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빛과 조명이 말하는 트렌드…조형미와 생활의 빛 사이
조명은 밝기를 넘어 공간의 인상과 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디자인 요소로 변화 보치 14 Mirror와 밀라노 유로루체에서 읽히는 반사·수공예·개인화의 흐름, 아름다움과 사용성의 균형
[KtN 임민정기자]2026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된 보치(Bocci)의 '14 Mirror'는 불을 켜고 끄는 행위에 따라 외관이 달라지는 조명이다. 전원을 끄면 은색 유리 구체가 주변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내부 광원이 밝아지면 반사 표면을 통과한 빛이 드러난다. 같은 조명이지만 실내의 밝기와 관찰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물체처럼 느껴진다.
작은 유리 구체가 드러내는 변화는 오늘날 조명 디자인을 생각하게 한다. 전구의 밝기와 등기구의 형태만으로 조명을 평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빛이 공간에 퍼지는 방식, 조명이 꺼진 뒤 남는 외관,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적 경험까지 디자인의 영역에 들어왔다.
실내에서 조명은 오랫동안 공간의 부속물에 가까웠다. 천장에 매달린 등기구는 바닥과 가구를 밝히고, 벽에 설치된 조명은 필요한 곳에 빛을 공급했다. 장식적인 샹들리에나 조각적인 스탠드도 있었지만, 기능과 장식은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됐다.
최근의 조명 디자인은 두 영역을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조명은 가구나 장식품처럼 공간의 중심에 놓이고, 여러 광원을 결합한 설치작업은 건축 내부의 구성을 바꾼다. 빛이 물체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빛을 내는 물체 자체가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다뤄진다.
202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조명전시회 유로루체(Euroluce)에서는 조각적인 등기구와 모듈형 조명, 이동식 제품, 전통 공예기술을 활용한 디자인이 함께 주목받았다. 필요한 위치로 광원을 옮기거나 여러 조명을 조합해 공간에 맞게 배열하는 방식도 확대됐다. 한 종류의 조명을 천장에 고정해 실내 전체를 밝히는 구성에서 벗어나 생활 방식에 맞춰 빛을 나누고 조절하려는 움직임이다.
보치의 14 Mirror는 이러한 흐름 가운데 재료와 반사에 집중한 제품이다.
2005년 오메르 아르벨(Omer Arbel)이 디자인한 14 시리즈는 두 개의 주조 유리 반구를 결합해 하나의 구체를 만드는 구조에서 출발했다. 두 반구가 만나는 부분에는 유리가 냉각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규칙한 굴곡이 남는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유리와 달리 제작 과정의 흔적을 디자인에 받아들인 것이다.
21년이 지난 2026년에는 손으로 입힌 거울 마감이 추가됐다. 유리 구체의 기본적인 구조를 유지하면서 표면의 반사 특성을 바꿨다. 수작업 과정에서 생기는 미세한 불투명도 차이도 개별 제품의 특성으로 수용했다.
동일한 형태를 반복 생산하면서 조금씩 다른 표면을 허용하는 방식은 오늘날 디자인 산업에서 공예적 제작이 다시 주목받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대량생산 기술이 높은 수준의 균일성을 확보한 상황에서 일부 디자이너는 재료의 굴곡이나 제작자의 손길, 완제품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디자인에 남긴다.
그러나 수작업의 흔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품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제작 과정의 불규칙성이 실제로 아름다운 결과를 만드는지, 반복 설치했을 때 전체 구성의 일관성이 유지되는지, 오랜 사용에도 표면의 품질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보치가 거울 마감을 적용한 것 역시 새로운 광원을 발명한 일과는 다르다. 빛을 만들어내는 기술보다 기존 광원이 외부 환경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꾼 디자인이다. 광원의 밝기와 실내의 조도 차이에 따라 유리 안쪽이 강조되거나 주변의 반사가 두드러진다. 빛을 켜고 끌 때 재료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찰자가 받아들이는 외관은 달라진다.
거울처럼 주변을 반사하는 조명은 공간의 색과 물체의 위치에 영향을 받는다. 밝은 벽 앞에 놓였을 때와 어두운 벽 앞에 놓였을 때의 인상이 다르고, 창문 가까이에서는 자연광의 반사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조명의 디자인이 제품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설치되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2026년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파리에서 진행된 'ORBITAL'은 반사 구체의 배열을 설치미술로 확장했다. 밀라노 기반 듀오 카메라네시 폼필리(Cameranesi Pompili)는 레퍼런스 스튜디오(Reference Studios) 아파트의 네 구역에 걸쳐 14 Mirror를 배치했다. 여러 개의 구체를 별자리처럼 배열하고 대칭과 반복, 원근의 변화를 활용해 조명을 관람 대상으로 구성했다.
작은 구체 하나는 단순한 조명기구이지만 여러 개를 수직으로 매달면 공간 안에 커다란 입체 형태가 만들어진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하면 개별 구체의 형태가 강조되고, 촘촘하게 모으면 하나의 덩어리처럼 인식된다. 거울 표면에는 주변의 선과 밝기가 겹쳐 나타나면서 실제 구체의 배열보다 복잡한 시각적 효과가 생긴다.
건축과 조명 디자인의 관계도 이러한 구성에서 살필 수 있다. 조명은 벽과 천장에 부착되는 설비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광원이 어느 높이에 놓이는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어떻게 나뉘는지에 따라 실내의 비례와 깊이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다만 전시를 위해 구성한 조명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조명은 평가 기준이 다르다.
전시에서는 방문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여러 광원을 밀집시키거나 반사 효과를 강조할 수 있다. 조명을 낮게 매달아 구체의 세부 형태를 가까이 관찰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구성을 식탁이나 사무실, 주거공간에 설치하면 필요한 밝기와 사람의 이동, 눈부심, 가구와의 간격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거울 구체에 맺히는 밝은 반사는 전시장에서는 흥미로운 시각적 효과가 될 수 있지만, 장시간 머무르는 공간에서는 눈의 피로와 관련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반사가 많다는 사실이 조명 성능의 우수성을 뜻하지 않으며, 조형적인 구성이 아름답다고 해서 실내 전체의 조도가 적절하게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국제 조명 설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밝기의 양과 질을 함께 다뤄왔다. 작업면에 필요한 조도뿐 아니라 광원의 연색성, 눈부심, 실내에서 발생하는 밝기의 차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화려한 등기구 하나보다 빛이 어느 방향으로 퍼지는지, 사람의 시야 안에 밝은 반사부가 얼마나 나타나는지가 생활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조명 산업에서 사람의 생활 리듬과 활동에 맞춰 빛을 조절하려는 기술이 발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도와 색온도를 조절하는 시스템, 빛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제품, 필요한 장소로 옮겨 사용하는 충전식 조명은 고정된 한 가지 밝기로 모든 활동을 감당하던 방식과 차이를 만든다.
빛을 조절하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화려한 외관보다 사용자의 실제 생활을 세밀하게 고려하는 디자인도 중요해진다. 독서를 할 때 필요한 빛과 휴식을 취할 때 편안하게 느끼는 빛은 같지 않다. 식탁 위 음식의 색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조명과 긴 복도를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한 조명에도 서로 다른 조건이 적용된다.
조명을 공간의 중심에 두는 디자인과 조명의 존재감을 줄이는 디자인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유다. 일부 제품은 조각품처럼 형태를 강조하지만, 다른 제품은 건축 구조 안으로 광원을 숨기고 빛만 남긴다. 전자는 등기구 자체를 감상 대상으로 삼고, 후자는 공간에서 빛이 작동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어느 한쪽이 더 발전된 디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에너지와 지속가능성 역시 조명 디자인에서 빠질 수 없다.
빛을 적은 에너지로 생산하는 효율적인 광원은 기본적인 기술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조명기구 전체의 사용 수명과 수리 가능성, 교체할 수 있는 부품의 범위도 중요해지고 있다. 광원 하나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유리나 금속으로 제작한 등기구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면, 아무리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형태라도 유지관리 측면에서는 부담이 생긴다.
유로루체에서도 교체 가능한 광원 모듈과 렌즈, 재활용 가능한 재료,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조명 시스템이 소개됐다. 디자인의 지속가능성을 새로운 소재나 친환경적인 외관에만 연결하지 않고 제품을 수리하고 오래 사용하는 구조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다.
14 Mirror처럼 정교한 주조 유리와 별도의 반사 마감이 결합된 제품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수작업 표면의 차이가 디자인의 개별성을 만든다면, 관리와 보수 과정에서도 고유한 외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작 과정의 공예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제품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빛과 조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현상에는 시각문화의 변화도 영향을 미친다. 레스토랑과 호텔, 상업공간에서 조명은 실내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소셜미디어에 소개되는 공간에서는 등기구의 형태나 벽에 드리운 빛의 무늬가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 한 장으로 전달되는 공간의 인상과 실제로 오랜 시간 머물렀을 때 느끼는 편안함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밝고 어두운 부분의 대비가 강한 공간은 사진에서 입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지만, 실제 이용자는 조도가 부족하거나 눈부심이 심한 환경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공간을 촬영하기 위한 빛과 공간에서 생활하기 위한 빛이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다. 다만 상업공간의 시각적 연출이 주거공간으로 그대로 옮겨질 때는 조명의 기능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눈길을 끄는 디자인이 좋은 생활환경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보치의 14 Mirror는 이러한 동시대적 흐름을 생각하기에 흥미로운 제품이다. 2005년의 유리 제작 구조를 유지하면서 2026년의 거울 마감을 더했고, 완제품의 개별성을 인정하면서 여러 구체를 반복 설치하는 방식을 이어갔다. 파리에서는 실제 조명제품을 설치미술의 재료로 활용했다.
유리 구체가 주변을 반사하며 만들어내는 변화는 새로운 시각적 가능성을 갖는다. 다만 14 Mirror를 비롯한 조형적 조명의 가치는 외관의 독창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반사를 만드는 능력과 필요한 곳에 적절한 빛을 공급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기준에서 평가해야 한다.
오늘날 조명 디자인은 조각적인 형태와 수작업 제작, 유연한 설치 방식으로 표현의 폭을 넓히고 있다. 동시에 사용자의 활동과 건강, 에너지 소비, 유지관리까지 고려해야 하는 요구도 커졌다. 조명이 예술에 가까워질수록 생활을 위한 기술적 기준이 중요해지는 흐름이다.
파리에서 선보인 은색 유리 구체와 밀라노에서 소개된 다양한 조명 기술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변화를 말하고 있다. 조명을 고르는 기준이 등기구의 형태와 밝기에서 공간의 구성, 사람의 생활, 장기간의 사용성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울에 비친 빛은 아름답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는 아름다움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조명의 새로운 디자인은 시선을 끄는 순간뿐 아니라 불을 켜고 생활하는 긴 시간 속에서도 평가받아야 한다. 조형적 실험과 시각적 편안함, 에너지 효율과 유지관리까지 균형 있게 다루는 조명이 앞으로의 실내공간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