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리포트] 맥퀸 션 맥기르 퇴임, 매장 절반 줄이고 테일러링 중심 재편
케어링, 3년 만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스니커즈 의존 줄이고 고급 의류에 집중, 새 수장에 필요한 맥퀸의 재단 기술과 반항 정신
[KtN 박인경기자]영국 럭셔리 브랜드 맥퀸(McQueen)이 전 세계 매장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구조조정 속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교체한다. 2023년 10월 합류한 션 맥기르(Seán McGirr)는 약 3년 만에 브랜드를 떠난다. 모기업 케어링(Kering)은 2026년 말까지 맥퀸의 매장 수를 지난해 말보다 50% 줄이고, 고급 테일러링과 이브닝웨어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신발 판매와 유통망 확대에 의존했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창립자 리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이 남긴 디자인과 제작 기술에 다시 무게를 싣는 결정이다.
케어링은 10월 15일 맥기르의 퇴임을 발표하고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조만간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루카 데 메오(Luca de Meo) 최고경영자는 맥퀸의 전통인 정교한 테일러링과 타협하지 않는 창의성, 반항 정신을 새로운 브랜드 전략의 기반으로 제시했다. 지난 6월 취임한 지안프랑코 다티스(Gianfranco D'Attis) 맥퀸 최고경영자는 맥기르가 런던의 문화와 브랜드를 다시 연결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맥기르는 지난 9월 20일 런던패션위크에서 2027 SS 컬렉션을 발표했다. 맥퀸이 파리 중심의 컬렉션 발표에서 벗어나 런던패션위크 공식 일정으로 복귀한 무대였다. 창립자가 활동했던 도시에서 영국의 맞춤복과 클럽문화, 종교미술을 결합한 의상을 선보였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퇴임이 발표됐다. 런던 복귀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가 잇따르면서 맥퀸의 사업 재편도 속도를 내게 됐다.
1992년 런던에서 출발한 맥퀸은 영국 전통 맞춤복의 기술을 파격적인 형태로 바꾸면서 이름을 알렸다. 창립자 리 맥퀸은 16세에 학교를 떠나 새빌 로(Savile Row)의 맞춤복 업체 앤더슨 앤 셰퍼드(Anderson & Sheppard), 기브스 앤 호크스(Gieves & Hawkes)에서 재단을 배웠다. 어깨와 허리, 골반의 형태를 정확하게 이해한 뒤 신체의 비례를 과장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맥퀸의 낮은 허리선 팬츠인 범스터(Bumster)는 전통적인 바지의 허리 위치를 크게 바꿨고, 어깨를 날카롭게 강조한 재킷은 맞춤복의 정교함과 과장된 실루엣을 결합했다. 1999 SS 'No.13'에서는 로봇 팔이 흰 드레스에 페인트를 뿌렸으며, 2001 SS 'Voss'에서는 유리 구조물 안에 모델들을 배치했다. 2010 SS 'Plato's Atlantis'에는 동물의 발굽을 연상시키는 아르마딜로(Armadillo) 슈즈가 등장했다. 영국의 계급문화와 역사, 신체에 대한 관념을 의복의 형태와 런웨이 연출로 표현한 작업이었다.
2010년 창립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사라 버튼(Sarah Burton)이 브랜드를 맡았다. 맥퀸과 오랫동안 함께 일한 버튼은 극적인 실루엣과 정교한 테일러링을 유지하면서 이브닝웨어와 고급 여성복의 영역을 넓혔다. 2011년 영국 왕세손비 캐서린의 결혼식 드레스도 제작했다. 창립자의 실험적인 디자인을 실제 고객이 착용할 수 있는 의류로 발전시키면서 맥퀸의 명성을 이어갔다.
맥기르는 2023년 버튼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했고, 버버리와 드리스 반 노튼, 유니클로를 거쳐 JW 앤더슨에서 기성복 디자인을 담당했다. 케어링은 젊은 디자이너를 앞세워 맥퀸의 어두운 미학과 런던의 거리문화를 연결하려 했다.
2024 FW 데뷔 컬렉션에서는 과장된 목둘레의 니트와 시어링 재킷, 광택 있는 팬츠, 실험적인 드레스가 등장했다. 1995년 맥퀸의 'The Birds' 컬렉션을 떠올리게 하는 산업 공간에서 쇼를 열었지만 창립자와 버튼이 구축한 정교한 재단에 비해 의상의 형태가 거칠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후 아일랜드의 민속문화와 영국의 고전 공포영화, 런던의 밤 문화를 소재로 사용하며 맥퀸의 도발적인 이미지를 현재의 거리 패션에 연결했다.
2027 SS에서는 재단과 소재에 더 집중했다. 런던 링컨스 인 채플(Lincoln's Inn Chapel) 지하 공간에서 열린 쇼에는 천사의 날개처럼 어깨를 구성한 재킷과 몸에 밀착되는 수트, 얇은 튤과 레이스, 가죽 하네스가 등장했다. 종교미술에서 가져온 색채에 런던 클럽문화의 형광색을 더하고, 정교하게 재단한 의상에 금속 장식과 가죽을 결합했다.
영국 맞춤복 업체 헌츠맨(Huntsman)과 제작한 남성복 세 벌도 선보였다. 맥퀸과 오랫동안 협업했던 주얼리 디자이너 숀 리앤(Shaun Leane)은 재활용 은으로 금속 하네스를 제작했다. 전통적인 영국 재단 기술과 브랜드의 오래된 협업 관계를 다시 활용한 작업이었다. 맥기르는 마지막 컬렉션에서 런던의 문화적 유산과 맥퀸의 제작 전통을 함께 다뤘다.
퇴임 결정의 배경에는 디자인의 변화만큼 케어링의 경영 전략이 자리한다. 맥퀸은 지난 몇 년 동안 매장을 늘리고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신발 제품을 확대하면서 고객층을 넓혔다. 전 세계 매장은 한때 135개까지 증가했고, 스니커즈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했던 시기도 있었다. 두꺼운 밑창을 사용한 오버솔(Oversized) 스니커즈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스니커즈는 고급 재킷이나 이브닝드레스보다 일상에서 활용하기 쉽고 구매층도 넓다. 브랜드의 상징을 비교적 쉽게 드러낼 수 있어 판매 확대에 유리하지만, 신발 구매가 고급 의류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스니커즈에 판매가 집중될 경우 유행의 변화와 경쟁 브랜드의 유사 제품에 영향을 받기 쉽다. 신발을 통한 매출 확대와 패션하우스의 디자인 경쟁력 사이에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케어링은 맥퀸을 대형 럭셔리 브랜드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했던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매장을 늘리고 접근하기 쉬운 제품을 확대하는 대신 테일러링과 이브닝웨어, 드레스, 독창적인 액세서리의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판매망을 줄이면서 브랜드의 제작 기술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고객층에 집중하는 방향이다.
매장 축소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케어링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2026년 말까지 맥퀸의 매장을 절반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며, 올해 상반기에 20개 매장을 폐쇄했다. 본사와 이탈리아 사업 조직에서도 인력 감축 절차가 진행됐다. 공격적인 출점과 신발 판매 확대에 의존했던 사업을 규모와 수익성에 맞춰 재편하고 있다.
번스타인(Bernstein)은 맥퀸의 2025년 매출을 2억 유로 미만으로 추정했다. 명품 소비가 크게 늘었던 2022~2023년과 비교해 사업 규모가 위축된 상태다. 케어링은 맥퀸의 손실이 그룹 수익성에도 부담을 줬다고 밝혔다. 매출을 늘리기 위한 출점보다 기존 매장의 효율과 제품군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영 판단이 바뀌었다.
케어링의 2026년 상반기 매출은 72억2000만 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비교 가능 기준 1%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9억2100만 유로, 영업이익률은 12.8%였다. 그룹 전체가 실적 회복에 나선 가운데 맥퀸은 매장과 인력, 상품 구성을 함께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이러한 경영 변화와 맞물린다. 스니커즈 중심의 성장기에는 폭넓은 고객이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과 상업성이 중요했다. 앞으로는 제한된 매장에서 고급 의류와 독창적인 액세서리를 판매할 수 있는 경쟁력이 필요하다. 창립자의 극적인 런웨이를 재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재단과 소재, 제작의 완성도를 통해 고객이 구매할 만한 옷을 만드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맥퀸의 테일러링은 전통적인 수트를 제작하는 기술에서 출발했지만 몸의 비례를 다루는 방식은 달랐다. 어깨를 넓게 구성한 재킷은 상체의 직선적인 인상을 강조하고, 허리를 좁게 처리하면 어깨와 골반의 차이가 커진다. 몸에 밀착되는 드레스는 소재의 무게와 재단 방향에 따라 신체의 곡선을 강조하거나 다른 형태로 변형한다. 직선과 곡선, 의복의 부피를 이용해 신체의 윤곽을 새롭게 표현하는 기술이 맥퀸 디자인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재단이 정교하지 않으면 과장된 실루엣도 의도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두꺼운 재킷의 어깨와 허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 드레스가 움직일 때 몸을 따라 떨어지는지, 복잡한 장식이 실제 착용을 방해하지 않는지는 제작의 완성도와 직결된다. 강한 이미지와 독특한 장식만으로 맥퀸의 디자인을 재현하기 어려운 이유다.
창립자가 사용한 반항적인 표현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리 맥퀸은 영국의 계급문화와 역사, 신체와 성별에 대한 관념을 의복의 구조와 런웨이 연출로 다뤘다. 검은색과 가죽, 찢어진 원단을 사용했다는 사실보다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의복으로 해석한 방식이 독창성을 만들었다. 2026년 런던의 청년문화와 소비환경은 1990년대와 다르다. 현재의 음악과 거리문화, 디지털 미디어, 소비자의 생활방식에 대한 이해도 디자인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고급 의류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는 상품 구성도 달라져야 한다. 런웨이에서 선보이는 실험적인 드레스와 실제 고객에게 판매하는 재킷, 팬츠, 액세서리 사이에 디자인의 연결이 있어야 한다. 고급 테일러링과 이브닝웨어는 브랜드의 제작 역량을 드러내는 데 유리하지만 원단과 봉제, 장식에 많은 비용이 들고 고객층도 제한적이다. 생산량과 재고, 매장별 판매를 조절하는 경영 능력까지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 유통시장에서도 맥퀸의 상품 전략 변화가 관심을 끈다. 국내 공식 온라인몰은 남녀 의류와 신발, 가방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백화점과 아울렛에서도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그동안 오버솔 스니커즈처럼 브랜드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신발이 주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면 향후에는 테일러링과 이브닝웨어, 독창적인 액세서리가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국내 백화점과 고급 패션 유통업체에는 제품의 구성과 가격대, 고객층의 변화가 중요한 요소다. 고급 재킷과 드레스는 스니커즈보다 구매 목적이 뚜렷하고, 착용자의 체형과 행사에 맞는 제품 선택도 중요하다. 매장 운영 역시 폭넓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신발 판매와는 다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케어링의 글로벌 매장 축소가 국내 유통망에 미칠 영향은 후속 운영 계획과 상품 공급 체계에 따라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맥퀸은 2010년 창립자의 사망 이후 사라 버튼을 통해 정교한 여성복과 이브닝웨어의 전통을 유지했다. 맥기르는 런던의 거리문화와 젊은 세대의 감각을 더했고, 마지막 2027 SS에서는 헌츠맨과 숀 리앤을 다시 참여시키며 영국 테일러링과 브랜드의 역사에 접근했다. 디자이너가 교체되는 동안에도 맥퀸의 디자인에서 재단과 신체의 관계, 도발적인 문화적 표현은 반복돼 왔다.
케어링은 맥퀸을 대형 명품 브랜드와 다른 규모의 전문적인 럭셔리 하우스로 재편하고 있다. 매장을 늘려 판매량을 확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제작 기술과 디자인을 통해 제한된 고객에게 접근하는 전략이다. 데 메오는 매출 규모가 작은 브랜드에 맞는 그룹 차원의 지원 체계도 강조했다. 맥퀸의 재건은 새로운 컬렉션뿐 아니라 생산과 유통, 매장 운영의 변화가 함께 진행되는 사업이다.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케어링은 테일러링과 이브닝웨어를 중심으로 브랜드의 고급 패션 경쟁력을 강화하고, 2026년 말까지 글로벌 매장 수를 절반 수준으로 줄일 방침이다. 션 맥기르가 지난 9월 런던에서 발표한 2027 SS를 마지막으로 맥퀸의 디자인 체제는 바뀌지만, 매장 축소와 상품 구조 재편은 이미 진행 중이다. 창립자가 남긴 정교한 재단과 반항적인 디자인을 새로운 사업 규모에 맞춰 구현하는 일이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