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경제⑤] 파텍필립 에나멜 시계 6547만홍콩달러…시계 공예의 희소성과 가격

1950년대 바쉐론 콘스탄틴 지도·용 문양 에나멜부터 스켈레톤 퍼페추얼 캘린더까지…미술관·경매시장으로 확장되는 고급 시계의 수집 가치

2026-10-21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2024년 5월 26일 홍콩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파텍필립(Patek Philippe)의 1953년 제작 손목시계 Ref. 2523이 6547만5000홍콩달러에 낙찰됐다. 시계의 중심에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그린 에나멜 지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18캐럿 옐로골드 케이스에 두 개의 크라운을 장착한 월드타임 시계로, 세계 여러 도시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계식 장치와 수작업으로 완성한 지도 장식을 결합했다. 세계적으로 존재가 알려진 동일한 지도 다이얼 제품은 세 점에 불과하다. 당시 거래는 해당 레퍼런스의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파텍필립 Ref. 2523의 지도 다이얼은 20세기 중반 스위스에서 활동했던 에나멜 장인 마르그리트 코흐(Marguerite Koch)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색을 입힌 유리질 재료와 가느다란 금속선을 사용해 대륙과 바다의 경계를 표현하는 클루아조네 에나멜(Cloisonné Enamel) 기법이 적용됐다. 손목시계의 작은 다이얼 안에 지리적 형태와 색상의 차이를 담았으며, 시간을 표시하는 장치와 정밀 공예가 하나의 제품으로 완성됐다. 경매에 출품된 시계는 20년 넘게 공개 거래에 등장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제작 당시 Ref. 2523에는 시계제조 기술자와 케이스 제작자, 에나멜 장인의 전문 기술이 함께 투입됐다. 월드타임 장치는 시계제작자 루이 코티에(Louis Cottier)가 개발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했으며, 다이얼에는 지도 제작과 에나멜 작업이 결합됐다. 시간을 표시하는 기능이 동일하더라도 지도 장식의 종류와 제작 수량, 원형 보존 상태에 따라 수집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달라진다. 유라시아 지도를 담은 해당 모델의 높은 낙찰가격에는 기계식 기능뿐 아니라 역사적 희소성과 공예적 완성도에 대한 수요가 반영됐다.

스위스 최고급 시계산업에서는 기계식 무브먼트와 장식 공예가 오랜 기간 함께 발전해 왔다. 시계가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로 보급되기 이전부터 귀족과 왕실, 부유층을 위한 회중시계에는 금세공과 보석 세팅, 에나멜 초상화가 적용됐다. 20세기 들어 손목시계가 대중화된 뒤에도 일부 제조사는 정밀한 기계 장치에 회화와 조각, 금속 장식 기술을 결합한 제품을 제작했다. 시간 표시 기능이 같은 시계라도 장식에 투입된 숙련 노동과 제작 수량, 역사적 가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구조가 형성됐다.

175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발한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의 역사적 제작품에서도 장식 공예와 기계식 시계가 결합한 다양한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2026년 첫 '콩쿠르 델레강스 오를로제르(Concours d’Élégance Horlogère)'의 예술 공예 부문에는 1950년과 1951년 제작된 아메리카 대륙 지도 에나멜 시계, 1957년 용 문양 에나멜 시계, 1930년 보석 장식 회중시계 등이 결선작으로 선정됐다. 역사적 시계의 가치 평가가 무브먼트의 정밀도와 복잡성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이얼의 공예 기술과 디자인, 소장 이력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Vacheron Constantin’s First Concours d’Élégance Spotlights 34 Historic Watches. 사진=Vacheron Constantin/Phillips In Association With Bacs & Russ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50년 제작된 바쉐론 콘스탄틴 Ref. 4308은 북아메리카 지도를 다이얼에 담은 시계다. 18캐럿 핑크골드 케이스에 다채로운 색상의 클루아조네 에나멜을 사용했고, 대륙의 형태와 바다의 색상을 구분했다. 케이스 지름은 약 31mm로, 일반적인 손목시계보다 작은 다이얼에 지도의 윤곽과 지형적 특징을 표현했다. 케이스와 스트랩을 연결하는 물방울 형태의 러그도 1950년대 고급 드레스 워치의 특징을 담고 있다.

1951년 제작된 Ref. 4724 '레자메리크(Les Amériques)' 역시 아메리카 대륙을 주제로 한 에나멜 시계다. 두 모델은 지도를 장식 소재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케이스 구성과 다이얼의 세부 표현에는 차이가 있다. 에나멜 지도의 색상과 금속선의 배열, 지형을 표현하는 방식은 기계식 시계의 제원과 별도로 평가되는 공예적 요소다. 같은 지리적 대상을 그렸더라도 제작 시기와 장인의 작업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작품이 만들어진다.

클루아조네 에나멜은 가느다란 금속선을 바탕에 고정해 윤곽을 만들고, 구획 안에 색을 입힌 유리질 재료를 채우는 기법이다. 에나멜은 유리 분말에 금속 산화물 등의 안료를 혼합해 만들며, 고온에서 가열하면 금속 바탕과 결합한다. 장인은 색상과 재료에 맞춰 온도와 가열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특정 색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소성하기도 하고, 깊이 있는 색상 표현을 위해 서로 다른 층을 쌓기도 한다.

에나멜 제작에는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하다. 가열 과정에서 색상이 예상과 다르게 변하거나 미세한 균열이 발생할 수 있으며, 여러 차례 작업을 거친 뒤에도 완성품에 결함이 생길 수 있다. 다이얼은 시곗바늘과 인덱스가 정확한 위치에 결합돼야 하므로 장식 작업만을 위한 자유로운 공간으로 사용할 수 없다. 색상과 도안의 완성도를 유지하면서 시계 부품과 조립할 수 있는 정밀도까지 확보해야 한다.

그랑 푀 에나멜(Grand Feu Enamel)은 고온에서 여러 차례 소성해 표면과 색상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샹르베 에나멜(Champlevé Enamel)은 금속 바탕을 파내고 내부에 에나멜을 채우며, 미니어처 페인팅(Miniature Painting)은 가느다란 붓을 사용해 인물과 풍경 등 복잡한 이미지를 작은 면적에 표현한다. 같은 에나멜 장식이라도 금속선을 사용하는 클루아조네와 금속을 파내는 샹르베, 회화적인 묘사에 중점을 둔 미니어처 페인팅은 제작 방식이 다르다.

1950년대 에나멜 지도가 장식된 시계는 일반적인 단색 다이얼보다 제작 공정이 복잡하다. 대륙의 윤곽을 작은 공간에 배치하고 바다와 육지의 색상을 구분하는 작업부터 정밀한 손기술이 필요하다. 금속선의 굵기와 굴곡, 안료의 색상과 소성 상태가 최종적인 형태를 좌우한다. 시간이 지나도 색상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에나멜의 특성은 오래된 시계의 수집 가치와도 연결된다. 다만 충격으로 인한 균열이나 표면 손상은 복원이 까다로울 수 있다.

Vacheron Constantin’s First Concours d’Élégance Spotlights 34 Historic Watches. 사진=Vacheron Constantin/Phillips In Association With Bacs & Russ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57년 제작된 바쉐론 콘스탄틴 Ref. 6187은 용 문양을 중심으로 한 장식 시계다. 금 소재 케이스에 그랑 푀 클루아조네와 미니어처 에나멜 기법을 결합했다. 다이얼에는 여러 색상의 용 문양이 표현돼 있으며, 장식의 세부 형태와 색상이 시계의 외관을 결정한다. 숫자와 시곗바늘 중심으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드레스 워치와 달리 회화적 이미지가 디자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동물을 비롯한 자연물과 신화적 소재는 고급 시계 장식에서 오랫동안 활용돼 왔다. 용과 새, 꽃, 풍경을 묘사한 시계에는 에나멜뿐 아니라 조각과 금속 세공, 보석 세팅 기술이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다이얼을 일정한 색상으로 마감하는 공정과 복잡한 도상을 표현하는 공정에는 필요한 숙련 기술과 작업 시간이 다르다. 작가의 손기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장식 시계에서는 동일한 기계식 무브먼트를 사용하더라도 외관의 제작 방식과 수량에 따라 제품의 성격이 달라진다.

20세기 중반 유럽 시계제조사들은 지도와 풍경을 비롯한 다양한 도상을 에나멜 다이얼에 활용했다. 파텍필립과 바쉐론 콘스탄틴, 롤렉스(Rolex) 등이 제작한 일부 빈티지 제품에도 클루아조네 장식이 남아 있다. 제작 수량이 제한된 모델은 국제 경매에서 일반적인 드레스 워치와 다른 가격대에 거래된다. 장식의 복잡성 외에도 특정 시기에 제작된 다이얼의 희소성과 원래 상태를 유지한 정도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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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제작된 바쉐론 콘스탄틴 회중시계는 보석 세공과 시계 제조가 결합한 작품이다. 옐로골드와 화이트골드 케이스를 사용했으며, 베젤과 다이얼의 로마숫자 인덱스에 사파이어를 장식했다.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다르 1세(Alexander I of Yugoslavia)에게 판매된 기록도 남아 있다. 푸른색 보석과 금속 케이스의 색상 차이를 활용한 디자인으로, 회중시계가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이면서 고급 장신구로 사용됐던 시대의 제작 방식을 담고 있다.

왕실과 연결된 판매 기록은 해당 시계의 소장 이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보석의 종류와 세팅 방식, 케이스 소재와 제작 기술은 제품 자체의 특징을 결정하며, 역사적 인물과의 관계는 제작 이후 시계가 사용되고 보관된 경위를 설명한다. 수집시장에서는 진품성 및 원형 보존 상태와 함께 소장 기록이 거래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역사적 인물에게 판매됐다는 사실만으로 특정한 가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시계에 적용되는 보석 장식은 케이스의 형태와 제작 방식에도 제약을 준다.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등 보석을 고정하려면 금속에 정확한 크기의 자리를 만들고, 보석의 위치와 높이를 조정해야 한다. 손목에 착용하거나 주머니에 넣고 사용하는 시계에서는 장식이 외부 충격과 마찰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귀금속과 보석의 가치에 장인의 세공 기술과 역사적 희소성이 더해지면서 고급 장식 시계의 가격 구조는 일반적인 기계식 시계보다 복잡해진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에나멜 시계는 현대 경매시장에서도 거래되고 있다. 2025년 3월 필립스 제네바 경매에서 2004년 제작된 '메르카토르(Mercator)' Ref. 43050이 8만2550스위스프랑에 낙찰됐다. 예상가격은 2만5000~5만프랑이었다. 해당 시계는 포르투갈 지도를 표현한 클루아조네 에나멜 다이얼을 갖추고 있으며, 제작 수량은 동일한 지도 구성 기준으로 10점에 불과하다.

메르카토르 컬렉션은 16세기 지도 제작자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를 기념해 1994년 등장했다. 지도에 사용된 지리적 도안과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의 시각 표시 장치가 특징이다. 시침과 분침은 일반적인 원형 다이얼을 따라 회전하는 대신 정해진 구간을 이동한 뒤 출발 위치로 되돌아간다. 두 바늘의 형태는 지도를 그릴 때 사용하는 컴퍼스를 연상시키도록 디자인됐다.

2004년 제작된 포르투갈 지도 모델의 에나멜 작업은 루시 젠브뤼헤(Lucie Genbrugge)와 장 젠브뤼헤(Jean Genbrugge)가 맡았다. 시계의 다이얼에는 두 장인의 서명이 남아 있다. 특정 장인이 제작한 장식과 소량 생산이라는 조건이 결합됐고, 바쉐론 콘스탄틴의 제작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도 함께 제공됐다. 경매 추정가격의 상단을 웃도는 낙찰 결과는 해당 작품을 원하는 구매자들의 경쟁이 반영된 금액이다.

2025년 11월 21일 홍콩 필립스 경매에서는 1997년 제작된 바쉐론 콘스탄틴 메르카토르 Ref. 43050이 127만홍콩달러에 낙찰됐다. 예상가격 25만~45만홍콩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1997년 홍콩 반환을 기념해 30점 한정 제작된 핑크골드 시계로, 다이얼에는 '1997년 7월 1일'을 뜻하는 문구와 중국식 범선이 장식돼 있다. 특정 지역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한 디자인과 제한된 생산 수량이 결합된 제품이다.

같은 홍콩 경매에서는 중국 지도가 장식된 메르카토르 시계 두 점이 각각 88만9000홍콩달러와 63만5000홍콩달러에 판매됐다. 동일한 컬렉션에 속한 제품이지만 케이스 소재와 지도 구성, 제작 수량 등 세부 조건에는 차이가 있다. 에나멜 지도를 사용했다는 공통점만으로 동일한 가격을 적용하기 어렵고, 실제 거래에서는 희소성과 디자인, 보존 상태, 수집가들의 선호가 함께 반영된다.

조류 세밀화를 장식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들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2025년 11월 홍콩 필립스 경매에서 '오듀본 버즈 오브 아메리카(Audubon Birds of America)' 시리즈의 캐롤라이나 앵무새 장식 모델은 76만2000홍콩달러에 낙찰됐다. 장밋빛저어새 모델은 40만6400홍콩달러, 넓적부리오리 모델은 44만4500홍콩달러, 파랑어치류를 묘사한 모델은 60만9600홍콩달러에 거래됐다. 같은 조류 장식 컬렉션에 속한 시계들 사이에서도 낙찰가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조류의 깃털과 색상, 자세를 작은 다이얼에 표현하는 작업에는 회화적 관찰과 정밀한 공예기술이 함께 요구된다. 시계제조사가 사용하는 장식 소재가 풍경과 지도, 동물과 식물로 다양해지면서 일부 고급 시계는 전통적인 장식미술과 유사한 제작 방식을 갖추게 됐다. 공예 시계는 착용이 가능한 기계식 제품이지만 장식의 제작 과정과 보존 상태를 평가할 때에는 회화와 금속공예, 보석 세공의 특징도 함께 고려된다.

에나멜 시계의 높은 경매가격을 전체 공예 시계의 시장가격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2024년 6547만5000홍콩달러에 거래된 파텍필립 Ref. 2523은 월드타임 기능과 극히 제한된 생산량, 1950년대 제작이라는 역사적 조건을 함께 갖췄다. 바쉐론 콘스탄틴 메르카토르와 조류 장식 시계들은 서로 다른 제작 시기와 생산량, 소재를 사용한다. 장식 공예의 존재만으로 가격을 비교하기보다 개별 제품의 제작 기록과 실제 거래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

Vacheron Constantin’s First Concours d’Élégance Spotlights 34 Historic Watches. 사진=Vacheron Constantin/Phillips In Association With Bacs & Russ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에나멜이 금속 바탕에 색상과 이미지를 더하는 기술이라면, 스켈레톤(Skeleton) 시계는 무브먼트의 일부 금속을 제거해 기계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무브먼트를 지지하는 브리지와 플레이트의 일부를 정교하게 절삭하고, 남아 있는 부품에 조각과 마감 작업을 적용한다. 시계를 작동시키는 기어와 부품의 움직임이 외관의 일부가 되며, 부품을 제거한 뒤에도 필요한 강성과 정밀도를 유지해야 한다.

스켈레톤 제작에는 무브먼트의 설계와 가공 기술뿐 아니라 손으로 금속의 가장자리를 다듬는 앙글라주(Anglage), 표면 장식과 조각 기술이 활용된다. 절삭 공정에서 금속을 과도하게 제거하면 부품의 강도가 약해질 수 있고, 작업 과정의 작은 오차가 기계 장치의 정상적인 작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장식적인 형태를 만드는 작업과 시간 측정 기능을 유지하는 기술이 동시에 요구된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983년 현대적인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 Ref. 43031을 선보였고, 이듬해 스켈레톤 버전인 Ref. 43032를 출시했다. 48개월 주기를 계산하는 달력 기능과 문페이즈를 갖춘 무브먼트의 일부를 투각해 기계 구조를 드러낸 모델이다. 시계의 제작 기술을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구성하면서도 시간과 날짜를 표시하는 기능을 유지했다.

1987년 제작된 플래티넘 Ref. 43032는 2024년 11월 8일 필립스 제네바 경매에서 6만960스위스프랑에 낙찰됐다. 예상가격은 2만5000~5만프랑이었다. 직경 36mm 케이스에 자동 와인딩 칼리버 1120QP를 사용했고, 스켈레톤 가공과 수작업 조각을 적용했다. 최초 보증서와 보관함을 비롯한 구성품도 함께 제공됐다. 플래티넘 소재의 Ref. 43032는 생산 수량이 제한된 모델로 알려져 있다.

같은 경매에서는 1990년 제작된 옐로골드 Ref. 43032가 5만5880프랑에 팔렸다. 동일한 레퍼런스와 기계식 기능을 갖춘 시계라도 케이스 소재와 제작 연도, 다이얼의 구성 및 보존 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플래티넘 제품과 옐로골드 제품의 가격 차이를 금속 자체의 희소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Vacheron Constantin’s First Concours d’Élégance Spotlights 34 Historic Watches. 사진=Vacheron Constantin/Phillips In Association With Bacs & Russ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켈레톤 시계에서는 기어와 브리지, 작은 나사와 장식된 금속 부품이 다이얼의 중심을 차지한다. 전통적인 시계에서 다이얼 아래에 숨겨졌던 기계 장치를 외부로 드러내면서 무브먼트의 가공 상태가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금 소재 케이스와 투각된 부품, 가죽 스트랩이 결합된 구성에서는 기계 장치의 색상과 형태, 부품 사이의 간격까지 외관에 영향을 미친다.

퍼페추얼 캘린더를 결합한 스켈레톤 시계는 단순한 시간 표시 제품보다 기계적 구조가 복잡하다. 요일과 날짜, 월, 윤년 및 문페이즈를 표시하는 장치를 유지하면서 내부 부품을 가공해야 한다. 달력 기능의 작동을 고려해 남겨야 하는 금속 부품과 제거할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해야 하므로 무브먼트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수작업 조각과 마감이 추가되는 만큼 제품마다 세부적인 가공 상태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2026년 시계 콩쿠르에는 1987년과 1999년 제작된 스켈레톤 퍼페추얼 캘린더·문페이즈 시계가 천문 컴플리케이션 부문에 포함됐다. 예술 공예 부문에서는 스켈레톤 시계가 제외되지만, 기계 장치를 투각하고 장식하는 기술 자체는 시계제조와 금속공예의 경계에 놓여 있다. 복잡한 달력 기능과 수작업 마감의 조합은 1980~1990년대 최고급 기계식 시계가 발전한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요소다.

1980년대 스위스 시계산업은 쿼츠 시계의 확산으로 생산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 정확한 시간 측정과 낮은 생산비용에서 경쟁력을 갖춘 쿼츠 시계가 보급되면서 전통적인 기계식 시계 제조업체들은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야 했다. 퍼페추얼 캘린더와 미닛 리피터, 스켈레톤과 같은 복잡한 제작 기술은 기계식 시계가 지닌 기술적·공예적 특성을 부각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1980년대 이후 고급 기계식 시계가 기능적인 시간 측정 장치를 넘어 수집 대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이러한 기술과 디자인의 차별화가 자리하고 있다.

파텍필립과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 바쉐론 콘스탄틴은 1980년대 복잡한 달력 기능을 갖춘 손목시계를 선보이며 고급 기계식 시계의 시장을 확대했다. 파텍필립의 Ref. 3940과 오데마 피게의 퍼페추얼 캘린더, 바쉐론 콘스탄틴의 Ref. 43031·43032는 서로 다른 디자인을 사용했지만 얇은 자동 무브먼트와 복잡한 달력 기능을 결합했다. 당시에는 기계식 시계의 존속을 위해 높은 수준의 제작 기술과 브랜드의 역사적 전문성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했다.

장식 공예와 기계식 시계의 역사적 가치는 미술관의 소장품과 전시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의 파텍필립 박물관(Patek Philippe Museum)은 시계와 자동인형, 귀금속 공예품, 에나멜 세밀화 등을 포함한 약 2500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16세기부터 이어진 유럽 시계제조와 장식미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8000권이 넘는 시계 관련 서적을 보유한 도서관도 운영한다. 기계식 시계가 산업제품으로 발전하기 이전부터 장식공예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과의 협력을 통해 전통 공예기술을 현대미술과 연결하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시작된 양 기관의 협력은 미술품과 시계 제작에 사용된 공예기술을 보존하고 새로운 세대의 장인에게 전승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술관의 소장품과 시계제조사의 공방 기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전통 공예를 현대적인 창작 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2026년 9월 15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바쉐론 콘스탄틴과 함께 진행한 18개월 장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결과물 세 점을 공개했다. 미국의 가구 제작자이자 예술가 애스펀 골란(Aspen Golann), 이집트계 미국인 도예가 이브라힘 사이드(Ibrahim Said), 영국·이탈리아계 주얼리 작가 조이 하비(Joy Harvey)가 참여했다. 목공과 도예, 금속공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은 미술관의 소장품을 연구하고 스위스의 시계제조 공방에서 전통 기법을 익혀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조이 하비는 기요셰(Guilloché) 기술을 활용한 청동 장식을 제작했다. 기요셰는 금속 표면에 일정한 패턴을 정교하게 새기는 전통적인 장식 기술로, 시계 다이얼과 케이스에도 널리 사용된다. 작가는 시계제조에 활용되는 정밀한 반복 문양을 다른 금속공예 작품에 적용했다. 애스펀 골란은 목공과 조각 기술을 활용했고, 이브라힘 사이드는 도자기 제작을 중심으로 전통 공예를 재해석했다. 시계 공방에서 축적된 세공 기술이 별도의 미술 작품 제작에 활용된 것이다.

럭셔리 시계 브랜드와 미술관의 협력에는 전통 공예를 보존하고 기술을 전승하려는 목적과 함께 브랜드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사업적 성격도 있다. 기계식 시계의 제조 기술을 미술사와 연결하면 소비자들은 제품의 기능과 소재뿐 아니라 제작 과정에 담긴 수작업과 역사적 배경을 접하게 된다. 문화기관과의 협력 자체가 제품의 거래가격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브랜드가 보유한 디자인과 기술의 역사를 알리는 통로로 활용된다.

에나멜 장인과 금속 조각가, 기요셰 기술자 등 전문 공예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자동화 설비를 사용해 일정한 형태의 부품을 반복 생산할 수 있더라도 복잡한 도안의 색상 조절과 수작업 조각, 금속 표면의 정밀한 마감에는 숙련 기술자의 작업이 요구된다.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량과 수정 작업, 제한된 생산 수량은 고급 공예 시계의 원가에 영향을 미친다. 제조사가 공예기술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려면 숙련 인력의 양성과 기술 전승, 장기적인 생산 계획도 필요하다.

빈티지 공예 시계의 보존에는 일반적인 기계식 시계와 다른 관리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에나멜 다이얼은 충격으로 균열이 생기거나 일부가 손상될 수 있고, 오래된 보석 세팅은 금속의 변형과 보석의 고정 상태를 살펴야 한다. 스켈레톤 무브먼트는 정비 과정에서 정교하게 가공된 부품과 장식 표면을 보존해야 한다. 정상적인 작동 상태를 유지하는 기술적 관리와 제작 당시의 원형을 지키는 보존 작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국제 경매에서는 제조사의 제작 기록과 부품의 진품성, 원래 장식의 보존 상태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에나멜 다이얼을 새로 제작하거나 손상된 부분을 복원한 시계는 제작 당시의 부품을 유지한 제품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장인이 직접 제작한 장식에는 일반적인 산업제품과 달리 수작업의 개별적인 특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원형 보존 상태의 중요성이 커진다. 작가의 서명이나 작업 기록, 제작 당시의 사진과 문서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작품의 역사적 가치를 판단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2026년 바쉐론 콘스탄틴의 첫 시계 콩쿠르에는 회중시계와 손목시계 550점 이상이 출품됐다. 제조사의 장인과 헤리티지 전문가들은 진품 여부와 제작 기록, 참가 자격을 검토했고 95점이 심사위원 평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심사는 작품의 독창성과 미적 완성도, 희소성, 기술적 중요성, 보존 상태, 역사적 가치 등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장식 공예와 복잡한 기계 장치, 역사적 디자인을 서로 다른 부문에서 평가하는 방식이다.

11월 4일부터 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 호텔 프레지던트 윌슨(Hôtel Président Wilson)에서는 결선 진출 시계의 공개 전시가 열린다. 11월 10일에는 일곱 부문의 수상작이 발표될 예정이다. 지도와 용 문양을 담은 에나멜 시계, 보석 장식 회중시계, 스켈레톤 퍼페추얼 캘린더 등 서로 다른 시대와 제작 방식의 작품들이 평가 대상에 포함됐다.

1950년대 바쉐론 콘스탄틴의 지도 에나멜 시계부터 1980년대 스켈레톤 퍼페추얼 캘린더까지, 고급 시계의 제작 방식은 시간 측정 기술과 장식 공예의 발전을 함께 담고 있다. 2024년 파텍필립의 6547만5000홍콩달러 낙찰과 2025년 바쉐론 콘스탄틴의 에나멜 시계 거래에서는 희소성과 디자인, 역사적 제작 기술에 대한 수집 수요가 가격에 반영됐다. 제조사의 제작 기록과 수집가의 소장 이력, 장인의 수작업과 보존 상태는 앞으로도 역사적 공예 시계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으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