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안산국제아트쇼③] 부기 몰리·데런 쿡·요시토모 나라…세계 현대미술의 서로 다른 표현
제4전시장 해외 작가 특별전, 거리미술부터 대중문화와 인물화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 소개 부기 몰리의 그래피티 회화, 데런 쿡의 문자와 이미지, 요시토모 나라의 인물 표현…이탈리아 작가들의 회화 전통도 함께 조명
[KtN 박준식기자]거리의 낙서에서 출발한 그래피티와 대중문화의 문구를 활용한 회화, 어린아이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는 인물화가 한 전시장에서 만났다. 부기 몰리(Boogie Moli), 데런 쿡(Daren Cook),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활동해 온 작가들이다. 작품에 사용하는 이미지와 제작 방식은 다르지만, 대중에게 익숙한 시각언어를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8회 안산국제아트쇼의 제4전시장에는 해외 작가 특별전이 마련됐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를 비롯해 부기 몰리, 데런 쿡, 요시토모 나라, 스테파노 라짜리(Stefano Lazzari), 로셀라 바스타(Rossella Basta) 등의 작품이 소개됐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발전한 미술이 함께 전시되면서 회화의 표현 방식과 제작 배경을 비교할 수 있는 구성이 형성됐다.
특히 부기 몰리와 데런 쿡은 전통적인 회화의 소재에서 벗어나 도시문화와 대중적 이미지를 작품에 활용하는 작가들이다. 요시토모 나라는 인물의 얼굴과 표정을 통해 개인의 감정을 다루며, 이탈리아 작가들은 유럽 회화의 전통과 동시대 작업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부기 몰리, 거리의 그래피티를 캔버스로 옮긴 회화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출신의 부기 몰리는 영국에서 활동하며 그래피티와 거리미술의 표현 방식을 회화에 활용해 왔다. 그래피티는 도시의 벽과 공공장소에서 발전한 시각문화로, 문자와 기호, 인물의 형상을 빠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 부기 몰리는 거리미술의 자유로운 선과 강한 색채 대비를 캔버스 작업으로 확장한다.
2022년 작품 'SUB-0 #1'과 'The Battle'은 부기 몰리의 회화 작업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아크릴 물감을 활용한 작업에서는 선과 색채가 서로 겹치고 충돌하면서 역동적인 구성을 형성한다. 정교한 원근법이나 사실적인 묘사보다 형태의 변형과 즉흥적인 표현에 무게를 두는 방식이다.
그래피티 회화에서 선은 사물의 윤곽을 설명하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의 흔적과 반복된 붓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형태가 작품의 구성에 직접 관여한다. 문자와 기호가 결합할 경우 이미지의 의미는 더욱 복합적으로 변한다. 거리에서 발전한 표현 방식이 캔버스로 옮겨지면서 도시의 시각문화는 독립적인 회화의 언어가 된다.
부기 몰리의 작업은 그래피티가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 작품으로 발전해 온 흐름과 연결된다. 20세기 후반 이후 거리미술은 도시의 하위문화에서 출발해 현대미술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ing) 등은 거리의 이미지와 기호를 회화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부기 몰리 역시 도시문화에서 형성된 표현을 캔버스 작업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다만 거리미술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만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동일하게 분류할 수는 없다. 바스키아가 문자와 해부학적 형상, 역사적 상징을 복합적으로 사용했다면 해링은 단순한 윤곽선과 반복적인 인물 형상을 발전시켰다. 부기 몰리의 작업에서도 개별 작품의 선과 색채, 형상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감상 요소다. 그래피티의 영향은 공통된 출발점이지만 작품의 구성과 표현은 작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데런 쿡, 익숙한 문구를 현대미술의 소재로
영국 출신 작가 데런 쿡은 문자와 대중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작업으로 부기 몰리와 다른 방향의 현대회화를 보여준다. 거리미술이 선과 형상의 움직임에 집중한다면, 데런 쿡의 작업에서는 이미지와 함께 제시되는 문구가 작품의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Love is Tough', 'Love is Tender', 'Love is Pain'은 사랑을 서로 다른 감정과 연결한 작품들이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고통과 다정함, 어려움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결합하면서 익숙한 단어가 지닌 감정의 폭을 드러낸다. 혼합매체를 활용한 제작 방식도 문자와 이미지가 결합하는 작품의 성격과 연결된다.
문자를 회화의 주요 요소로 사용하는 방식은 20세기 현대미술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팝아트는 광고와 만화, 소비재의 이미지를 미술에 도입했고, 개념미술에서는 언어 자체가 작품의 핵심 요소로 활용됐다. 미국 작가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사진과 강렬한 문구를 결합해 권력과 소비문화, 사회적 관계를 다뤘다. 데런 쿡의 작품 역시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장을 시각적 표현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Love is Tough'와 'Love is Tender'는 동일한 문장 구조를 사용하지만 사랑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설명한다. 'Love is Pain'은 사랑과 고통을 직접 연결한다. 문구가 짧을수록 관람객은 단어의 의미와 이미지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반복되는 문장 형식은 작품 사이에 연결성을 만들고, 달라지는 단어는 각각의 작품에 다른 정서를 부여한다.
데런 쿡의 작업에서 문자와 이미지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보조하는 관계에만 놓이지 않는다. 문구를 읽는 행위와 작품을 보는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미지의 색채와 구성, 문자에 담긴 의미가 결합하면서 회화는 시각적인 감상뿐 아니라 언어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요시토모 나라, 어린아이의 얼굴에 담긴 고독과 저항
1959년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난 요시토모 나라는 일본과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아이치현립예술대학과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며, 1990년대부터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중문화와 음악, 유럽에서 경험한 현대미술은 나라의 작품 세계를 형성한 배경이다.
나라의 작품에는 머리가 크고 신체가 작게 표현된 어린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커다란 눈과 굳게 다문 입, 정면을 향한 시선은 단순한 얼굴에 복잡한 감정을 부여한다. 인물의 외형은 친숙하지만 표정에는 경계심과 불만, 고독과 반항이 나타난다. 어린아이의 모습과 성숙한 감정 사이의 차이가 나라의 인물화를 특징짓는다.
나라의 작품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이미지와 비교되기도 한다. 단순한 윤곽과 커다란 눈, 절제된 배경은 대중문화의 시각적 특징과 닮아 있다. 그러나 나라의 인물은 특정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만화 캐릭터와는 다르다. 인물의 표정과 시선에 집중하도록 구성되며, 관람객의 경험에 따라 감정의 의미가 달라진다.
음악문화 역시 나라의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펑크록을 비롯한 음악의 저항적인 태도와 개인적인 감정은 작품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표정과 연결된다. 날카로운 시선과 굳은 표정은 순진한 어린아이의 모습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벗어난다. 이러한 인물 표현은 귀여운 이미지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불편함과 긴장감을 남긴다.
나라의 회화는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복잡한 배경을 사용하지 않는다. 얼굴의 윤곽과 눈의 방향, 입술의 형태가 감정의 차이를 만든다. 작은 변화만으로 인물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얼굴에 집중된다.
부기 몰리의 작품이 도시의 선과 색채, 움직임을 활용하고 데런 쿡의 작업이 문구와 이미지의 관계를 다룬다면, 나라의 회화는 인물의 표정과 심리적 거리에서 출발한다. 세 작가는 대중문화와 연결되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작품의 중심에 놓인 요소는 서로 다르다.
스테파노 라짜리와 로셀라 바스타, 이탈리아 회화의 또 다른 흐름
이탈리아 작가 스테파노 라짜리는 고전회화의 제작기법과 프레스코화 전통을 바탕으로 활동해 온 인물이다. 이탈리아 회화는 르네상스 이후 벽화와 제단화, 인물화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했으며, 안료와 바탕재, 회반죽을 사용하는 제작기법도 오랜 기간 축적해 왔다.
프레스코화는 젖은 회반죽 위에 물에 갠 안료를 칠하는 벽화기법이다. 회반죽이 마르면서 안료가 벽면에 정착하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재료의 성질과 작업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교회와 궁전에서 널리 사용됐으며,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도 대표적인 프레스코화 작품이다.
라짜리의 작업은 이러한 역사적 제작기법이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이미지의 구성뿐 아니라 바탕재와 안료, 제작 공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새로운 이미지의 생산과 함께 과거의 제작기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활동도 현대 회화의 한 영역을 형성한다.
로셀라 바스타 역시 제4전시장에 작품을 소개한 이탈리아 작가다. 이탈리아 현대미술은 고전회화의 유산과 20세기 이후 등장한 다양한 미술운동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발전했다. 회화의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을 활용하는 작업부터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는 실험까지 폭넓은 흐름이 이어져 왔다.
라짜리와 바스타는 일본의 요시토모 나라, 영국에서 활동하는 부기 몰리와 데런 쿡 등과 함께 해외 작가 특별전의 구성을 넓혔다.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업은 유럽 회화의 역사와 제작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영역으로, 거리미술과 대중문화에서 출발한 현대회화와는 다른 배경을 지닌다.
거리미술과 대중문화, 전통 회화가 만난 제4전시장
제8회 안산국제아트쇼 제4전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권과 제작 배경을 지닌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됐다. 부기 몰리의 그래피티 회화는 도시의 시각문화와 연결됐고, 데런 쿡의 작품은 문자와 이미지를 결합해 일상적인 감정을 다뤘다. 요시토모 나라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통해 고독과 반항, 경계심 등 복합적인 심리를 표현했다.
스테파노 라짜리와 로셀라 바스타 등 이탈리아 작가들의 참여는 유럽 회화의 제작 전통과 동시대 미술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구성을 더했다. 현대미술은 거리의 낙서와 광고, 대중음악, 전통적인 회화기법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표현의 소재와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부기 몰리의 강한 선과 색채, 데런 쿡의 짧은 문구, 요시토모 나라의 절제된 인물 표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람객에게 접근한다. 익숙한 이미지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작품에 담긴 감정과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대중문화의 표현을 활용하는 현대미술이 하나의 양식으로 묶이지 않는 이유다.
10월 18일 막을 내린 제8회 안산국제아트쇼의 해외 작가 특별전에는 피카소의 작품과 함께 그래피티, 문자와 이미지의 결합, 현대적 인물화, 유럽 회화의 전통 등 서로 다른 미술적 흐름이 소개됐다. 부기 몰리와 데런 쿡,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은 도시문화와 대중적 표현이 현대회화의 주요 소재로 발전해 온 과정을 보여주며,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업은 회화의 제작기법과 역사적 전통이 동시대 미술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