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트렌드①] 뉴욕 마켓 갤러리·멕시코시티 서드 본, 첫 공동전…17명·팀 참여
차이나타운 옥상에서 출발한 Market Gallery, 멕시코시티 THIRD BORN과 협업 1982년 사진부터 2026년 신작까지…도시의 기억과 이주, 일상 다룬 작품 한자리에
[KtN 김성은기자]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한 건물 옥상에서 시작한 작은 갤러리가 멕시코시티에서 첫 공동전을 열었다. 2024년 애덤 주(Adam Zhu)가 설립한 마켓 갤러리(Market Gallery)와 멕시코시티의 서드 본(THIRD BORN)이 뉴욕과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해 온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10월 1일 멕시코시티 로마 노르테(Roma Norte)에서 개막한 전시에는 작가 17명·팀이 참여했다. 1980년대에 제작된 사진부터 2026년 신작까지 회화와 조각, 사진, 영상이 함께 놓였다.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조라 시허(Zora Sicher)가 기획을 맡았다.
전시 제목은 'till the body becomes the city, it always is / hasta que el cuerpo se convierte en la ciudad, siempre lo es'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기억, 이주와 사회적 현실을 다룬 작품들로 구성됐다. 뉴욕과 멕시코시티라는 두 도시를 중심에 두면서도 참여 작가의 출신 국가와 활동 지역, 작품의 제작 시기는 폭넓게 설정했다.
마켓 갤러리와 서드 본의 협업은 작품을 소개하는 장소부터 눈길을 끈다. 뉴욕의 마켓 갤러리는 개인 주거공간에 딸린 옥상 건물에서 출발했고, 서드 본은 멕시코시티의 갤러리 공간을 중심으로 외부 기획자와 여러 작가의 전시를 진행해 왔다. 서로 다른 운영 기반을 가진 두 갤러리가 공동 기획에 참여한 것이다.
애덤 주가 마켓 갤러리를 설립한 장소는 뉴욕 차이나타운의 옥상 건물이었다.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가려면 아파트 내부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거리와 바로 연결되는 일반적인 갤러리와는 출입 구조부터 차이가 있다.
애덤 주는 뉴욕 이스트빌리지와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성장하며 스케이트보드와 음악, 거리문화를 접했다. 2015년 차이나타운으로 거주지를 옮긴 뒤 옥상 건물을 작업실과 창고, 음악 연습 공간 등으로 사용했다. 재즈 그룹 오닉스 컬렉티브(Onyx Collective)가 연습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사용한 건물은 바닥 일부가 무너질 정도로 낡았다. 애덤 주는 2024년 작가이자 시공자인 앤드루 카스(Andrew Kass)와 함께 건물을 수리했다. 바닥과 벽을 보수하고 작품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하면서 마켓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작은 옥상 건물은 전시 규모에 제약을 주는 공간이다. 대형 설치 작품이나 많은 관람객을 수용하기 어렵고, 작품을 반입하거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일반 갤러리와 다른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마켓 갤러리는 공간의 규모에 맞춰 소수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를 진행했다. 앤드루 카스가 첫 전시 작가로 참여했고, 아만다 바(Amanda Ba), 마커스 자말(Marcus Jahmal), 레이철 사이먼(Rachel Simon), 알릭스 베르네(Alix Vernet) 등이 이곳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알릭스 베르네는 옥상 바닥에 오랫동안 남아 있던 페인트와 그래피티 흔적을 작품에 활용했다. 여러 겹으로 쌓인 색과 자국을 수지로 떠내 새로운 작업으로 옮겼다. 갤러리 건물에 남아 있던 과거의 흔적이 작품의 재료가 된 것이다.
전시공간의 역사와 작품 제작이 직접 연결된 작업이었다. 낡은 옥상 건물을 새롭게 꾸미면서도 그곳에 남은 흔적을 작품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마켓 갤러리의 운영 방식과 작가의 작업이 맞닿았다.
마켓 갤러리는 2025년 뉴욕 소호에서 단체전 'REVOLVE'를 개최하며 옥상 밖으로 활동을 넓혔다. 머서 스트리트의 외부 공간에서 열린 전시에는 대시 스노(Dash Snow), 람멜지(Rammellzee), 마이크 켈리(Mike Kelley) 등 세상을 떠난 작가들의 작품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이 함께 출품됐다.
개인 주거공간에서 시작한 갤러리가 외부 전시장을 활용하면서 참여 작가의 세대와 작품의 범위도 넓어졌다. 2026년 멕시코시티 공동전은 뉴욕 밖에서 다른 갤러리와 협력한 첫 전시라는 점에서 이전 활동과 구별된다.
마켓 갤러리와 관계를 맺어온 사진가 조라 시허가 이번 공동전의 기획을 맡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시허는 마켓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경험이 있다.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인물 사이의 친밀한 관계와 정체성, 개인이 경험하는 장소를 사진으로 다뤄왔다. 멕시코시티 공동전에서는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하고 배치했다.
사진가가 기획자로 참여하면서 사진과 영상, 회화, 조각이 한 전시에 모였다. 작품의 종류와 제작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서드 본은 멕시코시티 로마 노르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갤러리다. 회화와 사진뿐 아니라 영상과 설치미술을 소개하고, 외부 기획자와 협력한 전시도 진행해 왔다.
2026년 6월에는 앤로르 르메트르(Anne-Laure Lemaitre)가 기획한 'En Flujo(In Flux)'를 개최했다. 레슬리앤 카오(Lesley-Anne Cao), 아모렐 자콕스(Amorelle Jacox) 등 다섯 작가가 참여해 물질의 변화와 지속성, 서로 다른 재료의 관계를 다뤘다.
9월에는 사라 사디크(Sara Sadik)의 'Seul sous la capuche'를 열었다.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제작된 영상 세 편과 영상 스틸을 활용한 설치 작품을 소개했다.
서드 본은 이번 공동전에서도 여러 매체의 작품을 배치했다. 뉴욕과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회화와 사진, 조각, 영상이 함께 전시됐으며 제작 시기도 40년 넘게 걸쳐 있다.
멕시코의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 발전에 참여한 세라 민터(Sarah Minter)의 1982년 사진은 오래된 작품 가운데 하나다. 미겔 칼데론(Miguel Calderón)의 1996년과 1999년 사진, 미국 사진가 밍 스미스(Ming Smith)의 1991년 작품도 포함됐다.
안나 벨라 가이거(Anna Bella Geiger)의 2003년 조각과 한나 리덴(Hanna Liden)·클라라 리덴(Klara Liden)의 2007년 영상은 다른 매체를 통해 도시의 경험을 다룬다. 실비아 그루너(Silvia Gruner)와 프란시스세 G. 핀손 삼페르(Francisce G. Pinzón Samper)의 2026년 작품도 전시에 참여했다.
1982년 작품과 2026년 신작 사이에는 44년의 간격이 있다. 같은 도시를 다루더라도 작가가 활동한 시대에 따라 경험한 사회적 환경과 기록의 방식은 달라진다. 사진과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활, 회화와 조각에 사용된 재료에도 서로 다른 시대의 특징이 남는다.
민터는 도시 주변부의 청년문화와 사회적 현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다. 칼데론은 멕시코시티의 일상과 대중문화, 사회적 환경을 소재로 작업해 왔다. 밍 스미스는 인물과 도시 풍경을 촬영하면서 빛과 움직임, 사람들의 관계를 사진에 담았다.
도시를 기록한다는 공통된 주제 안에서도 세 작가의 작업은 대상과 표현 방식이 다르다. 민터의 사진과 영상에서는 청년문화와 도시 주변부의 생활이, 칼데론의 작품에서는 멕시코 사회와 대중문화의 특징이 드러난다. 스미스의 사진은 인물과 도시의 관계를 빛과 구도, 움직임으로 다룬다.
참여 작가의 국적도 폭넓다. 팔레스타인 작가 라에다 사아데(Raeda Saadeh), 브라질 출신 안나 벨라 가이거, 미국 사진가 밍 스미스, 멕시코 작가 미겔 칼데론과 실비아 그루너 등이 함께 출품했다.
뉴욕과 멕시코시티의 공동전이지만 작품을 두 도시의 작가로만 구분하지 않은 구성이다. 여러 나라에서 태어나거나 이주한 작가들이 각자의 경험을 작품에 담았고, 도시와 관계를 맺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전시를 기획한 조라 시허는 작품의 국적보다 도시에서 형성되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무게를 뒀다. 서로 다른 역사와 환경에서 만들어진 작업들을 한자리에 배치하면서 도시를 하나의 고정된 풍경으로 다루지 않았다.
전시 글을 작성한 가비 세페다(Gaby Cepeda)는 미술비평가 핼 포스터(Hal Foster)의 '아카이브 충동(An Archival Impulse)'을 인용했다. 개인의 기억과 사회적 기록을 모으고 서로 연결하는 현대미술의 작업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개념이다.
아카이브를 활용한 전시에서는 기록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사진 한 장이나 오래된 영상은 제작 당시의 인물과 장소를 기록하지만, 다른 시대의 작품과 나란히 놓이면 새로운 관계가 생긴다.
1980년대 멕시코의 청년문화를 기록한 사진과 1990년대 도시를 다룬 작업, 2000년대 영상이 같은 전시장에 놓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록된 시대와 대상은 다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진과 영상, 회화, 조각은 도시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사진은 특정한 순간의 인물과 장소를 남기고, 영상은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다. 회화와 조각은 도시에서 경험한 이미지와 재료를 다른 형태로 구성한다.
작품의 성격이 다른 만큼 전시장 안에서의 배치도 중요해진다.
흰 벽에는 크기가 다른 평면 작품들이 걸려 있고, 바닥에는 여러 개의 구형 오브제가 놓였다. 일부 작품은 가까이에서 재료와 표면을 살펴볼 수 있고, 대형 평면 작품은 거리를 두었을 때 전체 구성이 드러난다.
벽면의 작품과 바닥의 입체 작업은 관람자의 움직임에도 차이를 만든다. 사진과 회화는 정면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입체 작품은 위치를 옮기면서 형태와 부피, 표면의 변화를 관찰하게 된다.
작품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둔 전시장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작은 사진과 대형 회화, 바닥에 놓인 조각이 각각 다른 관람 거리를 요구한다. 여러 매체를 함께 소개하는 전시에서는 작품의 크기와 설치 위치, 주변 작품과의 관계까지 기획에 포함된다.
마켓 갤러리와 서드 본의 공동전에는 서로 다른 제작 연도와 매체의 작품이 놓였다. 세대를 달리한 작가들의 작업을 하나의 주제로 묶은 만큼 개별 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제작 의도를 존중하는 일도 중요하다.
오래된 사진은 제작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기록의 대상을 살펴봐야 하고, 최근의 작업은 작가가 사용한 재료와 표현 방식, 현재의 도시 경험을 함께 다뤄야 한다. 여러 작품을 한 전시로 묶는 기획은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성격이 정해진다.
독립 갤러리의 국제 공동전에는 전시 기획 외에도 실무적인 조건이 따른다. 작품이 다른 국가에서 이동할 경우 운송과 보험, 통관과 설치를 준비해야 한다. 사진과 영상은 판본과 상영 조건을 관리하고, 과거 작품은 소장자나 작품을 관리하는 주체와 전시 조건을 협의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갤러리일수록 기존의 공간과 인력, 작가와의 관계를 고려한 기획이 중요해진다. 상설 전시공간을 새로 마련하지 않고 다른 지역의 갤러리와 협력하면 현지 공간과 운영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
마켓 갤러리의 활동은 이러한 방식으로 넓어졌다. 2024년 차이나타운 옥상에서 출발해 2025년 뉴욕 소호의 외부 전시장을 활용했고, 2026년에는 멕시코시티의 서드 본과 공동전을 개최했다.
한국에서도 기존 전시공간을 활용해 외부 기관과 작가를 연결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9월 5일 개막한 제16회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광주 곳곳에서는 파빌리온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가와 도시, 문화예술기관이 참여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은 국제적인 기관 협력을 기반으로 하고, 멕시코시티 공동전은 독립 갤러리 두 곳이 직접 기획했다는 차이가 있다. 광주에서는 여러 전시공간에 프로그램이 분산되며, 멕시코시티에서는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의 작품을 하나의 갤러리에 모았다.
국내외 전시공간이 협력하는 방식은 기관의 규모와 재정, 지역의 미술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여러 공간에서 각각의 전시를 운영하는 방식과 한 공간에 다양한 작품을 모으는 방식은 작품을 선정하고 관람 동선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뉴욕 마켓 갤러리는 옥상 건물의 제한된 규모를 유지하면서 외부 공간에서 전시를 진행해 왔다. 멕시코시티 공동전에서도 기존 갤러리의 운영 경험을 활용했다. 새로운 상설 전시장을 마련하는 대신 현지 공간과 외부 기획자의 참여를 통해 작품을 소개하는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조라 시허는 사진가에서 기획자로 역할을 넓혔다. 1980년대의 사진부터 2026년 신작까지 서로 다른 작품을 선정했고, 서드 본은 멕시코시티의 전시장에 사진과 회화, 조각, 영상을 함께 설치했다.
두 갤러리의 첫 공동전은 1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뉴욕과 멕시코시티에 거주하거나 두 도시와 관계를 맺어온 작가 17명·팀의 작품이 전시되며, 제작 시기와 매체가 다른 작업들이 도시의 기억과 개인의 경험을 다룬다.
2024년 뉴욕 차이나타운 옥상에서 출발한 마켓 갤러리는 2년 만에 멕시코시티에서 첫 공동전을 열었다. 개인전과 외부 단체전을 거쳐 해외 갤러리와 작품을 공동으로 구성하기까지, 전시공간의 규모보다 작가와 기획자, 지역 갤러리의 협력 관계를 활용해 활동 범위를 넓혀온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