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 ‘자밀라’, 두 얼굴과 한 마리 새에 담긴 사랑의 기억

1997년 유화에 등장한 겹쳐진 인물과 분홍빛 새…키르기스 문학의 서정성과 쉬가예프의 신화적 조형언어가 만나는 초상

2026-10-27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 Yuristanbek Shygaev의 1997년작 ‘자밀라(Jamila)’에는 두 얼굴이 겹쳐 있고, 아래쪽에는 분홍빛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다. 오른쪽 인물은 붉은 모자를 쓰고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으며, 뒤쪽의 밝은 얼굴은 옆모습으로 길게 이어진다. 검은색과 황갈색이 넓게 깔린 공간에서 두 인물의 얼굴과 새의 날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는다. 인물의 시선과 새의 움직임이 교차하는 구성은 사랑과 기억, 인간의 내면을 다뤄온 쉬가예프 회화의 서정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자밀라’라는 키르기스스탄 출신 작가 칭기즈 아이트마토프(Chingiz Aitmatov)의 동명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트마토프의 ‘자밀라’는 전쟁 시기 키르기스 농촌을 배경으로 사랑과 개인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쉬가예프의 회화는 소설의 줄거리를 직접 재현하기보다 두 인물의 얼굴과 새의 형상을 중심으로 감정과 기억의 관계를 구성한다. 중앙아시아의 문학적 전통과 신화적 상상력이 결합한 쉬가예프의 예술에서 ‘자밀라’는 인물의 초상과 상징적 형상이 만나는 작품으로 자리한다.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 ‘자밀라(Jamila)’, 1997, 캔버스에 유채, 50×30㎝, 작가 소장.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캔버스 중앙에는 두 인물의 얼굴이 서로 겹쳐 있다. 앞쪽의 얼굴은 붉은 모자를 쓰고 있으며 눈과 코, 입이 간결한 선으로 표현됐다. 피부에는 황갈색과 붉은색이 섞여 있고, 눈매는 길고 날카롭게 그려졌다. 얼굴의 오른쪽에는 귀와 귀걸이를 연상시키는 작은 장식이 자리한다. 목 아래에는 검은색과 붉은색의 굵은 선들이 이어져 옷의 일부를 형성한다.

뒤쪽의 얼굴은 앞쪽 인물보다 밝은 색채로 표현됐다. 이마에서 코와 입으로 이어지는 윤곽은 옆모습을 이루고, 얼굴의 일부는 검은색의 넓은 영역에 가려져 있다. 밝은 얼굴은 앞쪽 인물의 왼편에 자리하면서도 검은색의 머리 부분과 이어져 있다. 두 얼굴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놓이면서 하나의 인물 안에 두 시선이 존재하는 듯한 구성이 만들어진다.

앞쪽 인물의 붉은 모자는 작품에서 중요한 색채 요소다. 모자의 윗부분에는 검은색이 넓게 깔려 있고, 아래에는 붉은색과 황갈색의 띠가 이어진다. 노란색의 가는 선은 모자의 윤곽을 따라 길게 뻗으며 얼굴의 상단을 강조한다. 모자의 붉은색은 아래쪽 의상의 붉은 선들과 연결돼 작품 중앙에 따뜻한 색채의 흐름을 만든다.

앞쪽 인물의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됐다. 검은 선으로 그린 눈꺼풀과 작은 눈동자는 왼쪽을 향하고, 눈썹은 날카로운 곡선으로 이어진다. 얼굴의 다른 부분이 비교적 넓은 색면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눈 주변에는 짧고 세밀한 선이 집중돼 있다. 시선이 향하는 방향과 뒤쪽 얼굴의 옆모습이 맞물리면서 두 인물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두 얼굴의 경계에는 검은색이 넓게 놓여 있다. 앞쪽 인물의 머리와 뒤쪽 인물의 얼굴 사이에서 검은색은 배경이면서 동시에 머리카락이나 그림자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만든다. 검은색의 영역은 두 얼굴을 분리하면서도 하나의 덩어리로 연결한다. 쉬가예프는 밝은 얼굴과 붉은 얼굴, 검은색의 머리 부분을 겹쳐 인물의 내면을 복합적인 형상으로 표현했다.

캔버스 아래쪽에는 분홍빛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다. 새의 머리는 왼쪽 아래를 향하고, 길고 뾰족한 부리와 작은 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몸통은 밝은 분홍색과 흰색으로 표현됐으며 날개에는 노란색과 회색의 긴 선들이 겹쳐 있다. 새의 몸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길게 이어져 인물의 얼굴과 교차하는 대각선을 만든다.

새의 날개는 작품에서 가장 큰 움직임을 형성한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한 밝은 날개는 중앙을 향해 길게 뻗고, 끝부분은 인물의 얼굴 아래까지 이어진다. 날개를 이루는 가느다란 선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겹치며 깃털의 질감을 만든다. 분홍색과 흰색의 밝은 색채는 검은색과 갈색의 어두운 배경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새의 몸은 캔버스 아래쪽의 검은 영역을 가로지른다. 길게 뻗은 날개와 둥근 몸통이 하나의 곡선을 이루며, 새의 머리는 왼쪽 아래를 향한다. 인물의 얼굴이 세로로 길게 배치된 것과 달리 새는 대각선으로 움직인다. 두 방향이 교차하면서 작품 전체에 강한 조형적 균형이 생긴다.

새의 형상은 쉬가예프가 1980년대부터 반복해온 중요한 소재와 연결된다. 1986년 색채 판화 ‘비둘기를 든 소녀’에서는 소녀가 한 손에 비둘기를 올려놓고 다른 손에는 둥근 물체를 들고 있었다. 말과 소녀, 비둘기가 하나의 공간에 등장하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자밀라’에서는 새가 인물의 몸 앞을 가로지르며 두 얼굴과 직접적인 조형적 관계를 맺는다.

‘비둘기를 든 소녀’의 새가 손 위에 놓인 독립적인 생명체였다면 ‘자밀라’의 새는 인물의 얼굴과 몸을 가로지르는 상징적 형상으로 확장됐다. 분홍빛 날개가 인물의 아래쪽을 가로지르면서 새와 사람의 경계가 가까워진다. 인간과 동물을 함께 배치하던 초기의 구성이 두 형상의 움직임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작품의 왼쪽에는 갈색의 넓은 수직면이 놓여 있다. 거친 붓질과 황갈색의 색채가 겹쳐 있어 나무나 벽의 표면을 연상시킨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푸른색의 좁은 아치형 구조가 자리하며 내부에는 검은색의 짧은 선들이 남아 있다. 갈색의 넓은 면과 푸른색의 작은 형상이 대비를 이루면서 작품 왼쪽에 독립적인 공간이 형성된다.

푸른색의 아치형 구조는 작품 전체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차가운 색채다. 검은색과 황갈색, 붉은색이 중심을 이루는 구성에서 푸른색은 작은 부분에 집중돼 있다. 좁고 길게 이어진 아치의 윤곽은 캔버스 중앙의 인물과 다른 형태를 지니며 주변의 갈색 바탕과 대비된다.

상단에는 회색과 황갈색의 영역이 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둥근 검은색의 형태가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오른쪽에는 작은 노란색 원과 가느다란 검은 선들이 이어진다. 노란색 원은 검은색의 짧은 선과 연결돼 작은 기호를 이루며, 주변에는 회색과 갈색의 붓질이 겹쳐 있다. 인물과 새가 중심을 이루는 구성에 작은 상징적 요소가 더해진다.

캔버스의 전체 색채는 검은색과 갈색, 붉은색과 밝은 피부색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배경의 검은색은 두 얼굴의 윤곽을 강조하고, 왼쪽의 갈색은 작품에 따뜻한 색조를 더한다. 붉은 모자와 의상은 중앙의 색채를 연결하며, 아래쪽의 분홍빛 새는 밝은 색채의 중심을 형성한다. 푸른색의 작은 아치와 상단의 노란색 원은 제한된 영역에서 색채의 변화를 만든다.

쉬가예프는 색채의 경계를 비교적 분명하게 나누면서도 물감의 질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인물의 얼굴에는 거친 붓질과 짧은 선이 남아 있고, 검은색의 머리 부분에는 여러 층의 물감이 겹쳐 있다. 새의 날개에는 가늘고 긴 선들이 집중돼 있으며, 왼쪽의 갈색 바탕에는 수직적인 붓질이 반복된다. 서로 다른 질감이 형상과 배경의 차이를 강조한다.

1990년 ‘산책’과 비교하면 ‘자밀라’에서 인물과 상징적 존재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졌음을 알 수 있다. ‘산책’에서는 밝은 피부색의 여성과 뿔을 닮은 머리를 가진 검은 형상이 보랏빛 공간에 나란히 서 있었다. 두 존재는 서로를 향해 팔을 뻗으며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다. ‘자밀라’에서는 두 얼굴이 겹쳐 있고 새의 날개가 인물의 아래쪽을 가로지른다. 독립적인 존재들이 가까이 서 있던 구성에서 서로 다른 형상이 하나의 공간에 겹치는 구성으로 변화했다.

1990년 ‘여행자들’에서도 쉬가예프는 인간의 형상을 길게 단순화했다. 붉은 인물과 검은 인물이 넓은 대지 위에 나란히 서 있었고, 주변에는 기마상과 산, 작은 기호들이 등장했다. 인물은 기둥처럼 길게 늘어난 몸을 지니며 자연의 지형과 조형적인 관계를 맺었다. ‘자밀라’에서는 인물의 몸보다 얼굴과 시선이 강조되고, 새의 날개가 움직임을 만든다.

1990년 ‘만남’에서는 붉은 바탕 위에 뿔을 닮은 검은 형상을 간결하게 배치했다. 넓은 색면과 하나의 상징적 형상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면서 자연의 생명체와 기호가 결합한 형태가 강조됐다. ‘자밀라’에서는 이러한 상징적 관심이 인물의 초상과 결합한다. 두 얼굴과 새의 형상이 겹치면서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회화적 공간이 만들어진다.

쉬가예프의 회화에서 인물은 현실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상징적인 형태로 변형돼 왔다. 1983년 연필 드로잉 ‘림마’에서는 의자에 앉은 여성의 얼굴과 자세, 실내의 사물이 세밀하게 표현됐다. 1984년 ‘아산바이 아타’에서는 노인의 주름과 수염, 눈매가 촘촘한 선으로 묘사됐다. 인물의 개별적인 특징과 생활의 흔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밀라’에서는 두 얼굴이 서로 겹쳐 있고, 앞쪽 인물의 눈매와 붉은 모자, 뒤쪽 인물의 옆모습이 주요 요소로 남아 있다. 인물의 외모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얼굴의 윤곽과 시선, 색채의 대비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자밀라’의 두 얼굴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앞쪽 인물은 왼쪽을 바라보고, 뒤쪽 인물은 옆모습으로 길게 이어진다. 두 얼굴이 겹쳐진 부분에는 검은색이 놓여 있어 인물의 머리와 그림자가 하나의 형태로 연결된다. 서로 다른 시선과 겹쳐진 얼굴은 한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이 여러 층으로 쌓인 듯한 인상을 만든다.

아이트마토프의 ‘자밀라’는 사랑과 개인의 선택을 중심으로 인간의 감정을 다룬 소설이다. 쉬가예프의 회화에서는 인물의 얼굴과 새의 움직임이 이러한 서정적인 분위기와 연결된다. 두 얼굴의 겹침은 인물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고, 분홍빛 새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나타내는 상징적 형상으로 읽힌다. 문학적 제목과 회화적 구성이 만나면서 사랑과 기억의 정서가 작품에 스며든다.

쉬가예프는 ‘자밀라’에서 인물과 새를 중심으로 복잡한 감정의 관계를 구성했다. 붉은 모자를 쓴 얼굴은 가늘고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고, 뒤쪽의 밝은 얼굴은 옆모습으로 이어진다. 아래쪽의 새는 분홍빛 날개를 길게 펼치며 두 얼굴과 다른 방향의 움직임을 만든다. 검은색과 갈색의 넓은 바탕은 밝은 얼굴과 새의 날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캔버스의 세로형 비례도 이러한 구성을 강화한다. 두 얼굴은 중앙에 세로로 겹쳐 있고, 새의 날개는 아래쪽에서 대각선으로 길게 뻗는다. 왼쪽의 갈색 수직면과 푸른색의 좁은 아치는 작품의 세로 방향을 강조하며, 새의 대각선은 그 구조를 가로지른다. 인물의 정적인 자세와 새의 움직임이 결합하면서 작품 전체에 긴장감이 생긴다.

쉬가예프의 1990년대 회화에서 인간과 동물, 신화적 기호는 점차 서로 가까운 관계로 결합했다. ‘산책’에서는 여성과 검은 존재가 팔을 뻗어 마주했고, ‘여행자들’에서는 인간과 말, 자연의 지형과 기호가 하나의 공간에 놓였다. ‘자밀라’에서는 두 얼굴과 새의 날개가 겹치면서 인간의 내면과 상징적 존재의 관계가 더욱 압축된 형태로 나타난다.

1997년의 ‘자밀라’는 쉬가예프가 초기 인물화에서 보여준 관찰의 시선과 후기 회화에서 발전시킨 신화적 상상력을 연결한다. 두 얼굴의 겹침과 붉은 모자, 분홍빛 새의 움직임은 인물의 감정과 기억을 시각적인 관계로 구성한다. 검은색과 갈색의 바탕, 밝은 얼굴과 새의 날개, 작은 기호들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균형을 이루며 작품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자밀라’의 두 얼굴은 검은색의 머리 부분을 사이에 두고 겹쳐 있고, 아래쪽의 분홍빛 새는 날개를 펼쳐 인물의 몸 앞을 가로지른다. 붉은 모자와 날카로운 눈매, 밝은 옆얼굴과 긴 날개가 하나의 공간에 놓이면서 사랑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 완성된다. 쉬가예프는 인간의 얼굴과 새의 형상을 결합해 인물의 내면을 상징적인 조형언어로 표현했다. ‘자밀라’는 중앙아시아 문학의 서정성과 쉬가예프의 신화적 상상력이 만나는 작품으로, 인물의 초상과 자연의 생명체가 하나의 회화적 관계를 이루는 방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