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전경선 '투명한 몸', 얼굴 아래 드러난 보이지 않는 내면의 구조
2018년 목조 작품, 인체의 형상을 해체하고 바퀴·고리·가느다란 연결 구조로 재구성한 신체… 비어 있는 공간에 담긴 기억과 관계의 흔적
[KtN 박준식기자]조각가 전경선의 '투명한 몸(A Transparent Body)'은 사람의 얼굴 아래로 기하학적인 구조물이 길게 이어지는 목조 작품이다. 이마에서 코와 입술, 턱으로 내려오는 얼굴의 윤곽은 비교적 구체적이지만 목 아래에는 가슴과 복부, 팔다리 대신 가느다란 막대와 원형 구조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체의 상부는 매끄러운 나무의 덩어리로 남아 있는 반면 아래쪽은 내부가 훤히 드러나는 구조로 바뀌면서 서로 다른 조형적 특징을 한 작품 안에 결합하고 있다.
2018년 제작된 '투명한 몸'은 나무를 재료로 한 280×150×130cm 크기의 작품이다. 얼굴과 몸을 연결하는 부분을 극도로 가늘게 처리하고, 그 아래에 바퀴와 도르래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을 매달아 인체의 무게와 비례를 변형했다. 통상적인 인물 조각에서 신체를 구성하는 가슴과 허리, 팔다리의 외형은 사라지고, 여러 부품이 서로 연결된 듯한 구조가 몸의 자리를 대신한다.
얼굴의 형태부터 일반적인 인체의 비례를 벗어난다. 이마의 윗부분은 왼쪽으로 길게 돌출돼 있으며, 부드럽게 굽은 곡면이 코와 뺨의 윤곽으로 이어진다. 가늘게 표현된 눈매와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코, 다문 입술은 인물의 표정을 이루지만 얼굴 전체는 좌우가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턱 주변에도 날카롭게 뻗은 형태가 결합하면서 사람의 얼굴을 변형한 독특한 윤곽이 나타난다.
나무의 결은 얼굴의 굴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마와 관자놀이, 뺨에는 부드러운 곡선이 반복되고, 표면을 따라 흐르는 나뭇결이 인체의 피부와는 다른 질감을 만든다. 얼굴 옆으로 길게 늘어진 고리형 장식은 세밀하게 조각된 작은 원형 요소들과 연결돼 있다. 얼굴의 큰 곡면과 장식의 복잡한 세부가 대비되면서 인물의 외형에 여러 조형 요소가 겹쳐진다.
입술과 턱은 비교적 뚜렷하게 표현돼 있지만 얼굴의 표정은 쉽게 규정하기 어렵다. 좁게 표현된 눈매와 아래로 내려온 코, 굳게 다문 입술은 정적인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얼굴의 윗부분이 크게 돌출되고 아래턱이 비정상적으로 변형돼 있어 현실의 특정 인물이나 하나의 감정에 대응시키기는 어렵다.
얼굴 아래의 신체에서는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턱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부분은 가느다란 수직 구조로 연결되고, 하부에는 삼각형과 다각형을 연상시키는 틀이 형성돼 있다. 내부에는 크기가 다른 원형 구조와 막대, 고리 모양의 부품들이 서로 교차한다.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여러 선이 모이고, 끝부분은 뾰족하게 좁아진다.
하부의 구조물에서는 바퀴를 닮은 원형 장치들이 눈에 띈다. 가운데가 뚫린 둥근 형태와 바깥으로 뻗은 살, 작은 원판들이 여러 위치에 배치돼 있다. 곧게 뻗은 막대와 비스듬하게 이어지는 부재들은 원형 구조물들을 둘러싸거나 서로 연결한다. 유기적인 인체의 곡선과 달리 기하학적인 선과 원이 반복되는 구성이다.
바퀴와 도르래를 연상시키는 형상들은 기계의 내부 구조와 닮아 있지만 하나의 완결된 기계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크기의 원형 요소와 연결 부재들이 복잡하게 겹쳐 있으며, 일부는 독립된 부품처럼 놓이고 다른 부분은 주변 구조와 결합한다. 사람의 몸을 기계처럼 정확하게 분해한 형태라기보다 기계적인 요소를 인체의 자리로 옮겨놓은 조형에 가깝다.
얼굴과 몸을 구성하는 방식에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 얼굴은 목재를 깎아 만든 단단한 덩어리로 형태를 유지하지만 아래쪽 신체는 여러 개의 가느다란 구조를 연결해 구성했다. 얼굴의 내부는 드러나지 않고 외형을 통해 인물을 알아볼 수 있는 반면, 몸은 외피가 사라진 자리에서 내부의 연결이 직접 드러난다.
목재의 부피가 집중된 얼굴과 가느다란 구조로 이루어진 몸 사이에는 무게의 대비도 나타난다. 얼굴은 상대적으로 크고 단단하게 표현됐지만 이를 받치는 아래쪽 신체는 여러 곳이 비어 있다. 일반적인 인체의 비례라면 목과 몸통이 머리의 무게를 받치지만 '투명한 몸'에서는 가느다란 연결부와 복잡한 하부 구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조각의 하단도 넓은 받침이나 발의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가늘고 뾰족하게 모이는 구조가 아래쪽에서 끝나면서 몸 전체가 공중에 매달린 듯한 인상을 만든다. 얼굴에서 내려온 수직의 연결부는 여러 갈래로 나뉘고, 하부의 기하학적인 구조는 바깥쪽으로 벌어졌다가 다시 좁아진다. 단단한 얼굴과 복잡한 몸 사이에 형성된 긴 간격이 인체의 비례를 더욱 낯설게 만든다.
'투명한 몸'이라는 제목은 작품의 재료와 대비된다. 목재는 빛을 통과시키는 투명한 물질이 아니며, 얼굴 역시 내부를 볼 수 없는 단단한 조각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몸통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여러 갈래의 나무 구조와 빈 공간으로 채워져 있어 안쪽과 바깥쪽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다.
몸의 외피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복잡하게 연결된 구조다. 가느다란 막대 사이로 뒤편의 공간이 드러나고, 원형 요소와 고리들은 서로 다른 깊이에 놓여 있다. 조각을 하나의 덩어리로 바라볼 때보다 내부에 형성된 선과 곡선의 관계를 따라갈 때 신체의 구조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경선이 오랫동안 다뤄온 기억과 감정, 관계의 문제도 이러한 조형적 특징과 연결된다. 작가는 인간의 외형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내면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에서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눈에 보이는 형상뿐 아니라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남겨진 존재와 흔적을 조각으로 다루려는 작업이다.
작가가 사용하는 '투명함'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지나간 기억과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외부에서 쉽게 알아볼 수 없지만 개인의 내면에 남아 있으며,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직접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투명한 몸'의 하부 구조를 이러한 기억이나 감정의 직접적인 재현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작품에 등장하는 바퀴와 고리, 가느다란 막대들은 특정한 사건이나 감정에 대응하는 명확한 상징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 오히려 서로 다른 형태가 연결된 구조와 그 사이에 남겨진 공간이 인체의 외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내부의 복잡성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의 얼굴과 기계적인 구조의 결합은 인간의 신체를 바라보는 관습적인 방식에도 변화를 준다. 얼굴을 통해 하나의 인물을 알아볼 수 있지만 목 아래에서는 팔다리의 기능이나 신체 기관의 위치를 찾기 어렵다. 몸의 형태를 알아보는 대신 각각의 구조물이 서로 연결된 방식과 전체적인 균형을 살펴보게 된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얼굴에 비해 아래쪽의 원형 요소들은 서로 다른 방향과 크기로 겹쳐 있다. 작은 부품들이 밀집된 부분은 형태가 복잡해 한눈에 구분하기 어렵고, 바깥쪽의 삼각형 구조는 비교적 분명한 윤곽을 이룬다. 복잡한 내부와 간결한 외곽의 차이를 통해 하부 구조 전체가 하나의 신체처럼 묶인다.
전경선은 조각의 모든 부분을 같은 밀도로 채우지 않았다. 얼굴에는 목재의 부피를 집중시키고, 아래쪽에는 가느다란 연결과 빈 공간을 남겼다. 인체의 상부와 하부가 서로 다른 조형 원리로 구성되면서 사람의 신체를 단일한 형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얼굴과 몸 사이의 가느다란 연결부는 두 부분의 차이를 더욱 강조한다. 단단한 얼굴에서 복잡한 구조물로 갑자기 이어지는 연결은 일반적인 인체의 목과 몸통이 지닌 비례를 따르지 않는다. 얼굴이 아래쪽 구조와 분리된 듯하면서도 하나의 수직축으로 이어져 있어 서로 다른 형태가 가까스로 결합한 듯한 인상을 남긴다.
기계적인 요소를 인체와 결합한 방식은 작품을 차갑고 비인간적인 구조로 읽게 할 수도 있다. 반면 얼굴의 부드러운 곡면과 입술, 눈매에 남아 있는 사람의 특징은 여전히 인물의 존재를 강조한다. 유기적인 얼굴과 기하학적인 하부 구조 사이의 차이가 유지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특징이 다른 쪽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는다.
2018년 '투명한 몸'에서 전경선은 얼굴을 구체적으로 남겨두면서 인체의 대부분을 가는 연결 구조와 원형 요소로 구성했다. 목재의 단단한 부피와 내부가 드러나는 신체, 유기적인 곡선과 기하학적인 구조가 한 작품 안에서 대비된다.
상부의 얼굴에는 나뭇결을 따라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면이 남아 있고, 아래쪽에는 크고 작은 바퀴형 구조와 가느다란 막대가 서로 얽혀 있다. 두 부분을 연결하는 좁은 수직 구조는 인체의 통상적인 비례를 벗어나 있으며, 하부의 빈 공간은 조각 바깥의 공간과 이어진다. 전경선의 '투명한 몸'은 인간의 외형을 남긴 채 신체의 내부를 다른 구조로 바꾸면서, 얼굴과 몸이 반드시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는 인체 조각의 익숙한 구성을 벗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