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ERENCE FESTIVAL PARIS 2026②] 도나 우안카·존 제라드, 파리 클럽에 들어서는 현대미술
24시간 디지털 설치작품과 테크노 공연…신체·사진·조각을 결합한 예술가들, 미술관 밖에서 새로운 관람 방식 모색
[KtN 김성은기자]10월 24일 낮 12시부터 다음 날 낮 12시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미디어아티스트 존 제라드(John Gerrard)와 전자음악가 리치 호틴(Richie Hawtin)의 24시간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낮에는 디지털 설치작품을 공개하고 밤에는 테크노 공연으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거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2026년 REFERENCE FESTIVAL이 현대미술과 전자음악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파리 본행사에는 도나 우안카(Donna Huanca), 가브리엘 모지스(Gabriel Moses), 도지 카누(Dozie Kanu), 폴 타뷔레(Pol Taburet) 등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참여한다. 설치작품은 클럽 FVTVR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 배치되며, 라이브 공연과 토론도 함께 진행된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신체와 감각, 일상의 사물, 사진과 영상, 컴퓨터 기술 등으로 나뉜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발전시켜 온 작업을 클럽과 복합문화공간으로 옮겼을 때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작품 감상에 집중하는 전시장과 음악·공연을 위해 모인 관객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은 조명과 소리, 관람 시간부터 다르다.
도나 우안카, 회화와 신체 퍼포먼스를 결합한 감각의 공간
도나 우안카는 사람의 신체를 회화와 조각, 퍼포먼스로 연결해 온 작가다. 피부에 안료를 바른 퍼포머가 전시 공간을 이동하거나 정지해 있는 동안 신체의 움직임과 색채가 작품의 일부를 이룬다.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소리와 향기를 함께 활용해 관객의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작업도 이어왔다.
2023년 10월부터 2024년 9월까지 뉴욕 파우르쇼(Faurschou)에서 열린 'SCAR TISSUE (BLURRED EARTH)'는 우안카의 작업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회화와 조각, 후각적 요소, 사운드 작업을 결합했으며, 전시 기간 중 별도의 라이브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우안카의 회화는 퍼포먼스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신체를 촬영한 이미지 위에 물감과 모래 등 여러 재료를 겹쳐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인체의 형태가 일부 남거나 색채와 물질에 가려진다. 실제 신체가 움직이는 공연과 그 흔적을 바탕으로 제작된 회화가 서로 다른 시간에 관객을 만난다.
2024년 덴마크 코펜하겐 컨템퍼러리(Copenhagen Contemporary)에서 열린 'LENGUA LLORONA'는 신체 퍼포먼스를 전시 운영에 직접 결합했다. 안료와 직물로 몸을 장식한 퍼포머들이 설치 공간에 머물거나 이동하면서 작품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공연이 없는 시간에는 공간과 설치작품 자체가 관람 대상이 됐다.
같은 해 라트비아 리가의 주제움(Zuzeum)에서 열린 'UTOPIC CELLS'에서는 반투명한 막으로 전시 공간을 나누고 회화, 조각, 영상, 소리, 향기를 배치했다. 물리적인 벽 대신 막과 설치물을 활용해 관람객의 이동 경로와 시야를 변화시킨 구성이다.
파리 REFERENCE FESTIVAL에서 우안카의 설치작품은 FVTVR에 배치될 예정이다. FVTVR은 전자음악 공연과 클럽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일반적인 미술관 전시실과는 사용 목적이 다르다.
우안카가 기존 작업에서 다뤄 온 신체의 움직임과 감각적 요소는 클럽이라는 장소에서 또 다른 관람 조건을 만난다. 클럽에서는 음악과 조명이 지속적으로 변하고 관객도 공연 일정에 따라 이동한다. 정해진 시간에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뿐 아니라 공연과 음악을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도 설치작품을 접하게 된다.
우안카의 작업에서 신체는 단순한 공연의 소재가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매체다. 회화와 퍼포먼스가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작업 방식은 작품을 벽에 걸린 이미지나 고정된 조각으로만 감상하는 관행과 차이를 갖는다.
가브리엘 모지스의 사진, 도지 카누의 조각이 다루는 일상의 기억
가브리엘 모지스는 패션과 음악, 스포츠 분야에서 사진과 영상을 제작해 온 영국 출신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패션 브랜드와 음악가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인물의 표정과 자세, 색채를 활용한 사진 작업을 발전시켜 왔다.
2025년 3월부터 8월까지 런던 180 스튜디오(180 Studios)에서 열린 개인전 'SELAH'에는 사진 70점 이상과 영화 10편이 전시됐다. 패션과 음악, 스포츠를 다룬 기존 작업과 함께 신작 사진, 단편영화 'The Last Hour'도 공개됐다.
모지스의 사진은 인물과 인물이 속한 문화적 환경에 관심을 둔다. 패션과 음악 산업에서 활동하는 인물을 촬영하지만 의상이나 유명인의 외형만을 강조하는 방식과는 구별된다. 인물이 취하는 자세와 시선, 색채를 통해 개인적인 기억과 문화적 정체성을 다뤄 왔다.
영국과 나이지리아의 문화적 배경도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 모지스는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기억을 인물 사진과 영상으로 연결해 왔으며, 'SELAH'에서는 사진과 영화를 함께 배치해 서로 다른 매체로 확장된 작업을 소개했다.
파리 행사에서도 모지스의 설치작품은 FVTVR에 소개될 예정이다. 사진과 영상에 기반을 둔 창작자가 전자음악 공연 공간에서 작품을 발표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진 전시와 다른 공간적 조건을 갖는다.
도지 카누는 사물의 기능과 조형적 가치를 함께 다루는 작가다. 의자와 테이블, 조명 등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물건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기존의 용도를 유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금속과 콘크리트, 폐자재, 재활용 사물을 결합해 조각과 디자인의 관계를 다뤄 왔다.
2019년 뉴욕 할렘 스튜디오 뮤지엄(Studio Museum in Harlem)에서 열린 개인전 'Function'은 카누의 작업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전시였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인 카누는 아프리카와 미국의 공예 전통, 개인적인 성장 경험, 산업 재료를 결합해 가구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제작했다.
작품 'Chair [ix] (For Babies)'는 유아용 의자를 바탕으로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을 결합한 조각이다. 의자의 구조와 형태는 남아 있지만 일반적인 가구와는 다른 물질적 특성을 갖는다. 실용적인 물건이 조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사용 목적과 감상 대상 사이의 구분이 달라진다.
카누의 작업에는 텍사스 휴스턴의 자동차 문화와 나이지리아의 공예적 요소도 반영돼 왔다. 자동차 부품이나 가구의 구조, 산업 재료를 조각으로 옮기면서 사물에 축적된 생활문화와 개인의 기억을 함께 다룬다.
우안카가 신체와 감각을 중심으로 작업한다면 모지스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인물의 문화적 기억에 접근하고, 카누는 일상적인 물건의 재료와 용도를 바꾸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파리 행사에는 세 작가 외에도 폴 타뷔레, 콜랴 네모이(Kolya Nemoi), 비아르네 멜고르(Bjarne Melgaard) 등이 참여한다.
존 제라드·리치 호틴, 2021년 작품을 다시 파리로
10월 24일 낮 12시부터 자정까지 진행되는 'infin.1.iridescent.stream'은 존 제라드의 디지털 시뮬레이션과 리치 호틴의 음악을 결합한 설치작품이다. 호틴은 플라스틱맨(Plastikman)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며, 작품의 사운드 구성에는 음악 기술 플랫폼 Bronze.ai가 활용됐다.
고해상도 LED 벽과 조각적 형태의 스피커 구조물이 설치의 중심을 이룬다.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 시각적 요소와 전자음악을 하나의 환경에 배치해 관객이 앉아서 감상하거나 서서 음악을 듣고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작품의 시각적 구성에는 연중 태양의 움직임과 시간 변화에 관한 시뮬레이션이 활용됐다. 음악과 디지털 이미지가 정해진 전시 공간에서 함께 작동하며, 설치 규모는 장소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infin.1.iridescent.stream'은 2026년 신작이 아니다. 2021년 11월 파리 오텔 드 쿨랑주(Hôtel de Coulanges)의 'le 3537'에서 초청 행사 형태로 처음 공개됐다. 당시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꼼데가르송의 지원을 받았다.
2022년 9월에는 미국 아칸소주 벤턴빌의 FOR_MAT 페스티벌에서 대형 설치작품으로 선보였다. 검은색 구조물로 만든 전용 공간에 디지털 영상과 음향 장비를 설치해 작품 규모를 확장했다.
2026년 파리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제작된 디지털 설치작품을 전자음악 공연과 연결해 다시 소개한다. 고정된 장소에 영구 설치하는 조각과 달리 설치 규모와 공연 구성을 변경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전시와 음악행사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형식이다.
호틴과 제라드는 24일 낮 12시부터 마크 슈피글러(Marc Spiegler)의 진행으로 작품 제작과 협업에 관한 대화도 나눌 예정이다. 슈피글러는 아트 바젤의 글로벌 디렉터를 지낸 인물이다.
낮 12시부터 자정까지 디지털 설치작품을 무료로 공개하는 일정에 이어, 25일 0시부터는 호틴이 기획한 'MINUS+ / SPIRITS'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호틴과 마타도어(Matador), 커티시(Courtesy), 크리스틴 벨벳(Kristin Velvet), 리스 프리처드(Reece Pritchard) 등이 참여하는 12시간 클럽 프로그램이다.
전자음악의 반복적인 리듬과 디지털 이미지가 함께 사용되지만 작품 감상과 DJ 공연은 서로 다른 활동이다. 무료 전시에서 유료 공연으로 운영 방식도 달라진다. 설치작품을 접하는 시간과 공연에 참여하는 시간에 따라 관객의 경험과 참여 조건이 구분된다.
바다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신발 96점, 'SPIRITS'의 환경적 의미
존 제라드가 파리에서 함께 선보일 'SPIRITS'는 플라스틱 소비와 석유 산업이 환경에 남긴 흔적을 다룬 디지털 작품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아트+테크놀로지 랩(Art + Technology Lab)과 함께 제작됐다.
제라드는 태평양과 인도양, 지중해, 대서양 연안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샌들과 신발 96점을 디지털 조각으로 재구성했다. 바닷가에 버려진 신발을 촬영하고 가우시안 스플래팅(Gaussian splatting) 기술을 활용해 입체적 형태로 구현했다.
가우시안 스플래팅은 촬영한 대상의 시각 정보를 수많은 점 형태로 구성해 입체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술이다. 'SPIRITS'에서는 플라스틱 신발의 형태와 표면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데 활용됐다.
2025년 12월 21일 처음 공개된 작품은 2026년 12월까지 이어지는 연간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에 맞춰 디지털 조각을 차례로 소개하는 방식이다.
버려진 신발은 산업 생산과 소비, 폐기 과정에 관한 기록을 품고 있다. 누가 만들고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신발들은 바다를 떠돌다가 해안에 도착했다. 제라드는 형태가 서로 다른 96개의 사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 플라스틱의 물질적 특성과 환경 문제를 다뤘다.
작품에서 관객은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신발의 입체적 형태를 조작할 수 있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상호작용 방식은 미술관에 설치된 영상을 일정한 거리에서 감상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SPIRITS'는 2026년 6월 21일 LACMA에서 리치 호틴과 협업한 라이브 공연으로도 소개됐다. 당시 디지털 조각을 대형 LED 벽에 구현하고 퍼포머들이 터치스크린으로 영상과 사운드를 조작했다. 휴대전화에서 개별적으로 감상하던 작품을 다수의 관객이 모인 공연 공간으로 확장한 행사였다.
파리에서는 'SPIRITS'와 관련한 설치·라이브 퍼포먼스에 아나스타시아 조반니(Anastasia Giovani)가 참여할 예정이다. 버려진 플라스틱 신발을 소재로 한 환경 관련 작업이 전자음악 공연과 만나는 구성이다.
'infin.1.iridescent.stream'과 'SPIRITS'는 컴퓨터 기술과 음악을 결합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작품의 출발점은 서로 다르다. 전자는 디지털 시뮬레이션과 사운드가 구성하는 공간적 경험에 초점을 두며, 후자는 실제로 수거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디지털 조각으로 옮겨 환경 문제를 다룬다.
전자음악이 두 작품에서 맡는 역할도 동일하지 않다. 'infin.1.iridescent.stream'에서는 디지털 이미지와 함께 감상하는 음향적 구성 요소이며, 'SPIRITS'에서는 디지털 조각을 라이브 공연으로 옮기는 과정에 음악과 퍼포먼스가 참여한다.
설치작품과 공연이 공존하는 공간, 달라지는 작품 감상 조건
파리 13구 센강변의 FVTVR은 전자음악과 클럽 문화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REFERENCE FESTIVAL에서는 설치미술과 공연이 함께 편성되면서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 외에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능도 맡는다.
클럽에 설치한 작품은 미술관에서와 다른 환경에 놓인다. 전시실에서는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비교적 일정한 조명과 관람 동선이 유지된다. 클럽에서는 음악의 크기와 조명, 관객 밀도, 공연 진행에 따라 작품 주변의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
우안카의 신체 중심 작업과 모지스의 사진·영상 작업, 카누의 사물을 활용한 조각은 각기 다른 관람 조건을 요구한다. 소리와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설치작품이 있는 반면, 일정한 거리에서 형태와 세부 요소를 살펴봐야 하는 작업도 있다.
같은 장소에 설치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작품이 동일한 방식으로 관람되는 것은 아니다. 공연과 전시가 동시에 운영될 경우 관객의 집중 시간과 작품을 바라보는 거리가 달라질 수 있으며, 음악과 조명의 변화가 작품 감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존 제라드와 리치 호틴의 24시간 프로그램은 관람 시간에 따라 서로 다른 참여 방식을 제공한다. 낮에는 디지털 설치작품을 무료로 공개하고, 자정 이후에는 유료 클럽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시와 공연을 연결하면서도 입장 방식과 운영 시간은 분리한 구성이다.
도나 우안카와 가브리엘 모지스의 설치작품은 23~24일 프로그램에 편성돼 있다. 존 제라드와 리치 호틴의 프로젝트는 24일 정오부터 25일 정오까지 진행되며, 새벽 시간대 공연 이후 실렌시오(Silencio)에서 이어지는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다.
REFERENCE FESTIVAL의 파리 프로그램은 회화와 조각, 사진, 디지털 이미지, 전자음악을 한 공간에서 다루지만 작품의 제작 방식과 관람 조건은 서로 다르게 유지한다. 10월 24일 정오부터 공개되는 'infin.1.iridescent.stream'과 자정 이후 이어지는 'MINUS+ / SPIRITS'는 디지털 설치미술이 전자음악 공연과 결합하는 구체적인 구조를 보여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