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뮤즈①] 알라나 제시카 마틴을 촬영한 30여 명의 사진가, 뉴욕 초상사진의 서로 다른 시선
라이언 맥긴리 기획 'All About Alana' 11월 15일까지…패션 초상과 흑백사진, 뉴욕 다운타운 사진문화가 만난 한 여성의 이미지
[KtN 윤상길주필]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30여 명이 한 여성을 촬영한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배우이자 모델, 뮤지션인 알라나 제시카 마틴(Alana Jessica Martin)이 주인공이다. 사진가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가 기획한 'All About Alana'는 지난 15일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렉탱글 룸(Rectangle Room)에서 개막했다. 참여 작가들은 마틴을 스튜디오와 침실, 거리와 식당 등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했다. 사진에는 마틴의 얼굴과 신체가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조명과 구도, 의상과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사진가마다 다르다.
전시에는 다니엘 아놀드(Daniel Arnold), 다니엘 레빗(Danielle Levitt), 찰스 시저(Charles Ceasar), 클리포드 프린스 킹(Clifford Prince King), 리치 샤잠(Richie Shazam), 시몬 톰슨(Simone Thompson) 등 뉴욕 사진계에서 활동해 온 작가들이 참여했다. 컬러 초상과 흑백사진뿐 아니라 폴라로이드, 셀카, 포토부스 사진도 포함됐다. 사진가들의 세대와 작업 방식이 다른 만큼 같은 인물을 촬영한 작품에서도 표현의 차이가 뚜렷하다.
렉탱글 룸은 이번 전시에서 마틴을 뉴욕의 새로운 '잇걸(It Girl)'로 소개했다. 독특한 옷차림과 문화적 영향력으로 주목받는 여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전시장에는 패션사진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초상부터 일상적인 장소에서 촬영한 인물사진까지 다양한 작품이 걸렸다. 참여 사진가들의 작업과 함께 마틴의 얼굴이 반복적으로 소개되면서 한 인물의 대중적 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도 나타난다.
시몬 톰슨의 컬러 초상과 밀란 라조브스키(Milan Lazovski)의 흑백사진, 케이드 커런(Cade Curran)의 인물사진은 촬영 장소와 조명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톰슨은 얼굴과 메이크업을 강조했고, 라조브스키는 침실의 명암을 활용했다. 커런은 주변 공간을 어둠에 남긴 채 얼굴과 신체의 일부를 드러냈다. 마틴의 얼굴은 세 작품을 연결하지만 작품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에는 각 사진가의 표현 방식이 크게 작용한다.
시몬 톰슨은 밝은 배경 앞에 마틴을 세우고 얼굴과 상반신을 가까이 촬영했다. 붉은색 상의는 어깨와 쇄골을 드러내고, 긴 금발은 양쪽 어깨를 따라 내려온다. 얼굴 가까이 가져간 손은 목과 턱 주변에서 굽은 선을 이룬다. 배경에는 가구나 장식이 없어 인물의 표정과 머리카락, 의상의 색상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짙은 눈 화장과 붉은 입술은 밝은 피부와 대비된다. 머리카락은 얼굴의 양옆을 감싸고, 어깨 아래로 이어지면서 상반신의 윤곽을 부드럽게 만든다. 붉은색 상의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어 얼굴과 메이크업에 시선이 집중된다. 손을 올린 자세는 인물의 목과 어깨선에 변화를 주지만 얼굴을 강조하는 전체적인 구도는 단순하다.
금발과 붉은 입술, 카메라를 향한 시선은 20세기 할리우드의 스타 초상에서도 자주 사용됐다. 영화배우의 얼굴을 대중에게 알리던 홍보사진은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조명을 세밀하게 조절했다. 배우의 실제 생활과 영화 속 역할이 서로 달라도 특정한 외모와 표정은 대중이 기억하는 스타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패션잡지도 비슷한 방식으로 모델의 얼굴과 의상을 소개해 왔다. 배경을 단순하게 처리하고 피부와 머리카락, 메이크업에 집중한 초상은 인물의 외모를 강하게 전달하는 데 유리하다. 톰슨의 사진 역시 이러한 표현을 활용했다. 붉은색 의상과 금발의 대비는 선명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해 온 스타 초상의 관습이 나타난다.
마틴의 음악이나 연기 활동과 관계된 물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의 직업보다 외모와 스타일을 강조한 사진이다. 전시에서 마틴을 대중적인 문화 인물로 소개하는 데에도 톰슨이 촬영한 화려한 초상이 사용됐다. 사진가가 제작한 작품이면서 스타의 얼굴을 알리는 홍보사진과 가까운 성격을 함께 지닌다.
밀란 라조브스키는 침실에 누운 마틴을 흑백으로 촬영했다. 침대 옆에는 스탠드 조명과 꽃이 놓여 있고, 뒤쪽으로 짙은 색의 머리판이 이어진다. 마틴은 얼굴 가까이에 손을 모은 채 몸을 기댔다. 얼굴과 손, 베개에 밝은 빛이 집중된 반면 방의 가장자리와 침대 뒤쪽은 어둡게 처리됐다.
톰슨의 사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붉은색 의상과 금발의 색채는 흑백사진에서 사라졌다. 대신 피부에 닿은 빛과 베개의 주름, 얼굴 가까이에 모인 손의 형태가 드러난다. 스탠드 조명은 침실의 분위기를 만들고, 주변 가구와 꽃은 인물이 머무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침대에 몸을 기댄 자세는 얼굴과 손을 가까이 모이게 한다. 상체의 길이나 의복의 형태는 두드러지지 않고, 베개와 얼굴이 비슷한 밝기로 나타난다. 침실을 비교적 넓게 담았지만 강한 빛이 얼굴에 집중돼 인물과 주변 가구의 명암 차이가 크다.
뉴욕의 인물사진에서는 침실과 아파트, 술집처럼 사적인 장소를 촬영 공간으로 활용하는 작업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스튜디오에서 준비한 배경 대신 인물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에 들어가 촬영하면서 개인의 모습과 주변의 문화, 인간관계를 함께 기록했다.
미국 사진가 낸 골딘(Nan Goldin)은 1970년대 말부터 친구와 연인,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촬영했다. 대표작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에는 뉴욕의 침실과 술집, 친밀한 관계와 갈등이 등장한다.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하면서 개인의 사적인 생활을 사진의 주요한 주제로 발전시켰다.
라조브스키는 침실이라는 장소를 이용해 인물의 초상을 구성했다. 가구와 조명이 생활공간의 분위기를 전달하지만 얼굴에 집중된 빛과 자세에는 연출사진의 특징이 강하다. 골딘이 오랫동안 이어진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생활을 기록했다면, 라조브스키의 작품에서는 침실을 활용한 인물의 표현과 명암이 중심을 이룬다.
침실의 사적인 분위기는 관객이 마틴을 가까이 바라보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드러나는 친밀함은 조명과 구도, 인물의 자세를 통해 형성된 표현이기도 하다. 같은 공간을 사용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기록하는 사진과 특정한 인물의 모습을 연출하는 사진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갖는다.
케이드 커런의 작품에서는 주변 공간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마틴의 얼굴과 어깨, 팔의 일부만 빛을 받는다. 한쪽 팔은 머리 위로 올라가 있고 얼굴은 옆으로 돌아가 있다. 몸통의 아래쪽은 그림자에 잠겨 인물의 전체적인 윤곽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마와 코, 입술의 일부에는 비교적 강한 빛이 닿는다. 어깨와 팔에도 밝은 부분이 남아 있으며 머리카락은 어둠과 겹친다. 조명의 방향에 따라 피부의 명암이 크게 나뉘고, 팔을 올린 자세에서는 어깨와 목의 각도가 달라진다.
커런은 얼굴 전체를 또렷하게 드러내거나 의상의 색상을 강조하지 않았다. 빛을 받은 얼굴과 팔, 어깨가 사진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어두운 배경은 인물의 나머지 윤곽을 감춘다. 신체의 일부를 밝히는 방식으로 자세와 움직임을 강조한 구성이다.
강한 명암으로 인물의 얼굴과 신체를 드러내는 표현은 서양 회화와 사진에서 오랫동안 발전해 왔다. 17세기 바로크 회화에서도 얼굴과 손에 집중된 빛은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강조하는 데 사용됐다. 이후 사진가들은 조명의 위치와 밝기를 조절해 피부의 질감과 신체의 입체감을 표현했다.
커런의 작품에서도 빛과 그림자의 차이가 인물의 형태를 결정한다. 밝은 배경과 메이크업을 강조한 톰슨의 초상, 침실의 공간을 활용한 라조브스키의 사진과 달리 신체의 일부만 남긴 구성이 강하다. 주변 공간을 제거하면서 인물의 어깨와 팔, 얼굴의 윤곽이 더욱 두드러졌다.
세 사진가의 작업에는 20세기 이후 인물사진이 발전해 온 서로 다른 형식이 겹쳐 있다. 톰슨의 초상에는 패션잡지와 스타 홍보사진의 표현이, 라조브스키의 흑백사진에는 사적인 실내를 활용한 인물사진의 특징이 나타난다. 커런은 명암의 대비와 신체의 형태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세 작품에서 마틴은 서로 다른 자세를 취했지만 사진가의 촬영 방식도 작품의 인상을 크게 바꿨다. 한 사람의 얼굴을 반복해서 촬영하면서도 조명과 배경, 신체를 배치하는 방법에 따라 서로 다른 인물사진이 완성됐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맥긴리는 1990년대 말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친구와 연인, 주변 예술가들을 촬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주변에는 스케이트보더와 그래피티 작가, 음악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다. 맥긴리는 아파트와 거리, 옥상과 엘리베이터 등 이들이 생활하던 장소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1999년에는 초기 사진을 모은 'The Kids Are Alright'를 자비로 출판했다. 2003년 2월에는 뉴욕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같은 제목의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25세였던 맥긴리는 뉴욕 청년들의 생활과 관계를 담은 사진으로 주목받았다.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한 1999년 작품 'Elevator'에는 후드가 달린 옷을 입고 엘리베이터에 기대어 선 젊은이가 등장한다. 고개를 숙인 자세와 좁은 공간, 금속 벽면이 인물과 함께 담겼다. 2001년 작품 'Dan and Eric'에는 두 젊은 남성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다. 맥긴리의 초기 작업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과 몸뿐 아니라 함께 생활하던 장소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맥긴리는 당시 뉴욕 청년문화와 가까운 인물들을 촬영했다. 사진 속 사람들은 특정한 세대와 문화적 환경을 함께 경험한 이들이었다. 친구와 연인, 예술가들의 모습은 개인의 초상이면서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형성된 생활문화의 기록으로 남았다.
23년이 지난 2026년에는 여러 사진가가 마틴이라는 한 사람을 촬영한 작품을 모았다. 맥긴리 혼자 주변 인물들의 생활을 기록했던 초기 작업과 달리 이번 전시에는 서로 다른 세대의 사진가들이 참여했다. 촬영 대상은 한 사람으로 좁혀졌지만 인물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해졌다.
사진가들 사이의 차이는 촬영 장소에서도 나타난다. 거리와 식당, 자동차 주변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뉴욕의 인파와 일상적인 풍경이 담겼고, 스튜디오와 침실을 활용한 초상에서는 조명과 인물의 자세가 강조됐다. 한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한 전시이지만 작품마다 뉴욕 사진문화의 서로 다른 특징이 드러난다.
맥긴리는 마틴을 뉴욕의 새로운 뮤즈로 소개하는 전시의 기획을 맡았다. 예술가들이 특정 인물을 반복해서 작품에 등장시키는 일은 미술과 사진의 역사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가족과 연인, 친구와 전문 모델은 사진가의 작업에 참여했고, 작품을 통해 인물의 이미지도 널리 알려졌다.
영화와 패션잡지, 광고산업이 성장한 뒤에는 인물사진의 유통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스타의 얼굴과 의상, 헤어스타일은 사진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개됐고, 특정한 인물의 외모와 태도가 대중문화의 유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문 사진가가 제작한 초상은 개인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배우와 모델의 대중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됐다.
1927년 영화 'It'에 출연한 클라라 보(Clara Bow)는 당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잇걸'로 알려졌다. 이후 뉴욕의 패션과 영화, 음악계에서도 특정한 여성의 스타일과 유명세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사용돼 왔다. 유명 사진가의 작품과 대중매체의 관심은 이러한 인물이 널리 알려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All About Alana'도 마틴을 새로운 잇걸로 소개한다. 참여 사진가 30여 명의 이름과 작품을 한데 모으면서 마틴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구성이다. 그러나 전시의 문화적 가치는 마틴의 유명세와 별개로 사진가들이 제작한 개별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같은 인물을 촬영했지만 사진가마다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표현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뉴욕 초상사진의 다양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가 열리는 렉탱글 룸은 사진가이자 기획자인 팀 바버(Tim Barber)가 2025년 설립한 독립 전시공간이다. 뉴욕 엘드리지 스트리트 113번지의 프라이머리 포토그래픽(Primary Photographic)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진 전시와 사진집 출판,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필름 현상과 인화, 인쇄물을 다루는 공간에서 여러 세대의 사진가가 한 인물을 촬영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All About Alana'는 11월 15일까지 이어진다. 라이언 맥긴리는 2003년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젊은이들을 촬영한 작품으로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26년에는 뉴욕의 사진가 30여 명이 참여한 알라나 제시카 마틴의 초상 전시를 기획했다. 밝은 배경의 패션사진과 침실의 흑백사진, 어둠 속에서 신체의 윤곽을 드러낸 작품은 같은 인물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담아냈다. 뉴욕의 여러 사진가가 축적해 온 인물사진의 표현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