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링 리테일②] MAAP 런던 LaB, 돌바닥과 녹색 소파…소호의 건축과 자전거 문화 결합
클레어 커즌스 아키텍츠, 140㎡ 매장에 돌 포장 바닥과 스테인리스·알루미늄 적용…유럽 클래식 자전거 경주에서 영감 곡선형 금속 벽과 녹색 휴식 공간, 투명 진열 구조로 판매와 커뮤니티 활동 결합…멜버른·서울과 다른 런던의 공간 디자인
[KtN 신명준기자]런던 소호의 오래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돌 포장 바닥이 자전거 의류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거친 질감의 회색 돌바닥 위에는 매끄러운 스테인리스 진열장이 놓였고, 강렬한 녹색 소파가 길게 이어진다. 곡선으로 휘어진 금속 벽에는 주변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친다. 자전거 경주의 속도와 움직임을 건축 소재와 가구, 공간의 구조로 표현한 매장이다.
호주 사이클링 의류 브랜드 MAAP(마프)가 10월 10일 영국 런던 소호에 공식 개장한 'LaB London'이다. 그레이트 펄트니 스트리트(Great Pulteney Street) 29번지에 자리한 매장은 지상 1층, 면적 140㎡ 규모다. 2022년 멜버른에서 시작한 MAAP의 콘셉트 스토어 'LaB'가 런던에 처음 진출하면서 지역의 건축적 특징과 자전거 문화를 매장 디자인에 반영했다.
설계는 호주 멜버른에 기반을 둔 클레어 커즌스 아키텍츠(Clare Cousins Architects)가 MAAP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클레어 커즌스(Clare Cousins)가 설립한 건축사무소로, 멜버른과 서울, 베를린, 싱가포르, 홍콩, 로스앤젤레스 등 여러 도시의 MAAP 매장을 설계해 왔다.
런던 매장에서는 소호의 역사적인 건축환경과 유럽 사이클링 문화가 디자인의 출발점이 됐다. 돌과 금속이라는 서로 다른 소재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녹색 가구와 커튼으로 색채를 더했다. 자전거를 직접 전시하지 않고도 자전거와 관련된 소재와 움직임을 실내 곳곳에서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방식이다.
매장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마감재는 돌바닥이다.
바닥에는 크기가 작은 회색 돌을 촘촘하게 배열했다. 돌마다 색과 형태가 조금씩 다르고, 줄눈이 반복되면서 바닥 전체에 불규칙한 무늬가 만들어진다. 매끄러운 대형 타일이나 광택 있는 석재를 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패션 매장과는 다른 질감이다.
돌 포장은 런던 소호의 거리와 유럽의 전통적인 자전거 경주에서 착안했다. 유럽에서는 포장석이 깔린 오래된 도로가 자전거 경주의 주요 구간으로 사용돼 왔다. 특히 프랑스 북부에서 열리는 파리-루베(Paris-Roubaix)는 거친 돌길을 달리는 클래식 경주로 유명하다. 선수들은 울퉁불퉁한 노면에서 자전거를 제어해야 하고, 장시간 전달되는 진동을 견디며 경기를 치른다.
MAAP는 돌길을 자전거 경기와 연결되는 요소로 활용했다. 런던 매장의 바닥은 실제 경주 도로를 재현한 시설이 아니라 거리의 포장 방식을 실내 마감에 적용한 것이다. 소호의 건축적 특징을 반영하면서 자전거 경주의 역사를 함께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회색 돌바닥 위에는 투명한 진열 구조와 금속 가구가 배치됐다. 유리로 구획한 공간 안에는 사이클링 의류와 액세서리가 걸려 있고, 뒤쪽에는 자전거와 경주를 연상시키는 대형 이미지가 놓였다. 투명한 칸막이는 진열 구역을 나누면서도 매장 안쪽까지 시선이 이어지도록 한다.
유리와 금속은 돌바닥과 뚜렷한 질감 차이를 만든다. 바닥의 거친 표면과 달리 진열장은 표면이 매끄럽고, 조명을 받으면 빛을 반사한다. 같은 회색 계열이라도 소재에 따라 밝기와 질감이 달라진다. 별도의 장식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마감재 자체의 특징을 활용한 구성이다.
금속 소재는 MAAP가 자전거와 연결해 온 디자인 요소이기도 하다.
자전거는 프레임과 핸들바, 구동계, 바퀴 등 여러 부품이 결합한 기계장치다. 소재의 강도와 무게, 부품의 정밀한 가공이 성능과 직결된다. MAAP는 런던 매장에 스테인리스와 알루미늄을 사용하면서 자전거의 정교한 제작 방식에서 디자인 요소를 가져왔다.
스테인리스는 진열대와 가구에 단단하고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고, 알루미늄은 가벼운 금속 특유의 질감을 더한다. 금속 소재는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지 않아도 조명과 주변 사물의 반사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런던 매장에서는 금속의 차가운 질감과 돌바닥의 불규칙한 표면을 함께 배치해 소재의 대비를 강조했다.
자전거에서 가져온 또 다른 요소는 곡선이다.
실내에는 완만하게 휘어진 금속 벽이 설치됐다. 곡면에는 진열장과 의류, 주변의 빛이 반사되는데, 평평한 거울처럼 사물의 형태가 그대로 비치지 않고 길게 늘어나거나 흐릿하게 나타난다. 보는 위치에 따라 반사의 방향과 형태도 달라진다.
곡선형 벽은 여러 선수가 무리를 지어 달리는 펠로톤(peloton)의 움직임에서 착안했다. 펠로톤은 사이클링 경기에서 선수들이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집단을 이루어 주행하는 대열을 뜻한다. 선수들은 도로의 폭과 경사, 경기 상황에 따라 대열을 바꾸며 이동한다.
런던 매장은 펠로톤의 움직임을 금속 표면에 반사되는 형태로 표현했다. 실제로 움직이는 기계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곡면의 반사를 활용한 방식이다. 방문객의 위치가 바뀌면 비치는 모습도 달라져 고정된 벽에서도 시각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돌바닥과 금속 벽 사이에서 가장 강한 색상 대비를 만드는 것은 녹색 소파다.
매장 한쪽에는 채도가 높은 녹색의 곡선형 소파가 길게 놓였다. 등받이는 좌석의 곡선을 따라 이어지고,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넓은 형태로 제작됐다. 회색 돌바닥과 금속 진열장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에서 녹색 소파는 크기와 색상 모두 두드러진다.
소파는 직선으로 길게 놓인 일반적인 벤치와 달리 여러 방향으로 휘어 있다. 앉은 사람의 몸이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일렬로 배치하는 대신, 서로 다른 위치에서 앉을 수 있는 구조다. 사람들이 마주 보거나 비스듬히 앉아 대화하기에도 적합하다.
녹색 소파 주변에는 작은 은색 스툴이 놓였고, 뒤쪽에는 사이클링 의류를 진열한 금속 구조물이 설치됐다. 상품을 살펴보는 구역과 앉아서 머무는 구역이 같은 공간에 배치된 형태다. 소파를 별도의 대기실이나 매장 구석에 두지 않고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구 가운데 하나로 사용했다.
MAAP의 LaB는 의류 판매와 그룹 라이딩, 문화 행사를 함께 운영한다. 라이딩을 시작하기 전 참가자들이 모이거나 운동을 마친 뒤 대화를 나누는 활동이 매장 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좌석과 비교적 개방적인 실내 구성이 필요한 이유다.
런던 매장의 녹색 소파는 상품을 진열할 수 있는 면적 일부를 휴식 공간으로 사용한 선택이기도 하다. 같은 면적에 진열대를 더 설치하면 의류를 많이 배치할 수 있지만, MAAP는 매장을 찾은 사람들이 앉아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사이클링 의류를 구매하는 고객뿐 아니라 그룹 라이딩과 행사에 참여하는 방문객까지 고려한 구성이다. 매장의 규모가 140㎡로 제한된 만큼 상품 진열과 이동 통로, 휴식 공간 사이의 비율이 중요하다. 녹색 소파는 매장 내부를 구분하는 가구이면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소파의 곡선은 금속 벽과도 연결된다. 직선으로 제작한 진열장 사이에 곡선형 가구를 배치하면서 공간의 형태가 달라진다. 금속 벽에서는 곡선을 반사 효과에 활용하고, 소파에서는 사람들이 앉는 자리의 형태를 바꾸는 데 사용했다.
녹색은 소파뿐 아니라 커튼과 진열 가구에도 적용됐다.
회색 돌바닥과 유리 칸막이 사이에는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내려오는 녹색 커튼이 설치됐다. 주름이 촘촘하게 잡힌 커튼은 단단한 금속과 유리 사이에서 부드러운 질감을 더한다. 색상은 소파와 연결되지만 소재가 달라 빛을 받는 방식과 표면의 질감에도 차이가 있다.
커튼은 벽과 달리 비교적 가볍게 공간을 가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단단한 칸막이와 함께 사용하면 필요에 따라 시야를 차단하거나 공간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런던 매장에서는 투명한 유리와 불투명한 녹색 커튼을 나란히 배치해 서로 다른 공간 구획 방식을 활용했다.
유리 칸막이는 안쪽의 의류와 주변 공간을 드러내지만 커튼은 시선을 막는다. 두 재료를 함께 사용하면서 완전히 열린 공간과 상대적으로 분리된 구역 사이에 차이를 만들었다. 커튼의 세로 주름도 돌바닥의 작은 사각형 무늬, 소파의 곡선과 구별되는 요소다.
매장 전체에는 녹색 외에도 회색과 은색, 검정, 흰색이 넓게 사용됐다. 배경이 되는 벽과 바닥에는 비교적 차분한 색상을 적용하고, 녹색 가구와 커튼에 색채를 집중했다. 사이클링 의류는 밝은 색상과 강한 그래픽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매장 마감까지 여러 색을 사용하면 상품과 공간이 서로 경쟁할 수 있다.
MAAP는 금속과 돌을 중심으로 기본적인 색상을 정리하고 녹색으로 일부 가구를 강조했다. 여러 색상의 의류가 진열돼 있어도 매장 전체의 색채 구성이 지나치게 복잡해지지 않도록 한 방식이다.
조명 역시 소재와 상품을 드러내는 데 활용됐다. 천장에는 직선형 조명이 설치돼 있고, 금속과 유리 표면에는 주변의 빛이 반사된다. 반짝이는 금속과 상대적으로 광택이 적은 돌바닥 사이에서 밝기의 차이가 생긴다.
매장 내부에는 사이클링과 관련된 대형 이미지도 사용됐다. 의류가 걸린 진열장 뒤편과 벽면에 사진과 그래픽을 배치해 스포츠 브랜드의 성격을 드러냈다. 금속과 돌, 녹색 가구만으로 구성하면 일반적인 디자인 편집매장과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이클링 이미지와 기능성 의류가 함께 놓이면서 매장의 용도가 분명해진다.
클레어 커즌스 아키텍츠가 MAAP와 협업한 것은 런던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 멜버른 콜링우드에 문을 연 첫 LaB에서는 산업시설이 밀집했던 지역의 특성을 반영했다. 콘크리트와 블록으로 마감한 건물의 기존 구조를 드러내고, 단단한 철제 진열 구조를 배치했다. 정교하게 제작한 금속 가구와 거친 콘크리트의 대비가 매장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였다.
콜링우드 매장은 자전거 정비 작업장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갖췄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건물의 콘크리트와 금속 구조를 활용하면서 의류와 자전거 문화가 함께 놓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매장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거나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런던 매장은 멜버른과 같은 금속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바닥을 돌 포장으로 마감했다. 산업시설의 콘크리트에서 출발한 멜버른과 달리 소호의 오래된 거리와 유럽의 자전거 경주를 공간에 반영했다. 같은 브랜드의 매장이지만 바닥의 질감과 가구의 색상, 곡선형 구조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서울의 LaB 역시 지역의 건축환경에 맞춰 디자인됐다.
2024년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LaB 서울은 골목 안쪽에 자리한다. 주변의 건물과 작은 마당을 활용한 공간으로, 금속과 유리, 목질 보드(OSB)를 함께 사용했다. 매장 안에는 분홍색 피팅룸과 타공 스테인리스 소파가 설치됐다.
서울 매장은 밝은 색상과 금속 소재를 조합하면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많은 비중을 뒀다. 타공된 금속으로 제작한 소파는 매장의 중심 가구로 배치됐고, 라이딩 전후의 모임이나 행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런던에서는 금속 소파 대신 강렬한 녹색의 곡선형 소파를 사용했다. 서울의 금속 좌석은 재료의 단단함과 정교한 가공 방식이 강조되고, 런던의 소파는 색상과 부드러운 곡선, 여러 사람이 앉는 형태가 두드러진다.
금속과 대담한 색채, 커뮤니티를 위한 좌석이라는 공통된 구성 안에서도 각 도시의 공간은 서로 다르게 설계됐다. MAAP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LaB를 운영하면서 매장마다 다른 색상과 가구, 건축 소재를 적용하고 있다.
클레어 커즌스 아키텍츠의 건축 책임자인 올리버 더프(Oliver Duff)는 런던 매장 설계에서 각 도시의 특성을 반영하는 기존 LaB의 방식을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소호의 건축적 질감을 MAAP의 현대적인 디자인과 결합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MAAP가 같은 건축사무소와 여러 차례 작업한 배경도 공간의 연속성과 관련이 있다. 멜버른에서 개발한 금속 중심의 디자인을 서울과 런던 등 다른 도시로 확대하면서, 매장의 기능과 브랜드 이미지는 유지하고 지역별 소재와 가구에 변화를 줬다.
세계 주요 도시에 동일한 가구와 색상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방식보다 설계 과정이 복잡할 수 있다. 지역마다 다른 건축환경을 고려해야 하고, 기존 공간의 크기와 동선에 따라 가구와 진열 구조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런던 매장에서는 단층 140㎡ 안에 상품 진열과 휴식, 행사 운영을 함께 고려했다.
판매 공간과 모임 장소를 함께 운영하는 매장에서는 가구의 배치가 특히 중요하다. 의류를 충분히 진열해야 하면서도 여러 사람이 이동하고 모일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룹 라이딩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매장을 이용할 때에는 일반적인 쇼핑 고객과 방문 목적, 머무는 시간도 달라질 수 있다.
런던 LaB는 긴 곡선형 소파와 투명한 진열 구조를 활용해 서로 다른 이용 방식을 한 공간에 배치했다. 의류 진열 구역은 유리와 금속으로 구분하고, 앉아서 머무는 장소는 녹색 가구로 강조했다. 별도의 대형 행사장을 갖추기보다 상품 판매와 모임이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도록 구성한 형태다.
다만 매장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행사를 운영할 때에는 이동 통로와 좌석의 배치가 중요해진다. 고정된 진열장과 대형 소파가 차지하는 면적을 고려하면서 라이딩 참가자와 일반 고객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 개방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과 실제로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돌 포장 바닥과 반사되는 금속 벽, 녹색 소파도 일상적인 매장 운영과 함께 관리해야 한다. 바닥은 방문객과 신발, 자전거 이용자들의 이동에 영향을 받으며, 금속과 유리의 매끄러운 표면은 접촉과 조명에 따라 외관이 달라질 수 있다. 시각적인 특징이 강한 소재를 사용한 만큼 청소와 유지관리도 장기간 운영에서 고려할 부분이다.
MAAP는 런던 LaB에서 남녀 사이클링 의류와 라이프스타일 제품, 협업 상품을 판매한다. 그룹 라이딩과 대화 모임, 문화 행사도 운영할 예정이다. 9월 초 사전 운영을 시작한 뒤 10월 10일 공식 개장했으며, 개장에 맞춰 라이딩과 매장 행사도 마련했다.
런던 소호의 첫 영국 매장은 MAAP의 세계 11번째 LaB다. 멜버른의 콘크리트와 철제 구조, 서울의 금속 소파와 분홍색 피팅룸에 이어 런던에서는 돌 포장 바닥과 녹색 가구, 곡선형 금속 벽이 사용됐다.
세 도시의 매장은 모두 사이클링 의류 판매와 커뮤니티 활동을 결합하고 있지만 공간을 구성하는 소재와 가구는 서로 다르다. 런던 LaB는 소호의 거리와 유럽 자전거 경주에서 가져온 돌바닥을 중심으로 금속 진열장과 곡선형 소파를 배치했다. 상품을 구매하고 라이딩 참가자들이 모이는 140㎡ 공간 안에 MAAP가 발전시켜 온 매장 디자인과 런던의 지역적 특징을 함께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