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트렌드②] 세라 민터·미겔 칼데론, 사진에 남긴 도시의 기억…1980년대에서 현재까지
멕시코시티 청년문화와 1990년대 도시 풍경, 뉴욕 할렘의 일상 기록…사진·영상으로 살핀 도시의 변화 1982년 세라 민터 사진부터 2007년 리덴 자매 영상까지…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아카이브 전시와도 비교
[KtN 김성은기자]1999년 멕시코시티의 도심을 내려다본 사진에는 건물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빽빽한 건물 사이로 긴 도로가 뻗어 있고, 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멀리 있는 건물들은 뿌연 대기 속에서 윤곽이 흐려진다. 도시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사진에는 개별 인물보다 거리와 건물, 교통의 흐름이 넓게 담겼다.
멕시코 작가 미겔 칼데론(Miguel Calderón)이 1999년 제작한 'DF'다. 멕시코시티가 공식적으로 '연방구(Distrito Federal)'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구도와 촘촘하게 들어선 건물, 차량이 가득한 도로가 당시의 멕시코시티를 기록하고 있다.
뉴욕 마켓 갤러리(Market Gallery)와 멕시코시티 서드 본(THIRD BORN)의 공동전에는 칼데론의 사진과 함께 세라 민터(Sarah Minter)의 1982년 작업, 미국 사진가 밍 스미스(Ming Smith)의 1991년 사진, 한나 리덴(Hanna Liden)과 클라라 리덴(Klara Liden)의 2007년 영상이 전시됐다.
10월 1일 멕시코시티 로마 노르테에서 개막한 전시는 1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도시의 기억과 이주, 일상과 사회적 현실을 다루며 17명의 작가 또는 작가팀이 참여했다. 사진가 조라 시허(Zora Sicher)가 기획을 맡아 서로 다른 시대에 제작된 작품을 한자리에 배치했다.
전시장에는 1980년대 멕시코의 청년문화와 뉴욕 할렘의 거리, 1990년대 멕시코시티의 건물과 도로, 2000년대에 제작된 영상이 함께 놓였다. 작품마다 기록한 대상과 촬영 방식이 다르고, 제작 당시 작가들이 바라본 도시의 모습에도 차이가 있다.
도시를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한 전시에 모았다는 사실보다 주목할 부분은 기록의 대상이다. 어떤 작품은 거리의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다른 작품은 높은 곳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봤다.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 인물을 담는 방식, 촬영한 시기의 차이가 작품의 성격을 결정한다.
세라 민터의 1982년 사진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민터는 1953년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태어나 2016년 멕시코시티에서 세상을 떠난 영화감독이자 비디오아티스트다. 1970년대 실험극 활동을 거쳐 1980년 첫 슈퍼8 영화 'Adagio'를 제작했다. 이후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 비디오 설치를 통해 청년문화와 정치, 도시 주변부의 생활을 다뤘다.
이번 전시에는 1982년 제작한 'Nadie es inocente (Fantasmas)'와 'Hoja de Contacto 1'이 포함됐다. 두 작품 모두 컬러 사진 인화 방식인 크로모제닉 프린트(chromogenic print)로 제작됐다.
'Hoja de Contacto 1'은 여러 장의 사진을 한곳에 모은 작업이다. 제목에 사용된 'Hoja de Contacto'는 사진의 콘택트 시트(contact sheet)를 뜻한다. 필름에 기록된 여러 이미지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해 촬영 결과를 살펴보는 방식이다.
'Hoja de Contacto 1'에는 여러 인물과 거리의 모습이 작은 사진으로 반복된다. 세로로 나뉜 구획마다 서로 다른 인물과 장소가 등장하고, 같은 인물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들도 포함됐다.
개별 사진 한 장을 크게 인화한 작품과 달리 여러 사진을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구성이다. 인물의 표정과 자세, 촬영한 장소가 달라지면서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을 여러 시점에서 기록한 흔적이 남아 있다.
콘택트 시트는 필름 사진 작업에서 촬영자가 사진을 고르는 데 사용해 온 도구다. 촬영한 순서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고, 최종 인화할 사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활용됐다.
민터는 여러 사진을 함께 배열한 형태를 작품으로 제시했다. 완성된 사진 한 장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번 촬영한 기록을 나란히 놓은 것이다. 서로 다른 인물과 상황을 비교할 수 있으며, 촬영자가 대상을 관찰하고 기록한 과정도 작품 안에 남았다.
사진을 선택하고 편집하는 행위는 기록의 일부다. 촬영한 이미지 가운데 어느 사진을 남기고 어떤 순서로 배열하느냐에 따라 인물과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민터의 작업에서는 작은 사진들의 배열이 개별 이미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민터는 1980년대 중반 멕시코시티 외곽의 펑크 청년들을 촬영한 영화 'Nadie es inocente'를 제작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제작된 작품으로, 멕시코시티 인근 시우다드 네사우알코요틀(Ciudad Nezahualcóyotl)에서 생활하던 청년들의 모습을 담았다.
도시 외곽의 청년들은 음악과 의상, 공동체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했다. 민터는 펑크 음악을 즐기는 청년들의 일상과 사회적 환경을 가까이에서 기록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생활을 다뤘다는 점에서 멕시코 실험영화와 독립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1982년 사진과 1980년대 중반 영화는 제작 시기와 매체가 서로 다르다. 민터가 같은 시대에 사람들의 생활과 청년문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했다는 사실은 여러 작업을 통해 이어진다.
1992년 제작한 'Alma punk'에서도 펑크 문화와 청년의 삶을 다뤘다. 멕시코 국경 도시 티후아나와 미국으로 이동하는 젊은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사회적 환경과 개인의 정체성을 살펴본 작품이다.
민터는 도시의 유명한 건축물이나 대표적인 풍경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향했다. 청년들의 옷차림과 행동, 생활공간이 사진과 영상에 남았다. 도시의 역사를 정치와 경제의 변화만으로 기록하는 방식과 구별되는 접근이다.
멕시코시티의 외곽 지역과 청년문화는 당시의 사회적 환경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었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중심부와 주변부의 생활 조건에는 차이가 생겼고, 젊은 세대는 음악과 거리문화를 통해 자신들의 관계와 정체성을 형성했다.
민터의 사진과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생활이 도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됐다. 거리와 건물은 인물이 살아가는 환경으로 등장하고, 음악과 행동은 시대의 문화를 기록하는 요소로 남았다.
미겔 칼데론은 같은 도시를 다른 거리에서 촬영했다.
'DF'에는 멕시코시티의 건물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사진 중앙에는 긴 도로가 뻗어 있고, 양쪽에는 크고 작은 건물이 밀집해 있다. 도로 위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줄지어 있으며, 멀리 갈수록 건물의 윤곽이 뿌옇게 흐려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구도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이나 개별 행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건물의 높이와 도로의 방향, 차량이 이어지는 형태가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과 교통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구도다. 중심부의 건물과 도로는 비교적 선명하지만 먼 곳으로 갈수록 회색 대기 속에 묻힌다. 시야의 앞과 뒤에서 건물의 밀도와 윤곽이 달라지면서 도시의 규모가 강조된다.
사진의 중앙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에는 차량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주변 건물들은 서로 다른 높이와 형태를 갖고 있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된다. 건축물과 도로, 자동차가 한꺼번에 담기면서 개별 인물의 생활보다 도시의 물리적 구조에 관심이 모인다.
1999년 멕시코시티는 연방구를 뜻하는 'Distrito Federal'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했다. 작품 제목 'DF'도 당시 도시를 가리키던 명칭과 연결된다. 2016년 멕시코의 정치제도 개편으로 도시의 공식 명칭과 행정적 지위가 바뀌기 전의 기록이다.
칼데론은 1971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작가다. 사진과 영상, 설치, 회화 등을 통해 멕시코 사회와 대중문화, 도시의 일상을 다뤄왔다. 익숙한 사회적 이미지와 행동을 다른 상황에 놓는 작업도 지속했다.
전시에는 'DF'와 함께 1996년 제작한 'Marking Territory 01-05'도 포함됐다. 다섯 점으로 구성된 사진 작업이며,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archival pigment print) 방식으로 제작됐다.
두 작품은 199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한 작가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DF'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체적인 형태를 담고 있다면, 'Marking Territory 01-05'는 제목부터 공간과 영역의 관계를 다룬다.
도시의 모습을 촬영할 때 관찰자의 위치는 중요하다.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도로와 건축물의 관계가 선명해지지만 개별 인물의 표정과 행동은 작아진다. 거리에서 촬영하면 사람들의 생활과 움직임을 가까이 담을 수 있는 대신 도시 전체의 규모는 한 장에 담기 어렵다.
민터와 칼데론의 작업은 도시 기록에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민터는 청년문화와 생활을 가까이에서 관찰했고, 칼데론은 도시의 구조와 일상을 서로 다른 사진 작업으로 다뤘다.
뉴욕의 도시 경험은 밍 스미스의 사진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밍 스미스는 미국의 흑인 문화와 도시의 일상을 촬영해 온 사진가다. 1970년대부터 뉴욕 할렘의 거리와 예술가, 음악가, 주민들의 생활을 사진에 담아왔다. 인물의 움직임과 빛, 흐릿한 윤곽을 활용한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August Blues'(1991)는 뉴욕 할렘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거리의 인물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담았다. 선명한 초상보다 흐릿하게 지나가는 인물의 윤곽과 주변의 빛이 두드러진다.
사진에는 걷는 인물의 다리와 몸의 일부가 흐릿하게 나타난다. 거리의 배경과 인물이 겹치고, 밝은 빛이 어두운 주변을 비춘다. 정지된 자세를 또렷하게 기록하기보다 움직이는 사람의 흔적을 남긴 방식이다.
스미스는 장시간 노출과 카메라의 움직임, 빛의 차이를 활용해 사진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인물을 촬영하면서도 얼굴과 신체를 항상 선명하게 기록하지는 않았다. 흐릿하게 겹친 윤곽과 어두운 배경을 통해 도시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존재를 표현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스미스의 사진을 통해 흑인들의 생활과 도시의 관계를 살펴보는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작가가 활동해 온 할렘은 음악과 문학, 미술 등 흑인 문화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할렘은 20세기 초부터 흑인 예술가와 작가, 음악가들의 활동이 집중된 지역이다. 재즈와 문학, 사진과 미술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가 기록됐다. 스미스는 거리와 사람들을 촬영하면서 이러한 문화적 환경을 자신의 사진으로 남겼다.
'August Blues'에서는 인물이 선명한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움직이는 몸과 주변의 빛이 겹쳐진 상태로 기록된다. 사진이 한순간을 정확하게 정지시키는 매체이면서 동시에 움직임과 시간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1991년의 할렘과 1999년의 멕시코시티는 서로 다른 도시다. 도시의 역사와 사회적 환경도 다르다. 스미스의 사진에서는 거리의 인물과 빛이 강조되고, 칼데론의 사진에서는 건물과 교통의 구조가 두드러진다.
카메라가 어느 높이에서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도시의 모습이 달라진다. 사진가가 선택한 거리와 구도는 작품의 조형뿐 아니라 기록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시의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은 영상에서 다시 달라진다.
'Technobattle'은 2007년 제작된 4분 10초 길이의 단채널 영상이다. 전시장에서는 소형 모니터를 통해 반복 재생된다. 모니터 안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 나타나고, 어두운 주변과 밝은 불길의 대비가 뚜렷하다.
사진은 정지된 순간을 남기지만 영상에는 시간의 흐름이 포함된다. 불꽃처럼 형태가 계속 달라지는 대상은 움직임과 밝기의 변화를 통해 기록된다. 작품을 관람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영상이 반복되는 방식도 감상에 영향을 준다.
전시에는 1980년대 사진과 1990년대 도시 기록, 2000년대 영상이 함께 놓였다. 사진이 특정한 순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남겼다면 영상은 움직임을 일정한 길이로 편집해 제시한다. 도시를 기록하는 매체가 달라지면서 관람자가 경험하는 시간도 달라지는 것이다.
한나 리덴과 클라라 리덴은 스웨덴 출신 작가로, 도시의 생활환경과 일상적인 사물, 공간에 관한 작업을 해왔다. 사진과 영상, 설치와 조각 등을 활용하면서 거리의 구조와 사람들의 행동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작가의 영상이 서로 다른 시기에 제작된 사진과 함께 배치됐다. 같은 도시를 촬영한 작품들로만 구성된 전시가 아니라 각 작가가 경험한 도시와 기록의 방식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다.
오래된 영상을 현재의 전시장에 설치하는 방식도 작품을 감상하는 조건과 관계가 있다. 소형 모니터에 영상을 재생하면 관람객은 가까이 다가가 작은 기기 안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게 된다.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과는 다른 감상 환경이다.
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거는 방식과 영상 기기를 받침대에 설치하는 방식 역시 관람하는 거리와 자세를 달리한다. 여러 매체를 함께 다루는 전시에서는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기록을 전달하는 장치까지 전시 구성에 포함된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도시를 기록하는 작업은 회화와 드로잉으로도 이어진다.
실비아 그루너는 2026년 제작한 'Todos los caminos llegan a Roma'를 이번 전시에 출품했다. 면 종이에 카본 잉크를 사용한 작품으로, 검은 선들이 서로 교차하거나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작품에는 흑백의 선이 반복되고 일부는 겹쳐져 복잡한 구조를 만든다. 특정한 건물이나 인물을 직접 묘사하기보다 선과 간격, 교차하는 형태가 두드러진다. 곧게 뻗은 선과 굽은 선들이 만나는 방식은 도로나 이동 경로를 떠올리게 한다.
제목 'Todos los caminos llegan a Roma'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뜻이다. 길과 이동, 서로 다른 경로가 하나의 장소로 이어지는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제목이다. 검은 선의 배열은 특정한 도시를 사실적으로 그린 지도보다 추상적인 공간의 관계에 가깝다.
실제 도시를 카메라로 촬영한 칼데론의 'DF'와 나란히 살펴보면 접근 방식의 차이가 드러난다. 칼데론은 도로와 건축물이 존재하는 장소를 촬영했고, 그루너는 선과 형태를 통해 경로와 공간을 다뤘다.
도시를 기록하는 미술이 반드시 거리의 풍경이나 사람을 그대로 묘사하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러한 차이에서 읽을 수 있다. 이동의 흔적과 공간의 구성을 선으로 표현하는 방식 역시 도시 경험을 다루는 방법이다.
전시장에는 제작 방식이 다른 작품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됐다. 사진과 드로잉, 회화는 벽면을 따라 놓이고 영상은 별도의 모니터로 재생된다. 같은 공간에 들어온 작품들이지만 관람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세라 민터의 콘택트 시트는 여러 사진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고, 칼데론의 도시 사진은 넓은 구도 안에서 건물과 도로의 관계를 읽게 한다. 밍 스미스의 사진에서는 흐릿하게 움직이는 인물과 빛이 강조되고, 리덴 자매의 영상에서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전시 글을 쓴 가비 세페다(Gaby Cepeda)는 미술비평가 핼 포스터(Hal Foster)의 '아카이브 충동(An Archival Impulse)'을 인용했다. 포스터는 2004년 발표한 글에서 현대미술가들이 역사적 기록과 자료를 수집하고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하는 작업에 주목했다.
도시를 다루는 아카이브 미술에서는 자료를 수집하는 일과 함께 기록을 선택하고 다시 배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과거에 제작된 사진과 영상이 현재의 전시장에 놓이면 원래의 기록은 다른 시대의 작품들과 관계를 맺는다.
1982년 민터의 사진은 제작 당시 인물과 환경을 담고 있고, 1999년 칼데론의 작품은 그 시기의 멕시코시티를 기록했다. 2026년 전시에서는 두 작품이 함께 놓이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도시 경험을 비교할 수 있게 됐다.
작가가 기록한 도시의 모습과 오늘날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이해하는 도시는 시간적 거리가 있다. 건물과 도로는 바뀌고 사람들의 생활도 달라진다. 사진에 남은 인물과 장소는 촬영 당시의 상태를 유지하지만 관람하는 시대와 환경은 달라진다.
한국에서도 사진과 영상, 수집 자료를 활용해 장소의 역사와 기억을 다루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2025년 5월 서울 도봉구 창동에 문을 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개관전으로 '스토리지 스토리(Storage Story)'를 개최했다. 10월 12일까지 이어진 전시에는 서동신과 원성원, 정지현, 주용성, 정멜멜, 오주영 등 여섯 작가가 참여했으며 사진과 설치, 입체, 인공지능(AI), 미디어 작업 등 90점이 소개됐다.
전시는 창동이라는 지역의 역사와 사진미술관의 건립 과정에서 출발했다. 창동의 지명에 들어 있는 '창(倉)'은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를 뜻한다. 사진미술관은 저장과 보관이라는 의미를 이미지와 기억, 작품과 자료를 보존하는 미술관의 역할로 연결했다.
참여 작가들은 미술관이 건립되는 과정과 지역의 기록, 자료의 수집과 저장을 서로 다른 매체로 다뤘다. 사진이 특정한 순간을 기록하는 기능을 넘어 자료를 다시 구성하고 해석하는 미술적 작업으로 활용됐다.
서울의 '스토리지 스토리'가 새로 건립한 사진미술관과 창동의 역사에서 출발했다면, 멕시코시티 공동전은 여러 도시에서 제작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적 경험을 다룬다. 장소와 기록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기존 자료와 이미지에 새로운 배열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비교할 만하다.
사진이 언제 어디에서 제작됐는지, 누가 기록의 대상이 됐는지, 수집한 자료를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전시했는지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준다. 기록의 보존과 전시의 구성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별도의 판단을 요구한다.
멕시코시티 공동전에는 1980년대의 사진부터 2026년 신작까지 제작 시기가 다른 작품들이 함께 놓였다. 세라 민터가 촬영한 인물과 미겔 칼데론의 도시 풍경, 밍 스미스가 기록한 할렘의 거리, 리덴 자매의 영상은 각각 다른 도시와 생활환경에서 만들어졌다.
여러 작품을 도시라는 공통 주제로 묶을 때에는 각 지역이 지닌 역사와 작가의 경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멕시코시티의 청년문화와 뉴욕 할렘의 흑인 문화는 형성 배경과 사회적 조건이 다르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에 포함된 만큼 각 작품의 제작 맥락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마켓 갤러리와 서드 본의 공동전은 두 도시를 같은 방식으로 기록한 작품들을 모은 전시가 아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을 촬영한 사진과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본 사진, 불빛과 움직임을 담은 영상이 함께 놓였다.
세라 민터의 1982년 'Hoja de Contacto 1'에는 여러 인물과 생활의 흔적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1999년 미겔 칼데론의 'DF'에는 빽빽한 건물과 자동차가 이어지는 도로가 담겼다. 밍 스미스의 'August Blues'에서는 도시를 걷는 사람의 움직임이 흐릿하게 나타나고, 리덴 자매의 'Technobattle'에서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영상이 반복된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 멕시코시티 로마 노르테의 서드 본에서 열린다. 1982년부터 2026년까지 서로 다른 시대에 제작된 사진과 영상, 회화와 조각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도시의 건물과 거리,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록은 각기 다른 작품에 남아 있으며, 작품의 제작 시기와 촬영 방식, 매체의 차이가 전시의 구성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