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나비킴 김현정 ‘무한 1’…비워낸 타원, 다시 시작되는 빛
수직 타원 안을 넓게 비우고 색과 나비는 둘레로…‘채움’에서 ‘여백’으로 옮겨간 2012년 ‘제로’의 응축된 알에서 ‘무한’의 열린 공간으로…비움과 재창조를 연결한 전환점
[KtN 박준식기자]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12년작 ‘무한 1(Infinity 1)’에는 커다란 수직 타원이 자리한다. 타원 안쪽은 흰빛에 가까운 밝은 영역으로 넓게 열리고, 색과 나비의 형상은 중심을 가득 채우기보다 주변으로 물러난다. 이전 작업에서 겹치고 밀집하던 색채가 한발 비켜서면서 작품의 중심에는 ‘비어 있음’ 자체가 들어온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밝은 중심이다. 강한 색이 한가운데에서 터져 나오거나 복잡한 형상이 중심을 차지하지 않는다. 흰 영역이 위아래로 길게 이어지면서 타원의 내부를 넓게 열어놓는다. 주변에는 여러 색과 나비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시선은 그 사이를 지나 다시 빈 중심으로 돌아온다.
이 여백은 아무것도 없는 공백과는 성격이 다르다. 색을 덜어내면서 오히려 밝음이 커지고, 형상을 비워내면서 타원의 존재감이 강해진다. 무엇인가를 채워 시선을 붙잡는 방식에서 공간 자체를 남겨 시선이 머무르게 하는 방식으로 조형의 중심이 바뀐 것이다.
김현정 작가는 이 시기 ‘비움은 재창조의 전제’라는 생각을 작업 안으로 가져왔다. ‘무한 1’의 수직 타원은 이 인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담은 형태다. 내부를 넓게 비운 구성에는 기존의 질서를 내려놓은 뒤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수 있다는 사유가 놓여 있다. 장자의 ‘허(虛)’와 이어지는 여백의 가능성 역시 작품의 중요한 바탕이 됐다.
흰색의 역할도 달라진다. 흰 부분은 단순한 바탕색보다 빛이 응축된 영역에 가깝다. 여러 색이 중첩된 끝에서 밝음이 생기는 방식과 달리, ‘무한 1’에서는 넓은 흰 영역 자체가 작품의 중심을 차지한다. 색의 밀도가 낮아진 만큼 빛의 존재감은 오히려 커진다.
2010년 ‘제로 2’와 나란히 놓으면 변화가 더욱 또렷하다. ‘제로 2’의 수직 타원 내부에는 보라와 청록, 흰색과 분홍빛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이고 나비와 자연의 형상이 안쪽에서 밀도 높게 움직였다. 타원은 생명을 품은 알이자 여러 존재가 함께 뒤섞이는 세계였고, 바깥으로는 가느다란 빛이 사방으로 번졌다.
‘무한 1’에서는 같은 계열의 수직 타원이 훨씬 가벼워진다. 내부를 채우던 색과 형상이 둘레로 이동하고, 가운데에는 밝은 여백이 남는다. ‘제로’의 타원이 아직 태어나기 전 수많은 가능성을 내부에 품은 알이었다면, ‘무한 1’의 타원은 그 가능성이 새로운 상태로 이동하기 위해 공간을 비워낸 형태로 읽힌다.
알이라는 의미도 이 작품에서 다시 달라진다. 알은 무엇인가로 꽉 찬 밀폐된 덩어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아직 형태를 얻지 않은 생명이 태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한 1’의 빈 타원은 그래서 끝난 자리보다 막 시작되기 직전의 공간에 가깝다. 구체적인 형상이 줄어든 자리에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다음 형태의 가능성이 들어온다.
작품 주변부에 남아 있는 나비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 초기의 나비는 꽃 위에 머물거나 날개를 활짝 펼친 구체적인 생명체로 등장했다. ‘날으는 빛’에서는 빛과 투명한 색층에 섞였고, ‘제로’에서는 타원 안의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됐다. ‘무한 1’에 이르면 나비는 중심을 독점하기보다 비워진 공간의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이동을 예고한다.
나비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위치가 달라진 것이다. 이전에는 나비의 형상 자체가 빛의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여기서는 나비가 비켜선 자리까지 작품의 의미가 된다. 무엇인가가 날아오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색과 형태가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타원 내부의 여백과 맞물린다.
2012년 같은 해 제작된 ‘무한 7’과 비교하면 ‘무한’이라는 제목이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는지도 드러난다. ‘무한 7’에서는 다섯 마리 나비가 원경의 산을 향해 비상하고, 내부에 설치한 LED가 점멸하며 시간과 운동을 만든다. 속도와 방향, 실제 광원의 변화가 작품을 움직인다.
‘무한 1’의 움직임은 훨씬 조용하다. 실제 빛이 점멸하지 않고 나비가 한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지도 않는다. 대신 밝은 타원 내부가 넓게 비워지면서 시선이 머물고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같은 ‘무한’ 연작 안에서 한 작품은 실제 광원의 운동으로, 다른 작품은 비어 있는 공간의 잠재성으로 무한을 풀어낸 셈이다.
여기서 ‘무한’은 끝없이 무언가를 더하는 상태와도 거리가 있다. 오히려 덜어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색이 사라진 부분은 결핍이 아니라 다음 변화가 들어올 자리이고, 비어 있는 타원은 정지된 공백보다 생성 직전의 긴장을 품는다.
김현정 작가가 이후 발전시킨 ‘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와 연결해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빛나는 색채’를 찾는 초기 작업에서는 빛을 얼마나 맑고 투명하게 구현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무한 1’에서는 밝음이 색채의 강도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덜어낸 공간과 흰 여백 자체가 내면의 밝음을 구성한다.
빛의 의미가 물리적인 밝기에서 내적인 상태로 이동하는 부분이다. LED처럼 실제 광원이 존재하지 않아도 비워진 타원의 중심은 작품에서 가장 밝은 부분으로 남는다. 형상을 많이 쌓아올려야 생명성이 강해지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움 속에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생명의 가능성을 두는 방향으로 사유가 깊어진다.
이 작품이 이후 ‘프로포즈(Propose)’ 연작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중요하다. ‘무한 1’에서 시작된 비움과 재창조의 관계는 십여 년 뒤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 회복과 사랑을 다루는 작업으로 구체화됐다. 비워낸 공간이 새로운 형상을 받아들이는 자리였다면, 이후에는 그 열린 공간에 서로를 향하는 관계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무한 1’은 그래서 김현정 작가의 2012년 작업 가운데 가장 조용하면서도 긴 시간으로 이어진 작품 중 하나다. 강한 LED도, 빠른 비행도 앞에 서지 않는다. 대신 한가운데를 비우고, 색과 나비를 가장자리로 물리며 작품 전체의 호흡을 바꾼다.
‘제로’에서 타원은 생명을 품은 알이었다. ‘무한 1’에서는 그 알의 내부가 밝게 열린다. 채워진 세계에서 비워진 세계로 이동하면서 타원은 보호하는 껍질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무한 1’에서 비움은 끝난 뒤 남은 빈자리가 아니다. 색과 형상이 한발 물러난 자리에 흰 빛이 들어오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다음 세계가 머문다. 김현정 작가에게 무한은 끝없이 채워가는 상태보다 비워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