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협업 트렌드②] 패션 협업, 로고 넘어 재단·소재·기술로…사카이·로에베·제냐의 변화
사카이×칼하트 WIP, 워크웨어와 테일러링 결합…로에베×온은 독자적인 쿠셔닝 구조 공동 개발 세실리에 반센×노스페이스의 기능성 의류, 제냐×노다의 고강도 섬유까지…전문 기술 활용한 협업 확대
[KtN 박인경기자]미국 워크웨어 브랜드 칼하트 WIP(Carhartt WIP)의 대표 제품인 디트로이트 재킷에 일본 사카이(sacai)의 패딩 구조를 결합했다. 캔버스 원단으로 만든 작업복 재킷 안에 보온용 충전재를 넣고, 겉감에는 다운 재킷에서 사용하는 봉제 방식을 적용했다. 익숙한 작업복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내부 구조와 소재를 바꾼 새로운 재킷이 탄생했다.
사카이와 칼하트 WIP가 2025년 10월 출시한 세 번째 협업 컬렉션이다. 두 브랜드는 총 19종의 의류를 선보였다. 디트로이트 재킷과 패딩을 결합한 제품뿐 아니라 칼하트 WIP의 아크틱 재킷과 더블니 팬츠를 활용한 스커트,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작업복 재킷을 세로로 이어 붙인 유니섹스 재킷도 제작했다.
브랜드의 대표 제품에 새로운 색상이나 공동 로고만 추가한 협업과 달리 의복을 구성하는 패턴과 소재, 봉제 방식을 함께 바꿨다. 칼하트 WIP가 오랫동안 제작해 온 작업복의 구조에 사카이의 해체와 재구성 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패션업계에서는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 기술을 제품에 결합하는 협업이 이어지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스포츠용 신발의 쿠셔닝 기술을 활용하고, 아웃도어 브랜드의 방수 소재를 여성복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기존 제품의 외관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신발 구조를 공동 개발하거나, 서로 다른 용도의 의류를 한 벌로 재구성하는 작업도 등장했다.
2026 SS 컬렉션에서도 사카이와 칼하트 WIP의 협업은 계속됐다. 지난 2월 출시된 네 번째 협업은 남성복과 유니섹스 의류 9종으로 구성됐다. 사카이의 정장용 원단과 나일론 트윌, 칼하트 WIP의 두꺼운 덕 캔버스를 한 벌에 결합했다.
사카이의 테일러드 재킷과 MA-1 블루종, 발마칸 코트에 칼하트 WIP의 디트로이트 재킷과 초어 코트, 시베리안 파카의 요소를 더했다. 칼하트의 작업복에서 볼 수 있는 도구용 포켓과 코듀로이 칼라, 대비되는 색상의 봉제선을 유지하면서 사카이 특유의 겹쳐 입은 듯한 구조와 입체적인 비율을 적용했다.
정장용 소재와 작업복의 캔버스는 두께와 표면의 질감이 다르다. 정장용 원단은 부드럽게 내려오는 재단에 적합하고, 덕 캔버스는 상대적으로 뻣뻣해 옷의 형태를 잡아준다. 두 소재를 결합하면서 재킷의 앞판과 소매, 포켓의 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카이는 두 브랜드의 대표적인 의상을 한 벌로 합치는 방식으로 협업을 발전시켰다. 기존 제품의 특징을 모두 없애기보다 소비자가 알아볼 수 있는 칼라와 포켓, 재킷의 형태를 남겨두고 재단을 새롭게 구성했다. 작업복의 실용적인 디자인과 일본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테일러링이 함께 드러난다.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LOEWE)와 스위스 스포츠 브랜드 온(On)은 신발의 구조를 공동 개발했다.
2025년 10월 선보인 클라우드솔로(Cloudsolo)는 두 브랜드가 처음부터 함께 디자인한 새로운 스니커즈다. 기존 온 러닝화에 로에베의 로고와 색상을 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쿠셔닝과 갑피, 신발끈의 구조를 새롭게 구성했다.
클라우드솔로의 뒤꿈치에는 온의 클라우드테크(CloudTec) 기술을 활용한 단일 쿠셔닝 구조가 적용됐다. 신발 중창에는 헬리온(Helion) 슈퍼폼과 유연한 스피드보드(Speedboard)를 사용했다. 갑피는 반투명 원사로 만든 기능성 메시 소재이며, 로에베 특유의 페블 장식을 활용한 조절 장치와 신축성 있는 신발끈을 결합했다.
온은 러닝화의 충격 흡수와 착용감을 위한 신발 구조를 개발해 온 브랜드다. 로에베는 가죽과 소재를 다루는 공예 기술, 독특한 형태의 액세서리와 신발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우드솔로에서는 온의 쿠셔닝 기술과 로에베의 디자인 요소가 신발의 형태와 구조에 함께 적용됐다.
뒤꿈치 아래에 배치한 단일 쿠셔닝 구조는 신발의 외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온의 기존 러닝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여러 개의 쿠셔닝 요소 대신 뒤꿈치 부분을 강조했고, 로에베의 장식과 반투명 갑피가 결합하면서 스포츠화와 일상용 스니커즈의 특징을 함께 갖췄다.
2022년 시작된 로에베와 온의 협업은 기존 러닝화의 색상과 소재를 바꾸는 작업에서 출발했다. 이후 기능성 의류로 상품을 확대했고, 2025년에는 새로운 신발을 공동 설계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여러 시즌에 걸쳐 협업을 이어가면서 제품의 종류와 개발 범위를 넓힌 것이다.
고급 남성복 브랜드 제냐(ZEGNA)는 캐나다 트레일 러닝화 브랜드 노다(norda)와 신발 소재와 기능을 중심으로 협업했다.
2026 SS 제품군에 포함된 ZEGNA × norda 001 스니커즈에는 바이오 기반 다이니마(Dyneema) 섬유를 사용한 갑피와 비브람(Vibram) 밑창이 적용됐다. 다이니마는 가볍고 강도가 높은 고성능 폴리에틸렌 섬유로, 노다는 트레일 러닝화의 내구성과 경량화를 위해 활용해 왔다.
신발끈에도 다이니마 소재를 사용했다. 일반적인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 신발끈보다 높은 강도를 갖도록 설계했으며, 비브람 라이트베이스(Litebase) 밑창과 메가그립(Megagrip) 고무를 결합했다. 신발의 무게와 접지력, 내구성을 고려한 구성이다.
제냐는 이탈리아 남성복의 고급 소재와 정교한 재단으로 성장한 브랜드다. 노다는 장거리 트레일 러닝에 사용하는 기능성 신발을 개발해 왔다. 제냐의 상품 구성에 노다의 전문 기술을 적용하면서 고급 남성복 브랜드의 스니커즈에도 스포츠용 고성능 소재가 들어갔다.
두 브랜드의 협업에서는 소재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고강도 섬유를 사용한 갑피와 가벼운 밑창, 발을 고정하는 구조는 외관을 장식하기 위한 요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발에 닿는 부분의 형태와 신발의 무게, 움직일 때 필요한 접지력과 관련된 구성이다.
로에베와 온이 새로운 신발의 구조를 함께 개발했다면 제냐와 노다는 기존 러닝화의 기능성 소재와 제작 기술을 고급 남성복 브랜드의 제품에 적용했다. 두 협업은 모두 패션과 스포츠의 결합이지만 제품 개발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여성복에서는 덴마크 디자이너 세실리에 반센(Cecilie Bahnsen)과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의 협업이 주목할 만하다.
세실리에 반센은 풍성한 실루엣과 입체적인 꽃 장식, 섬세한 자수와 주름을 활용한 여성복으로 알려져 있다. 노스페이스는 등산과 아웃도어 활동을 위한 방수·방풍 의류와 가방, 신발을 제작해 왔다. 서로 다른 분야의 브랜드가 2025 SS 컬렉션에서 첫 협업을 선보였다.
2025년 3월 출시된 첫 협업 컬렉션은 검은색 의류와 액세서리 7종으로 구성됐다. 노스페이스의 마운틴 재킷과 베이스캠프 더플백, 글렌클리프 하이킹 부츠 등 기존 제품에 세실리에 반센의 디자인을 적용했다.
방수와 방풍 기능을 갖춘 아웃도어 소재에 꽃 모양의 입체 장식과 곡선으로 마감한 가장자리, 부풀린 실루엣을 결합했다. 산악 활동을 고려해 만든 의복의 구조를 바탕으로 장식과 형태를 바꾸면서 일상복으로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마운틴 재킷은 노스페이스가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대표적인 아웃도어 의류다. 방수와 방풍 기능, 활동성을 고려한 구조가 특징이다. 세실리에 반센은 기능성 소재와 재킷의 기본적인 구성을 활용하면서 볼륨과 장식을 더했다.
노스페이스의 기술적 특징이 유지되면서도 실루엣은 일반적인 등산용 재킷과 달라졌다. 허리와 소매의 볼륨, 장식의 위치에 따라 몸의 비율이 달라지고, 재킷과 드레스 사이에 있는 듯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2026년 봄에도 두 브랜드의 협업은 이어졌다. 세 번째 협업에서는 립스톱(ripstop) 소재와 꽃무늬 장식, 입체적인 실루엣을 활용해 기능성 의류와 액세서리를 제작했다. 립스톱은 원단이 찢어지는 것을 억제하도록 짜임을 보강한 소재로, 아웃도어 의류와 장비에 널리 사용된다.
한 차례 한정판 출시로 끝나지 않고 여러 시즌에 걸쳐 협업을 이어갔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첫 협업에서 노스페이스의 대표 제품을 재구성했다면 이후에는 소재와 장식, 부피를 조절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기능성 의류를 발전시켰다.
일본 SOSHIOTSUKI와 스페인 CAMISAS MANOLO의 셔츠 협업도 서로 다른 전문성을 결합한 작업이다.
SOSHIOTSUKI는 기존에 개발한 드레이프 페이싱 셔츠의 앞여밈 구조를 유지하면서 이탈리아산 실크 넥타이 원단을 더했다. 셔츠 제작은 스페인에서 진행됐다. 평소 안쪽에 넣어두는 안단을 밖으로 꺼내면 넥타이를 착용한 듯한 형태가 만들어지는 디자인이다.
CAMISAS MANOLO는 전통적인 셔츠 제작 기술과 원단 선택, 독자적인 패턴을 바탕으로 제품을 제작해 온 마드리드의 전문 브랜드다. 한 종류의 의복에 집중해 온 제작 경험이 SOSHIOTSUKI의 디자인과 결합했다.
SOSHIOTSUKI의 2026 FW 런웨이에서는 넓은 어깨의 재킷과 주름이 깊은 팬츠, 부드럽게 내려오는 셔츠가 등장했다. 회색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넉넉한 팬츠를 조합한 착장은 일본 디자이너 소시 오쓰키(Soshi Otsuki)가 발전시켜 온 남성복의 비율을 잘 드러낸다.
재킷의 길이와 어깨선, 팬츠의 주름을 조정하는 작업은 셔츠의 칼라와 앞여밈을 변형하는 디자인으로도 이어졌다. SOSHIOTSUKI는 정장의 기본적인 구조를 유지하면서 의복의 세부 요소를 바꾸는 방식을 활용해 왔다.
CAMISAS MANOLO와의 협업에서는 이미 개발한 셔츠의 형태에 다른 소재와 제작 기술을 적용했다. 로에베와 온처럼 새로운 신발을 공동 설계한 협업과는 출발점이 다르지만 전문 브랜드가 축적한 경험을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사카이와 칼하트 WIP는 서로 다른 의복을 한 벌로 재구성했다. 로에베와 온은 새로운 신발의 구조를 공동 개발했고, 제냐와 노다는 고성능 소재를 스니커즈에 적용했다. 세실리에 반센과 노스페이스는 아웃도어 기능과 여성복의 장식을 결합했으며, SOSHIOTSUKI와 CAMISAS MANOLO는 셔츠의 소재와 제작 방식을 중심으로 협업했다.
브랜드의 이름을 함께 사용하는 방법은 같지만 실제 제품 개발에서는 서로 다른 방식이 나타났다. 일부는 기존 제품을 재구성하고, 일부는 소재나 기술을 가져오며, 새로운 구조를 함께 개발하는 협업도 진행됐다.
협업 제품의 평가에서는 디자인뿐 아니라 사용 목적과 품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고성능 러닝화 소재를 사용했다고 모든 스니커즈의 착용감이 같은 것은 아니다. 아웃도어 의류에 장식을 더하면 형태가 달라지는 만큼 무게와 활동성, 관리 방식도 함께 살펴야 한다. 서로 다른 원단을 결합한 의류는 착용할 때의 움직임과 세탁·보관 조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높은 판매 가격도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협업 제품에는 전문 소재와 복잡한 재단, 소량 생산에 따른 비용이 반영될 수 있지만 브랜드 인지도와 한정판이라는 요소 역시 가격에 영향을 준다. 공동 개발한 제품이라도 기존 상품과 비교해 실제 사용에서 얻는 차이가 크지 않다면 소비자에게는 브랜드 이름 이상의 구매 이유가 필요하다.
최근 협업을 이어가는 브랜드들은 한 번의 출시로 끝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시즌 동안 제품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사카이와 칼하트 WIP, 로에베와 온, 세실리에 반센과 노스페이스의 협업에서는 후속 컬렉션을 통해 소재와 구조, 상품 구성이 달라졌다.
브랜드마다 협업의 결과는 서로 다르다. 사카이는 작업복을 해체해 새로운 재킷을 만들었고, 로에베는 스포츠 브랜드와 신발의 쿠셔닝 구조를 설계했다. 제냐는 트레일 러닝화에 쓰이는 소재를 활용했으며, 세실리에 반센은 아웃도어 의류에 여성복의 실루엣과 장식을 더했다.
SOSHIOTSUKI와 CAMISAS MANOLO가 선보인 드레이프 페이싱 셔츠에도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 넥타이를 셔츠에 결합한 기존 디자인에 이탈리아산 실크를 더하고, 스페인 전문 브랜드의 제작 경험을 활용했다. 패션 브랜드의 협업이 제품의 재단과 소재, 착용 방식을 바꾸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