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 ‘나의 딸 알림칸’, 딸의 초상에 새긴 유목의 기억
붉은 모자를 쓴 소녀와 말, 집을 닮은 몸의 결합…2002년 유화에 담긴 가족의 초상과 키르기스 신화의 조형언어
[KtN 박준식기자]키르기스스탄 화가 유리 스탄벡 쉬가예프(Yuristanbek Shygaev)의 2002년작 ‘나의 딸 알림칸(My Daughter Alymkan)’에는 붉은 원뿔형 모자를 쓴 소녀가 서 있다. 소녀의 오른쪽에는 커다란 말의 머리가 다가와 있고, 아래에는 길게 늘어난 두 마리의 동물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흰색과 붉은색으로 나뉜 소녀의 몸은 집의 벽과 지붕을 닮은 기하학적 구조로 이어진다. 인물과 동물, 건축적인 형태가 하나로 결합한 구성이다.
쉬가예프는 딸의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내세우면서 가족의 초상을 키르기스 유목문화의 상징적 형상으로 확장했다. 소녀의 얼굴에는 간결한 눈과 코, 입이 남아 있고, 몸에는 붉은색과 보라색, 흰색의 기하학적 색면이 겹쳐 있다. 말의 머리는 소녀의 어깨 가까이에서 아래를 향하며, 아래쪽의 두 동물은 소녀의 몸을 받치는 듯한 위치에 놓였다. 사람과 말, 집의 형태가 하나의 구조로 결합하면서 가족의 기억과 생활문화가 함께 드러난다.
소녀의 얼굴은 흰색과 회색의 얇은 색면으로 표현됐다. 검은색의 가는 선으로 눈과 코, 입을 그렸고 얼굴의 윤곽은 길고 좁다. 머리 위에는 붉은색의 원뿔형 모자가 높게 솟아 있다. 모자의 표면에는 짙은 붉은색과 검은색의 짧은 선들이 겹쳐 있으며, 아래쪽에는 가는 가로선이 반복된다. 모자의 날카로운 꼭짓점은 소녀의 얼굴과 몸을 따라 내려오는 수직적인 구성을 강조한다.
소녀의 얼굴은 작품에서 가장 밝은 부분 가운데 하나다. 흰색의 피부와 회색의 짧은 선들은 붉은 모자와 녹색 바탕 사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눈은 작고 길게 표현됐으며 입은 짧은 선으로 정리됐다. 얼굴의 세부가 간결하게 표현된 만큼 붉은 모자와 길게 늘어난 목, 어깨의 형태가 인물의 특징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얼굴 아래에는 가늘고 긴 목이 이어진다. 목의 표면에는 갈색과 회색, 검은색의 짧은 선들이 겹쳐 있으며, 아래쪽에는 흰색의 넓은 어깨가 놓여 있다. 어깨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붉은색과 흰색으로 나뉘고, 오른쪽 어깨에는 노란색의 작은 색면이 붙어 있다. 노란색은 소녀의 몸에서 가장 밝은 색채 가운데 하나로,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더욱 강조한다.
소녀의 왼팔은 아래로 길게 내려와 몸통의 옆선을 이룬다. 팔의 표면에는 짙은 갈색과 붉은색이 겹쳐 있고, 가는 검은 선들이 남아 있다. 오른팔은 어깨에서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있으며 붉은색과 흰색의 구획으로 나뉜다. 두 팔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뻗으면서 소녀의 상반신에 움직임을 만든다.
소녀의 가슴 아래에는 붉은색과 갈색의 넓은 면이 이어진다. 허리 부분은 좁게 정리돼 있고, 그 아래에는 자주색과 붉은색의 둥근 형태가 넓게 펼쳐져 있다. 치마를 연상시키는 이 부분은 소녀의 몸을 크게 확장하며 작품의 중앙을 차지한다. 표면에는 검은색과 분홍색의 거친 붓질이 남아 있어 여러 색채가 겹친 질감을 드러낸다.
치마 아래에는 흰색과 보라색, 황갈색의 직사각형들이 이어진다. 왼쪽에는 밝은 흰색의 넓은 면이 놓여 있고, 중앙에는 보라색의 직사각형이 자리한다. 오른쪽에는 황갈색과 흰색의 색면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러한 구성은 소녀의 몸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건축적인 구조로 변형되는 인상을 만든다.
직사각형들의 아래에는 흰색의 가로 띠가 놓여 있다. 띠 안에는 붉은색과 황갈색의 작은 사각형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돼 있다. 창문을 연상시키는 형태들이 가로로 이어지면서 소녀의 몸 아래쪽에 건물의 외벽과 비슷한 구조가 나타난다. 인물의 몸과 집의 형태가 결합한 독특한 구성이다.
소녀의 오른쪽에는 커다란 말의 머리가 자리한다. 말의 머리는 붉은색과 황갈색, 검은색으로 표현됐으며 긴 얼굴과 뾰족한 귀가 아래쪽을 향한다. 눈은 검은색의 길고 가는 선으로 그려졌고, 얼굴의 중앙에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넓은 면이 겹쳐 있다. 말의 머리는 소녀의 어깨와 가까운 위치에 놓여 두 존재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말의 이마 위에는 작은 푸른색 원들이 줄지어 있다. 가느다란 검은 선 위에 놓인 원형들은 장식적인 문양을 이루며 말의 머리 위쪽에 반복적인 리듬을 만든다. 귀와 이마, 긴 얼굴을 따라 붉은색과 황갈색의 선들이 이어지고, 아래쪽에는 갈색의 좁은 띠가 둘러져 있다. 말의 구체적인 형태와 장식적인 기호가 함께 표현됐다.
말의 머리는 작품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길게 들어온다. 소녀의 몸은 중앙에서 수직으로 서 있고, 말의 머리는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기울어져 있다. 두 형상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이면서 작품 상단에 강한 조형적 대비가 생긴다. 소녀의 붉은 모자와 말의 뾰족한 귀, 길게 내려오는 얼굴이 서로 다른 형태의 수직선을 만든다.
작품 아래쪽에는 두 마리의 동물을 연상시키는 검은 갈색의 형상이 놓여 있다. 왼쪽의 동물은 긴 머리와 뾰족한 귀, 가늘고 긴 몸을 지니고 있으며 오른쪽의 동물은 몸통과 다리, 말린 꼬리를 갖고 있다. 두 형상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어 작품의 하단에 수평적인 움직임을 만든다.
왼쪽 동물의 머리는 캔버스 왼쪽 아래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검은 갈색의 몸에는 붉은색과 회색의 흔적들이 겹쳐 있고, 등에는 작은 돌기처럼 솟은 형태들이 이어진다. 동물의 몸은 소녀의 아래쪽을 가로지르며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아래로 뻗은 가는 다리들은 녹색 바탕 위에 놓여 있다.
오른쪽 동물은 검은 갈색의 긴 몸과 말린 꼬리가 특징이다. 꼬리는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둥글게 휘어 올라가며 끝부분이 안쪽으로 말려 있다. 몸통은 소녀의 아래쪽을 따라 수평으로 이어지고, 가늘고 긴 다리들이 아래로 내려온다. 왼쪽 동물과 오른쪽 동물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 소녀의 몸 아래에서 하나의 수평적인 구조를 이룬다.
소녀의 몸과 두 동물의 관계는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인물의 상반신은 중앙에서 수직으로 솟아 있고, 치마와 직사각형의 구조는 아래쪽으로 넓게 펼쳐진다. 두 동물은 그 아래에서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한다. 수직적인 인물과 수평적인 동물의 배치는 작품 전체에 안정적인 균형을 만든다.
녹색의 바탕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넓은 색채 영역이다. 밝은 녹색과 황록색이 섞인 색면에는 푸른색의 작은 흔적들이 흩어져 있다. 표면에는 거친 붓질과 긁힌 자국이 남아 있으며, 일부에는 물감이 두껍게 쌓여 있다. 넓은 녹색의 공간은 소녀와 말, 아래쪽 동물들의 붉은색과 갈색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녹색 바탕의 질감은 비교적 거칠다. 물감이 두껍게 쌓인 부분에는 붓이나 도구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고, 푸른색의 작은 선들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있다. 인물과 동물의 윤곽이 분명하게 표현된 것과 달리 배경은 자유로운 붓질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인 형상과 추상적인 바탕이 서로 다른 질감을 유지하면서 작품의 공간을 구성한다.
작품의 색채는 녹색과 붉은색, 흰색과 보라색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녹색은 넓은 배경을 형성하고, 붉은색은 소녀의 모자와 몸, 말의 머리에 집중된다. 흰색은 얼굴과 어깨, 아래쪽의 건축적인 구조에 나타나며 보라색은 치마와 중앙의 직사각형에 배치됐다. 색채의 반복은 서로 다른 형상들을 하나의 구성으로 연결한다.
‘나의 딸 알림칸’이라는 제목은 작품의 인물이 작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직접 드러낸다. 쉬가예프는 가족의 초상을 그리면서 딸의 외모를 세밀하게 재현하는 대신 간결한 얼굴과 붉은 모자, 길게 변형된 몸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딸의 몸은 집을 닮은 구조로 이어지고, 주변에는 말과 동물의 형상이 놓여 있다. 가족의 초상이 자연과 생활문화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결합한 것이다.
쉬가예프의 초기 작업에서는 인물과 동물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1986년 색채 판화 ‘비둘기를 든 소녀’에서는 소녀가 한 손에 비둘기를 올려놓고 다른 손에는 둥근 물체를 들고 있었다. 소녀의 앞에는 말이 서 있었고, 멀리에는 건물의 형태가 나타났다. 인간과 동물, 생활의 공간이 하나의 풍경에 배치된 작품이었다.
2002년의 ‘나의 딸 알림칸’에서도 소녀와 말이 함께 등장하지만 형상의 관계는 크게 달라졌다. 소녀의 몸은 집을 닮은 기하학적 구조로 변형됐고, 말의 머리는 인물의 어깨 가까이에서 아래를 향한다. 아래쪽의 두 동물은 인물의 몸을 가로지르는 수평적인 구조로 배치됐다. 현실의 풍경을 이루던 요소들이 하나의 상징적 구성으로 결합했다.
1990년 ‘여행자들’에서도 쉬가예프는 인간의 몸을 길고 단순한 형태로 표현했다. 붉은 인물과 검은 인물이 넓은 대지 위에 나란히 서 있었고, 멀리에는 기마상과 산이 등장했다. 인물의 몸은 기둥처럼 길게 늘어났으며 대지에는 원형과 십자형, 동물과 식물을 연상시키는 기호들이 흩어져 있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상징적인 공간으로 확장된 작품이었다.
‘나의 딸 알림칸’에서는 이러한 상징적 조형언어가 가족의 초상과 결합한다. 소녀의 얼굴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되고, 몸에는 여러 색채와 기호들이 겹쳐 있다. 말의 머리와 아래쪽의 동물들은 인물과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으며, 녹색의 넓은 바탕은 서로 다른 형상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묶는다.
1997년 ‘자밀라’에서는 두 얼굴이 겹쳐지고 분홍빛 새가 날개를 펼쳐 인물의 몸 앞을 가로질렀다. 인물과 새의 형상이 하나의 공간에 겹치면서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 만들어졌다. ‘나의 딸 알림칸’에서는 소녀와 말, 집을 닮은 몸과 아래쪽 동물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결합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가족의 초상 속에서 더욱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2000년 ‘술레이만 산’에서는 산의 형상이 거대한 삼각형으로 압축됐고, 주변에는 눈과 물고기, 원형과 삼각형을 연상시키는 기호들이 배치됐다. 자연의 지형과 전통적인 문양이 하나의 기하학적 구조로 결합한 작품이었다. ‘나의 딸 알림칸’에서는 이러한 기하학적 요소가 인물의 몸과 주변 동물에 적용됐다. 소녀의 몸은 직사각형과 사각형의 배열로 이루어지고, 말의 머리에는 작은 원형의 문양들이 반복된다.
작품의 세로형 비례는 소녀의 긴 몸과 붉은 모자를 강조한다. 모자의 꼭짓점은 캔버스 상단 가까이까지 솟아 있고, 아래쪽의 몸은 여러 색채의 직사각형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의 말 머리는 인물의 상반신과 비슷한 높이에 놓여 있으며, 아래쪽의 두 동물은 캔버스의 폭을 따라 길게 뻗는다. 수직적인 인물과 수평적인 동물의 배치가 작품 전체의 구조를 이룬다.
쉬가예프는 ‘나의 딸 알림칸’에서 가족의 초상을 중앙아시아의 유목문화와 연결했다. 말은 키르기스 생활문화에서 중요한 동물이었고, 인물의 몸과 집을 닮은 구조는 생활의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소녀와 말, 아래쪽의 동물들이 하나의 공간에 놓이면서 가족의 기억과 자연, 생활문화의 관계가 드러난다.
인물의 얼굴은 작품의 가장 섬세한 부분이다. 흰색과 회색의 밝은 피부 위에 눈과 코, 입이 가는 선으로 그려져 있으며, 붉은 모자와 긴 목이 얼굴의 특징을 강조한다. 아래쪽의 몸은 기하학적인 색면으로 변형됐지만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유지한다. 구체적인 인물의 특징과 상징적인 신체 구조가 결합한 구성이다.
말의 머리는 소녀와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다. 붉은색과 황갈색의 얼굴, 검은색의 눈, 푸른색의 작은 원형 문양들이 서로 다른 색채와 형태를 이루며 소녀의 붉은 모자와 시각적인 관계를 맺는다. 두 존재의 머리는 작품 상단에서 가장 중요한 형상이며, 아래쪽의 건축적인 몸과 동물들의 수평적인 구조로 이어진다.
‘나의 딸 알림칸’은 쉬가예프가 가족의 초상을 통해 인간과 동물, 생활문화의 관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소녀의 얼굴과 붉은 모자, 집을 닮은 몸, 말의 머리와 아래쪽 동물들이 하나의 공간에 결합했다. 녹색의 넓은 바탕과 붉은색, 흰색과 보라색의 대비는 서로 다른 형상들을 연결하며 작품의 상징적인 성격을 강화한다.
2002년의 ‘나의 딸 알림칸’에서 소녀는 붉은 원뿔형 모자를 쓰고 중앙에 서 있다. 오른쪽에는 말의 머리가 다가와 있고, 아래쪽에는 두 동물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한다. 소녀의 몸은 집의 벽과 창문을 닮은 기하학적 구조로 이어지며, 녹색의 바탕에는 푸른색의 작은 흔적들이 흩어져 있다. 쉬가예프는 딸의 초상을 자연과 동물, 생활의 공간과 결합해 가족의 기억을 상징적인 회화로 구성했다. ‘나의 딸 알림칸’은 초기의 인물화와 동물 표현에서 발전한 작가의 조형언어가 가족이라는 개인적인 주제와 만나는 작품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뤄온 쉬가예프 예술의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