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리포트] 캘빈클라인 베로니카 레오니 퇴임, 런웨이 복귀 4시즌 만에 수장 교체
7년 만에 되살린 컬렉션, 첫 여성 디렉터와 2년여 만에 계약 종료…미니멀리즘 재건과 실적 부담, 한국 고가 패션 유통에도 관심
[KtN 박인경기자]캘빈클라인이 7년 만에 되살린 런웨이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교체한다. 2024년 5월 영입된 베로니카 레오니(Veronica Leoni)는 네 차례 컬렉션을 선보인 뒤 약 2년 5개월 만에 브랜드를 떠난다. 지난 9월 뉴욕에서 2027 SS 컬렉션을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이다. 미국 패션기업 PVH가 소유한 캘빈클라인(Calvin Klein)은 10월 15일 레오니와 현재 계약을 끝으로 협업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최고급 라인인 캘빈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은 유지하고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선임할 계획이다.
레오니의 퇴임은 캘빈클라인이 고급 패션시장에 다시 진입한 뒤 처음 맞는 크리에이티브 리더십 교체다.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2018년 회사를 떠난 뒤 런웨이를 중단했던 캘빈클라인은 2025년 2월 레오니의 첫 컬렉션으로 뉴욕패션위크에 복귀했다. 브랜드의 전통적인 미니멀리즘을 현재의 남성복과 여성복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네 차례의 쇼가 끝난 뒤 계약은 연장되지 않았다. 퇴임의 구체적인 배경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컬렉션 폐지나 사업 축소 계획도 발표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출신 레오니는 질 샌더(Jil Sander)와 피비 파일로(Phoebe Philo) 시절의 셀린(Céline), 몽클레르(Moncler), 더 로우(The Row)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2020년 자신의 브랜드 퀴라(Quira)를 설립했고, 2023년 LVMH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캘빈클라인은 레오니를 브랜드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과장된 장식보다 재단과 소재, 몸의 비례를 중시해 온 디자이너에게 미국 미니멀리즘의 역사를 다시 맡긴 것이다.
1968년 뉴욕에서 출발한 캘빈클라인은 1980~1990년대 간결한 재킷과 드레스, 데님, 언더웨어를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했다. 검은색과 흰색, 회색을 중심으로 한 절제된 색채와 신체의 윤곽을 강조하는 재단이 브랜드를 대표했다. 케이트 모스(Kate Moss)와 크리스티 털링턴(Christy Turlington) 등이 등장한 광고는 패션과 신체, 대중문화의 관계를 바꿔 놓았다. 속옷과 청바지처럼 일상적인 상품도 브랜드의 미적 기준을 전달하는 수단이 됐다. 레오니에게 주어진 역할은 오래된 디자인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고급 남성복과 여성복으로 다시 구성하는 일이었다.
2025년 2월 뉴욕에서 열린 첫 컬렉션에는 창립자 캘빈 클라인과 케이트 모스, 크리스티 털링턴 등이 참석했다. 검은색과 회색, 아이보리 계열의 코트와 수트, 드레스가 중심을 이뤘고, 어깨를 넓게 처리한 재킷과 여유로운 코트, 실크 드레스가 등장했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간결한 색상은 유지했지만 의복의 길이와 부피에는 과감한 변화를 줬다. 레오니가 사용한 '모뉴멘털 미니멀리즘(Monumental Minimalism)'은 장식을 줄인 옷에 큰 비례와 구조적인 형태를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일부 디자인은 캘빈클라인의 전통적인 간결함보다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6 SS에서는 뉴욕의 일상적인 복식으로 범위를 넓혔다. 수트와 데님 재킷, 셔츠, 배스로브에서 가져온 아우터 등 익숙한 의류의 형태를 다시 구성했다. 2026 FW에서는 몸의 윤곽과 재단을 더욱 강조했다. 어깨를 넓힌 재킷과 허리선을 드러낸 의상, 코르셋을 연상시키는 디테일 등이 등장했다. 레오니는 캘빈클라인의 1970~1980년대 디자인에서 출발해 남성복과 여성복에 서로 다른 실루엣을 적용했다. 정교한 재단에 대한 평가와 함께 장식적인 요소가 브랜드의 미니멀리즘을 흐린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지난 9월 11일 뉴욕 터미널 웨어하우스(Terminal Warehouse)에서 열린 2027 SS 쇼에서는 이전보다 간결해진 옷들이 등장했다. 코트와 셔츠, 팬츠, 펜슬스커트, 슬립 드레스를 중심으로 실루엣을 정리했다. 재킷은 어깨와 허리의 형태를 분명하게 처리했고, 팬츠와 스커트는 길고 좁은 비례를 사용했다. 면과 가벼운 울을 사용한 수트, 실크 소재의 상의와 드레스에는 장식을 줄였다. 검은색과 흰색을 중심으로 붉은색과 파란색, 노란색을 더했으며,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옷차림에서 가져온 체크 패턴도 사용했다.
뉴욕의 산업 건축물인 터미널 웨어하우스에는 미국 미니멀리즘 미술가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조각 세 점이 설치됐다. 모델들은 조각 작품 사이를 지나며 코트와 수트, 드레스를 선보였다. 장식과 과장된 형태를 줄인 의상은 레오니의 앞선 컬렉션보다 캘빈클라인의 기존 디자인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킷의 어깨선과 허리 위치, 팬츠의 폭, 드레스가 몸을 따라 내려오는 형태가 더욱 분명해졌다. 마지막 컬렉션에서 디자인을 정리해 가던 시기에 계약 종료가 결정된 셈이다.
레오니의 퇴임을 디자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판매 부진만으로 연결하기 어려운 배경도 여기에 있다. 네 차례 컬렉션에 대한 패션계의 반응은 일정하지 않았고, 마지막 2027 SS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캘빈클라인 글로벌 브랜드 사장 데이비드 새브먼(David Savman)도 레오니의 지난 2년간 작업에 감사를 표하면서 런웨이 복귀와 브랜드의 디자인 유산을 새롭게 해석한 공로를 인정했다. 그러나 회사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새로운 수장을 선임하기로 했다. 런웨이 복귀에 기여한 디자이너와 이후 컬렉션을 장기간 운영할 인물을 달리 선택한 결정이다.
경영진의 변화도 주목할 부분이다. 레오니를 영입한 에바 세라노(Eva Serrano) 전 글로벌 브랜드 사장은 2025년 5월 자리에서 물러났고, PVH의 운영과 공급망 업무를 맡아 온 새브먼이 후임으로 선임됐다. 레오니의 첫 런웨이가 열린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이후 새브먼 체제에서 네 번째 컬렉션까지 발표됐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계약은 종료됐다. 세라노의 퇴임과 레오니의 계약 종료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다만 런웨이 복귀를 추진했던 경영 책임자와 디자인 책임자가 모두 교체되면서 컬렉션의 운영 체제는 달라지게 됐다.
PVH의 경영 실적에는 부담이 남아 있다. 2026년 2분기 그룹 매출은 20억97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 감소했다. 캘빈클라인 브랜드 매출은 7% 줄었다. 다만 매출 감소분 가운데 약 4%포인트는 미국 도매 출하 일정이 전년과 달라진 데 따른 영향이었다. 출하 시점의 차이를 제외하지 않고 매출 감소를 모두 소비 부진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레오니가 담당한 최고급 컬렉션의 별도 매출 성과도 공개되지 않았다.
캘빈클라인은 속옷과 청바지, 일상복, 액세서리 등 대중적인 상품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에서 사업을 운영한다. 2025년 브랜드 제품의 세계 소매 판매액은 약 90억 달러였다. 반면 최고급 컬렉션은 런웨이를 통해 브랜드의 디자인과 문화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역할도 맡는다. 패션쇼와 레드카펫에서 선보인 의상이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제품과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런웨이에 대한 평가가 좋더라도 속옷과 데님의 매출이 곧바로 늘어나는 구조는 아니다.
국내 유통에서도 두 상품군의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피브이에이치코리아(PVH Korea)가 운영하는 공식 온라인몰과 백화점 등을 통해 캘빈클라인 진, 언더웨어, 액세서리가 판매되고 있다. 동시에 공식 온라인몰에는 레오니가 디자인한 2026 SS 런웨이 제품도 올라 있다. 남성 재킷 가운데 300만원대 제품이 있으며 여성 드레스와 수트, 가방 등도 고가에 판매된다. 대중적인 데님과 언더웨어뿐 아니라 최고급 컬렉션도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전개되는 구조다.
국내 패션 유통업계에서 이번 교체는 단순한 해외 디자이너 인사로만 끝나지 않는다. 캘빈클라인의 고급 컬렉션은 대중적으로 판매되는 제품과 가격대가 다르지만 브랜드 전체의 디자인 이미지와 연결된다. 런웨이에서 강조하는 재단과 색상, 실루엣은 이후 다른 상품군의 디자인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국내 제품 공급이나 매장 운영에 구체적인 변화가 발표된 상황은 아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최고급 컬렉션의 구성도 새로운 디자이너의 선임과 후속 컬렉션 발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캘빈클라인은 2018년에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와 고급 컬렉션 운영을 둘러싸고 큰 변화를 겪었다. 당시 라프 시몬스는 미국 문화와 현대미술을 결합한 디자인으로 패션계의 관심을 받았지만, 고급 컬렉션의 제작비와 판매 성과, 브랜드 전체의 사업 방향을 둘러싼 부담도 있었다. 시몬스가 회사를 떠난 뒤 캘빈클라인은 런웨이를 중단했다. 2025년 레오니를 통해 다시 시작한 컬렉션은 이번에는 폐지하지 않고 새 디자이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런웨이를 계속 운영하겠다는 방침은 유지하되 디자인 책임자는 교체하는 선택이다.
미니멀리즘을 둘러싼 경쟁 환경도 과거와 달라졌다. 검은색 재킷과 흰색 셔츠, 단순한 슬립 드레스는 더 이상 캘빈클라인만의 디자인이 아니다. 여러 고급 패션 브랜드와 대중 의류업체가 간결한 실루엣과 절제된 색상을 사용한다. 캘빈클라인이 1990년대에 확립한 디자인은 오늘날 일상적인 남성복과 여성복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같은 형태의 옷이라도 원단의 두께와 재단, 어깨선과 허리의 위치, 실제 착용감에서 차이를 만들어야 하는 시장이 됐다.
레오니는 2027 SS에서 재킷과 코트, 셔츠와 슬립 드레스의 형태를 한층 단순하게 정리했다. 몸을 강조하면서도 과도한 장식을 덜어낸 디자인은 캘빈클라인의 기존 정체성과 비교적 가까웠다. 그러나 디자인의 방향이 정리되는 과정과 기업의 계약 결정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레오니가 남긴 네 차례의 런웨이는 캘빈클라인의 최고급 컬렉션이 다시 패션계의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됐지만, 이후 디자인은 새로운 책임자의 판단에 맡겨졌다.
캘빈클라인은 최고급 컬렉션을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의 일부로 유지할 방침이다.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이름과 선임 일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2027 SS가 레오니의 마지막 컬렉션으로 남으면서 캘빈클라인은 런웨이 복귀 이후 두 번째 디자인 체제를 준비하게 됐다. 향후 공개될 후임 인선과 컬렉션 운영 계획은 최고급 패션과 데님·언더웨어 중심의 글로벌 사업을 연결하는 브랜드의 다음 방향을 가늠할 근거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