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노동현장②] 숙련공의 기술까지 배우는 AI…기술 전수와 보상 문제 부상
수십 년 쌓은 작업 경험을 데이터로 전환하는 제조업…기술 전수 방식과 숙련 노동의 가치 변화 정부 제조 AI 사업 30개 컨소시엄 중 14곳 연구수당 권고 기준 미달…후배 노동자의 현장 경험 축소도 우려
[KtN 김상기기자]수십 년에 걸쳐 익힌 숙련공의 기술이 인공지능(AI)의 학습 데이터로 옮겨가고 있다. 제조기업들은 생산설비를 다루는 요령과 불량을 찾아내는 판단,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 방식을 디지털 정보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숙련자가 현장을 떠나더라도 오랜 경험으로 축적한 기술을 보존하고 후배 노동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기술을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의 대가를 지급하고, AI가 업무를 대신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숙련자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도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제조업 AI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보상 문제가 제기됐다. 제조 명장의 경험을 데이터로 전환하는 사업에 참여한 30개 컨소시엄 가운데 14곳이 연구수당을 인건비의 20% 미만으로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부가 권고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연구수당 편성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인건비의 0.97%에 그쳤다. 숙련자의 기술을 확보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경험을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 기준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제조업에서 숙련은 단순히 작업 방법을 오래 기억하는 능력이 아니다. 설비의 상태를 판단하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를 구분하며,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아내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숙련자는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재료와 설비의 특성을 익히고, 비슷해 보이는 문제에서도 서로 다른 원인을 찾아 대응한다. 작업 지침서에 정리된 절차는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경험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금속 가공이나 용접, 주조와 같은 공정에서는 재료의 상태와 설비의 조건, 작업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같은 작업 지침을 적용하더라도 온도와 압력, 가공 속도 등의 변화에 맞춰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기계가 내는 소리나 작업물의 상태를 살피면서 이상을 알아차리는 능력도 숙련의 일부다. 현장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작업 조건을 조정하기도 한다.
제조업은 오랫동안 선배 노동자가 후배에게 작업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이러한 기술을 전수했다. 신입 노동자는 숙련자의 작업을 지켜보고 직접 따라 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적받고, 작업 결과가 달라진 원인을 함께 살피는 과정에서 판단 능력을 키웠다. 기술 전수에는 작업 방법을 설명하는 일뿐 아니라 위험한 상황을 알아차리는 감각과 안전하게 작업하는 습관을 익히는 과정도 포함됐다.
AI가 이러한 경험을 학습할 수 있게 되면서 전통적인 기술 전수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숙련자의 작업 과정을 영상과 음성, 설비의 운전 기록 등으로 수집하고, 판단의 근거를 데이터로 정리하면 교육과 작업 지원에 활용할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한 노동자가 설비의 이상을 발견했을 때 AI가 기존의 작업 기록과 유사한 상황을 찾아 대응 방법을 제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그러나 숙련자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데이터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반복한 작업일수록 숙련자 자신도 판단 과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여러 감각과 경험을 종합해 내린 결정을 몇 가지 규칙으로 정리하면 실제 판단에 영향을 미친 조건이 빠질 가능성도 있다. 작업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어떤 상황을 학습 대상에 포함하느냐에 따라 AI가 익히는 기술의 범위가 달라진다.
숙련자의 기술을 데이터로 보존하는 작업에는 경험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AI 개발자가 작업 동영상을 분석하더라도 특정 동작이 필요한 이유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작업 순서를 바꾼 배경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현장 전문가가 수집된 정보를 검토하고 실제 작업 조건에 맞는지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2026년 10월 공개된 맥킨지의 공급망 AI 전문가 대담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됐다. 디지털 공급망 분야의 마이크 래프터리(Mike Raftery)는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면서 기존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뿐 아니라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새로운 세대가 업무 경험을 축적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래프터리는 기존 공급망 전문가들이 고객의 항의를 직접 받고 납품 문제를 해결하면서 경험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주문한 제품이 제때 도착하지 않거나 재고에 문제가 발생하면 담당자는 관련 부서에 연락하고 원인을 확인한 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반복적인 문제 해결을 통해 생산과 구매, 물류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배웠다.
AI가 재고와 납품 문제를 먼저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제시하면 담당자가 직접 문제를 겪으며 배우는 기회는 줄어들 수 있다. 업무 처리 속도는 빨라질 수 있지만 경험이 적은 노동자가 복잡한 상황에 대응하는 판단력을 기르는 과정에도 변화가 생긴다. 기존 숙련자가 은퇴한 뒤 AI의 판단을 검증할 다음 세대 전문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제조 현장의 신입 노동자에게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설비의 이상을 AI가 먼저 찾아내고 수정 방법까지 제시하면 작업자는 지시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이 발생한 원인과 다른 대응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작업을 반복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기 어렵다.
작업을 빠르게 끝내는 능력과 작업을 이해하는 능력은 다르다. 숙련은 반복적인 성공뿐 아니라 실패의 원인을 살피고 잘못된 판단을 수정하는 과정에서도 축적된다. AI가 실수를 줄이는 데 활용될수록 노동자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며 배우는 교육 방식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앤드루 시(Andrew Shih)는 AI를 활용하는 조직에서 사람의 역할이 AI에 업무의 맥락을 가르치고 판단을 감독하는 방향으로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숙련자가 직접 모든 일을 처리하는 대신 AI가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기준을 설정하고 필요한 순간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맡으려면 실제 현장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 충분한 경험이 없는 노동자가 AI의 판단이 적절한지 검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숙련자의 경험을 디지털 정보로 보존하는 정책도 국내 제조업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을 추진하면서 2026년 추가경정예산으로 480억원을 확보해 '제조암묵지 기반 AI 모델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제조기업과 AI 기업 등이 참여하는 30개 연구 과제에 각각 16억원을 지원하는 구조다. 사업 기간은 2026년 6월부터 2027년 2월까지 9개월로 설정됐다.
'암묵지(暗默知)'는 숙련자가 오랜 경험을 통해 익혔지만 문서나 작업 지침서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지식을 뜻한다. 정부는 고령화와 숙련인력의 은퇴로 제조 현장의 기술이 단절될 가능성을 고려해 경험과 판단을 데이터로 정리하고 AI 모델을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숙련 기술을 보존하겠다는 정책적 목적이다.
숙련 기술을 데이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기술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동의와 보상, 이후 데이터의 활용 범위가 중요해진다. 회사가 보유한 설비와 공정 정보에 숙련자가 오랜 기간 익힌 작업 요령이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생산기술과 노동자 개인의 경험이 함께 포함된 정보를 AI 학습에 사용하면서 권리와 보상의 범위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연구수당의 편성 기준이 논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전은수 의원은 제조업 숙련자들의 기술 제공에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이용필 원장은 인건비의 약 20%를 연구수당으로 지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권고에는 강제력이 없다. 참여 컨소시엄이 실제로 얼마의 연구수당을 편성하는지는 각 기관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전은수 의원실이 확보한 사업비 현황에서는 30개 컨소시엄 가운데 14곳이 권고 비율에 미치지 못했다. 한 컨소시엄은 명장을 포함한 49명의 참여인력에 대한 연구수당으로 총 594만원을 배정했다. 연구수당은 명장 개인에게 전액 지급되는 금액이 아니라 다른 연구 참여자들과 나누는 재원이다.
연구수당 비율만으로 숙련자 한 사람이 실제로 받는 보상을 판단할 수는 없다. 전체 인건비와 참여인력 구성, 연구 기여도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별도로 지급할 대가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수당 권고에 의존하는 방식은 보상 수준을 둘러싼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정부는 사업 참여 기관에서 노사 상생 이행확약서를 받았지만, 확약서에는 명장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필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보상 계획을 점검하고 지원 방식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숙련 노동의 데이터화를 둘러싼 우려는 보상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4월 제조 암묵지 AI 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숙련인력이 현장을 떠나는 문제에 대응하려면 노동환경과 처우를 개선하고 후배 노동자가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숙련 노동자의 동의와 충분한 협의 없이 경험을 데이터로 수집하는 방식에도 반대했다.
정부와 노동계는 숙련 기술의 단절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을 공유하면서도 대응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기술을 디지털 정보로 보존하고 AI를 활용해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려 한다. 노동계는 숙련자가 기술을 익히고 후배에게 전달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유지하는 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숙련자의 경험이 AI에 학습된 이후 활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처음에는 작업자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개발한 AI가 향후 자동화 설비나 로봇을 제어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정부는 제조 현장의 숙련 데이터를 향후 제조 특화 로봇의 학습에도 활용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기술을 제공한 노동자의 경험이 여러 사업장과 설비에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데이터의 이용 권한과 보상 방식이 복잡해진다. 기업의 영업비밀이 포함된 정보와 노동자의 작업 경험, AI 개발기업이 가공한 데이터가 하나의 모델에 결합되기 때문이다. 기술 제공에 대한 최초 보상뿐 아니라 자료의 재사용과 제3자 제공, 다른 작업으로의 확대 적용에 대한 기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숙련 기술을 AI에 학습시킨다는 이유로 노동자 개인이 보유한 경험이 모두 사라지거나 기업에 이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같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AI 시스템이 개발되면 해당 기술에 대한 기업의 의존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숙련자에게 집중돼 있던 업무를 여러 노동자가 수행하거나 자동화 설비에 일부 맡기는 운영도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숙련 노동자의 역할이 현장 작업자에서 기술 교육자와 검증자로 확대될 여지가 있다. 장기간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AI가 제안하는 작업 조건을 검토하고 후배 노동자에게 기술을 설명하는 업무다. 다만 실제로 그러한 직무가 만들어지고 적절한 처우가 제공되는지는 기업의 인력 운영과 보상 체계에 달려 있다.
현장 교육 역시 AI 도입 이후의 직무 변화에 맞춰 조정돼야 한다. 신입 노동자가 AI의 권고대로 작업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만으로 숙련 교육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작업 조건이 달라진 이유와 판단이 잘못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이해하고, 실제 설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숙련자의 경험을 기록하는 일과 새로운 숙련자를 길러내는 일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선배 노동자의 판단을 데이터로 보존하면 기술이 단절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기록된 내용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계속 필요하다. AI가 학습한 작업 조건과 실제 설비의 상태가 다를 때 차이를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한 기술이다.
제조업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기술 전수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포함돼 있다. 선배는 후배의 작업을 지켜보고 잘못된 습관을 교정하며, 후배는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작업의 순서와 위험을 익혔다. 숙련자가 단순히 작업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현장의 안전과 품질을 유지하는 역할까지 맡아온 이유다.
AI를 활용한 교육에서는 같은 작업을 여러 차례 설명하거나 다양한 조건을 가상으로 연습하는 방식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설비를 다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책임을 이해하는 데에는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 숙련 기술을 보존한다는 목표가 새로운 노동자의 교육 기회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작업과 훈련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2026년 시작된 제조 암묵지 AI 사업은 2027년 2월까지 연구개발을 진행하도록 설계됐다. 기술을 제공한 숙련자의 경험이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데이터화되고, 개발한 AI가 현장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작동하는지는 사업 결과를 통해 평가할 부분이다. 10월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연구수당 편성 문제도 정부가 보상 기준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다뤄질 사안으로 남아 있다.
숙련 노동의 가치에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기술뿐 아니라 후배를 가르치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포함돼 있다. AI가 작업 경험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더라도 새로운 노동자가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계속 필요하다. 제조기업이 숙련자의 경험을 데이터로 확보하는 속도에 맞춰 기술 제공에 대한 보상과 현장 교육, 새로운 숙련인력의 육성 체계도 정비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