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안산국제아트쇼②] 피카소 판화의 세계, 비둘기에서 상상의 초상화까지

제8회 안산국제아트쇼 해외 거장 특별전…회화의 명성에 가려진 석판화와 판화 제작의 역사 전후 평화의 상징에서 1960년대 인물화까지, 원화와 판본의 관계로 살펴본 피카소의 조형적 변화

2026-10-20     박준식 기자
[2026 안산국제아트쇼②] 피카소 판화의 세계, 비둘기에서 상상의 초상화까지. 사진=꾸바아트센터(KUVA Arts Cent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1949년 파리 세계평화대회를 위해 비둘기 이미지를 제작했다. 전쟁의 기억이 짙게 남아 있던 유럽에서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고, 이후 피카소의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인물의 얼굴을 분해하고 재구성했던 입체주의 화가가 간결한 선으로 비둘기를 그린 것은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이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8회 안산국제아트쇼에서는 피카소를 비롯한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제4전시장에 소개됐다. 피카소의 회화는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판화에서도 중요한 성취를 남겼다. 석판화와 에칭, 리노컷 등 여러 기법을 활용했으며, 전문 판화 공방과의 협업을 통해 회화와 다른 표현을 발전시켰다.

피카소의 판화는 작품의 제작 시기와 기법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작가가 직접 판을 제작한 작품과 기존 회화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한 인쇄물은 같은 작가의 이름으로 소개되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전후 석판화와 후기 인물화, 포쇼아르 작품군을 구별해 살펴보면 피카소의 이미지가 여러 매체로 확장된 과정이 드러난다.

Picasso / 피카소 The Rainbow Dove (무지개비둘기)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비둘기와 정물, 전후 피카소의 석판화

피카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판화 공방에서 석판화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석판화(lithography)는 물과 기름이 서로 밀어내는 성질을 이용하는 평판인쇄 기법으로, 드로잉에 가까운 선과 붓질을 표현할 수 있다. 피카소는 인물과 동물, 정물 등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선의 방향과 명암, 형태의 비례를 바꾸는 실험을 이어갔다.

1952년의 '무지개 비둘기(The Rainbow Dove)'는 전후 피카소의 비둘기 도상과 연결되는 석판화다. 비둘기는 1949년 세계평화대회 포스터를 계기로 피카소의 대표적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전후 유럽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비둘기는 피카소의 작품에서 정치적 의미와 조형적 관심이 함께 나타나는 소재였다. 둥근 몸체와 날개의 윤곽, 머리와 부리의 형태는 적은 수의 선으로도 동물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다.

1947년의 '꽃병이 있는 구성(Composition au Vase des Fleurs)'은 정물을 다룬 석판화다. 꽃병과 꽃은 서양 회화에서 오랫동안 다뤄진 소재지만, 피카소는 사물의 외형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꽃병의 둥근 윤곽과 꽃의 불규칙한 형태를 활용해 사물과 공간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정물은 피카소가 20세기 초 입체주의에서 발전시킨 조형적 관심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탐구한 분야였다.

작업실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도 비슷한 관심이 나타난다. 1947년의 '조르젠 갤러리, 작업실(Galerie Jorgen, l'Atelier)'과 1956년의 '칸의 작업실(L'atelier de Cannes)'은 화가의 창작 환경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았다. 작업실의 가구와 도구, 실내 공간은 일상적인 사물이지만 작품에서는 서로 다른 형태와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피카소는 익숙한 소재를 반복하면서도 사물의 배치와 형태를 달리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비둘기와 정물, 작업실은 서로 다른 소재지만 피카소의 전후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전쟁 이후의 사회적 분위기와 화가의 일상, 조형적 관심이 각각의 작품에 반영됐다. 석판화는 이러한 소재를 선과 명암, 형태의 변화로 표현할 수 있는 매체였다.

Picasso / 피카소 Portraits Imaginaires Ⅰ (상상의초상화).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상상의 초상화', 1969년 피카소의 후기 인물화

1969년의 '상상의 초상화(Portraits Imaginaires)'는 피카소가 노년에 제작한 인물화 연작이다. 눈과 코, 입의 위치를 바꾸고 얼굴의 비례를 과장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모습을 구성했다. 실제 인물의 외형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초상화와 달리, 얼굴의 구조를 자유롭게 변형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피카소는 20세기 초부터 인물의 정면과 측면을 결합하거나 얼굴의 일부를 분해해 다시 구성하는 작업을 발전시켰다. 1960년대 후반의 인물화에서는 이러한 변형이 더욱 과감해졌다. 얼굴의 윤곽과 눈, 코, 입의 비례를 자유롭게 바꾸면서도 인물의 형상은 유지했다. '상상의 초상화'는 오랜 기간 이어진 인물 표현이 후기 작업에서 변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상상의 초상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석판화에는 마르셀 살리나스(Marcel Salinas)가 참여했다. 피카소가 제작한 원화를 전문 판화가가 석판화로 옮기는 과정은 작가가 직접 판을 제작하는 방식과 구별된다. 원화의 창작과 판화 제작, 발행은 각각 다른 단계로 이루어졌으며, 작품을 이해할 때도 이러한 차이를 살펴야 한다.

1969년 피카소는 80대 후반이었다. 후기 인물화에서는 기존의 초상화 규칙을 벗어난 자유로운 형태와 강한 색채가 나타났다. 피카소가 오랫동안 다뤄 온 인물의 얼굴은 노년의 작업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남았고, '상상의 초상화'는 이러한 관심을 보여주는 연작이다.

Picasso / 피카소 PIERROT ET ARLEQUIN (피에로와 아를르캥).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피에로와 아를르캥, 공연자의 모습에 담긴 인물 표현

피카소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서커스 공연자와 곡예사, 광대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청색시대와 장밋빛시대를 거치며 등장한 공연자들은 무대 위의 화려한 모습뿐 아니라 일상의 고독과 인간관계까지 담아낸 인물들이었다. 유럽의 전통 연극인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에 등장하는 피에로와 아를르캥도 피카소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졌다.

1933년의 '피에로와 아를르캥(Pierrot et Arlequin)'은 이러한 관심과 연결되는 작품이다. 피에로와 아를르캥은 서로 다른 의상과 성격을 지닌 연극 속 인물로, 피카소는 공연자의 복장과 자세, 인물 사이의 관계를 회화적 소재로 활용했다. 이 작품과 관련된 포쇼아르(Pochoir)는 스텐실을 이용해 색채를 입히는 기법으로 제작됐으며, 원화와 인쇄물의 제작 과정을 구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돌린과 기타 역시 피카소의 작품에 자주 등장했다. 악기의 둥근 몸체와 길게 뻗은 목, 현의 직선적인 구조는 인체의 곡선과 결합해 다양한 구성을 만들어 냈다. '만돌린을 든 앉아 있는 여인(Seated Woman with a Mandolin)'은 피카소가 오랫동안 다뤄 온 인물과 악기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광대와 악기를 든 인물은 피카소의 초기 회화에서 중요한 소재였으며, 이후에도 다양한 매체로 제작됐다. 같은 소재가 회화와 판화, 포쇼아르 등 서로 다른 제작기법으로 옮겨지면서 작품의 성격도 달라졌다.

차효준대표 꾸바아트센터(KUVA Arts Center)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포쇼아르와 석판화, 제작기법에 따른 작품의 차이

피카소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원작과 판화, 인쇄 복제물의 구별이 중요하다. 석판화는 평평한 판을 이용해 이미지를 인쇄하며, 에칭은 금속판에 새긴 선을 활용한다. 리노컷은 리놀륨판을 깎아 이미지를 찍어내는 볼록판화 기법이다. 각 기법은 판의 제작 방식과 인쇄 과정이 다르고, 작품에 나타나는 선과 질감에도 차이가 생긴다.

포쇼아르는 형태에 맞춰 제작한 스텐실을 이용해 색채를 입히는 방식이다. 기존 회화나 드로잉의 이미지를 인쇄물로 옮기는 데 활용됐으며, 피카소의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된 포쇼아르 가운데는 원작과 별도의 제작 시기와 발행 이력을 지닌 작품이 있다.

1950년대 발행된 피카소 관련 포쇼아르 작품집에는 초기 회화와 입체주의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미지가 수록됐다. '아비뇽의 처녀들'을 위한 습작과 '마 졸리(Ma Jolie)' 등 피카소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의 이미지도 이러한 방식으로 소개됐다. 원화의 제작연도와 포쇼아르 판본의 제작연도는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제작에 사용한 재료와 발행 주체도 구별된다.

판화의 에디션 번호 역시 제작 이력을 구성하는 요소다. 정해진 수량으로 발행된 작품에는 개별 번호가 기재되기도 하지만, 번호 자체가 작가의 직접 제작이나 진위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어떤 판에서 제작됐는지, 인쇄를 담당한 공방과 발행 주체가 누구인지, 작가가 제작 과정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피카소는 생전에 전문 판화가와 인쇄 공방, 출판사 등과 협업했다. 판화 제작에는 작가의 조형적 판단과 인쇄기술자의 전문성이 함께 작용했으며, 작품의 이미지를 다양한 매체로 소개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제작자가 참여했다. 피카소의 이름으로 알려진 판화와 인쇄물의 제작 이력이 복잡한 배경이다.

Picasso / 피카소.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피카소 판화의 미술사적 위치

피카소는 197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화와 조각, 도예, 판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했다. 전후 석판화에서는 비둘기와 정물, 작업실을 소재로 삼았고, 후기 인물화에서는 얼굴의 비례와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했다. 피에로와 아를르캥, 악기를 든 인물처럼 초기 회화에서 등장한 소재도 이후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피카소의 판화는 회화에서 발전시킨 조형적 관심이 다른 제작기법으로 이어진 분야다. 석판화에서는 선과 명암의 변화가 중요했고, 에칭과 리노컷에서는 판의 제작 방식이 이미지의 형태를 결정했다. 포쇼아르 작품군에서는 기존 회화의 이미지가 다른 제작 방식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나타났다.

제8회 안산국제아트쇼 제4전시장에서는 피카소를 비롯한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됐다. 피카소의 판화는 제작 시기와 기법, 원화와 판본의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미술사적 성격을 지닌다. 1940~1950년대의 석판화와 1969년의 '상상의 초상화', 초기 회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포쇼아르 작품군은 피카소의 이미지가 여러 매체로 제작되고 유통된 역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