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나비킴 김현정 ‘무한 7’…LED를 품은 나비, 정지된 회화에 시간을 넣다

산을 향해 비상하는 다섯 나비·소실점으로 좁혀지는 공간…점멸하는 빛이 만든 속도와 생명 리듬 ‘날으는 빛’의 투과광에서 나비 내부의 실제 광원으로…2012년 ‘빛의 나비’가 얻은 시간성

2026-10-10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12년작 ‘무한 7(Infinity 7)’에는 다섯 마리의 나비가 산을 향해 날아간다. 가까운 곳의 나비는 크게 솟아 있고 뒤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양쪽의 구조물은 원경의 한 지점을 향해 좁아지며 시선을 먼 산으로 밀어낸다. 전경에서 원경으로 빠르게 뻗어가는 원근과 나비의 크기 변화가 겹치면서 162×108㎝의 평면에는 실제 거리보다 훨씬 긴 이동감이 생긴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무한 7(Infinity 7)’, 2012, LED·포토페인팅·아크릴 부조·피그먼트 프린트, 162×108㎝. 원경의 산을 향해 비상하는 다섯 마리의 나비를 배치하고 나비 부조 내부에 LED를 설치했다. 빛의 밝기와 점멸 속도를 조절해 정지된 이미지 안에 시간과 움직임, 생명의 리듬을 더한 ‘무한’ 연작의 주요 작업이다.

‘무한 7’에서 산은 멀리 있다. 화면 아래쪽에서 출발한 시선은 양쪽 벽면을 따라 좁아지고, 마침내 푸른 산과 밝은 하늘이 만나는 곳에 닿는다. 인공적으로 정돈된 직선의 공간 너머에 자연의 산이 놓이면서 나비의 비행 방향도 선명해진다. 다섯 마리는 화면 안을 자유롭게 흩도는 대신 같은 원경을 향해 움직인다. 작품 전체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는 구조다.

나비를 둘러싼 공간에는 디지털 이미지에 가까운 매끈한 표면과 강한 원근감이 들어와 있다. 자연의 산과 인공적인 구조, 실제 광원과 인쇄 이미지가 한 작품 안에서 겹친다. 2000년대 중반 장지와 분채로 나비를 그리던 김현정 작가의 회화와 비교하면 매체의 성격부터 크게 달라졌다. 종이 위에 색을 올려 빛을 표현하던 작업이 사진과 아크릴 부조, 피그먼트 프린트, LED를 함께 사용하는 복합 구조로 이동했다.

가장 큰 변화는 나비의 몸에서 일어난다.

아크릴 부조로 솟아오른 나비 안에는 LED가 들어 있다. 빛은 그림 밖에서 작품을 비추는 조명이 아니라 나비를 이루는 실제 재료가 됐다. 광원은 일정한 밝기로 켜진 상태를 유지하기보다 서서히 강해지고 다시 변한다. 점등과 점멸의 속도에는 리듬이 들어가며, 정지된 나비가 마치 호흡하거나 맥박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김현정 작가는 빛의 세기와 점멸 속도를 심장박동과 비슷한 리듬으로 조절했다. 따뜻한 색의 LED가 나비 내부에서 밝아질수록 외부에서 빛을 받은 형상보다 몸 안에 에너지를 품은 생명체에 가까워진다. 날개를 실제로 움직이는 키네틱 장치 없이도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시간의 변화가 비행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회화에 ‘시간’이 들어오는 지점이다. 일반적인 평면회화에서 작품의 물리적 형태는 관람하는 동안 유지된다. ‘무한 7’에서는 몇 초 전의 나비와 몇 초 뒤의 나비가 빛의 밝기에서 달라진다. 관람자는 한순간의 완성된 이미지만 마주하는 대신 광원이 밝아지고 점멸하며 다시 변하는 과정을 함께 보게 된다.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곧 작품 변화의 일부가 된다.

‘날으는 빛’ 연작과의 차이도 여기에서 선명해진다. 2009년 ‘날으는 빛’에서는 RGB 광원과 투명 재료를 이용해 물감으로 얻기 힘들었던 맑고 투명한 색을 실제 빛으로 만들어냈다. 촬영된 결과는 다시 피그먼트 프린트라는 평면 이미지로 옮겨졌다. 빛을 직접 사용했지만 최종 작품에는 촬영된 빛의 순간이 정지된 상태로 남았다.

‘무한 7’에서는 광원이 최종 작품 안에 들어온다. LED가 나비 부조 내부에서 계속 작동하면서 빛은 촬영 당시의 한순간에서 벗어나 현재형의 사건이 된다. 2009년의 작업에서 빛이 색을 만드는 실험이었다면 2012년에는 빛의 밝기와 점멸, 지속시간까지 조형의 요소가 됐다. 색채 연구가 시간과 운동의 연구로 넓어진 것이다.

나비가 평면에서 부조로 솟아오른 변화도 중요하다. 포토페인팅과 피그먼트 프린트로 구성된 공간 위에 아크릴 나비가 물리적인 높이를 갖는다. 배경은 먼 산을 향해 깊어지고, 나비는 작품의 전면으로 돌출된다. 원근법이 만든 가상의 깊이와 아크릴 부조의 실제 깊이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평면과 입체의 경계가 겹친다.

전경의 나비와 원경의 산 사이에는 또 다른 기호들이 자리한다. 작품에 들어간 수학 방정식은 질서와 계산의 언어를 가져오지만, 그 끝에 놓이는 ‘0’과 무한의 표식은 숫자의 계산을 넘어 삶의 방향과 순환을 생각하게 하는 기호로 확장된다. 복잡한 식을 따라가도 마지막에는 비움과 끝없는 순환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무한’이라는 제목과 맞물린다.

‘0’은 김현정 작가의 앞선 작업에서도 중요한 형태였다. 2010년 ‘제로’ 연작에서는 타원이 알과 생명의 시작, 순환과 가능성을 품은 형태로 등장했다. 내부에는 나비와 자연의 형상이 뒤섞이고 바깥으로 빛이 확산됐다. ‘무한 7’에서는 정지된 타원 안에 머물던 가능성이 나비의 실제 비행 방향으로 전환된다. 알 안에 응축돼 있던 생명의 에너지가 껍질을 벗어나 먼 산을 향해 이동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작품 제목의 ‘무한’ 역시 끝없이 반복되는 장식적 패턴보다 이동의 방향과 관련해 읽힌다. 다섯 나비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으면서 같은 쪽으로 향한다. 가까이 있는 존재와 멀리 있는 존재의 크기와 속도는 달라도 원근의 끝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수식과 ‘0’, 무한의 기호, 나비의 비행이 겹치면서 작품은 삶의 여러 경로와 그 너머의 세계를 한 공간에 놓는다.

원경에 놓인 산은 이 구조에서 특별한 무게를 갖는다. 도시적이고 매끄러운 인공 구조를 통과한 나비가 향하는 곳에 자연이 자리한다. 푸른 산은 작품 전체에서 비교적 작은 면적을 차지하지만 소실점과 겹치면서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장소가 된다. 나비의 방향성과 산의 위치가 맞물리며 자연은 단순한 풍경보다 이동이 향하는 지점으로 기능한다.

이때 LED의 점멸은 비행을 더욱 구체화한다. 밝아지는 나비는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차오르는 듯하고, 다시 변하는 빛은 호흡의 주기를 만든다. 나비 한 마리를 색칠해 밝게 만드는 방식과 내부에서 실제 빛이 발생하도록 만드는 방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후자에서는 빛이 나비를 묘사하는 색을 넘어 나비의 존재 상태를 바꾸는 재료가 된다.

김현정 작가가 이후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면서 발전시킨 ‘빛나는 색채(Vital Color)’와 ‘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의 방향도 ‘무한 7’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기 시작한다. 안료가 빛을 연상시키는 단계에서 실제 광원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나비의 생명성과 결합한다. 내면의 빛이라는 생각이 LED의 밝기 변화와 점멸이라는 물리적 현상으로 밖으로 나온다.

‘무한 7’의 의미는 LED라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포토페인팅이 만든 가상의 공간, 아크릴 부조가 만든 실제 깊이, LED가 만든 시간, 수학 방정식이 만든 지적인 질서, 산과 나비가 만든 자연의 방향성이 한 작품 안에서 동시에 움직인다. 회화·사진·부조·빛 가운데 하나가 중심을 독점하기보다 서로 다른 매체가 나비의 비행을 구성한다.

이 복합성은 이후 김현정 작가의 작업이 공간과 설치, 영상으로 확장되는 흐름과도 연결된다. ‘무한’ 연작에서 실제 광원이 작품 안에 들어오면서 빛은 색채의 문제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로 넓어졌다. 이후 ‘별과 별사이’에서는 내면의 빛과 우주적 공간이 더 깊게 결합하고, 설치와 공공미술에서는 빛의 움직임이 실제 공간과 관람자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2006년 ‘첫 만남’의 나비는 꽃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2009년 ‘날으는 빛’에서는 나비의 몸이 투과되는 색과 빛으로 바뀌었다. 2010년 ‘제로’에서는 알과 같은 타원 안에서 생명과 빛이 응축됐다. 2012년 ‘무한 7’에 이르면 나비는 부조로 솟아오르고 내부에 실제 광원을 품은 채 먼 산을 향해 움직인다.

빛이 나비를 비추던 관계도 이때 달라진다. ‘무한 7’에서 빛은 나비의 바깥에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나비가 스스로 품고 움직이는 에너지가 된다.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LED의 시간 속에서 정지된 날개는 호흡을 얻고, 김현정 작가의 ‘빛의 나비’는 이 작품에서 비로소 자신의 내부에서 빛을 만들어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