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cci 14 Mirror①] 빛을 내던 유리가 주변을 비추기 시작했다…거울 마감이 바꾼 조명의 역할
조도를 낮추면 거울처럼 변하는 유리 구체, 빛의 투과와 주변 반사가 공존하는 구조 2005년 탄생한 14 시리즈의 형태 유지…새로운 표면 처리와 조명 본연의 기능 사이의 관계
[KtN 임민정기자]캐나다 밴쿠버의 디자인 스튜디오 보치(Bocci)가 2026년 10월 파리에서 선보인 '14 Mirror'는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도 주변 공간을 비추도록 설계된 유리 조명이다. 은색 거울처럼 반사하던 구체에 내부 광원이 들어오면 유리 안쪽이 드러나고, 빛을 줄이면 주변의 벽과 창문, 사물이 다시 표면에 나타난다. 조명의 형태는 그대로지만 빛의 세기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대상이 달라진다.
일반적인 유리 조명은 광원이 꺼져도 유리의 색과 형태가 남는다. 14 Mirror는 여기에 반사 기능을 더했다. 조명이 켜져 있을 때는 내부 광원이 중심이 되고, 꺼져 있을 때는 주변 환경이 구체의 외관을 결정한다. 전등의 작동 여부에 따라 조명과 거울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구조다.
둥근 유리 구체 세 개가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인 구성에서는 반사 표면의 특징이 드러난다. 각각의 구체에는 주변의 수평선과 명암이 휘어진 형태로 맺혀 있다. 표면이 평평한 거울과 달리 볼록한 구체는 주변 사물의 형태를 압축하고 왜곡한다. 둥근 외형은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구체에 반영되는 주변 환경은 위치마다 달라진다.
내부 광원이 밝아진 구성에서는 은색 반사 표면 안쪽으로 따뜻한 색의 빛이 나타난다. 빛이 지나가는 부분에서는 유리의 투명성이 강조되고, 광원에서 떨어진 부분에는 주변의 반사가 남는다. 하나의 구체 안에 빛을 통과시키는 영역과 외부 환경을 비추는 영역이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리 자체가 불투명한 물질에서 투명한 물질로 바뀌는 현상과는 구별된다. 반사성과 투과성을 함께 지닌 표면에서는 내부와 외부의 밝기 차이에 따라 관찰자가 인식하는 모습이 달라진다. 내부가 밝아질수록 유리를 통과한 빛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고, 광원이 약해지면 외부에서 반사된 빛이 강하게 인식된다.
14 Mirror의 거울 효과 역시 내부 광원과 주변 조명의 상대적 밝기에 영향을 받는다. 같은 밝기로 조명을 켜더라도 햇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공간과 주변이 어두운 실내에서는 구체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 전등을 끄거나 밝기를 조절하는 행위만으로 모든 공간에서 동일한 반사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20년 넘게 유지한 유리 구체, 달라진 것은 표면
보치의 공동 창립자 오메르 아르벨(Omer Arbel)이 2005년 선보인 14 시리즈는 두 개의 주조 유리 반구를 결합해 하나의 구체를 만드는 구조다. 반구가 만나는 부분에는 불규칙한 질감의 띠가 형성되고, 내부에 설치된 광원의 빛은 두꺼운 유리를 통과하며 퍼진다.
14 시리즈에서 중요한 부분은 매끈한 구체를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주조와 냉각 과정에서 생기는 유리의 불규칙성이 제품의 형태와 빛의 특성에 반영됐다. 두 반구가 만나는 부분에 형성된 유리의 굴곡은 빛이 통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14 Mirror는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표면에 수작업 거울 마감을 적용했다. 유리 구체의 기본적인 형태와 내부 광원의 위치를 바꾸는 대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반사하도록 처리한 것이다.
투명한 유리에서는 두께와 내부의 굴곡, 광원 주변의 구조가 상대적으로 쉽게 드러난다. 반사 처리가 적용된 유리는 주변 공간을 표면에 받아들이면서 내부 구조의 시각적 비중이 줄어든다. 14 시리즈의 외형은 이어지지만 유리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차이가 생긴다.
변화는 구체가 여러 개 모였을 때 더욱 뚜렷하다.
은색 구체 아홉 개가 세 줄로 규칙적으로 배치된 구성에서는 동일한 형태의 반복과 서로 다른 반사 상태가 함께 나타난다. 구체의 크기와 간격은 일정하지만 각각의 표면에 맺힌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은 다르다. 관찰자의 시선이 개별 광원뿐 아니라 구체 사이의 관계와 표면의 명암으로 이동한다.
규칙적인 배열이 주는 질서감과 반사면이 만들어내는 차이가 공존하는 구성이다. 같은 형태를 반복한다고 해서 각 구체가 똑같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곡면에 들어오는 빛의 방향과 주변 사물의 위치가 달라지면 반사되는 모습도 달라진다.
아르벨은 14 Mirror를 하나의 색상보다는 '상태(condition)'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은색이라는 고정된 외관보다 주변의 밝기에 따라 달라지는 반사와 투과의 관계를 강조한 표현이다.
다만 시각적으로 변화하는 표면과 실제로 변화하는 재료의 물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조도를 낮췄을 때 반사가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유리의 화학적 성질이나 구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14 Mirror의 변화는 고정된 표면 처리와 가변적인 광환경이 만나 발생하는 광학적 효과에 있다.
반사의 증가가 조명의 기능 향상을 뜻하지는 않아
조명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필요한 공간에 빛을 공급하는 것이다. 광원의 밝기뿐 아니라 빛이 퍼지는 방향, 눈부심, 주변 표면에 도달하는 조도 등이 실제 사용 환경을 결정한다.
14 Mirror는 여기에 반사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주변 환경이 구체 표면에 맺히고 내부 광원이 함께 드러나는 방식은 기존의 투명 유리 조명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그러나 반사가 강해지는 현상 자체가 공간을 더 밝게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빛을 투과시키는 표면과 반사시키는 표면의 관계는 조명의 광학적 특성을 살필 때 중요한 조건이다. 외부의 빛을 잘 반사하는 마감이 내부 광원의 빛을 얼마나 통과시키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반사 효과가 커질수록 시각적 존재감은 높아질 수 있지만, 조명 성능은 광원의 출력과 유리의 투과 특성 등을 함께 살펴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거울 구체는 조명이 꺼져 있어도 주변의 밝은 부분을 반사한다. 창문이나 다른 조명에서 들어오는 빛이 곡면에 맺히면서 작은 고휘도 반사부가 형성될 수 있다. 장식적 효과와 시각적 쾌적성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수직으로 배열된 구체와 아래쪽에 놓인 구체를 함께 배치한 구성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일부 구체에는 내부에서 나오는 따뜻한 빛이 드러나지만, 다른 구체에서는 주변의 어두운 회색과 밝은 선이 더 두드러진다. 구체의 배열보다 빛의 상태에 따라 시각적으로 강조되는 부분이 달라진다.
개별 구체의 크기가 작더라도 여러 개를 배열하면 반사의 개수도 늘어난다. 하나의 광원을 여러 곳에 분산하는 기존 펜던트 조명의 방식에 표면 반사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이때 조명은 빛을 공급하는 물체이면서 주변의 밝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비추는 장식물이 된다.
반사가 풍부한 공간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시각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다. 반대로 이용자가 장시간 머무르는 업무 공간이나 조도를 세밀하게 관리해야 하는 실내에서는 반사 위치와 밝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조명 자체의 외관이 달라지는 효과와 실제 공간의 조명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는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빛을 켜는 순간보다 꺼져 있는 시간이 달라졌다
14 Mirror는 기존 14 시리즈의 이동식 조명과 펜던트, 벽·천장 부착형 등으로 확장된다. 단독으로 사용하는 구체와 여러 개를 모아 설치하는 구성 모두 거울 마감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여러 구체가 반복되는 구성에서는 광원이 꺼진 상태의 외관도 중요한 디자인 요소가 된다. 투명한 유리 구체가 공간에 놓이는 방식과 주변을 비추는 은색 구체가 놓이는 방식은 시각적으로 다르다.
수직으로 늘어선 구체와 아래쪽의 구체가 함께 놓인 구성에서는 각 물체의 반사 상태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곡면에 맺힌 주변의 선과 명암은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 일부 구체에서는 내부의 따뜻한 빛이 반사면과 중첩된다. 동일한 마감을 적용했더라도 배치와 주변광에 따라 다른 모습이 만들어진다.
14 Mirror는 기존 14 시리즈의 유리 구체를 새롭게 성형한 제품이 아니다. 2005년부터 이어진 조형 구조에 거울 마감을 적용하고, 광원의 밝기와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른 외관을 갖도록 만든 변형이다.
조명의 시각적 역할은 그만큼 넓어졌다. 내부 광원이 밝을 때는 유리를 통과하는 빛이 강조되고, 빛이 약해지면 실내 공간이 구체 표면에 반사된다. 전원을 끈 뒤에도 은색 구체가 주변을 비추며 공간 안에 남는다는 점이 기존 투명 유리 조명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거울 마감으로 얻은 시각적 변화가 조명 성능의 향상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빛을 비추는 기능과 주변을 반사하는 기능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작동한다. 14 Mirror가 기존 14 시리즈에 더한 것은 새로운 광원보다 주변광과 관찰 위치에 반응하는 표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