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 ‘캐나다 여성의 여권’, 한 사람을 규격 안에 가둘 수 있는가
증명사진과 인쇄문자 위를 가로지르는 선과 물감…2004년 혼합매체에서 초상의 경계를 사진·문서·기억의 층위로 확장한 쉬가예프
[KtN 박준식기자]검붉은 종이 한가운데 여성의 증명사진이 놓여 있다. 정면을 향한 얼굴과 상반신은 작은 직사각형 안에 들어가 있고, 사진 아래에는 인쇄된 문자가 남아 있다. 노란 선은 사진의 테두리를 무시한 채 얼굴과 몸을 지나 작품 바깥으로 뻗는다. 아래에서는 길고 붉은 형상이 사진을 향해 올라가고, 굵은 흰색 띠는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로 크게 휘어진다. 노랑과 빨강, 흰색, 보라색 물감은 검붉은 바탕 곳곳에 튀고 흘러내린다.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의 2004년작 ‘캐나다 여성의 여권(Passport of the Canadian Woman)’은 한 사람을 식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진을 회화의 한가운데 놓고, 명료했던 이미지의 경계를 선과 색으로 흔든다.
작품에서 가장 안정된 형태는 여성의 사진이다. 주변의 색과 선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사진은 반듯한 직사각형을 유지한다. 얼굴도 알아볼 수 있다. 사진과 인쇄문자는 한 사람의 신원을 일정한 형식 안에 기록하는 체계를 떠올리게 하지만, 쉬가예프는 완결된 이미지로 남겨두지 않았다. 왼쪽에서 들어온 노란 선은 사진의 몸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빠져나가고, 위에서 내려온 선도 얼굴 주변을 통과한다. 작은 물감 자국까지 사진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각형의 경계와 회화의 흔적이 한 자리에서 겹친다.
사진을 지우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여성의 얼굴과 신체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다. 쉬가예프가 흔든 것은 사람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 고정하는 방식이다. 얼굴을 식별하는 사진과 사진의 테두리를 넘어가는 선을 동시에 남겨두면서 작품은 초상의 문제를 닮음에서 경계의 문제로 옮긴다.
1983년 ‘림마’에서 쉬가예프는 한 여성의 얼굴과 몸을 직접 그렸다. 직물과 음식, 가구와 찻주전자까지 인물 주변의 생활공간을 함께 담으면서 한 사람을 둘러싼 일상의 밀도를 구축했다. 1984년 ‘아산바이 아타’에서는 주변을 크게 덜어내고 노인의 얼굴 가까이 들어갔다. 이마와 눈가의 주름, 수염과 귀에 선을 집중해 한 사람에게 축적된 시간을 판 위에 새겼다. 두 작품에서 초상은 작가가 대상을 관찰하고 손으로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완성됐다.
‘캐나다 여성의 여권’에서는 출발점부터 달라진다. 이미 만들어진 사진이 작품 안으로 들어온다. 쉬가예프는 얼굴을 처음부터 다시 그리지 않고 사진과 종이, 인쇄문자와 물감을 하나의 표면에서 만나게 한다. 1980년대의 초상이 사람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가까웠다면 2004년 작품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어떻게 다시 놓을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검붉은 바탕은 사진과 가장 강한 대비를 만든다. 갈색과 자주색, 검정이 여러 겹 번지면서 종이 전체에 일정하지 않은 깊이를 만들고, 가장자리도 매끈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색이 하나의 면으로 닫히지 않고 얼룩과 번짐을 그대로 품는다. 판화에서 선과 색면을 치밀하게 나눴던 초기 작업과 비교하면 물질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
1986년 ‘비둘기를 든 소녀’에서 청색의 말과 밝은 인물은 현실적인 색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고, 에티오피아의 거리 풍경에서는 붉은 하늘과 노란 벽이 실제 공간을 강한 색면의 구조로 바꿨다. 1987년 ‘지진’에 이르면 선이 사람과 동물의 윤곽을 가로지르며 형상을 흔들었다. 1988년 ‘절규’에서는 색을 걷어낸 흑백의 충돌이 인간의 몸을 압박했다. 2004년의 ‘캐나다 여성의 여권’은 판화의 선과 면을 넘어 사진과 인쇄물, 번지는 물감과 흘러내리는 흔적까지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다.
노란 선은 작품 전역을 이동한다. 직선으로 뻗다가 휘고,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며, 곳곳에서는 물감이 둥근 방울로 맺힌다. 검붉은 바탕과 사진을 따로 구분하지도 않는다. 한 번 시작된 선이 서로 다른 재료와 이미지를 건너가면서 종이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묶는다. 사진의 테두리가 안과 밖을 구분한다면 노란 선은 계속 그 구분을 넘어간다.
하단에서 올라오는 붉은 형상은 작품의 세로축을 만든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휘어 올라오며 사진 바로 아래까지 닿는다. 반대로 흰색의 굵은 띠는 작품 아래쪽을 대각선으로 가른다. 붉은 형상과 흰 띠가 교차하고 그 위를 다시 가는 노란 선들이 지난다. 상단에는 갈색의 길쭉한 형태가 수평으로 놓였다. 직사각형 사진을 중심으로 수직과 수평, 대각선의 방향이 동시에 맞물린다.
수많은 물감 자국이 우연하게 흩어진 듯하지만 작품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중앙의 사진이 시선을 붙잡고, 붉은 형상이 아래에서 사진을 향해 올라온다. 흰 띠는 하단의 넓은 공간을 가르고 상단의 갈색 형상은 반대 방향으로 균형을 잡는다. 노란 선은 이 큰 구조 사이를 오가며 서로 떨어져 있는 부분을 연결한다. 쉬가예프는 정돈된 구도를 버린 것이 아니라 질서를 만드는 방식을 바꿨다.
1987년 ‘지진’에서도 비슷한 전환이 있었다. 검은 선이 작품 전체를 뒤덮으면서 사람과 동물의 형태를 무너뜨렸지만, 가장자리의 높은 밀도와 중앙의 밝은 영역 사이에는 치밀한 조절이 남아 있었다. ‘캐나다 여성의 여권’에서는 선의 충돌에 사진이라는 다른 종류의 이미지가 들어온다. 작가가 그린 형상을 해체했던 단계에서 벗어나 이미 만들어져 사회 안에서 기능하는 이미지까지 자신의 조형 체계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사진 아래에 남은 인쇄문자도 같은 구조 안에서 읽힌다. 문자는 본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기호지만 작품에서는 문장 전체보다 잘린 형태와 배열이 먼저 들어온다. 사진과 문자가 지닌 정보 전달의 기능은 회화적 흔적과 겹치면서 약해지고, 종이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얼굴과 문자, 선과 얼룩의 위계도 자연스럽게 흔들린다.
‘여권’이라는 제목은 작품에 들어온 사진과 문자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여권은 얼굴과 이름, 국적을 일정한 규격 안에 배치해 한 사람을 식별하는 문서다. 쉬가예프의 작품에서는 규격의 질서와 회화의 움직임이 정면으로 만난다. 사진은 직사각형 안에 머물지만 선은 테두리를 넘어가고, 인쇄된 문자는 고정돼 있지만 물감은 흘러내린다. 사진 속 인물은 정면으로 멈춰 있지만 주변의 흔적은 어느 한 방향에도 고정되지 않는다.
한 사람을 규정하는 이미지와 한 사람을 둘러싸고 계속 늘어나는 흔적 사이의 간격이 작품의 긴장을 만든다.
쉬가예프의 초상은 처음부터 얼굴만을 다루지는 않았다. ‘림마’에서는 인물과 생활공간이 함께 있었고, ‘아산바이 아타’에서는 얼굴에 쌓인 시간이 중요했다. ‘비둘기를 든 소녀’에서는 사람과 말, 새가 하나의 관계 안으로 들어왔으며 후기 작업에서는 인간과 동물, 전통의 기호와 신화적 형상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든다. 인물을 홀로 떼어내기보다 주변의 존재와 기호를 함께 놓는 방식이 오랜 시간 이어졌다.
2004년에는 관계를 이루는 대상이 달라졌다. 사람 옆에 집이나 가구, 말과 비둘기가 놓이는 대신 한 사람을 기록한 사진과 문자, 물감과 선이 만난다. 초상의 범위가 신체에서 이미지로 넓어진 것이다. 사람을 직접 그리지 않아도 초상을 다룰 수 있고, 얼굴을 새로 묘사하지 않아도 한 개인을 둘러싼 이미지의 조건을 작품 안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됐다.
쉬가예프의 후기 작업에서 신화와 원형, 전통의 기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캐나다 여성의 여권’은 작업의 또 다른 폭을 드러낸다. 오래된 신화적 형상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생산한 사진과 문서 역시 작품의 재료가 된다. 서로 다른 시대와 성격을 가진 이미지를 하나의 표면에 겹쳐 놓는 방식은 쉬가예프의 작업을 특정 지역의 전통 도상에만 묶기 어렵게 만든다.
1980년대의 쉬가예프는 현실에서 출발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산과 집을 보고, 아이와 동물,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현실의 형태를 줄이고 색을 바꾸면서 점차 재현의 경계를 넓혔고, ‘지진’에서는 형상을 흔들었으며 ‘절규’에서는 해체된 조형언어를 다시 인간의 몸에 집중시켰다. 이후 인간과 동물, 신화와 기호가 결합하는 작업에서도 현실과 추상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지 않았다.
‘캐나다 여성의 여권’에서도 두 체계는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사진은 끝까지 사진으로 남고 물감은 물감의 흔적을 유지한다. 인쇄문자는 회화적인 선과 다른 질감을 갖는다. 쉬가예프는 서로 다른 재료를 매끈하게 봉합하기보다 차이를 그대로 드러낸 채 한 작품에 놓는다. 사진의 기계적인 기록성과 손으로 움직인 선의 불규칙성이 맞붙으면서 작품의 표면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겹친다.
여성의 얼굴이 작품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상화라면 얼굴이 가장 강한 중심이 되기 쉽지만 ‘캐나다 여성의 여권’에서는 시선이 얼굴에 도착한 뒤 곧바로 밖으로 빠져나간다. 사진을 통과하는 노란 선을 따라가면 검붉은 바탕으로 이동하고, 아래의 붉은 형상을 따라가면 흰 띠와 충돌한다. 다시 흩어진 물감 자국을 좇으면 작품 가장자리까지 시선이 퍼진다. 얼굴에서 시작된 시선이 한 사람의 경계 밖으로 계속 확장된다.
사진과 회화의 차이도 끝까지 유지된다. 사진은 이미 지나간 한 순간을 고정한다. 반면 물감의 선과 방울, 번짐은 손의 움직임이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정지된 얼굴 위에 움직임의 시간이 포개지는 셈이다. 쉬가예프가 한 사람의 이미지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완결된 초상으로 남겨두지 않는 방식이다.
작품 가장자리의 거친 종이도 같은 흐름에 들어온다. 반듯하게 잘린 문서나 사진과 달리 바깥 윤곽은 불규칙하다. 중앙의 직사각형 사진과 바깥 종이의 거친 경계가 대비되면서 규격화된 이미지와 손으로 다뤄진 물질의 차이가 더욱 커진다. 종이 자체가 단순한 지지체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구조에 참여한다.
‘캐나다 여성의 여권’에서 쉬가예프의 초상은 결국 얼굴 바깥으로 확장된다. 1980년대의 판화에서 사람의 주름과 몸, 주변의 생활을 통해 개인을 바라봤다면 2004년에는 사진과 문자, 물감과 종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겹쳐 한 사람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흔들리는 과정을 다룬다. 얼굴의 닮음을 붙잡았던 초상에서 출발한 작업이 얼굴을 기록하는 체계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변화다.
검붉은 종이 한가운데 여성의 얼굴은 끝까지 남아 있다. 사진도 사라지지 않고 직사각형의 테두리도 유지된다. 그러나 노란 선은 얼굴을 지나 사진 밖으로 나가고, 붉은 형상은 아래에서 올라오며, 흰 띠는 작품의 바닥을 크게 가른다. 인쇄문자와 물감 자국도 같은 종이 위에서 뒤섞인다.
한 사람을 명료하게 식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진은 쉬가예프의 손을 거치며 더 복잡한 이미지가 된다. 2004년 ‘캐나다 여성의 여권’은 얼굴을 지우지 않은 채 초상의 경계를 허문다. 사람을 규격 안에 붙잡아 두는 사진과 그 경계를 넘어가는 선의 충돌 속에서, 쉬가예프의 초상은 한 개인의 외모를 기록하는 단계에서 이미지와 기억, 흔적이 겹쳐지는 영역으로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