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rgio Armani × Kith FW26①] 아르마니 '사하라' 다시 꺼낸 키스, 1990년대 남성복의 재구성
1990 FW·1992 SS 아카이브에서 출발한 세 번째 협업…부드러운 어깨와 넓은 바지에 뉴욕식 실용성 결합, 모로코 사막에서 펼친 'Dreams of the Dune'
[KtN 박인경기자]2026년 10월 9일 일몰 무렵, 모로코 마라케시 남쪽 아가파이 사막에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와 키스(Kith)의 세 번째 협업 컬렉션 'Dreams of the Dune'이 공개됐다. 붉은 흙이 깔린 런웨이에는 긴 코트와 넓은 바지, 어깨선이 부드러운 재킷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다. 짙은 네이비에서 브라운과 올리브, 모래색, 그레이지, 회색, 흰색으로 이어지는 의상은 사막의 지형과 빛을 색채와 소재에 반영했다.
키스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로니 피그(Ronnie Fieg)가 선택한 출발점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선보인 '사하라(Sahara)' 컬렉션과 광고 캠페인이다. 특히 1990 FW와 1992 SS를 비롯한 아카이브에서 느슨한 재킷, 넓은 바지,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소재, 사막을 연상시키는 색채를 가져왔다. 당시 아르마니가 제시한 남성복의 비율을 유지하면서 키스가 발전시켜 온 스트리트웨어와 기능적인 디자인을 접목했다.
30여 년의 간격을 두고 다시 등장한 사하라 스타일은 긴 코트 아래 카고 팬츠를 입고, 셔츠와 넥타이에 집업 니트를 겹치며, 부드러운 테일러링에 야구 모자와 여행 가방을 더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아르마니의 전통적인 남성복이 뉴욕의 일상적인 옷차림과 결합한 결과다.
1970년대부터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발전시킨 디컨스트럭티드 테일러링(deconstructed tailoring)은 어깨와 가슴의 딱딱한 구조를 완화하고 옷이 몸을 따라 자연스럽게 떨어지도록 하는 재단 방식이다. 전통적인 수트가 어깨와 허리의 형태를 고정했다면, 아르마니의 재킷은 내부 구조를 간소화하면서 신체의 움직임과 소재의 유연성을 강조했다.
1990년대 사하라 스타일에서도 부드러운 어깨와 넉넉한 바지, 여유로운 코트가 중심을 이뤘다. 사파리 재킷과 긴 트렌치코트, 사막의 흙빛을 닮은 색상은 활동적인 복장에서 가져온 요소였지만, 아르마니는 정교한 재단과 소재의 사용으로 남성복의 격식을 유지했다.
2026 FW 컬렉션에서도 어깨와 허리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를 만드는 부분은 옷을 겹쳐 입는 방식과 기능적인 세부 구성이다. 코트 안에 전통적인 재킷 대신 집업 상의를 입고, 넓은 울 팬츠와 카고 팬츠를 함께 활용하며, 스카프와 넥 게이터, 장갑을 착장에 포함했다. 정장과 캐주얼웨어를 구분하던 의복의 조합이 달라진 것이다.
짙은 네이비 롱코트와 베스트를 겹친 착장은 아르마니의 전통적인 남성복 구성을 바탕으로 한다. 코트는 어깨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떨어지고, 안쪽의 베스트는 단추 여밈으로 상체 중심을 정리한다. 목에 두른 스카프는 코트와 셔츠 사이에 층을 만들며, 바지는 허벅지부터 밑단까지 넓은 폭을 유지한다.
코트와 베스트의 조합에는 전통적인 테일러링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하의는 기능적인 카고 팬츠로 바뀌었다. 주름을 잡아 여유를 확보한 바지에 실용적인 요소를 더하면서 정장과 활동복을 연결했다. 코트의 길이가 상체의 세로선을 만들고, 넓은 팬츠는 하체를 지나치게 좁게 표현하지 않는다.
상의와 하의 모두 넉넉한 형태인데도 착장이 무겁게 처지지 않는 이유는 코트와 베스트, 팬츠의 길이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코트의 앞섶 사이로 안쪽 베스트가 드러나고, 베스트 아래에는 팬츠의 허리 부근이 이어진다. 여러 겹의 옷이 서로 다른 길이로 배치되면서 느슨한 실루엣 안에서도 상체와 하체의 구분이 유지된다.
짙은 네이비는 검정에 가까운 깊이를 지니면서도 자연광 아래에서는 옷의 주름과 소재의 차이가 구분된다. 비슷한 색을 반복해 사용하는 대신 겉옷과 안쪽 상의, 바지의 재질과 형태를 달리해 단색 스타일링의 밀도를 높였다.
아르마니가 1990년대에 선보인 부드러운 재킷과 긴 코트의 비율을 현재의 일상복으로 확장한 착장이다. 격식을 갖춘 상의에 기능적인 바지를 연결한 방식에서 키스의 디자인 성향이 드러난다.
아르마니와 키스의 협업은 2024 FW 'The Archetype'으로 시작됐다. 당시에는 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 여행자, 기업가 등 네 가지 인물 유형을 중심으로 아르마니의 테일러링을 재구성했다. 2025년 두 번째 협업 'Estate'에서는 말리부와 햄튼스, 이탈리아 해안 지역의 여름 복장을 바탕으로 가벼운 수트와 셔츠, 쇼츠를 선보였다.
세 번째 협업인 'Dreams of the Dune'은 특정한 인물이나 휴양지의 생활양식보다 아르마니의 과거 컬렉션 자체에 집중했다. 1990년대 남성복의 형태를 가져와 소재와 비율을 다시 조정하고, 기능적인 디테일을 더했다. 아르마니와 키스가 2024년부터 이어 온 협업 가운데 브랜드의 역사적 디자인 언어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향이다.
토프 컬러 캔버스 재킷은 사막에서 착안한 소재와 구조를 보다 직접적으로 담고 있다. 재킷 전면의 포켓과 가죽 트리밍이 직선적인 형태를 만들고, 같은 계열의 팬츠는 넓은 폭으로 떨어진다. 목에 두른 스카프와 챙이 있는 모자는 의상의 색조를 유지하면서 머리와 목 주변에 부피를 더한다.
캔버스의 조직감과 가죽의 매끄러운 표면은 비슷한 색상 안에서 차이를 만든다. 재킷은 포켓과 여밈을 통해 기능적인 구조를 강조하지만, 어깨와 몸통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다. 바지는 재킷보다 부드럽게 내려와 상의의 형태를 이어받는다.
사파리 재킷은 본래 야외 활동에 적합하도록 포켓과 여밈, 움직임을 고려해 발전한 옷이다. 아르마니는 이러한 요소를 남성복 재킷의 비율에 적용해 왔다. 이번 착장에서는 캔버스와 가죽을 함께 사용해 소재의 특성을 구분하면서도 상의와 하의의 색상을 가깝게 맞췄다.
토프는 회색과 브라운의 성격을 함께 지닌 중간 색조다. 붉은 흙과 대비가 크지 않으면서도 회색 기운이 더해져 노란 모래색과 구분된다. 재킷과 바지에 같은 색을 사용하면 전체 형태가 단조로워질 수 있지만, 가죽 장식과 포켓, 바지의 주름이 구획을 나눈다.
사막이라는 배경을 직접적인 무늬나 장식으로 표현하기보다 소재의 질감과 자연적인 색조에 반영한 구성이다. 장식적인 요소가 적은 대신 재킷의 길이와 포켓, 바지의 폭이 착장의 차이를 만든다.
올리브 브라운 트렌치코트에는 브라운 하프집업 상의를 겹쳤다. 코트의 앞섶을 열어 안쪽 상의가 드러나도록 하고, 검은색 팬츠로 하체의 색상을 구분했다. 머리에는 야구 모자를 착용하고 손에는 짙은 색의 가방을 들었다.
트렌치코트와 하프집업의 조합은 아르마니와 키스의 디자인 차이를 잘 드러낸다. 길고 부드러운 코트는 아르마니의 전통적인 남성복에 가깝고, 목까지 올라오는 집업 상의와 야구 모자는 키스가 발전시켜 온 일상복의 구성 요소다.
브라운과 올리브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검은 팬츠는 색상 차이를 만든다. 길게 내려오는 코트 아래에서 어두운 팬츠가 하체를 정리하고, 코트 안쪽의 하프집업은 목에서 가슴까지 비교적 짧은 세로선을 형성한다.
코트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안쪽 상의와 바지의 비율은 중요해진다. 하프집업의 목둘레가 코트 칼라와 겹치면서 상체에 구조를 만들고, 열린 코트의 앞섶이 몸의 양옆으로 떨어지면서 넓은 팬츠와 연결된다. 전통적인 트렌치코트를 수트와 함께 입는 방식보다 훨씬 활동적인 인상을 준다.
긴 코트와 넓은 바지에 기능적인 상의를 더하는 방식은 FW26 전반에서 반복된다. 아르마니의 부드러운 실루엣을 유지하면서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의복의 종류를 늘린 구성이기도 하다.
오트밀 컬러 더블브레스티드 재킷과 긴 리넨 코트를 겹친 착장은 이번 컬렉션에서 아르마니의 테일러링이 가장 차분하게 표현된 구성 가운데 하나다. 안쪽에는 목을 감싸는 터틀넥을 입고, 같은 계열의 넓은 팬츠를 연결했다.
더블브레스티드 재킷은 겹치는 앞섶과 단추 배열로 상체에 일정한 형태를 만든다. 반면 긴 코트는 어깨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떨어져 재킷의 구조적인 형태를 부드럽게 감싼다. 단정한 재킷과 유연한 코트가 비슷한 색조 안에서 대비를 이룬다.
리넨 특유의 가벼운 질감은 겨울용 코트에서 흔히 사용하는 두꺼운 울 소재와 다른 형태를 만든다. 코트의 옷자락이 길게 내려오지만 상체를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지 않고, 안쪽 재킷의 라펠과 여밈이 드러나면서 옷의 겹침이 구분된다.
오트밀과 밝은 그레이지는 사막의 흙빛과 연결되는 색상이다. 강한 색 대비 없이 명도가 가까운 옷을 여러 겹 입었지만, 코트와 재킷의 길이, 니트의 목둘레, 바지의 주름이 각각의 형태를 구분한다.
전통적인 수트 재킷은 셔츠와 바지 사이에 놓이는 의복이지만, 아르마니는 재킷을 코트와 니트 사이에 배치해 다양한 겹쳐 입기를 가능하게 했다. 재킷의 격식은 유지하면서도 긴 코트와 넓은 바지가 움직일 공간을 확보한다.
검정과 네이비, 브라운을 지나 밝은 그레이지로 이어지는 FW26의 색채 변화도 아르마니 특유의 절제된 스타일과 연결된다. 강한 장식이나 로고 대신 재단과 옷의 길이, 소재의 질감이 디자인을 구분한다.
'Dreams of the Dune'에는 가죽과 스웨이드, 실크, 면, 비스코스, 버진 울, 캐시미어, 순수 헴프 등 여러 소재가 사용됐다. 울과 캐시미어의 부드러움, 가죽의 두께감, 실크와 리넨의 유연한 특성이 긴 코트와 넓은 바지의 실루엣을 다양하게 만든다. 기능적인 카고 팬츠에도 울과 캐시미어, 헴프 등의 소재가 활용되면서 활동복과 고급 남성복의 소재 구분이 달라졌다.
로니 피그는 아르마니가 오랫동안 다듬어 온 느슨한 테일러링에 키스의 기능적인 디자인을 결합했다. 스카프와 넥 게이터, 장갑과 모자는 추위와 바람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요소이면서 어깨와 목 주변의 비율을 조정하는 장치로도 활용됐다. 넉넉한 옷을 여러 겹 입더라도 재킷의 길이와 코트의 여밈, 바지의 폭을 조절해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아르마니 컬렉션에서 중요했던 부드러운 어깨와 넓은 바지, 몸을 감싸는 긴 코트는 2026 FW에서도 남성복의 기본 구조로 남아 있다. 키스는 카고 포켓과 하프집업, 야구 모자, 기능적인 액세서리를 더해 착장 방식을 넓혔다.
모로코 아가파이 사막에서 공개된 'Dreams of the Dune'은 아르마니의 과거 디자인을 오늘날의 남성복에 연결한 컬렉션이다. 네이비 롱코트와 카고 팬츠, 캔버스 재킷과 가죽 장식, 트렌치코트와 하프집업, 리넨 코트와 더블브레스티드 재킷까지 서로 다른 구성에는 부드러운 재단과 넉넉한 실루엣이 공통으로 적용됐다. 1990년대 사하라 스타일을 바탕으로 의복의 격식과 기능을 다시 조합한 아르마니와 키스의 세 번째 협업은 두 브랜드가 공유하는 남성복의 비율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