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공간③] 배창호 감독, 구띠갤러리에서 다시 만난 한국영화의 시간
'꼬방동네 사람들'의 검열과 '고래사냥'의 흥행, 안성기와 함께한 13편의 영화…창작자의 기억이 기록으로 남는 문화공간
[KtN 박준식기자]1982년 스물아홉 살의 신인 감독이 만든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개봉에 앞서 60여 곳의 수정을 요구받았다. 작품의 제목까지 검열 대상이 됐다. 도시 빈민의 생활을 영화로 옮기려던 배창호 감독이 처음 마주한 한국영화의 현실이었다. 44년이 흐른 2026년, 배창호 감독은 서울 서초구 구띠갤러리에서 당시의 창작 경험과 영화 인생을 돌아봤다. 한 시대의 영화가 관객에게 남긴 기억과 영화를 만든 사람이 간직한 경험이 미술 전시 공간에서 다시 만났다.
배창호 감독의 심층 인터뷰 '배창호의 Clair de lune'는 한국영화가 걸어온 시간을 영화인의 목소리로 살펴보는 자리였다. 어린 시절 처음 만난 영화와 음악부터 충무로에 입문한 과정, 검열 아래에서 영화를 제작하던 시절과 흥행작을 연출했던 경험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인터뷰에는 K trendy news 박준식·임우경 기자가 참여했으며, 압구정포럼 최유식 대표도 함께했다. 영화관이나 촬영장이 아닌 미술 갤러리에서 이루어진 대화였다.
배창호 감독은 한국영화의 제작 환경과 관객의 취향이 크게 달라진 여러 시기를 직접 경험했다. 영화 제작에 앞서 국가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던 1980년대부터 한국영화의 산업적 성장과 제작 방식의 변화를 거쳐, 고전영화를 디지털로 복원해 다시 상영하는 오늘날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감독의 개인적인 기억을 따라가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제도와 산업, 관객의 모습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영화를 향한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영화를 좋아하던 어머니와 함께 극장을 찾았고, 다섯 살 무렵에는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길(La Strada)'을 접했다. 1954년 제작된 '길'은 떠돌이 곡예사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여정을 다룬 작품이다. 니노 로타(Nino Rota)가 작곡한 음악은 인물의 고독과 슬픔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어린 시절의 영화 경험에서 배창호 감독이 오랫동안 기억한 것 가운데 하나도 '길'의 음악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의 구체적인 모습은 희미해졌지만 선율은 기억에 남았다. 어린 관객이 극장에서 받아들인 소리와 감정이 훗날 영화감독이 된 뒤에도 지속된 것이다.
펠리니의 '길'은 떠돌이들의 생활을 따라가면서 인간의 외로움과 관계를 다룬다. 젤소미나의 순박함과 잠파노의 거친 성격은 음악과 풍경, 인물의 행동을 통해 전달된다. 대사가 설명하는 내용보다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 음악이 오래 남는 대목도 있다. 배창호 감독이 어린 시절 접한 작품은 영화가 이야기뿐 아니라 소리와 인물, 공간의 결합으로 기억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배창호 감독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해 케냐에서 근무했다. 영화 제작과 거리가 있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은 이어졌다. 이후 이장호 감독의 연출부에서 일하며 충무로에 들어갔다. 1980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의 조감독을 거쳐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감독 데뷔를 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이동철의 소설을 바탕으로 도시 빈민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경제성장과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영화의 중심에 놓았다. 가난과 가족관계, 생계를 둘러싼 갈등이 인물들의 일상을 통해 전개된다.
198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제작 과정에는 시나리오 사전심의와 완성된 영화에 대한 검열이 존재했다. 도시 빈민의 생활과 사회 현실을 직접 다루는 작품은 당시의 정치적·제도적 환경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꼬방동네 사람들'에 요구된 60여 곳의 수정과 제목에 대한 제약은 영화 제작자가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범위까지 고려해야 했던 시대를 드러낸다.
검열은 완성된 영화의 상영 여부만 결정하는 제도가 아니었다. 제작 전에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인물과 사건의 표현을 조정해야 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정한 계층의 생활과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다루는 일 자체가 제약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감독의 창작 선택과 국가의 통제가 맞닿아 있던 시절이다.
배창호 감독은 데뷔작 이후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꼬방동네 사람들'이 도시 빈민의 생활에 주목했다면 '고래사냥'은 청춘의 방황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여행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깊고 푸른 밤'에서는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의 욕망과 현실이 충돌한다. 작품마다 배경과 인물은 달랐지만 당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과 갈등이 영화의 중심에 놓였다.
1984년 개봉한 '고래사냥'은 서울에서만 42만6000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김수철이 연기한 병태와 안성기가 맡은 민우, 이미숙이 연기한 춘자는 서울을 떠나 길 위에서 서로 다른 삶을 경험한다. 도시와 산골, 장터와 바닷가로 이어지는 이동 속에서 세 인물의 관계가 달라진다.
'고래사냥'은 당시 한국의 풍경을 담은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대도시와 지방의 생활환경,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물들의 경험과 함께 영화에 남았다. 1984년 관객에게는 당대의 생활환경이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에는 과거 한국사회의 거리와 풍경을 살필 수 있는 기록이 됐다.
김수철의 음악도 '고래사냥'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 속 인물의 이동과 감정에 음악이 결합하면서 작품의 서사가 이어진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노래는 독립적으로 불릴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다시 떠올리는 경험도 가능하다. 배창호 감독의 어린 시절 펠리니 영화에서 음악이 오래 남았던 것처럼, '고래사냥' 역시 노래와 영화가 함께 기억되는 작품으로 전해졌다.
1985년 '깊고 푸른 밤'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국인들의 욕망과 현실을 다뤘다. 이민과 성공, 경제적 욕망이 인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래사냥'이 한국의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청춘의 경험을 담았다면 '깊고 푸른 밤'에서는 해외로 나간 인물들이 새로운 사회에서 마주하는 갈등이 중심을 이룬다.
배창호 감독의 작품은 1980년대 한국 대중영화가 다룬 소재의 폭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도시 빈민과 청춘의 방황, 해외에서의 성공을 향한 욕망은 모두 당시 한국사회의 변화와 연결돼 있다. 영화의 흥행은 관객들이 작품을 접한 규모를 말해주지만, 작품 속 인물과 사회적 배경을 다시 살피는 일은 당시 관객의 관심과 시대적 조건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인생에서 배우 안성기와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부터 2001년 '흑수선'까지 두 사람은 모두 13편의 영화를 함께했다. 감독과 배우가 긴 시간 여러 작품을 만들면서 서로 다른 인물과 시대를 표현한 관계다.
안성기는 '고래사냥'의 민우, '깊고 푸른 밤'의 백호빈,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영민 등 성격과 처지가 다른 인물들을 연기했다. 방황하는 인물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 사랑에 헌신하는 인물이 같은 배우를 통해 표현됐다. 배창호 감독은 인물의 성격과 영화의 정서에 맞춰 안성기의 연기를 활용하며 오랜 협업을 이어갔다.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사랑과 이별,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어지는 감정을 다룬 작품이다. 청춘의 경험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고래사냥'과 연결되지만 인물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배창호 감독의 작품 세계가 사회적 현실과 청춘의 방황에서 개인의 감정과 관계까지 폭넓게 이어졌음을 살펴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영화 제작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배창호 감독은 1994년 배창호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젊은 남자', '러브스토리', '정' 등을 제작했다. 흥행 중심의 제작 구조에서 벗어나 감독이 작품의 기획과 제작에 더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방식도 선택했다.
2006년 개봉한 '길'에서는 전국의 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 태석의 삶을 그렸다. 태석은 오래전의 배신과 상처를 간직한 채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과거를 돌아본다. '고래사냥'의 여행이 청춘의 성장과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길'에서는 살아온 시간과 화해, 용서의 감정이 인물의 이동과 함께 전개된다.
1980년대 대중영화의 흥행 감독이었던 배창호는 이후 독립적인 제작 방식과 개인적인 미학을 탐구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시기마다 제작 여건과 관객의 관심, 영화시장의 규모는 달라졌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는 작품의 변화와 함께 한국영화 산업이 거쳐온 제작 환경도 남아 있다.
2022년에는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아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젊은 남자', '러브스토리', '정' 등 대표작 일곱 편을 다시 상영하는 특별전이 열렸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작품을 오늘의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21년 '고래사냥'을 블루레이로 발매했다. 디지털 복원된 영화와 함께 배창호 감독, 안성기, 김수철, 영화평론가 주성철의 음성해설도 수록했다. 영화의 영상과 소리를 보존하는 작업에 제작과 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경험이 더해졌다.
영화의 복원과 감독 인터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사를 기록한다. 복원은 필름과 음향 등 작품 자체의 자료를 보존하고 다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인터뷰는 영화가 제작된 환경과 감독의 선택, 현장에서 겪은 일을 언어로 남긴다. 복원된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과 감독이 기억하는 제작 과정이 함께 축적되면 영화의 역사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작자의 기억에는 개인이 경험한 사건과 시간이 담긴다. 오래전의 일을 회상하는 과정에서는 사건의 순서나 세부적인 상황을 다시 살필 필요도 생긴다. 영화 제작 당시의 시나리오와 검열 기록, 흥행 자료, 보도와 인터뷰 등은 개인의 증언을 역사적 사실과 연결하는 근거가 된다. 기록으로 남은 수치와 문서가 당시의 제도와 사건을 설명한다면 감독의 경험은 제작 과정에서 마주했던 선택과 갈등을 전한다.
배창호 감독이 창작자의 내면에 쌓인 경험을 '매장량'에 빗대어 표현한 대목도 작품과 개인의 삶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감독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과 장소, 읽은 문학과 들었던 음악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 같은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더라도 감독마다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과 사건을 구성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이유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는 직접 경험한 시대와 영화관에서 접한 작품, 문학과 음악이 여러 방식으로 남아 있다. 어린 시절 기억한 니노 로타의 선율과 1980년대 한국영화의 검열 경험, '고래사냥'의 흥행과 '길'의 제작까지 서로 다른 시기에 축적된 경험이 한 사람의 영화 인생을 이룬다.
서울 서초구 구띠갤러리에서 진행된 심층 인터뷰는 영화의 기록이 만들어지는 장소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영화관은 완성된 작품을 상영하고, 영화제는 상영과 함께 감독과 관객의 만남을 마련한다. 미술 전시장에서도 영화인을 만나 작품의 제작 경험과 인생을 듣는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구띠갤러리는 회화와 조각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운영돼 왔다. 배창호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장소가 영화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인터뷰의 결과가 영상과 기사로 전달된 점에서도 장소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장에서 나눈 대화가 기록으로 남으면 그 공간에 직접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영화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영화인과의 대화는 진행 방식에 따라 내용과 기록의 성격이 달라진다. 작품의 제작 과정에 집중할 수도 있고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다. 배창호 감독 인터뷰에서는 유년기의 영화 경험과 직업 선택, 검열과 흥행, 배우들과의 협업 등 여러 시기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개인의 생애와 한국영화의 변화가 함께 놓인 구성이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영화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구별된다. 영화 관객은 감독이 완성한 인물과 사건, 연출과 음악을 통해 작품을 만난다.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의 판단과 경험이 언어로 전달된다. 한 작품을 다시 보더라도 제작 과정을 알고 난 뒤에는 인물의 표현이나 연출 선택을 이전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문화공간이 영화인의 대화를 수용하는 일에는 기록의 정확성과 지속적인 활용도 중요하다. 대화가 끝난 뒤 영상과 기사를 보존하고, 실제 발언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며, 영화와 인물에 관한 자료를 함께 살피는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 일시적인 만남이 이후에도 활용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의 검열 과정은 당시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마주했던 제도적 환경을 전한다. 1984년 '고래사냥'의 흥행과 2021년 디지털 복원, 2022년 데뷔 40주년 특별전은 같은 작품이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작 당시에는 당대의 현실과 흥행이 중요했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작품의 보존과 재상영, 제작 경험의 기록도 중요한 문화 활동이 된다.
구띠갤러리에서 진행된 배창호 감독의 인터뷰는 44년에 걸친 영화 인생을 다시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스물아홉 살의 감독이 검열을 거쳐 완성했던 첫 작품부터 청춘영화의 흥행, 배우들과의 협업, 독립적인 제작을 선택한 시기까지 한국영화의 여러 시간이 함께 다뤄졌다.
2026년에는 '꼬방동네 사람들'이 개봉한 지 44년, '고래사냥'이 관객을 만난 지 42년이 됐다. 오래된 영화들은 복원과 재상영을 통해 다시 극장에 걸리고, 감독의 경험은 인터뷰를 통해 기록으로 남는다. 구띠갤러리에서 이루어진 배창호 감독과의 대화도 완성된 영화와 함께 당시의 제작 환경과 창작자의 선택을 살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 기록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