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 시대 문화마케팅의 민낯, 예술이 광고가 되는 순간
카파도키아의 열기구와 애플의 아이폰이 보여준 문화의 상업화…창작자를 앞세운 기술기업의 홍보, 예술의 성취와 브랜드의 영향력이 뒤섞인 시대
[KtN 임우경기자]튀르키예 카파도키아의 붉은 협곡에 초록색과 분홍색, 노란색 열기구 세 개가 떠올랐다. 그 아래로 모델들이 걸었다. 길게 흘러내리는 노란색 드레스와 검은 문양이 들어간 카프탄, 분홍색 의상들이 암석 지형과 대비를 이뤘다. 패션 브랜드 레 벤자민스(Les Benjamins)가 창립 15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런웨이였다. 의상은 열 벌이었고, 열기구는 세 개였다. 그러나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행사의 또 다른 주인공은 무대에 서지 않은 미국 기술기업 애플(Apple)이었다.
애플은 10월 14일 레 벤자민스의 'From Earth to Sky'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디자인에 사용한 iPad Pro와 영상 촬영에 투입한 iPhone 18 Pro Max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디자이너 뷔냐민 아이든(Bünyamin Aydın)이 아이패드로 의상을 구상하고, 프랑스 영화감독 닐스 카스티용(Neels Castillon)이 아이폰으로 패션쇼를 촬영하는 과정이 홍보의 중심을 차지했다. 카파도키아의 풍경과 아나톨리아의 문화, 패션 디자이너와 영화감독의 작업이 애플 제품의 성능을 보여주는 콘텐츠로 재구성됐다.
한 편의 패션 영상에 여러 산업이 들어왔다. 레 벤자민스는 의상을 디자인했고, 튀르키예의 파샤 벌룬스(Pasha Balloons)는 거대한 열기구를 제작했다. 영상감독과 촬영진은 자연광이 빠르게 달라지는 계곡에서 드론과 카메라를 운용했다. 모델은 거친 흙길을 걸었고, 제작진은 열기구가 비행할 수 있도록 현장을 준비했다. 의상 열 벌을 발표하기 위해 디지털 디자인과 의복 제작, 항공기구 제작, 공연 운영과 영상 촬영이 함께 움직였다.
애플이 소개한 이야기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아이패드와 아이폰의 활용 능력으로 연결됐다. 아이든이 그림을 수정하는 기능, 카스티용이 빛의 변화를 기록하는 기능, 촬영 영상을 편집하는 기능이 이어졌다. 디자이너와 영화감독은 자신의 전문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애플 제품의 성능을 증명하는 인물이 됐다. 창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알려지는 동안 홍보의 마지막에는 기기의 이름이 남았다.
애플이 문화예술을 제품 광고에 활용한 역사는 길다. 2015년 시작한 'Shot on iPhone' 캠페인은 아이폰 사용자와 사진가들이 촬영한 이미지를 세계 여러 도시의 광고판과 신문, 잡지에 실었다. 첫 캠페인에는 24개국 70개 도시에서 활동한 사진가 77명의 작품이 참여했다. 카메라의 화소와 렌즈 사양을 설명하는 대신 사진가들이 완성한 결과물을 보여줬다. 뛰어난 사진을 만든 사람의 이름과 함께 아이폰의 이름이 반복되면서 촬영 결과가 곧 제품의 경쟁력을 설명하는 광고가 됐다.
사진가의 창의성과 아이폰의 카메라 기능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빛과 피사체, 구도와 촬영 시점을 선택한다. 카메라는 선택한 대상을 기록하는 도구다. 좋은 장비가 작업의 범위를 넓혀주고 기술적 한계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지만 사진에 담긴 감각과 경험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애플은 이런 관계를 누구보다 잘 활용해 왔다. 소비자는 제품의 설명보다 완성된 작품에서 더 강한 인상을 받고, 기업은 그 인상을 자사의 기술력과 연결한다.
전문 창작자를 활용하는 광고가 모두 부당한 것은 아니다. 촬영 감독에게는 새로운 장비를 사용할 기회가 생기고, 디자이너에게는 해외 소비자에게 작업을 소개할 통로가 열린다. 제작비와 기술 지원은 규모가 작은 브랜드가 감당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레 벤자민스 역시 애플의 글로벌 홍보망을 통해 이스탄불에서 성장한 패션 브랜드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다만 기업과 창작자가 확보하는 성과의 성격은 다르다. 디자이너는 한 시즌의 컬렉션을 발표하고 다음 작업을 준비한다. 촬영 감독에게는 특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남는다. 열기구 제작업체는 행사에 필요한 구조물을 완성한다. 애플은 세계적인 문화 프로젝트에서 자사 제품이 사용됐다는 기록과 영상을 장기간 홍보에 활용할 수 있다. 같은 행사에 참여했어도 각자가 얻는 사업적 자산에는 차이가 생긴다.
글로벌 기술기업의 홍보 채널은 단순한 광고 매체를 넘어 문화 콘텐츠가 유통되는 통로로도 작동한다. 기업은 영상을 제작하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강조할 인물과 장비, 작품의 부분을 선택한다. 애플의 카파도키아 콘텐츠에서는 디자이너의 문화적 배경이 소개되지만 아이패드의 성능과 아이폰의 촬영 기능에도 많은 설명이 할애됐다. 기업이 가진 유통망의 규모와 편집 방향이 문화 프로젝트를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구조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를 실제로 제작한 파샤 벌룬스의 역할을 살펴보면 이러한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다. 아이든은 태블릿에서 열기구의 형태와 색상을 구상했다. 그러나 디자인을 실제 비행 가능한 구조물로 제작하려면 크기와 무게, 재료와 비행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파샤 벌룬스는 아이든이 전달한 구상을 검토하고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일을 맡았다. 디지털 스케치가 열기구로 완성되기까지 현지 업체의 경험과 전문기술이 필요했다.
열기구의 모습은 영상에서 강하게 드러나지만 열기구를 만든 사람들의 노동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에 담긴 완성품과 광고에 등장하는 디자이너의 이름이 먼저 알려지고, 실제 제작 과정의 세부적인 기술은 뒤로 밀린다. 패션과 공연, 영상산업에서 오래전부터 나타난 현상이지만 세계적인 기술기업의 홍보가 결합하면서 그 차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2024년 애플이 공개한 아이패드 광고 'Crush!'는 문화와 기술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을 드러냈다. 피아노와 기타, 카메라, 물감과 책 등 창작에 사용되는 도구들이 거대한 압축기에 눌려 부서지고, 마지막에는 얇은 아이패드 한 대가 남았다. 여러 창작 도구의 기능을 하나의 태블릿에 담았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예술을 만드는 물건들이 기계에 의해 사라지는 연출은 창작자와 소비자의 반발을 불렀다.
악기와 카메라, 책과 미술 도구에는 기능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음악가가 악기를 익히는 시간과 화가가 재료를 다루는 경험, 사진가가 카메라와 함께 축적한 기억은 기술의 발전만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애플의 광고는 여러 창작 도구가 사라진 자리에 자사 제품을 놓으면서 인간의 경험까지 하나의 기기로 통합할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비판이 커지자 애플은 광고의 표현이 적절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2년 뒤 카파도키아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이 사용됐다. 이번에는 창작 도구를 부수지 않았다. 디자이너와 영화감독이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을 보여줬고, 디자인과 촬영 현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활동도 소개했다. 애플의 기술이 인간의 작업을 돕는다는 설명은 이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창작자의 성취를 자사 제품의 우수성과 연결하는 광고의 기본 구조는 이어졌다.
우리 시대 문화마케팅은 예술가를 광고의 앞자리에 세우는 데 익숙하다. 광고에는 유명 예술가의 이름과 작업 과정, 문화적 배경이 등장한다. 소비자는 상업적인 홍보물을 보면서도 예술가의 창작 세계를 접한다고 느낄 수 있다. 기업은 작품이 지닌 문화적 가치와 예술가의 전문성을 브랜드의 이미지에 연결한다. 광고와 문화 콘텐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과정이다.
명품 브랜드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다. 미술관에서 패션쇼를 열고, 예술가와 협업한 상품을 제작하며, 역사적인 건축물과 지역문화를 브랜드 행사에 활용한다. 세계적인 미술관과 건축가, 영화감독의 이름은 상품에 문화적 권위를 더한다. 제품의 기능이나 제작 기술만으로 소비자를 설득하기 어려울 때 예술과 문화가 브랜드를 구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유명한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사실과 새로운 문화적 성과를 만들었다는 평가는 구별해야 한다. 카파도키아는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관광지다. 붉은 암석과 열기구는 오래전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사용돼 왔다. 레 벤자민스는 이러한 풍경에 아나톨리아의 문양과 음악에서 가져온 의상을 더했다. 애플은 그 결과를 자사 기기의 성능을 보여주는 영상으로 소개했다. 기존의 문화적 자산이 패션과 영상 제작을 거쳐 세계적인 기술제품의 홍보에 사용된 것이다.
튀르키예의 문화가 영상에 등장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얻는 효과도 있다. 아이든이 사용한 카프탄과 기하학적 문양, 1970년대 록 음악가 바르쉬 만초(Barış Manço)의 이미지는 패션에 관심을 가진 소비자에게 아나톨리아 문화를 소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강렬한 색상의 열기구와 짧은 영상으로 접하는 문화에는 많은 설명이 생략된다. 전통 직물의 제작 방식과 역사, 음악이 형성된 사회적 배경보다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색과 형태가 앞서기 쉽다.
문화가 관광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다시 글로벌 기업의 홍보 콘텐츠가 되는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은 점점 짧아진다. 카파도키아는 붉은 바위와 열기구로, 아나톨리아는 기하학적 문양과 원색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작업은 아이패드에서 완성한 스케치로 소개될 수 있다. 실제 지역문화와 제작 과정은 훨씬 복잡하지만 광고는 짧은 시간에 소비자의 관심을 얻어야 한다. 광고에 적합한 부분만 반복해서 강조되면서 문화적 소재의 의미도 좁아진다.
패션 브랜드가 전통문화를 활용하는 데에도 책임이 따른다. 오래된 문양을 새로운 의상에 적용했다면 문양의 출처와 재단,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변화가 드러나야 한다. 역사적 인물의 복식을 가져왔다면 외형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의복으로 발전시킨 결과가 있어야 한다. 아나톨리아의 문양을 사용했다는 설명만으로 디자인의 독창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문화적 배경이 풍부하더라도 실제 옷의 완성도와 새로운 디자인의 가치는 별도로 평가받아야 한다.
애플의 카파도키아 프로젝트에서는 이처럼 서로 다른 기준들이 한꺼번에 작동했다. 레 벤자민스의 의상에는 패션의 기준이 필요하고, 카스티용의 영상에는 촬영과 연출의 기준이 적용된다. 열기구에는 실제 제작과 비행 기술이 중요하며, 애플에는 제품의 성능을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마케팅 성과가 중요하다. 그런데 홍보 영상에서는 이 모든 작업이 하나의 성공적인 협업으로 묶였다. 서로 다른 산업의 성과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문화마케팅의 특징이다.
문화행사에 참여한 기업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출했는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창작의 성과가 어디에 남는가 하는 문제다. 예술가의 작업이 독립적인 작품으로 소개되고 지역 제작자의 기술이 제대로 인정받는다면 기업의 지원은 문화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행사의 결과가 특정 제품의 홍보 영상으로만 기억된다면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문화적 평가와 기업이 확보한 광고 효과 사이에는 차이가 생긴다.
문화마케팅의 가치는 행사 규모나 영상의 완성도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광고가 끝난 뒤에도 창작자의 이름과 작품이 소비자에게 남는지, 지역의 기술과 문화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기업의 협업이 일회성 노출을 넘어 창작 활동의 지속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는지가 중요하다. 기업의 자금과 기술을 활용한 작업이라면 제작자의 공로와 작품의 권리가 존중돼야 하고, 홍보에서 제시하는 성과도 실제 창작 과정에 맞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언론 역시 문화마케팅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제작한 영상과 설명을 그대로 옮겨 소개하면 브랜드가 내세운 홍보 메시지가 문화기사로 유통된다. 유명 감독이 촬영했다는 사실이나 거대한 열기구를 띄웠다는 규모만 강조할 경우 패션과 문화에 대한 평가가 빠질 수 있다. 디자이너가 어떤 의상을 만들었는지, 제작 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지역문화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살피는 일이 기업 홍보와 독립적인 문화보도의 역할이다.
기업이 예술가의 이름을 앞세우는 시대일수록 작품에 대한 평가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유명 기업이 후원했다고 해서 예술적 성취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국제적인 광고에 등장했다고 해서 지역문화가 깊이 있게 소개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홍보가 제공하는 노출 효과와 실제 작품의 완성도, 창작자가 확보한 성과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살펴봐야 한다.
애플은 2015년 일반 사진가의 작품을 통해 아이폰의 카메라를 알렸고, 2024년에는 여러 창작 도구를 압축하는 광고로 논란을 겪었다. 2026년 카파도키아에서는 전문 패션 디자이너와 영화감독의 작업을 앞세워 아이패드와 아이폰의 활용 범위를 보여줬다. 광고의 표현은 달라졌지만 예술의 성취를 제품의 이미지로 연결하는 마케팅은 더욱 정교해졌다.
레 벤자민스는 카파도키아에서 의상 열 벌을 발표했다. 현지 업체가 제작한 열기구 세 개가 떠올랐고, 국제적인 촬영팀은 협곡과 모델의 움직임을 기록했다. 애플은 세계적인 홍보 채널을 통해 영상을 공개했다. 브랜드마다 얻은 성과는 달랐지만 가장 넓은 홍보망을 가진 기업이 완성된 문화 프로젝트를 자사 제품의 이야기로 유통했다.
오늘날 문화마케팅의 민낯은 예술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기업은 예술가의 작품을 더 넓은 시장에 알리고, 창작자는 기업의 기술과 유통망을 활용한다. 상업적 협업이 활발해질수록 작품은 광고와 함께 유통되고 문화적 성취는 브랜드의 가치로 연결된다. 카파도키아에서 옷을 만든 디자이너와 열기구를 띄운 기술자, 영상을 촬영한 감독의 노동은 하나의 광고를 완성하는 데 쓰였다. 세계인의 눈앞에 놓인 작품의 주인은 여전히 창작자들이지만 그 작품을 기억하게 만드는 이름과 이야기는 거대한 홍보망을 가진 기업이 결정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