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 시대의 전시 트렌드, 관객의 움직임을 설계하는 현대미술

안나 우덴베르그의 사무실, 서도호의 집, 팀랩의 디지털 미술관…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예술과 관객의 관계

2026-10-24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사무용 의자에 사람의 몸이 뒤엉켜 있다. 의자의 등받이와 지지대는 신체를 편안하게 받쳐주는 대신 구부러진 몸을 붙잡고 있다. 천장에는 사각형 조명이 줄지어 설치됐고, 회색 바닥에는 붉은 출입 통제선이 놓였다. 현대적인 사무실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가구와 설비들이지만 정작 사람은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형태로 남아 있다.

2026년 10월 22일 체코 올로모우츠의 텔레그래프 갤러리(Telegraph Gallery)에서 개막하는 안나 우덴베르그(Anna Uddenberg)의 개인전 'White Noise'다. 스웨덴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우덴베르그는 인체공학적 사무용 가구와 인간의 신체를 결합한 조각을 통해 편안함과 효율성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다룬다.

[우리 시대의 전시 트렌드①] 안나 우덴베르그 'White Noise', 사무실이 된 갤러리. 사진=Telegraph Galler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허먼밀러(Herman Miller) 의자는 오랫동안 인체공학적 설계와 업무 효율성을 상징해 온 사무용 가구다. 사용자의 허리와 목, 팔을 지탱하고 장시간 앉아 있는 동안 신체의 부담을 줄이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아무리 편안한 의자라도 앉는 사람의 자세와 움직임은 좌판과 등받이, 팔걸이의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우덴베르그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가구와 가구의 형태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뒤집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의자의 일부가 된 듯한 신체를 제작했다.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신체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조형물로 등장한다.

현대인의 노동 환경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사무실만을 비판하는 작업으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과 공간이 사람의 자세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사무실을 넘어 교통수단과 주거시설, 의료기관, 상업공간에도 적용된다.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은 동시에 사용자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와 방향을 정한다.

우덴베르그는 이러한 관계를 이전부터 조각과 퍼포먼스로 다뤄 왔다. 2022년 베를린 신켈 파빌리온(Schinkel Pavillon)의 'FAKE-ESTATE'에서는 실제 사람이 올라가거나 몸을 기댈 수 있는 조각을 제작했다. 공연자들은 조각의 구조에 맞춰 몸을 구부리고 특정한 자세를 유지했다. 작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몸이 거꾸로 작품의 형태에 의해 규정되는 과정이었다.

2023년 뉴욕 메러디스 로젠 갤러리(Meredith Rosen Gallery)의 'Continental Breakfast'에서는 관객의 움직임까지 공연에 포함됐다. 정장 차림의 퍼포머들은 붉은 차단선 앞에서 관객을 안내하고 이동을 통제했다. 이후 공연자들은 조각 위에 올라가 몸을 고정했다. 관객을 통제하던 인물이 곧바로 다른 구조물의 통제를 받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대목은 관객의 행동이다. 전시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은 공연자의 손짓에 따라 이동하고 정해진 위치에서 기다렸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사무실과 공항, 호텔에서 익숙하게 경험하는 안내 절차가 관객의 움직임을 조정했다.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관객의 참여와 자율성을 강조해 왔다. 작품을 바라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직접 만지거나 움직이고, 공연에 참여하는 방식이 발전했다. 그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서로 다르다. 참여의 범위와 순서를 정하는 권한은 여전히 작품을 제작한 작가와 전시를 운영하는 기관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우덴베르그는 이러한 관계를 조각과 공연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관객의 참여를 늘리는 것이 언제나 더 자유로운 예술 경험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관객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방식 자체가 작품의 내용이 된다.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2025년 5월부터 10월까지 열린 서도호(Do Ho Suh)의 'Walk the House'는 공간과 신체의 관계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뤘다.

서도호는 반투명한 천으로 집과 복도, 문틀, 계단 등을 실제 건축물의 크기로 제작해 왔다. 전시에 포함된 'Nest/s'는 서울과 뉴욕, 런던 등 여러 도시의 주거공간에서 가져온 건축적 요소를 하나의 통로로 연결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나라의 집들이 전시장 안에서 이어지고 관객은 천으로 만든 문과 복도를 따라 걸을 수 있다.

서도호의 집은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이 아니다. 가벼운 천으로 제작돼 이동과 재설치가 가능하며 벽 너머의 구조도 희미하게 비친다. 그러나 관객이 문을 통과하고 복도를 걷는 동안 집의 크기와 구조는 실제 신체의 경험으로 다가온다.

서울에서 사용하던 문과 다른 도시의 복도가 이어지는 구조는 작가의 이주 경험과 연결된다. 한곳에 고정돼 있던 집은 기억을 따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과거에 살았던 공간들이 전시장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서도호의 작품에서 관객의 움직임은 기억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문턱을 넘고 복도를 통과하는 일상적인 행동이 작가의 거주 경험을 이해하는 수단이 된다. 관객이 작품의 형태를 바꾸지는 않지만 몸을 이동시키면서 서로 다른 집의 구조와 거리를 경험한다.

같은 공간형 전시라도 우덴베르그와 서도호가 다루는 문제는 다르다. 우덴베르그는 사물의 구조에 맞춰지는 신체를 제작하고, 서도호는 신체가 통과하는 건축물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한다. 한쪽에서는 환경이 사람의 자세를 규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과거의 거주 경험을 따라간다.

일본 도쿄의 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는 관객과 공간의 관계를 디지털 기술로 확장했다. 2024년 2월 아자부다이 힐스(Azabudai Hills)에 다시 문을 연 미술관에서는 디지털 이미지가 전시실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고 다른 작품과 상호작용한다.

대표적인 작품 'Flowers and People, Cannot be Controlled but Live Together'에서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만들어진다. 관객이 가만히 서 있으면 주변에 꽃이 피어나고, 꽃에 손을 대거나 움직이면 꽃잎이 떨어지고 시든다.

미리 제작한 영상을 정해진 순서대로 재생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관객의 행동과 공간의 상태에 따라 이미지를 생성한다. 같은 위치에서 작품을 다시 감상하더라도 앞서 보았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팀랩에서 관객은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손을 뻗고 걸음을 옮기는 행동이 디지털 이미지의 변화를 일으킨다. 서도호의 작품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 건축적 기억을 경험하는 방법이었다면, 팀랩에서는 움직임 자체가 작품의 시각적 상태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관객에게 작품을 완전히 통제할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니다. 꽃이 피고 지는 규칙과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방식은 미리 설계된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한다. 관객은 이미지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변화가 가능한 범위까지 스스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우덴베르그의 조각, 서도호의 집, 팀랩의 디지털 공간은 모두 관객의 몸과 관계를 맺는다. 다만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부여된 역할과 선택권은 크게 다르다.

현대미술에서 관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는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퍼포먼스와 해프닝, 참여미술, 설치미술은 관객과 작품의 관계를 계속 바꿔 왔다. 오늘날에는 건축적 규모의 설치와 실시간 디지털 기술, 공연과 전시의 결합을 통해 참여 방식이 더욱 다양해졌다.

동시에 전시를 둘러싼 환경도 달라졌다. 작품을 직접 감상하는 경험뿐 아니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활동이 관람 문화의 일부가 됐다. 대형 설치작품과 디지털 전시는 관객이 촬영한 이미지를 통해 전시장 밖으로도 유통된다.

서도호의 반투명한 집과 팀랩의 디지털 꽃, 우덴베르그의 기묘한 인체조각은 모두 사진 한 장만으로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공간의 크기와 독특한 형태, 선명한 색채는 전시를 찾지 않은 사람에게도 작품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전시와 작품의 내용이 충실한 전시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사진에 잘 담기는 작품이라도 실제로 관람해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며, 사진으로 전달되는 외형보다 작품을 경험하는 시간과 움직임이 중요한 경우도 있다.

서도호의 'Nest/s'는 반투명한 천의 색채와 구조만으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든다. 하지만 여러 도시의 집을 통과하는 경험이 빠지면 작가가 오랫동안 다뤄 온 거주와 이동, 기억의 관계는 충분히 전달되기 어렵다.

팀랩의 디지털 공간도 화려한 빛과 움직임이 주목받기 쉽다. 그러나 이미지가 어떤 규칙에 따라 변화하고 관객의 행동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면 단순한 시각적 효과와 상호작용의 차이가 드러난다.

우덴베르그의 조각은 인체와 가구가 뒤엉킨 형태만으로도 낯설다. 하지만 의자가 사람의 몸을 지탱하는 물건이라는 일상적인 경험과 연결하지 않으면 작품은 기괴한 신체를 표현한 조각으로만 남을 수 있다.

전시 경험을 판매하는 문화산업의 구조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규모 설치작품은 넓은 공간과 전문적인 설치 기술을 요구하고, 디지털 전시는 장비와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하다. 건축 구조를 재현한 전시는 관객의 이동 동선과 접근성, 안전까지 고려해야 한다.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질수록 전시를 운영하는 기관이 결정해야 하는 조건도 늘어난다. 관객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범위, 작품을 만질 수 있는지 여부,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 장애인과 고령자가 이용할 수 있는 동선은 모두 실제 관람 경험에 영향을 준다.

사진 촬영과 몰입형 체험이 전시의 홍보에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예술적 성취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거나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시라는 이유로 예술적 깊이가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작품의 형태와 재료, 관객의 행동이 서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서도호의 집에서는 걷는 행위가 기억과 연결되고, 팀랩의 디지털 공간에서는 움직임이 이미지의 변화로 이어진다. 우덴베르그의 조각에서는 가구가 신체의 자세를 규정하는 구조 자체가 비평의 대상이 된다.

전시를 기획하는 기관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관객의 참여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내용이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며, 거대한 설치 공간을 갖췄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감상 경험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작품에 적합한 공간과 관람 방식이 마련됐을 때 참여와 체험은 비로소 예술적 내용과 연결된다.

10월 22일 개막하는 우덴베르그의 'White Noise'는 2027년 2월 4일까지 이어진다. 서도호의 'Walk the House'는 지난해 런던에서 막을 내렸고, 팀랩 보더리스는 도쿄에서 상설 운영되고 있다.

세 전시를 나란히 놓으면 현대미술이 다루는 공간과 관객의 관계가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사무실 의자에 고정된 몸과 천으로 만든 집을 통과하는 몸, 디지털 이미지의 변화를 일으키는 몸은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관객이 작품 앞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며, 자신의 행동으로 작품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따라 감상의 내용이 달라진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인 동시에 관객의 행동을 조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전시 트렌드를 설명하는 기준도 설치작품의 크기나 디지털 기술의 화려함에만 머물 수 없다. 작품이 관객에게 허용하는 행동과 제한하는 행동, 그리고 그러한 조건이 예술가의 표현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는지가 전시의 성격을 가른다. 작품을 바라보는 일과 작품 안에서 움직이는 일 사이에는 이제 더 다양한 관람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