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공간⑤] 구띠커피갤러리 '첫사랑 찾기', 개인의 기억이 문화가 되는 방식

붉은 벽돌길의 '첫담'과 손글씨, 선결제 커피와 음악의 밤…영화 속 첫사랑에서 참여형 문화까지, 사적인 추억과 공공의 기록이 만나는 새로운 관계

2026-10-22     박준식 기자
구띠커피갤러리, 전시가 있는 낮과 음악이 흐르는 저녁으로 방문의 폭 확장.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서울 마포구 구띠커피갤러리의 붉은 벽돌 아치 통로에 오래전 첫사랑의 이름을 남기고, 실내에는 전하지 못한 말을 적어두는 문화 프로그램이 구상됐다. '첫담'이라는 이름의 벽돌길과 '남과 여' 게시판을 중심으로 커피와 음악, 영화 속 사랑 이야기를 연결하는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다. 2026년 8월 마련된 기획에는 과거의 연인을 다시 만나는 행사보다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활동에 무게가 실렸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던 갤러리에서 방문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남기는 문화로 나아가려는 시도다.

구띠커피갤러리의 '문화의 밤' 시즌1로 구상된 프로그램은 서울 서초구 구띠갤러리의 전시·공연 활동과는 장소와 성격이 다르다. 서초동 구띠갤러리가 현대미술 전시와 영화감독 인터뷰, 합창 공연을 수용해 온 공간이라면, 마포 구띠커피갤러리의 '첫사랑 찾기'는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고 작품을 감상하는 장소에 방문객의 개인적인 기록을 더하는 기획이다. 예술가가 만든 작품을 감상하는 활동에서 방문객이 직접 문화적 내용을 만드는 방식으로 참여의 범위를 넓힌다.

첫사랑은 한국 문학과 영화, 대중음악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소재다. 처음 누군가를 좋아했던 시절의 설렘과 이별,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은 세대마다 다른 생활환경 속에서 반복돼 왔다. 첫사랑의 상대를 기억하는 일에는 당시의 거리와 학교, 친구, 음악, 계절에 관한 기억도 함께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모습은 희미해져도 특정한 장소나 노래가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마포 구띠커피갤러리에서 구상한 '첫담'은 바로 그러한 기억을 글로 남기는 공간이다. 붉은 벽돌 아치 통로를 지나며 이름이나 계절, 장소, 짧은 인사를 적도록 설계됐다. 긴 사연을 요구하는 대신 한 줄의 문장으로 지나온 시간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벽돌길은 단순한 출입 동선에서 개인의 기록이 놓일 수 있는 장소로 성격을 달리하게 된다.

종이에 이름을 적거나 짧은 문장을 남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만 있던 기억을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장소에 놓는 순간 기록의 성격은 달라진다. 한 사람의 과거 경험이 다른 방문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적인 기억과 공개된 기록 사이의 경계가 생기는 대목이다.

구띠커피갤러리( GOUTER COFFEE GALLERY).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개인의 기억을 공공장소에 남기는 시도는 현대미술에서도 이어져 왔다. 미국의 예술가 캔디 창(Candy Chang)은 2011년 뉴올리언스의 빈집 벽에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는 참여형 공공미술 프로젝트 '비포 아이 다이(Before I Die)'를 시작했다. 검은 칠판 형태로 바꾼 벽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망을 적는 방식이었다.

캔디 창의 작업에서는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보다 자신의 문장을 남기는 참여자가 중요하다. 미리 마련된 문장의 빈칸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채우면서 벽의 내용이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간직했던 소망이 공공장소에 놓이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자신과 타인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다. 참여자가 남긴 기록이 작품의 내용을 계속 바꾸는 구조다.

'첫사랑 찾기'의 '첫담' 역시 정해진 문구를 감상하는 방식보다 방문객이 직접 기억을 남기는 행위에 주목한다. 캔디 창의 프로젝트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삶의 소망을 다룬다면 '첫담'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사람을 기록하려는 구상이다. 기록하는 시간의 방향은 다르지만,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장소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문화적 맥락을 갖는다.

손글씨로 남긴 문장은 디지털 기록과도 다른 특성을 갖는다. 휴대전화에서는 과거의 사진과 메시지를 검색하거나 곧바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 종이에 쓴 글은 특정한 장소에 남고, 그곳을 찾은 사람이 직접 읽어야 한다. 기록을 작성한 시간과 누군가가 발견하는 시간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디지털 매체에서도 과거의 기록을 다시 찾아볼 수 있고, 손글씨 역시 사진으로 촬영하면 온라인에 널리 퍼질 수 있다. 기록 매체만으로 기억의 깊이나 진정성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종이와 벽돌, 실내 게시판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는 글을 남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같은 장소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 문화적 경험을 구별한다.

구띠커피갤러리 실내에 제안된 '남과 여' 게시판은 '첫담'과 역할이 다르다. 벽돌길이 자신에게 남은 기억을 적는 장소라면 게시판은 특정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공간으로 구상됐다. 오래전 연인의 이름이나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단서, 짧은 메시지, 추억과 연결된 음악을 적는 방식이다.

구띠커피갤러리( GOUTER COFFEE GALLERY).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자신의 기억을 표현하는 일과 다른 사람을 향해 메시지를 남기는 일에는 차이가 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감정은 기록을 작성한 사람의 경험이지만, 특정한 인물의 이름과 과거 관계를 공개하면 상대방의 사생활도 함께 다뤄질 수 있다. 추억을 나누려는 마음이 상대에게는 원하지 않는 과거의 공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이유도 기억과 현재의 삶이 서로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2012년 개봉한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은 대학 시절 서로 좋아했던 승민과 서연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건축가가 된 승민에게 서연이 집을 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두 사람의 대학 시절이 현재와 교차한다. 영화에서 집은 현재의 생활을 위한 건축물이면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승민과 서연이 기억하는 과거는 같지 않다.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당시의 감정과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고, 세월이 흐른 뒤 각자의 삶도 변했다.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의 재회만큼이나 서로 다른 기억을 지닌 사람들이 과거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다룬다.

곽재용 감독의 2003년 영화 '클래식'에서는 편지와 일기가 과거의 사랑을 현재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지혜는 어머니 주희가 남긴 오래된 편지와 일기를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사랑을 접한다. 주희와 준하의 이야기는 편지에 남아 후대의 인물에게 전달되고, 지혜의 현재 사랑과 서로 다른 시간에서 이어진다.

'클래식'에서 편지는 단순한 연락 수단을 넘어 과거의 감정을 보존한 기록이다. 편지를 썼던 사람의 시간과 훗날 읽는 사람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문장도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편지를 보관하고 다시 읽는 행위가 영화의 서사를 구성한다.

'건축학개론'의 집과 '클래식'의 편지는 첫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 사람과 장소, 물건에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집은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물리적인 장소이고, 편지는 오래전의 말을 보존하는 기록이다. 구띠커피갤러리의 '첫담'과 게시판 역시 특정한 장소와 손으로 쓴 문장을 통해 개인의 기억을 남기는 방식을 구상했다는 점에서 영화 속 서사와 비교할 수 있다.

영화는 작가와 감독이 인물의 관계와 결말을 구성하지만 공개된 기록 공간에는 서로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남긴다. 같은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루더라도 기록의 내용과 이후의 관계를 미리 정할 수 없다. 한 사람에게 아름다웠던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한 과거일 수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첫사랑 찾기'에는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커피 한 잔을 미리 결제하는 방식도 포함돼 있다.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라는 이름으로 소금을 가미한 커피를 구성하고, 한 잔에 1만원을 책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방문객이 특정한 사람에게 메모를 남기고 원한다면 커피를 선결제하는 구조다.

구띠커피갤러리, 전시가 있는 낮과 음악이 흐르는 저녁으로 방문의 폭 확장.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커피는 일반적으로 주문한 사람이 마시는 상품이다. 선결제 방식에서는 돈을 지불한 사람과 음료를 받는 사람이 달라진다. 커피 한 잔이 소비자의 개인적인 구매에서 다른 사람에게 남기는 선물로 바뀌는 셈이다. 상대가 방문하지 않으면 커피는 전달되지 않은 채 남을 수 있다.

선결제 커피가 실제로 전달되려면 수령 대상자를 확인하는 방법과 이용 기간, 환불 및 정산 기준이 필요하다.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고,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커피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선물의 뜻을 담았더라도 실제 운영에서는 결제와 수령, 미수령분 처리에 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이나 특별한 제조 방식보다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소비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자신을 위해 구입한 상품이 아니라 과거의 한 사람에게 남겨두는 행위가 프로그램의 일부가 된다. 커피를 받은 사람이 반드시 연락하거나 다시 만나야 하는 관계로 연결된다면 선물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수령과 응답을 구분하는 원칙이 필요한 이유다.

음악은 기록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또 다른 요소로 구상됐다. 약 90분 동안 진행하는 '문화의 밤' 프로그램에는 세대별 첫사랑 음악과 영화·드라마에 등장한 사랑의 노래를 함께 듣고, 원하는 사람만 자신의 기억을 짧게 나누는 순서가 제안됐다. 방문객이 남긴 곡을 다른 회차의 음악 감상에 반영하는 방식도 포함됐다.

음악을 통해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경험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이루어진다. 젊은 시절 자주 들었던 노래를 오랜만에 접하면 당시의 장소와 사람, 생활이 함께 떠오르기도 한다. 같은 곡이라도 언제 누구와 들었는지에 따라 남아 있는 기억은 서로 다르다. 음악이 개인의 경험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첫사랑은 노래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첫사랑을 다룬 음악이 모두 행복한 기억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만남의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별과 상실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노래를 듣는 감정도 바뀔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함께 듣는 사람들에게 같은 반응을 기대하기보다 서로 다른 기억을 존중하는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

참여자의 사연을 중심으로 선곡하면 대중적인 인기곡만 나열하는 공연과는 다른 구성이 가능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도 각자가 좋아했던 음악은 다르고, 연령이 다른 사람에게 익숙한 노래도 서로 다르다. 음악을 선정하는 기준이 발표 연도나 유명세에서 참여자의 실제 경험으로 옮겨가는 방식이다.

개인의 추억을 공유하는 문화에는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과 듣고 싶은 사람의 의사가 함께 작용한다. 공개된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음악을 감상하는 참여와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는 참여를 구분하는 편이 적절하다.

기억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활동이 문화 프로그램이 될 때에는 기록의 보존과 공개 범위도 중요해진다. 실명과 연락처, 주소처럼 개인을 직접 알아볼 수 있는 정보뿐 아니라 학교와 직장, 특정한 시기와 장소가 결합된 기록도 인물을 추정하게 만들 수 있다. 과거의 관계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짧은 문장만으로도 당사자가 누구인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첫사랑 찾기'의 구상에는 공개 게시판과 실제 사람을 연결하는 절차를 분리하는 방식이 포함됐다. 과거의 상대를 찾고 싶은 사람이 별도로 신청하고, 상대방이 연락을 받을 의사가 있는지 확인한 뒤, 양측이 동의한 경우에만 만남으로 이어가는 구조다. 메모를 읽거나 커피만 받고 연락하지 않는 선택도 고려됐다.

공개된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일과 특정한 사람의 현재 연락처를 확인하는 일은 구별해야 한다. 한 사람의 과거를 기억할 자유가 상대방의 현재 생활을 공개할 권리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가족과 직장, 인간관계가 형성돼 있을 수 있다. 첫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의 감정과 기억의 대상이 된 사람의 현재 생활은 각각 존중받아야 한다.

기록을 남긴 뒤에도 선택의 여지는 필요하다. 작성자가 생각을 바꾸거나 기록 속 당사자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게시물을 내리고 관련 정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개 게시판의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가는 경우에는 기록이 원래 놓였던 장소 밖으로 퍼질 수도 있다. 종이에 쓴 짧은 글도 촬영과 공유를 거치면 훨씬 넓은 범위에 전달된다.

구띠커피갤러리, 전시가 있는 낮과 음악이 흐르는 저녁으로 방문의 폭 확장.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예술 분야에서 개인의 사연이 콘텐츠로 활용되는 일은 낯설지 않다. 다큐멘터리와 인터뷰, 참여형 전시에서도 실제 사람의 경험이 작품이나 기록의 소재가 된다. 개인의 이야기를 전시하거나 영상으로 공개할 때에는 이야기의 주인뿐 아니라 함께 등장하는 사람의 권리까지 고려해야 한다. 감동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적인 관계의 공개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첫사랑 찾기'의 기록 역시 방문객이 남긴 메모를 별도의 기사나 영상, 전시 콘텐츠로 활용하게 된다면 공개 동의와 편집 범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 게시하는 데 동의한 기록이라고 해서 온라인 공개나 언론 보도, 장기간 보존까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여자가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과 운영자가 기록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미술 작품과 참여자의 기록이 같은 장소에 놓이는 일에도 구분이 필요하다. 구띠커피갤러리에서는 미술 작품이 전시된 실내 공간에 게시판을 마련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작가가 제작한 작품과 방문객이 남긴 개인적인 메모는 제작 목적과 공개 방식이 다르다. 전시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기록 영역을 구분하고,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참여형 문화공간에서는 방문객이 남긴 기록이 늘어날수록 관리할 내용도 많아진다. 오래된 글을 언제까지 보존할지, 공개를 원하지 않는 기록을 어떻게 처리할지, 게시판에 적힌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 때 어떤 절차를 적용할지에 따라 운영 방식이 달라진다. 사람이 직접 남기는 내용으로 문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만큼 작품을 설치하고 보존하는 전시와는 또 다른 관리가 요구된다.

'첫사랑 찾기'는 여섯 주에 걸쳐 운영하는 시즌 프로그램으로도 구상됐다. 기록을 남기는 기간과 음악을 함께 듣는 시간, 참여자들의 글을 정리하는 과정이 서로 다른 일정에 배치됐다. 방문객이 한 차례 행사에 참석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시 공간을 찾거나 자신의 기록을 돌아볼 수 있도록 고려한 구성이다.

프로그램이 실제로 운영된다면 기록의 수나 참여 인원 외에도 살펴볼 부분이 많다. 방문객이 남긴 글이 어떤 성격을 갖는지, 같은 음악을 듣는 활동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익명 기록의 공개와 삭제가 적절하게 이루어지는지 등이 중요해진다. 참여를 통해 문화적 경험이 형성되는 과정은 행사 횟수나 사진으로 남은 사람의 수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구띠커피갤러리( GOUTER COFFEE GALLERY).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띠커피갤러리의 '첫사랑 찾기'는 미술과 커피, 음악을 개인의 기억과 연결하려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전시나 공연과 성격이 다르다. 전문 예술가가 제작한 작품을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대신 방문객이 직접 글을 남기고 음악을 선택하며 프로그램의 내용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문화공간의 이용자가 감상자에 머무르지 않고 기록의 작성자가 되는 구조다.

첫사랑이라는 소재는 한때 가까웠던 사람을 떠올리는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공개된 장소에 기록을 남기는 순간 다른 사람의 삶과도 관계를 맺게 된다. 개인적인 기억을 나누는 문화가 지속되려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길 자유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을 책임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2026년 8월 구상된 '문화의 밤' 시즌1에는 붉은 벽돌길의 '첫담', 실내 '남과 여' 게시판, 선결제 커피, 음악과 대화, 당사자 동의에 따른 연결 절차가 포함됐다. 각각의 구성은 기억을 적는 행위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남기고, 음악을 함께 듣고, 원한다면 현재의 관계로 이어가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서울 마포구 구띠커피갤러리의 '첫사랑 찾기'가 제안하는 문화적 경험은 오래된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결과에만 놓여 있지 않다. 한때 소중했던 사람을 자신의 언어로 기억하고, 다른 사람의 기록을 읽으며, 서로 다른 삶의 시간을 존중하는 활동에도 자리한다. 붉은 벽돌길에 남길 한 줄의 문장과 갤러리 안의 작은 게시판은 개인의 추억이 공공의 기록으로 옮겨갈 때 필요한 거리와 책임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