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문화 마케팅②] 패션쇼가 아이폰 광고로, 창작자의 성취를 앞세운 애플의 마케팅
레 벤자민스 15주년 카파도키아 런웨이에 iPad Pro·iPhone 18 Pro Max 투입…2015년 'Shot on iPhone'에서 2024년 'Crush!' 논란까지, 기술기업이 예술을 홍보에 활용하는 방식
[KtN 임우경기자]튀르키예 카파도키아의 거대한 초록색 열기구 아래로 연두색 재킷을 입은 모델이 걸어 나왔다. 양쪽에는 관객들이 줄지어 앉았고, 뒤쪽으로 흰색 상의와 노란색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이어졌다. 열기구의 아래쪽은 계곡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랗게 펼쳐져 있었다. 패션쇼를 촬영한 영상에는 모델과 관객, 열기구의 움직임이 여러 각도에서 담겼다. 런웨이를 준비한 곳은 튀르키예 패션 브랜드 레 벤자민스(Les Benjamins)였지만, 영상을 전 세계에 소개한 곳은 미국 기술기업 애플(Apple)이었다.
애플은 10월 14일 레 벤자민스의 창립 15주년 컬렉션 'From Earth to Sky'를 소개하면서 디자이너 뷔냐민 아이든(Bünyamin Aydın)이 iPad Pro로 작업한 과정과 프랑스 영화감독 닐스 카스티용(Neels Castillon)이 iPhone 18 Pro Max로 촬영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카파도키아의 자연과 튀르키예의 문화유산, 현대 패션을 결합한 행사였지만 애플이 내세운 홍보의 중심에는 아이패드의 디자인 기능과 아이폰의 영상 촬영 성능이 있었다.
레 벤자민스가 발표한 의상은 10개, 행사에 사용된 맞춤 제작 열기구는 3개였다. 아이든은 2026년 초 카파도키아에서 촬영한 자료를 바탕으로 의상과 열기구의 색상, 형태를 구상했다. 디자인 작업에는 iPad Pro와 Apple Pencil Pro를 사용했고, Freeform으로 사진과 직물 자료를 정리했다. 열기구의 형태는 Procreate에서 수정했다. 현지 열기구 전문업체 파샤 벌룬스(Pasha Balloons)는 디자인을 실제로 비행할 수 있는 구조로 제작하는 일을 맡았다.
애플의 홍보에서는 디자인의 구상과 수정, 열기구 제작, 패션쇼 촬영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자사 기기의 활용 기능과 연결됐다. 화면에 입력하는 펜의 반응 속도와 이미지 처리 성능, 카메라의 조리개와 해상도, 영상 편집 기능이 차례로 소개됐다. 레 벤자민스의 창작 과정이 아이패드와 아이폰의 성능을 설명하는 자료로 활용된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야외 런웨이는 전문적인 영상 제작에도 까다로운 환경이다. 해가 떠오르는 동안 자연광이 빠르게 바뀌고, 넓은 계곡에서는 열기구와 모델의 움직임을 동시에 촬영해야 한다. 카스티용은 iPhone 18 Pro Max의 가변 조리개를 사용해 밝기가 달라지는 환경에 대응했다. 촬영팀은 화이트밸런스와 노출 상태를 조절하며 여러 카메라의 색상을 맞췄다. 열기구를 공중에서 촬영하기 위해 맞춤 제작한 드론에는 아이폰 두 대씩을 장착했다.
영상에는 초당 120프레임의 4K 촬영과 ProRes RAW 형식도 활용됐다. 빠르게 움직이는 원단과 모델의 걸음을 느린 동작으로 보여주고, 색 보정 과정에서는 카파도키아의 옅은 암석과 선명한 열기구의 색상을 조절했다. 촬영한 영상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선별하는 과정에는 MacBook Pro가 사용됐다.
아이폰의 카메라 성능이 향상되면서 전문 촬영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가변 조리개는 빛이 들어오는 양을 조절할 수 있고, 고속 촬영은 빠른 움직임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데 도움이 된다. RAW 영상은 촬영 이후 색상과 밝기를 조정할 여지를 제공한다. 스마트폰이 전문 영상 제작의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은 기술적인 변화다.
카파도키아 프로젝트에는 별도의 드론과 촬영 장비, 여러 명의 카메라 운영 인력, 촬영 감독과 후반 작업이 함께 투입됐다. 카스티용은 촬영할 대상과 카메라의 움직임을 결정했고, 제작진은 변화하는 빛에 맞춰 촬영 조건을 조절했다. 원색의 열기구와 붉은 암석이 대비되는 영상에는 기기의 성능뿐 아니라 촬영 장소와 연출, 전문 인력의 경험이 함께 반영됐다.
촬영 장비가 같은 수준의 기능을 제공하더라도 결과물이 동일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열기구를 어느 높이에서 촬영할지, 모델을 어느 거리에서 따라갈지, 어떤 움직임을 느린 동작으로 처리할지는 촬영 감독과 제작진이 결정한다. 카메라에 탑재된 기능은 작업의 범위를 넓혀주지만 장면의 구성과 편집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애플의 홍보 전략은 전문 창작자의 작업 결과를 제품의 성능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발전해 왔다. 2015년 시작된 'Shot on iPhone'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당시 애플은 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용자들의 사진을 전 세계의 옥외광고와 신문, 잡지 등에 실었다. 첫 캠페인에는 24개국 70개 도시에서 활동한 사진가 77명의 작품이 사용됐다.
카메라의 화소나 렌즈 사양을 길게 나열하는 대신 실제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산과 호수, 거리와 인물의 사진을 먼저 제시하고 그 아래에 아이폰으로 촬영했다는 사실을 표시했다. 사진 자체의 완성도가 제품의 기능을 알리는 광고 역할을 했다. 사진가의 이름과 작업도 함께 알려졌지만 광고의 최종 목적은 아이폰의 카메라 성능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데 있었다.
'Shot on iPhone'은 이후 영상과 음악, 전문 영화 제작으로 영역을 넓혔다. 일반 사용자가 촬영한 사진을 소개하던 방식에서 유명 감독과 제작진이 참여하는 프로젝트까지 확장됐다. 완성된 작품에 대한 관심을 제품의 인지도와 연결하는 마케팅이다.
레 벤자민스와의 협업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카파도키아의 암석과 거대한 열기구, 선명한 색상의 의상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관객의 시선을 끄는 소재다. 애플은 완성된 패션쇼의 영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작 과정에서 사용한 기기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2015년에는 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진이 중심이었다면 2026년에는 디자인 구상과 현장 촬영, 후반 작업까지 애플 제품을 중심으로 연결했다.
카파도키아 패션쇼가 애플에 제공한 홍보 효과는 제품의 성능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전문 창작자의 모습을 통해 애플 제품이 패션과 영화 제작 현장에서 활용된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 제품 자체의 외관이나 광고 문구보다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기술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식이다.
반면 창작자의 작품과 제품 광고 사이의 관계는 복잡해졌다. 카파도키아 패션쇼를 위해 아이든은 아나톨리아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조사했고, 레 벤자민스의 제작진은 의상 열 벌을 준비했다. 열기구 업체는 비행에 적합한 구조를 제작했으며, 촬영팀은 야외 환경에 맞춰 영상 장비를 운용했다. 여러 분야의 전문 작업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애플의 홍보에서는 이러한 작업이 아이패드와 아이폰의 활용 과정으로 정리됐다. 파샤 벌룬스의 기술과 의상 제작자의 노동도 소개됐지만 제품의 기능과 사용 경험에 더 많은 설명이 할애됐다. 패션쇼가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사람들의 기술보다 애플 기기의 활용 범위가 두드러지는 구성이다.
기술기업의 광고에서 실제 창작 과정 전체를 보여줄 수는 없다. 홍보 목적에 따라 일부를 강조하고 다른 부분을 줄이기 마련이다. 다만 창작자의 작품을 광고에 활용할수록 성과를 만들어 낸 인력과 기술의 역할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문적인 촬영 장비의 보급이 창작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는 있어도 디자이너와 제작자의 경험, 숙련된 노동까지 대신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2024년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다룬 광고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초박형 iPad Pro를 소개한 'Crush!' 광고에는 피아노와 기타, 카메라, 물감, 책 등 여러 창작 도구가 등장했다. 거대한 산업용 압축기가 도구들을 눌러 부순 뒤 얇은 아이패드 한 대가 남는 연출이었다. 악기와 미술 도구, 촬영 장비의 기능이 하나의 태블릿에 들어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광고였다.
그러나 광고가 공개되자 창작에 필요한 도구와 인간의 경험을 기술이 파괴하는 듯한 표현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영국 배우 휴 그랜트(Hugh Grant)는 실리콘밸리의 기술이 인간의 경험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애플은 2024년 5월 광고의 표현이 적절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창작자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지원하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창작 도구를 파괴하는 이미지가 앞섰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Crush!' 광고와 카파도키아 협업은 표현 방식이 크게 다르다. 2024년에는 여러 창작 도구가 기계에 눌려 사라졌고, 이번에는 실제 디자이너와 영화감독이 애플 제품으로 작업하는 과정이 소개됐다. 기술의 능력을 보여주는 방식이 창작 도구를 대체하는 이미지에서 창작자를 지원하는 이미지로 달라졌다.
카파도키아 패션쇼를 통해 애플이 2024년의 광고 논란에 대응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다만 창작자의 활동을 광고의 중심에 배치하고 실제 작업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접근을 사용했다. 패션 디자이너와 영화감독, 지역 제작업체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기술이 문화예술에 활용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2024년의 논란 이후에도 애플의 광고가 다루는 핵심 주제는 이어지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사진과 영상, 음악과 디자인을 제작하는 도구로 발전하면서 기술기업은 제품 하나로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의 범위를 강조해 왔다. 창작의 여러 단계를 하나의 기기로 처리할 수 있다는 설명은 편의성과 생산성을 보여주지만, 전문적인 창작이 특정 기기의 기능만으로 완성된다는 인식을 낳을 여지도 있다.
카파도키아에서 아이든은 실제로 아이패드를 디자인 도구로 사용했다. 사진과 직물 자료를 한곳에 모아 검토하고, 열기구의 형태를 수정한 뒤 제작업체와 공유했다. 디지털 도구가 여러 분야 제작자들의 협업을 돕는 부분이다. 디자인이 수정될 때마다 자료를 다시 정리하거나 전달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실무적인 효용이 있다.
그러나 아이패드에서 그린 열기구의 형태를 실제 비행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과정에는 다른 기술이 필요했다. 파샤 벌룬스는 디자인을 받아 항공기구로 제작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기술적인 조건에 맞춰 수정하는 일을 맡았다. 디지털 기기에서 구상한 이미지가 그대로 현실의 구조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재료와 안전, 기술적인 판단은 전문업체의 몫이었다.
의상 제작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는 태블릿으로 색상과 형태를 구상할 수 있지만 원단의 두께와 무게, 봉제 방식, 착용했을 때의 움직임은 실제 제작 과정에서 결정된다. 여러 겹의 원단을 사용한 노란 드레스나 긴 카프탄의 완성도는 디지털 스케치의 정교함과 별도로 재단과 봉제 기술에 영향을 받는다.
주황색 열기구 아래로 등장한 모델은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긴 외투를 입었다. 소매와 몸통은 넉넉하게 처리됐고, 안쪽에는 흰색 상의와 짙은 색상의 폭넓은 팬츠를 겹쳐 입었다. 외투의 긴 옷자락은 걸음에 따라 좌우로 벌어졌고, 위쪽을 가득 채운 열기구는 모델의 작은 체구와 대비됐다.
넓은 외투와 팬츠의 비례, 주황색 열기구와 분홍색 옷의 색상 차이는 멀리서도 구별된다. 드론으로 촬영할 때에도 의상의 색채와 전체적인 움직임을 비교적 쉽게 담을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러나 어깨의 재단이나 외투의 소재, 소매와 안감의 구조처럼 세부적인 디자인은 멀리서 촬영한 영상에서 드러나기 어렵다.
영상에서 강렬하게 나타나는 색상과 원단의 움직임이 의상의 제작 완성도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카메라는 패션쇼를 기록하면서 촬영 감독이 선택한 부분을 강조한다. 드론이 열기구 주변을 빠르게 지나가거나 느린 동작으로 원단의 움직임을 보여주면 영상의 시각적 효과는 커지지만 관객이 실제 의상의 구조를 살피는 데 필요한 정보는 줄어들 수 있다.
아이폰으로 제작한 패션 영상과 패션 컬렉션의 완성도를 구분해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카스티용이 연출한 영상은 카파도키아의 지형과 열기구, 원색 의상의 움직임을 담아냈다. 영상의 완성도에는 촬영 장비와 전문 인력의 기술이 함께 작용했다. 레 벤자민스의 의상은 그와 별도로 재단과 소재, 문양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평가받는다.
애플은 카파도키아 프로젝트에서 패션쇼를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기능을 보여주는 영상으로 활용했다. 브랜드의 창립 15주년이라는 행사 성격과 디자이너의 문화적 배경, 거대한 자연경관은 제품 홍보에 필요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제공했다. 애플의 글로벌 채널을 통해 영상이 소개되면서 레 벤자민스 역시 국제적인 노출을 얻었다.
협업의 상업적 효과는 두 기업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애플은 전문 창작 현장에서 제품이 사용된다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레 벤자민스는 세계적인 기술기업의 홍보망을 통해 브랜드와 컬렉션을 알린다. 그러나 영상에 대한 관심이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은 기업과 상품에 따라 다르다. 아이폰의 촬영 성능에 관심을 가진 소비자가 레 벤자민스의 의류를 구매하는 것은 아니며, 패션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해서 곧바로 의상 판매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애플이 2015년부터 발전시켜 온 'Shot on iPhone' 마케팅은 실제 창작물을 광고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제품 홍보의 효율적인 방식으로 평가받아 왔다.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감독이나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제품의 성능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창작자의 성과가 기술기업의 마케팅 자산으로 쓰이면서 작품의 문화적 가치와 광고의 상업적 목적이 같은 콘텐츠 안에 놓이게 됐다.
2024년 'Crush!' 논란은 기술의 발전을 강조하는 광고가 창작자와 소비자에게 어떤 인상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줬다. 악기와 카메라, 미술 도구를 없애는 연출이 반발을 불렀다면 카파도키아에서는 창작자의 작업을 존중하는 모습이 강조됐다. 다만 이번에도 레 벤자민스의 의상과 터키의 문화유산, 제작진의 전문기술은 아이패드와 아이폰의 성능을 보여주는 광고 안에서 소개됐다.
아이든은 iPad Pro로 디자인을 구상했고, 파샤 벌룬스는 열기구를 제작했으며, 카스티용과 촬영팀은 iPhone 18 Pro Max를 활용해 영상을 완성했다. 10개의 의상과 3개의 열기구가 등장한 카파도키아 패션쇼는 레 벤자민스의 창립 15주년 행사로 기획됐지만 애플의 글로벌 홍보 채널에서는 전문 창작 현장에 투입된 제품의 기능과 사용 경험이 중심을 차지했다. 창작자의 성취를 통해 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해 온 애플의 마케팅이 카파도키아에서도 반복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