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cci 14 Mirror③] 파리 'ORBITAL'의 거울 구체…전시의 착시와 실내 조명 사이의 거리

레퍼런스 스튜디오 아파트 네 구역에 설치된 조명, 대칭과 반복으로 달라지는 공간의 깊이 카메라네시 폼필리의 설치미술과 건축 조명의 차이…시각적 연출과 실제 조명 기능의 구분

2026-10-23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2026년 10월 20일 파리 레퍼런스 스튜디오(Reference Studios)의 아파트 공간에서 공개된 'ORBITAL'은 조명을 별자리처럼 배치한 설치작업이다. 캐나다 디자인 브랜드 보치(Bocci)의 '14 Mirror'를 이용해 여러 개의 은색 유리 구체를 매달고, 반사와 대칭, 반복을 통해 공간의 깊이와 물체 사이의 거리를 다르게 인식하도록 구성했다.

10월 21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는 전시는 밀라노 기반 디자인 듀오 카메라네시 폼필리(Cameranesi Pompili)가 맡았다. 발렌티나 카메라네시 스그로이(Valentina Cameranesi Sgroi)와 엔리코 폼필리(Enrico Pompili)는 아파트 내부 네 구역에 걸쳐 조명을 배치했다. 각각의 유리 구체를 작은 달처럼 취급하면서 별자리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만들고, 대칭과 반복, 시각적 착시를 활용했다.

조명은 일반적으로 벽이나 바닥, 가구를 밝히기 위해 설치한다. ORBITAL에서는 조명 자체가 관람 대상이 된다. 천장에서 내려온 와이어와 유리 구체가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고, 구체의 거울 표면에는 주변 공간이 반사된다. 실제 물체의 배열과 반사된 공간이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기존의 펜던트 조명에서도 여러 광원을 매달아 장식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반사 표면을 가진 구체가 밀집하면 개별 조명의 외형뿐 아니라 주변의 선과 색, 명암까지 구성에 참여한다. 같은 크기의 유리 구체를 반복하더라도 배치와 관찰 위치에 따라 전체 형태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수직으로 매단 구체, 삼각형의 윤곽과 원형의 반복

가느다란 와이어에 매달린 14 Mirror 구체들이 삼각형에 가까운 윤곽을 이루고 있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구체의 수가 늘어나며 수직선과 원형의 반복이 대비된다. 사진=Bocci

가느다란 와이어 아래 은색 구체들이 모여 삼각형에 가까운 윤곽을 이룬다. 아래쪽에는 여러 구체가 넓게 배열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개수가 줄어든다. 수평으로 반복되는 작은 원형이 하나의 큰 기하학적 형태를 구성한다.

각 구체를 연결하는 와이어는 길게 늘어져 있지만 시각적으로 강조되는 부분은 아래쪽에 밀집한 유리다. 넓은 상부 공간과 좁은 하부 집합 사이에 대비가 생긴다. 구체의 밀도가 높은 부분에는 은색 반사가 겹치고, 주변의 밝은 수평선은 곡면을 따라 짧게 끊어져 나타난다.

같은 크기의 구체를 반복하는 방식은 기하학적으로 단순하지만, 거울 표면까지 동일한 형태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각 구체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주변의 빛을 받아들이는 각도도 달라진다. 형태의 반복이 규칙성을 만들고, 반사의 차이가 개별 구체를 구분한다.

측면에서 바라본 14 Mirror 집합 구성. 구체들이 앞뒤로 겹치면서 수직 방향의 배열이 강조되고, 관찰 방향에 따라 전체 윤곽이 달라진다. 사진=Bocci

측면에서는 삼각형을 이루던 구체의 일부가 수직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로 읽힌다. 앞쪽과 뒤쪽에 놓인 구체가 겹치면서 집합의 폭이 좁아지고, 위아래로 연결된 원형의 배열이 강조된다.

하나의 입체 구성이 관찰 방향에 따라 다른 윤곽을 갖는 것이다. 정면에서 넓게 펼쳐진 형태도 측면에서는 얇은 구조처럼 보일 수 있다. 관찰자가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원근과 겹침의 변화는 실제 구체의 위치가 바뀌지 않아도 나타난다.

반사 표면은 이러한 변화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구체의 외곽은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곡면에 반영되는 주변 공간은 시선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존재하는 구체의 수와 표면에 비친 밝은 원형, 주변 물체의 윤곽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ORBITAL에서 활용한 대칭과 반복은 단순히 같은 조명을 여러 개 매다는 방식과 구별된다. 조명의 개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형태와 반사의 개수도 증가한다. 다만 반사된 형상은 독립된 광원이나 물체가 아니며, 설치된 구체와 주변 환경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별자리의 형태와 실제 공간의 거리

여러 개의 은색 유리 구체를 수평에 가깝게 밀집시킨 구성. 와이어가 차지하는 수직 공간과 아래쪽에 집중된 구체의 배열이 대비된다. 사진=Bocci

구체들이 낮은 위치에서 수평에 가깝게 모인 구성은 위쪽으로 길게 솟은 집합과 다른 인상을 준다. 와이어가 차지하는 수직 공간은 넓지만 유리 구체는 좁은 높이 범위에 집중된다. 여러 개의 작은 원형이 이어진 형태는 천장과 바닥 사이에 하나의 수평적인 기준선을 만든다.

구체가 밀집한 부분과 비어 있는 부분의 차이도 커진다. 와이어 사이의 공간은 비어 있지만 반사 구체가 모인 부분은 시각적 밀도가 높다. 설치된 물체가 실제로 차지하는 부피와 관찰자가 느끼는 밀도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아파트처럼 방과 복도, 개구부가 연결된 건축공간에서는 이러한 배열의 높이와 방향이 중요하다. 천장이 높은 공간에 작은 구체를 흩어 놓으면 개별 광원이 분리돼 보일 수 있지만, 낮은 위치에 조명을 밀집하면 집합 전체가 하나의 물체처럼 읽힐 가능성이 커진다.

관람자의 이동 방향도 영향을 준다. 멀리서 바라볼 때 겹쳐 보이던 구체들은 가까워질수록 앞뒤 간격이 드러난다. 수평으로 길게 놓인 배열은 정면과 측면에서 차지하는 시각적 폭이 다르고, 위아래로 높이를 달리한 배열은 관찰 위치에 따라 구체 사이의 빈 공간이 달라진다.

ORBITAL은 레퍼런스 스튜디오 아파트의 네 구역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독립된 조각품을 전시장 중앙에 놓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관람자가 방을 이동하면 조명과 벽, 개구부의 상대적 위치가 달라진다. 서로 다른 공간에 놓인 구체를 연속적으로 경험하도록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네 구역으로 나뉜 전시 공간이라는 사실만으로 각 구역의 조명 효과까지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천장 높이와 벽의 색, 창문과 구체의 거리, 주변 조명의 위치가 달라지면 거울 표면에 나타나는 반사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별자리라는 시각적 비유 역시 실제 배열을 구체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별자리는 멀리 떨어진 천체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연결해 인식하는 방식이다. 반면 ORBITAL의 구체는 일정한 실내 공간에 고정된 조명이다. 관찰자의 이동에 따라 겹침과 간격이 달라지지만, 구체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밀집된 거울 구체가 만드는 시각적 복잡성

다수의 14 Mirror 구체를 촘촘히 매단 집합형 조명. 개별 유리의 반사면이 겹치면서 집합 전체의 윤곽과 명암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사진=Bocci

여러 구체를 촘촘하게 모은 구성에서는 개별 원형보다 집합의 윤곽이 강조된다. 구체들이 서로 인접하면서 은색 표면에 주변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반복되고, 구체 사이의 경계에는 복잡한 명암이 형성된다.

같은 반사 재료를 반복 사용했지만 각 구체의 곡면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빛을 반사한다. 관람자의 눈에는 다수의 작은 반사면이 하나의 집합으로 들어오고, 가까이에서는 개별 표면의 차이가 드러난다.

거울 조명 특유의 광학적 효과는 구체의 개수와 배열에 영향을 받는다. 작은 반사면이 적은 수로 놓일 때는 각각의 표면에 맺힌 주변 물체를 상대적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여러 구체가 가까이 모이면 반사된 선과 밝은 부분이 반복되면서 각각의 형상을 구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구체를 밀집시키는 방식은 물체의 수를 늘리면서 동시에 주변 공간이 반사되는 면의 수도 늘린다. 시각적으로 복잡한 구성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복잡성이 커지는 것과 공간의 깊이가 실제보다 크게 인식되는 것은 같은 현상이 아니다.

볼록한 거울 표면에는 주변 공간이 축소되고 왜곡된 형태로 비친다. 평면 거울 두 장을 마주 보게 놓았을 때 나타나는 반복 반사와도 성격이 다르다. 은색 구체가 만드는 착시는 외부 공간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주변의 선과 밝기를 작은 곡면에 압축하는 방식에서 발생한다.

ORBITAL이 활용하는 반사와 대칭은 기존 조명에서 빛을 확산시키거나 특정 방향으로 보내는 기능과 구분된다. 공간 안에서 시선을 움직이게 만드는 시각적 요소로 작동하지만, 구체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실내의 조명 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설치미술로 구성된 조명과 생활공간의 조명

카메라네시 폼필리는 제품과 공간을 함께 다루는 작업을 이어왔다. 발렌티나 카메라네시 스그로이와 엔리코 폼필리는 2010년대부터 전시 설치, 사진 촬영을 위한 공간 연출, 영상, 디자인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다.

보치와의 협업도 처음은 아니다. 발렌티나 카메라네시 스그로이는 이전에 보치의 'Unexpected Guests' 프로젝트에 참여해 유리 조각을 선보였다. 오메르 아르벨의 건축 프로젝트 '41'을 배경으로 유리 조각과 식물 설치작업을 함께 배치한 전시였다.

ORBITAL에서는 유리 조각 대신 실제 조명제품이 설치작업의 재료가 됐다. 전시장에서는 구체의 형태와 반사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조명의 개수와 높이, 간격을 선택할 수 있다. 실내 조명으로 사용될 때는 공간의 이용 목적과 필요한 밝기, 이용자의 시선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전시에서 조명을 낮게 매달면 구체와 관람자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반사 표면의 세부적인 특징이 두드러질 수 있다. 같은 배열을 식탁이나 이동 통로에 적용하면 가구와의 거리, 사람의 이동, 시야를 가리는 정도가 설치 조건에 포함된다.

조명기구 자체가 관람 대상인 전시장과 일상적인 활동을 위해 빛이 필요한 공간의 차이다. 전시장에서는 관람자가 구체를 향해 시선을 두고 이동하지만, 주거공간에서는 독서와 식사, 대화, 이동 등 여러 활동이 동시에 이뤄진다.

거울 표면의 밝은 반사도 공간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친다. 어두운 배경에서 작고 밝은 반사부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밝은 창문이나 다른 광원이 많은 실내에서는 여러 구체에 고휘도 반사가 반복되면서 눈부심을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 생긴다.

조명의 시각적 효과가 풍부하다는 평가와 장시간 머무르는 공간에서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실제 사용에서는 조도와 휘도 분포, 광원의 위치, 주변 반사면의 상태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ORBITAL처럼 다수의 구체를 밀집시키는 방식은 공간 전체를 하나의 조형물로 구성하는 데 유리하지만, 조명 기능까지 같은 비중으로 고려하려면 배열과 설치 높이를 조정해야 한다.

거울을 통해 확장된 형태, 건축 조명에서는 다른 조건

규칙적인 간격으로 배열된 아홉 개의 거울 구체와 아래쪽에 밀집한 구체들의 대비. 개별 형태의 반복과 집합 구성, 주변 표면의 반사가 서로 다른 시각적 효과를 만든다. 사진=Bocci

은색 구체 아홉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구성과 아래쪽에 여러 구체가 모인 구성을 비교하면 같은 재료로도 서로 다른 공간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규칙적인 배열에서는 각각의 원형이 분리돼 보이고, 밀집한 구체들은 하나의 덩어리에 가깝게 인식된다.

아래쪽의 구체는 주변 표면에도 반사가 나타나면서 물체가 놓인 위치와 빛이 비치는 방향을 드러낸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구체는 개별 형태를 구분하기 쉽지만, 밀집한 구체에서는 서로 겹치는 윤곽과 명암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구체의 수가 비슷하더라도 배열 방식에 따라 공간을 차지하는 인상이 달라진다. 일정한 간격을 두면 개별 조명 사이에 여백이 남고, 가까이 모으면 하나의 조형물처럼 인식된다.

벽면에 부착된 조명과 공중에 매달린 펜던트, 이동 가능한 조명을 같은 반사 마감으로 제작하더라도 공간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벽부착형 조명은 주변 벽면과의 거리가 제한되고, 펜던트는 높이와 간격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동식 조명은 배치 장소에 따라 반사되는 주변 물체가 달라진다.

보치는 14 Mirror를 기존 14 시리즈의 펜던트와 벽·천장 부착형, 이동식 제품으로 구성했다. 같은 거울 마감을 적용하더라도 설치 방식에 따라 반사 표면과 공간의 관계가 달라지는 셈이다.

다수의 조명을 한꺼번에 설치한 ORBITAL의 구성은 14 Mirror가 가진 조형적 특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개별 제품을 한두 개만 설치한 실내에서도 같은 수준의 시각적 복잡성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구체의 개수와 밀도, 주변의 반사 조건이 달라지면 공간 전체의 인상도 달라진다.

파리에서 진행된 ORBITAL은 일상적인 조명 사용 환경보다 물체의 배열과 관찰자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설치작업이다. 동일한 유리 구체를 반복하면서 대칭과 겹침을 만들고, 반사 표면에 맺히는 주변의 명암을 조형 요소로 받아들였다.

2026년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전시는 보치의 기존 14 시리즈에 거울 마감을 적용한 14 Mirror의 공간적 활용을 보여주는 구성으로 마련됐다. 아파트 네 구역에 걸친 설치는 조명의 높이와 배열, 반사 방향이 달라질 때 서로 다른 시각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다룬다.

전시가 다루는 빛과 반사의 관계는 실제 건축공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생활공간에서는 관람을 위한 연출과 달리 필요한 밝기와 눈부심, 가구 및 이동 동선과의 관계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ORBITAL에서 하나의 조형물로 사용된 거울 구체들은 실제 실내에서는 공간의 목적에 맞춰 개수와 높이, 간격을 결정해야 하는 조명기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