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사이트①] 더 콰이어 블루, 익숙한 노래에 새겨진 시간과 기억
'얼굴'·'그리운 마음'·'못잊어'가 다시 불린 구띠갤러리…반세기를 건너온 선율과 세대마다 달라지는 음악의 기억
[KtN 박준식기자]1967년 서울의 한 학교에서 두 교사가 만든 노래 '얼굴'이 59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공연 무대에 올랐다. 심봉석이 노랫말을 쓰고 신귀복이 작곡한 가곡으로, 1970년대 윤연선의 목소리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구띠갤러리에서 열린 더 콰이어 블루(The Choir Blue) 제4회 정기연주회에는 '얼굴'과 함께 '그리운 마음', '못잊어' 등 오래전부터 불려온 노래들이 포함됐다. 한때 라디오와 음반으로 접하던 음악이 새로운 연주자를 만나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이다.
김준홍 지휘자와 권혜경 피아니스트가 함께한 연주회에서는 한국 가곡과 해외 성악곡, 뮤지컬 음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이 연주됐다. 2020년 6월 창단한 더 콰이어 블루는 박희열 회장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아마추어 합창단이다. 박 회장은 합창단 운영뿐 아니라 테너 단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음악을 함께 부르는 활동이 정기연주회로 이어지면서 익숙한 노래들은 현재의 공연 레퍼토리로 남아 있다.
'얼굴'이 탄생한 곳은 당시 심봉석과 신귀복이 교사로 재직하던 서울 동도중공업고등학교였다. 생물교사였던 심봉석이 그리워하던 사람을 떠올리며 노랫말을 썼고, 음악교사 신귀복이 곡을 붙였다. 학교 교무실에서 시작된 노래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알려졌으며, 성악가와 대중가수의 목소리로 전해지면서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가곡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문득 떠오른 얼굴. 노래는 누구나 경험할 법한 작은 행동에서 시작한다. 기억 속 인물의 이름이나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얼굴과 눈동자,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짧은 노랫말 안에 담겨 있다. 작사가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지만, 노래를 듣는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는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학창 시절 함께 지냈던 친구나 오래전 헤어진 사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가족의 모습도 같은 멜로디와 연결될 수 있다. 노랫말이 특정한 관계를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듣는 사람마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여지가 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노래가 후대에도 친숙하게 받아들여지는 배경에는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한 그리움이 자리한다.
'얼굴'은 한국 가곡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널리 알려졌다. 성악가들의 연주에 이어 1970년대 윤연선의 노래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통기타 반주와 함께 들려오는 윤연선의 목소리로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교 음악 수업이나 가곡 공연에서 성악가의 발성으로 처음 접한 사람도 있다. 같은 작품이 서로 다른 음악 환경에서 불리면서 세대마다 기억하는 연주의 모습도 달라졌다.
윤연선의 노래가 익숙한 사람에게 '얼굴'은 1970년대 대중음악의 기억과 연결될 수 있다. 부모가 즐겨 부르던 노래로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떠오를 수 있고, 최근 공연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는 새로운 음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노래가 만들어진 시대와 개인이 처음 들었던 시기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가곡이 오랫동안 전해져 온 과정에서도 '얼굴'은 주목할 만하다. 시적 언어와 선율을 결합한 가곡은 성악가의 발성과 피아노 반주를 중심으로 연주돼 왔다. '얼굴'은 가곡의 형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대중가요로 널리 불렸다. 전문 성악 공연과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함께 전해지며 여러 세대의 청중을 만난 작품이다.
이기철의 시에 김동환이 곡을 붙인 '그리운 마음'은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지나간 사람을 떠올린다. 바람은 청산으로 불어가고 냇물은 먼 곳으로 흘러간다. 물길을 따라 떠나고 싶은 마음과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노래 속에 함께 남는다. 손수건과 옷깃, 발길에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표현은 그리움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사물과 연결한다.
시로 읽을 때와 노래로 들을 때에는 언어가 전달되는 방식도 달라진다. 글에서는 독자가 마음에 남는 구절을 천천히 읽거나 다시 되짚을 수 있다. 음악에서는 선율과 호흡이 시어의 길이를 정하고, 반주가 노랫말 사이의 흐름을 이어간다. 시의 언어가 가곡으로 옮겨지면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경험과 음악을 듣는 경험이 만나는 것이다.
김소월의 시 '못 잊어'에는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담겼다. 1925년 출간된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작품으로, 후대에는 가곡으로도 불려 왔다. 잊으려는 마음과 자꾸 떠오르는 기억이 반복되는 시의 구조에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담겨 있다.
'얼굴'은 문득 떠오르는 사람을, '그리운 마음'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남은 기억을, '못잊어'는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노래한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익숙한 정서를 다루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노래를 처음 접한 시기와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같은 작품도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오래전 즐겨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이나 장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음악이 그 시절의 경험과 함께 기억되기 때문이다. 미국 심리학자 페트르 야나타(Petr Janata)가 2009년 발표한 연구에서도 친숙한 음악이 개인의 과거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음악을 들으며 떠오른 기억이 개인에게 중요할수록 관련 뇌 영역의 반응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익숙한 선율이 오래전의 경험을 되살리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래에 담긴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경험과도 연결된다. 한때 친구와 함께 듣던 음악을 훗날 가족과 다시 들을 수 있고, 음반으로만 접했던 작품을 공연장에서 만날 수도 있다. 같은 노래라도 처음 들었던 시절과 다시 듣는 시절의 생활은 달라져 있다. 익숙한 멜로디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새로운 경험으로 남을 수 있는 까닭이다.
대중음악에서도 오래된 인기곡을 다시 부르는 리메이크와 커버 공연은 낯설지 않다. 원곡을 기억하는 사람은 익숙한 멜로디를 통해 지난 시절을 떠올리고, 새로운 가수의 목소리로 처음 접한 사람은 발표 연도와 관계없이 노래를 받아들인다. 발표 당시의 인기가 후대의 연주와 청취로 이어지면서 음악이 전해지는 시간도 길어진다.
음악을 듣는 환경 역시 반세기 동안 크게 바뀌었다. 라디오와 음반, 텔레비전이 주요 통로였던 시대를 지나 디지털 음원과 공연 영상이 일상화됐다. 발표 시기가 수십 년 차이 나는 노래도 하나의 재생목록에 담을 수 있으며, 같은 곡을 부른 여러 가수의 연주를 비교해 듣는 일도 쉬워졌다. 오래된 노래가 과거의 음반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음악 소비 속으로 다시 들어오는 환경이다.
이미 녹음된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일과 공연장에서 새로운 연주를 만나는 경험에는 차이가 있다. 음원에서는 특정 시점에 녹음된 가수의 목소리와 반주를 다시 듣지만, 공연에서는 현재의 연주자가 같은 작품을 새롭게 연주한다. 익숙한 멜로디라도 발성과 호흡, 반주와 편성에 따라 다른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합창으로 불리는 노래에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담긴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가 서로 다른 음역을 맡으며 선율과 화성을 구성한다. 독창으로 익숙해진 작품도 합창 편곡과 성부의 결합에 따라 새로운 음악적 표현이 가능하다. 한 가수의 음색으로 기억하던 곡을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음악으로 다시 만나는 경험이다.
친숙한 곡일수록 청중이 기억하는 기존 연주와 새로운 연주가 자연스럽게 비교되기도 한다. 노랫말을 전달하는 발음과 호흡, 성부 간 균형, 피아노 반주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인상은 달라진다. 오래된 작품을 다시 부르는 과정에는 가사와 선율이 지닌 특징을 살리면서 현재의 연주로 완성하는 음악적 작업이 뒤따른다.
국내 공연시장은 대중음악 콘서트와 뮤지컬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2025년 공연 티켓 판매액은 1조 7326억 원으로 전년보다 18.8% 증가했다. 대형 공연이 흥행 규모와 관객 동원력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가곡과 오래된 음악을 다시 연주하는 음악회도 공연문화를 이루는 한 영역이다. 널리 알려진 작품을 현재의 연주로 다시 듣는 기회는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경험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
더 콰이어 블루가 정기연주회를 개최한 구띠갤러리는 미술 전시 공간이 음악 공연과 만나는 장소다. 대형 공연장과 규모와 구조가 다른 공간에서 한국 가곡과 여러 장르의 노래가 연주됐다. 익숙한 음악을 만나는 장소가 전통적인 공연장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이번 연주회를 살펴볼 수 있다.
박희열 회장을 비롯한 더 콰이어 블루 단원들은 2020년 창단 이후 정기연주회와 작은 음악회 등을 이어왔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과 일상에서 음악 활동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연문화를 구성하는 가운데, 오래된 가곡은 새로운 연주자를 만나는 레퍼토리로 남아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불려온 노래가 오늘의 연주 활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1967년 심봉석과 신귀복이 만든 '얼굴'은 성악가들의 연주와 윤연선의 노래를 거쳐 2026년 더 콰이어 블루의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리운 마음'과 '못잊어' 역시 시와 가곡을 통해 전해져 온 그리움의 언어를 오늘의 공연으로 옮겼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시간은 달라졌지만 가사와 선율은 여러 연주자를 거치며 이어지고 있다.
한 세대가 즐겨 듣던 노래는 다른 세대의 음악 경험으로 전해지고, 오래된 멜로디에는 새로운 기억이 더해진다. 지난 15일 구띠갤러리에서 열린 더 콰이어 블루의 제4회 정기연주회에도 반세기 넘게 전해진 노래들이 올랐다. 오래된 음악은 오늘의 목소리로 다시 불리며 현재의 공연문화 안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