 인물을 한 구조에 놓으며 쉬가예프 초기 조형언어를 드러낸 작품

2026-10-07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한 여성이 옷을 벗은 채 의자에 앉아 있다. 몸은 정면이 아니라 오른쪽을 향하고, 얼굴 역시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 있다. 오른편에는 벗어놓은 옷이 길게 걸려 있고 뒤쪽에는 작은 탁자와 그릇, 주전자처럼 보이는 생활용품이 놓였다. 발치에도 그릇과 천이 있다.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의 1983년작 ‘누드(Nude)’는 인체를 화면 한가운데 세우면서도 몸만을 고립시키지 않는다. 인물과 옷, 가구와 생활용품이 서로의 자리를 나눠 갖는다.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 ‘누드(Nude)’, 1983, 색채 리놀륨 판화, 40×30㎝, 작가 소장.

여성의 몸은 작품에서 가장 큰 형상이지만 전통적인 누드화에서 자주 만나는 이상화된 인체와는 거리가 있다.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윤곽은 부드럽게 정돈되지 않았고, 가슴과 복부, 허벅지와 종아리도 매끈한 명암으로 입체감을 만드는 대신 검은 선과 거친 흔적으로 구분했다. 피부 곳곳에는 판화의 입자와 얼룩이 남아 있다.

몸을 둘러싼 검은 윤곽선은 특히 강하다. 얼굴에서 목으로, 어깨에서 팔과 손으로 이어지는 선이 인물의 형태를 붙잡는다. 왼쪽 팔을 따라 내려온 선은 손끝에서 멈추고, 오른쪽 팔은 허벅지 위에 놓인 손으로 연결된다. 허벅지에서 무릎, 종아리, 발로 내려가는 윤곽도 한 번에 매끈하게 흐르지 않는다. 굵기와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몸의 무게를 만든다.

쉬가예프는 당시 그래픽 작업에서 현실을 직접 관찰하면서 선과 색, 판화 기법을 함께 탐색하고 있었다. 초기 작업은 작가에게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실험하는 시기였다. 눈앞의 대상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점차 형태를 압축하고, 개별 사물을 작품 안에서 어떻게 배열할 것인지로 관심을 넓혀갔다.

‘누드’에서는 변화의 흔적이 인체와 실내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여성은 작품의 중심에 있지만 주변 공간을 압도하지 않는다. 오른편에 걸린 흰옷은 인물의 몸에 버금가는 크기로 내려온다. 옷의 검은 주름선은 여성의 윤곽보다 훨씬 복잡하고 날카롭다. 여러 겹으로 접힌 천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면서 세로 방향의 긴 흐름을 만든다.

벗은 몸과 벗어놓은 옷이 나란히 놓인 구성도 눈에 들어온다. 여성의 몸은 따뜻한 베이지와 연두색 계열에 가까운 제한된 색으로 처리됐고, 옷은 흰색과 검은 선의 강한 대비로 이루어졌다. 한쪽에는 피부가 드러난 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몸을 감쌌던 옷이 비어 있는 상태로 걸려 있다.

쉬가예프는 두 대상을 극적으로 대비시키지 않는다. 여성은 옷을 바라보며 놀라거나 몸을 가리려 하지 않는다. 손 하나는 의자 옆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가 있고 다른 손은 허벅지 위에 놓였다. 시선은 오른쪽을 향하지만 특별한 사건을 암시하는 표정은 없다. 누드라는 소재에서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극적인 서사를 줄인 선택이다.

인체의 자세도 중요하다. 상체는 비교적 곧게 세워져 있지만 골반과 다리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가고 다른 다리는 무릎을 굽힌 채 앞으로 뻗어 있다. 발의 위치도 서로 다르다. 몸 전체가 하나의 축을 따라 고정되지 않으면서 앉아 있는 사람의 실제 무게가 느껴진다.

의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황색과 연두색의 사각형이 인물 아래에 놓여 있고 몸이 그 위를 상당 부분 가린다. 가구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 사람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지탱할 만큼만 남겼다. 인체를 받치는 사각형과 오른쪽 옷의 수직선, 아래쪽 바닥의 넓은 색면이 서로 맞물리면서 공간이 만들어진다.

배경은 일반적인 실내 원근법으로 깊이를 구축하지 않는다. 벽과 바닥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뒤쪽 가구와 생활용품도 정확한 거리감에 따라 축소되지 않는다. 대신 베이지색 바탕 위에 연두색과 주황색의 면을 겹쳐 공간을 나눈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또 다른 천이나 직물의 일부가 잘린 채 들어와 있다. 오른쪽에는 둥근 형태 몇 개가 흰색 바탕 위에 놓여 있다. 뒤편의 주전자와 그릇, 아래쪽 용기까지 더해지면서 실내는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사물 하나하나를 정물화처럼 세밀하게 묘사하지도 않았다.

사물의 역할은 인물을 둘러싼 생활의 밀도를 만드는 데 있다.

여성의 나체를 특별한 상태로 떼어놓지 않고 일상의 공간 속에 그대로 놓았다는 점에서 ‘누드’의 성격이 선명해진다. 몸 주변에는 옷과 가구, 그릇과 천이 있다. 인체는 생활에서 분리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생활공간을 구성하는 여러 형상 가운데 가장 큰 존재로 자리한다.

색채도 인체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피부와 배경은 모두 낮은 채도의 베이지와 연두색을 공유한다. 몸과 공간 사이에 강한 색채 대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인물은 배경에서 완전히 튀어나오지 않는다.

대신 검은 선이 몸을 분리한다. 색으로 인물을 밀어내기보다 선으로 경계를 세우는 방식이다. 피부 내부에도 검은 흔적을 남겨 몸을 깨끗한 색면으로 만들지 않았다. 어깨와 팔, 복부와 다리에 흩어진 얼룩과 선은 피부의 부피를 묘사하는 동시에 판화 표면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반대로 오른쪽 흰옷은 색을 거의 비워놓은 상태에서 검은 선을 집중시켰다. 몸에는 넓은 색면과 비교적 절제된 선을 사용하고, 비어 있는 옷에는 수많은 주름선을 넣었다. 인체와 의복의 시각적 밀도가 뒤바뀐다.

옷이 비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옷은 사람의 몸을 따라 형태를 갖는 물건이지만 작품에서는 몸과 떨어져 독립적인 형상이 됐다. 길게 늘어진 소매와 겹쳐진 천, 검은 주름이 또 하나의 인체처럼 수직으로 서 있다. 왼쪽의 실제 몸과 오른쪽의 비어 있는 옷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존재를 나타낸다.

두 형상 사이에는 좁은 공간이 남는다. 여성의 얼굴이 향하는 곳도 바로 그 사이에 가깝다. 작품의 시선이 관람자에게 직접 오지 않는 까닭에 누드를 바라보는 관계 역시 달라진다. 인물이 관람자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구조보다 자신의 공간 안에 머무는 인상이 강하다.

쉬가예프의 초기 작업에서 현실의 관찰이 중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누드’의 인체 역시 이상적인 비례를 제시하기 위한 형상보다는 구체적인 몸의 자세와 무게를 기록하는 쪽에 가깝다. 팔과 손, 무릎과 발을 지나치게 다듬지 않았고 몸의 좌우 균형도 완벽한 대칭으로 맞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실적인 인체 습작에 머물지 않는다. 작품을 자세히 볼수록 사람과 사물의 경계보다 각각의 형태가 차지하는 면적과 방향이 더 강하게 들어온다. 여성의 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곡선을 만들고, 걸린 옷은 위에서 아래로 강한 수직선을 만든다. 의자는 사각형으로, 바닥은 넓은 색면으로 받친다.

곡선의 몸, 수직으로 떨어지는 옷, 사각형의 의자, 넓게 펼쳐진 바닥이 하나의 구조를 만든다. 쉬가예프가 현실의 대상을 관찰하면서 동시에 형태를 독립적인 조형요소로 보기 시작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 시기의 탐색은 이후 더욱 멀리 나아간다. 쉬가예프는 사실적인 관찰을 거쳐 형태를 해체하고 추상적인 선과 얼룩을 사용하는 작업으로 이동했으며, 다시 전통 신화와 원형,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독자적인 기호로 구축했다. 후기 작품에서는 여성과 신화적 동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인물 자체보다 형상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83년의 ‘누드’에 후기의 신화적 의미를 거꾸로 덧씌울 필요는 없다. 이 여성은 아직 신화 속 인물이 아니다. 주변의 그릇과 의복 역시 의례적 상징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 작품은 구체적인 실내와 구체적인 몸에서 출발한다.

오히려 현실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쉬가예프가 훗날 인간의 형상을 상징과 원형의 영역으로 확장하기 전에 실제 사람의 몸을 어떻게 관찰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드’에서 사람은 완벽한 형태로 정제되지 않는다. 피부에는 흔적이 남고 윤곽은 거칠며 자세에는 실제 몸의 무게가 실린다. 주변의 사물도 깨끗하게 정돈되지 않는다. 천은 구겨져 있고 옷은 복잡하게 겹쳐져 있으며 여러 생활용품은 서로 다른 위치에 흩어져 있다.

그런데 흩어진 요소들은 판화 안에서 다시 질서를 얻는다. 인체의 곡선과 옷의 수직선, 의자의 사각형과 바닥의 색면이 서로 다른 방향을 만들고, 베이지와 연두색, 주황색, 검은색이 제한된 범위 안에서 반복된다. 생활의 복잡함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조형적인 질서로 바꾼 것이다.

‘햇빛 비친 집’에서 산과 집, 말과 땅을 압축했던 시선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풍경에서는 자연과 생활을 골라냈고, ‘누드’에서는 인체와 실내를 골라냈다. 소재는 달라졌지만 현실에서 필요한 형태를 선택하고 선과 색의 관계로 다시 조직하는 태도는 이어진다.

쉬가예프에게 초기의 현실은 나중에 버려지는 단계라기보다 조형언어를 만들어가는 토대에 가까웠다. 관찰한 대상을 단순화하고, 단순화된 형태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작품은 점차 현실의 외형을 넘어설 수 있었다.

‘누드’의 여성도 그래서 몸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오른쪽에 걸린 옷과 마주하고, 아래쪽의 그릇과 의자 위에 놓이며, 뒤편의 생활용품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인물을 중심에 놓으면서도 주변을 지우지 않았다.

1983년의 쉬가예프는 사람의 몸을 신화로 바꾸기 전에 몸이 놓인 현실을 보고 있었다. 피부와 옷, 의자와 그릇을 같은 판 위에 남기면서 인체를 생활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훗날 인간과 동물, 자연과 오래된 기억을 하나의 조형세계 안에 배치하게 되는 작가에게 형상 사이의 관계는 이미 초기 판화에서 중요한 문제로 자리하고 있었다.

‘누드’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벗은 몸 자체보다 몸이 놓인 방식이다. 한 사람의 신체와 비어 있는 옷, 일상의 사물이 서로 다른 크기와 선으로 한 공간을 나눠 가진다. 쉬가예프의 예술이 현실의 관찰에서 출발해 형태와 관계의 탐구로 깊어지고, 다시 신화와 원형의 세계로 확장되는 긴 흐름을 따라가면 1983년의 ‘누드’는 초기의 인체 연구를 넘어 이후 조형세계의 바탕이 형성되던 한 지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