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시대 일하는 문화의 변화…빨라진 생산계획, 무거워진 책임

생산과 재고 관리에서 의사결정까지 확산되는 AI…회의·결재·숙련 중심의 직장문화 변화 생산성 향상 뒤에 남은 노동시간과 기술 전수, 책임과 보상…기업의 효율과 노동자의 삶 사이

2026-10-26     김상기 기자

[KtN 김상기기자]인공지능(AI)을 도입한 국내 제조 사업장 42곳의 생산성이 평균 30.1% 높아지고 불량률은 15.5% 낮아졌다. 2026년 8월 정부가 발표한 AI팩토리 선도사업의 초기 성과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제조업에서 AI가 품질검사와 설비관리, 생산공정에 적용되면서 작업시간을 줄이고 불량품을 찾아내는 능력이 개선됐다. 공장에서 사람이 직접 수행하던 업무의 일부를 컴퓨터가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수치만으로 노동자의 하루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검사에 필요한 시간이 줄었다고 근무시간도 그만큼 단축되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한 뒤 기존 인력을 다른 업무에 배치할 수도 있고, 같은 인원으로 더 많은 생산량을 처리하도록 운영할 수도 있다. AI가 절약한 시간이 노동자의 휴식으로 돌아갈지, 기업의 생산량 증가로 이어질지는 기술보다 조직의 운영 방식에 달려 있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10월 맥킨지가 발표한 공급망 AI 전문가 대담에서는 생산계획을 세우는 방식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과거에는 주문과 재고를 정리하고 정해진 회의에서 생산계획을 확정했다. 판매량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거나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담당자가 자료를 다시 모으고 관련 부서와 협의해야 했다. AI 에이전트가 주문과 재고, 물류 정보를 계속 분석하면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계획을 수정할 수 있다. 매주 정해진 날짜에 계획을 세우던 업무가 필요한 순간마다 판단하는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생산관리 업무에는 오랫동안 일정한 시간적 질서가 있었다. 담당자가 자료를 준비하고 부서장이 검토한 뒤 회의에서 계획을 확정했다. 계획에 따라 설비를 가동하고 다음 회의에서 결과를 점검했다. 정해진 주기로 이어지는 보고와 결재는 업무를 지연시키기도 했지만, 누가 언제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역할도 했다. AI가 실시간으로 생산계획을 제안하면 기존 회의와 보고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 동시에 근무시간과 관계없이 새로운 판단을 요구받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AI는 밤에도 주문량과 재고를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생산량을 늘리거나 납품 일정을 변경하는 결정에는 사람이 개입해야 할 때가 있다. 시스템이 주말에 공급 차질을 발견했다면 담당자가 즉시 대응해야 하는지, 다음 근무시간에 검토해도 되는지 정해야 한다. AI의 분석 속도에 맞춰 노동자까지 항상 대기하도록 한다면 반복적인 보고가 줄어드는 대신 수시로 업무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기술이 24시간 작동한다는 이유로 사람까지 24시간 일할 필요는 없다.

직장생활에서 휴식은 업무가 발생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장된 시간이다. AI가 새로운 계획을 계산할 때마다 담당자의 승인을 요구하는 조직에서는 출퇴근 이후에도 업무의 긴장이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긴급한 상황과 다음 근무시간에 처리할 일을 정확히 구분하고 불필요한 알림을 줄인다면 AI는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같은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노동자가 경험하는 근무환경은 달라진다.

관리자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담당자가 작성한 보고서를 검토하고 결재하는 일이 중요했다. AI가 여러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량과 납기를 제안하면 관리자는 계산 결과의 타당성과 실제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생산설비의 가동 능력과 원자재 공급, 노동자의 근무 일정, 거래처와의 계약을 함께 살펴야 한다. 컴퓨터가 제시한 수치가 정확하더라도 공장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계획이라면 수정해야 한다.

AI의 제안에 결재만 하는 관리자가 늘어난다면 기존의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기술을 통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상사의 판단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지시에 따르던 방식이 AI의 결과를 의심하지 않고 승인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잘못된 정보를 사용하거나 실제 현장의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계산 결과가 정교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맥킨지의 마이크 래프터리(Mike Raftery)는 AI가 자신감 있는 표현으로 잘못된 결과를 제시할 위험을 지적했다. 생산관리자에게 필요한 능력도 달라진다. 데이터를 직접 계산하는 기술에 더해 AI가 놓친 조건을 발견하고 부적절한 판단을 수정하는 경험이 중요해진다. 컴퓨터의 결과를 이해할 수 없는 관리자가 최종 승인만 담당한다면 결재 절차는 남아 있어도 실질적인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제조업에서 숙련자의 경험을 AI에 학습시키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장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는 설비의 작은 이상을 알아차리고 제품 상태에 따라 작업 조건을 조정한다. 매뉴얼에 기록된 절차를 익히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판단한다. 기업들은 이러한 기술을 영상과 작업 기록, 설비 데이터로 정리해 AI의 학습에 활용하려 한다.

숙련자의 경험을 디지털 정보로 보존하면 고령화와 은퇴로 기술이 단절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후배 노동자가 숙련자의 작업을 반복해서 살펴보고 AI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 방식도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데이터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숙련자 스스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판단도 있고, 여러 조건을 종합해 내린 결정을 몇 가지 규칙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가 빠질 수도 있다.

기술 전수의 문화도 달라질 수 있다. 신입 노동자는 선배의 작업을 지켜보고 직접 실수를 겪으며 경험을 쌓아왔다. 납품에 차질이 생기면 원인을 찾아보고, 설비가 멈추면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판단력을 길렀다. AI가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해결 방법까지 알려주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숙련자의 기술을 보존하는 일과 새로운 숙련자를 길러내는 일은 함께 진행돼야 한다.

AI에 익숙한 사람이 반드시 현장 업무까지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이 제안한 해결책을 빠르게 적용할 수 있어도 설비의 상태가 평소와 다를 때 잘못된 판단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기업이 AI를 도입한 뒤에도 신입 노동자에게 실제 작업을 경험하고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숙련은 정보를 많이 보유하는 능력에 머물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숙련 노동의 가치를 보상하는 방식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기술을 기업의 AI에 학습시킨다면 기술을 제공한 노동자의 기여를 인정할 기준이 필요하다. 경험을 데이터로 옮긴 뒤 여러 사업장과 설비에 활용하는 과정에서는 최초의 기술 제공뿐 아니라 이후 활용 범위도 중요해질 수 있다. 노동자의 경험이 기업의 자산으로 축적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와 보상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기술 발전을 둘러싼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제조업 AI 전환 정책에서도 숙련 기술의 데이터화가 진행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제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AI팩토리 사업을 확대하고, 숙련자의 경험을 학습하는 제조 AI 모델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2030년까지 AI팩토리 500개를 구축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숙련인력의 고령화에 대응하려는 정책적 배경이 있다. 다만 지원받은 사업장의 수와 생산성 향상률만으로 기술 전수와 노동환경의 개선까지 평가할 수는 없다.

202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노동시장 연구에서도 기술 도입과 직원 교육 사이의 차이가 나타났다. 국내 중소기업의 AI 도입 비율은 31%로 조사됐고, 별도로 조사한 AI 도입 기업 가운데 직원에게 관련 교육을 제공한 곳은 42%였다. AI를 사용하는 기업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교육 여건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같은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기업 규모에 따라 노동자가 경험하는 변화는 다르다. 대기업은 전담 인력을 확보하고 직원 교육과 시스템 유지관리에 투자할 수 있다. 반면 중소 제조기업은 생산관리자가 구매와 납품, 설비 운영까지 함께 담당하는 경우가 있다. 기존 업무를 수행하면서 AI 프로그램까지 관리해야 한다면 기술 도입이 또 다른 업무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직원 교육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확보하지 못하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기회도 제한된다.

AI가 일부 업무를 대신하는 변화는 이미 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AI 도입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6.5%가 기존 직무의 일부 업무가 AI로 대체됐다고 답했다. 32.2%는 업무에 필요한 기술의 종류가 늘었다고 했고, 38.3%는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직업 자체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변화보다 기존 직무의 일부가 자동화되면서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AI를 다루는 능력이 새로운 숙련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설비를 직접 점검하던 노동자가 AI의 이상 진단 결과를 검토하고, 재고를 계산하던 담당자가 생산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판단하는 업무를 맡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같은 속도로 새로운 기술을 익히지는 못한다. 교육 기회와 업무 경험, 기업의 투자 여건에 따라 직무 전환의 속도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임금과 인사평가도 변화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과거에는 작업자가 직접 처리한 생산량이나 검사 실적을 중심으로 평가했다면 AI가 일부 업무를 수행하는 환경에서는 노동자의 기여를 구분하기가 복잡해진다. 생산성이 높아진 결과가 설비의 개선 때문인지, AI의 분석 때문인지, 작업자의 판단 때문인지에 따라 평가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업무가 늘어났는데도 보상체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노동자의 부담만 커질 수 있다.

기업 내부에서 AI를 사용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직원이 개별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업무에 활용하면 반복 작업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서마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데이터를 관리하고 승인받지 않은 프로그램에 거래처 정보나 생산자료를 입력하면 오류와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AI 도구의 수가 늘어나는 것과 조직 전체의 업무가 개선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기업이 AI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보고와 결재 절차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AI가 작성한 자료를 담당자가 다시 확인하고, 부서장이 검토한 뒤 별도의 시스템에 결과를 입력하도록 한다면 업무 단계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기술을 도입하기 전에 불필요한 절차를 정리하고 사람이 반드시 판단해야 할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AI로 일을 빠르게 처리하면서도 기존의 복잡한 보고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노동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제한적일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구체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검사시간을 줄인 공장이 실제 근무시간도 단축했는지,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난 직원에게 새로운 직무교육을 제공했는지, 생산량 증가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졌는지 살펴야 한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과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함께 추진할 수 있지만 어느 한쪽의 성과가 다른 쪽의 성과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AI를 통해 기업의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질수록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판단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 프로그램은 계산과 자료 정리, 이상 징후의 탐지를 맡고 사람은 결과를 검토하며 중요한 결정을 승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직원이 실제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와 권한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임만 부담한다면 기존보다 불안정한 업무환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사람이 AI의 판단을 수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절차도 필요하다. 프로그램이 제안한 생산계획이 안전하지 않거나 작업자의 근무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 때 현장 담당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오류를 발견한 직원을 업무를 방해하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필요한 검증을 수행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조직문화가 요구된다. AI의 권고에 반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관리자가 승인권을 갖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시스템의 결정을 따르는 역할에 머무를 수 있다.

AI 도입 이후 직장생활을 둘러싼 변화는 일자리가 줄어드는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누구에게 새로운 기술을 배울 기회가 주어지는지, 숙련자의 경험은 어떻게 보상받는지, 근무시간 밖의 업무 요구를 어디까지 허용하는지, 잘못된 결정의 책임은 누가 지는지에 따라 노동자의 일상이 달라진다. 생산관리와 구매, 물류, 품질검사처럼 서로 다른 업무가 AI와 연결되면서 기존 부서의 역할과 관리자·노동자의 권한 관계도 조정될 수 있다.

AI를 도입한 사업장 42곳에서 평균 30.1%의 생산성 향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국내 제조업의 기술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정부는 2030년까지 AI팩토리 500개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생산과 품질 관리, 공급망 운영에 AI를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는 설비별 생산성과 불량률뿐 아니라 노동시간, 직원 교육, 직무 변화, 고용과 보상까지 함께 살펴야 기술 도입의 영향을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AI시대의 일하는 문화는 프로그램의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생산계획을 더 빨리 세워도 노동자의 휴식이 줄어든다면 업무 효율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숙련자의 경험을 데이터로 보존해도 후배 노동자가 기술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면 다음 세대의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AI의 판단에 결재만 한다면 책임의 구조도 불안정해진다.

기업이 AI를 통해 얻은 생산성 향상을 노동시간과 교육, 보상에 어떻게 반영하는지가 앞으로의 직장문화를 결정할 중요한 조건이다. 기술이 처리하는 업무가 늘어나는 만큼 사람에게 필요한 판단 권한과 배움의 시간도 확보돼야 한다. AI가 일의 속도를 바꾸고 있는 지금, 기업이 함께 바꿔야 할 것은 노동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경험을 전수하며 책임과 성과를 나누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