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제와 예술품②] 향초에 올린 빅토리아 여왕의 왕관…고가 생활용품이 빌린 권위

1872년 영국 왕실이 허용한 왕관 문양, 154년 뒤 향초와 디퓨저의 장식으로 확대…역사적 상징의 상품화 금색·은색·검은색으로 반복한 왕관 디자인…'트렌드 코리아 2027' 안목자본과 고가 장식품의 소비문화

2026-10-24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1872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은 런던의 향수회사 크라운 퍼퓨머리(The Crown Perfumery Company)에 자신의 왕관 문양을 제품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당시 향수병에 사용됐던 왕관은 154년이 지난 2026년, 400파운드짜리 향초의 장식으로 등장했다. 영국 향수 브랜드 클라이브 크리스찬(Clive Christian)이 출시한 'Fine Objects' 컬렉션이다.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던 상징이 향수병을 거쳐 가정에서 사용하는 방향제의 외형으로 확대되면서 역사적 상징과 고가 생활용품의 관계도 새롭게 살펴볼 만해졌다.

클라이브 크리스찬은 2026년 10월 향초와 디퓨저를 포함한 Fine Objects를 선보였다. 영국 판매가격은 향초 300g과 디퓨저 250mL 기준 각각 400파운드부터 시작한다. 제품에는 왕관을 형상화한 장식과 금속성 광택이 적용됐다. 금색과 은색, 검은색으로 마감을 달리했으며, 향을 사용하는 기능과 함께 실내 장식품으로서의 외형을 강조했다.

왕관은 오랫동안 권력과 지위, 국가의 전통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됐다. 왕실의 공식 의례와 초상화, 문장과 장신구에 등장하면서 특정한 형태만으로도 권위와 역사적 배경을 전달하는 장식이 됐다. 향수병과 같은 상업적인 제품에 왕관을 적용하면 소비자는 상품의 외형과 함께 오랜 역사와 상징을 접하게 된다.

클라이브 크리스찬의 왕관 문양은 19세기 영국 향수업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크라운 퍼퓨머리는 윌리엄 스파크스 톰슨(William Sparks Thomson)이 설립한 회사로, 1872년 런던에서 향수 사업을 시작했다. 톰슨은 앞서 코르셋 제조업에 종사했으며, 향이 나는 제품과 화장품으로 사업을 넓혔다. 당시 영국 상류사회의 생활문화와 향수 소비가 크라운 퍼퓨머리의 사업 기반이 됐다.

빅토리아 여왕의 왕관 문양 사용 허가는 크라운 퍼퓨머리의 상품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여왕의 왕관을 병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으면서 제품에는 왕실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시각적 상징이 더해졌다. 향료의 종류와 향수병의 형태뿐 아니라 왕관이라는 문양이 상품을 구별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왕실과 귀족사회의 생활양식이 상업적인 상품의 디자인과 소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의복과 장신구, 가구, 화장품과 향수에 이르기까지 왕실에서 사용하거나 선호한 물건은 부유층의 취향과 연결되곤 했다. 왕실과의 관계를 나타낼 수 있는 문양은 상품의 사회적 위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빅토리아 여왕이 사용했던 작은 다이아몬드 왕관에도 당시 영국 왕실의 생활과 의례가 담겨 있다. 여왕은 남편 앨버트 공(Prince Albert)이 1861년 사망한 뒤 오랫동안 상복을 입었다. 기존의 큰 왕관보다 가볍고 상복의 머리 장식 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왕관이 필요해지자 1870년 왕실 보석상 개러드(Garrard)에 새로운 왕관 제작을 의뢰했다.

은으로 만든 작은 왕관에는 다이아몬드 1187개가 사용됐다. 빅토리아 여왕은 1871년 의회 개회식에서 처음 착용했고, 이후 공식 행사와 초상화에서도 자주 사용했다. 왕관의 크기와 형태에는 왕실의 의례뿐 아니라 여왕이 선택한 복장과 개인적인 생활 조건도 반영돼 있었다.

크라운 퍼퓨머리가 1872년 왕관 문양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역사에는 당시 왕실과 향수회사의 관계가 담겨 있다. 오늘날 클라이브 크리스찬이 활용하는 왕관은 이러한 연혁을 바탕으로 형성된 브랜드의 상징이다.

1999년 영국 디자이너 클라이브 크리스찬은 크라운 퍼퓨머리를 인수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향수 사업을 전개했다. 19세기 회사의 역사와 왕관 디자인을 이어받으면서 현대적인 향수 제품군을 구성했다. 향수병 위에 왕관 형태를 적용하는 방식은 이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 Fine Objects에서는 향수병에 사용했던 왕관이 향초의 용기와 뚜껑으로 확대됐다. 향수병에서는 작은 장식이었던 왕관이 가정용 향기 제품에서는 물체의 전체적인 형태를 결정한다. 브랜드를 나타내던 문양이 상품의 조형을 구성하는 요소로 바뀐 것이다.

금색과 검은색 왕관형 향초를 함께 배치한 구성. 동일한 왕관 구조에 서로 다른 표면 마감을 적용해 색채와 광택에 따른 장식적 차이를 드러낸다. 사진=Clive Christia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동일한 왕관의 형태를 여러 색상으로 제작한 방식은 조형적 특징을 비교하기에도 적합하다. 금색과 은색은 주변의 빛을 반사하는 표면이 강조되고, 검은색은 돌출된 장식과 물체의 윤곽이 상대적으로 뚜렷해진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색과 마감에 따라 장식이 전달하는 인상이 달라진다.

왕관은 둥근 몸체를 중심으로 위쪽에 여러 개의 곡선을 연결하고 작은 구형 장식을 반복하는 구조다. 이러한 형태는 유럽의 왕관과 의례용 장식품에서 익숙하게 사용해 온 조형 요소와 연결된다. 작은 구형 장식과 곡선이 반복되면서 물체 전체에 일정한 장식적 질서를 만든다.

Fine Objects의 왕관형 향초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향을 담는 용기에도 적용했다. 왕관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내부에 왁스를 담을 수 있도록 제작하고, 장식을 용기의 외부로 확장했다. 역사적 상징의 사용이 제품의 형태와 직접 연결되도록 구성한 것이다.

은색 제품에서는 표면의 반사가 특히 두드러진다. 왕관의 둥근 형태와 반복되는 작은 장식이 주변의 조명을 받아 밝고 어두운 부분으로 나뉜다. 반사되는 표면은 물체가 놓인 공간과 조명의 위치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같은 제품이라도 실내 환경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

은색 왕관형 향초. 둥근 몸체와 곡선 장식, 테두리를 따라 반복된 구형 요소가 왕관의 구조를 이루며 광택 있는 표면이 조형적 특징을 강조한다. 사진=Clive Christia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금속성 광택은 오래전부터 장식용 생활용품에 사용돼 왔다. 촛대와 은제 식기, 거울과 장식용 그릇은 표면의 반사를 이용해 실내에서 시각적인 효과를 만들었다. 특히 왕실과 귀족사회의 생활공간에서는 금속과 유리, 보석의 광택을 이용한 장식품이 부와 지위를 나타내는 물건으로 사용됐다.

현대의 향초에 적용된 은색 왕관도 이러한 장식 전통을 연상시킨다. 주변의 빛과 물체를 반사하는 표면, 둥근 형태와 반복적인 돌출 장식은 실내에서 시선을 끄는 요소로 작용한다. 왕관 문양의 역사적 배경에 조형적인 장식성을 결합한 방식이다.

그러나 고가 생활용품의 조형적 가치는 장식의 복잡함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왕관의 각 부분이 어떤 비례로 구성됐는지, 둥근 몸체와 돌출된 장식이 균형을 이루는지, 표면의 마감과 용기의 구조가 조화를 이루는지에 따라 디자인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동일한 왕관 형태를 여러 제품에 반복할 때도 용기 크기에 맞는 비례와 실제 사용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왕관의 역사적 상징과 실제 제작에 사용된 재료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색으로 마감한 제품이라고 해서 순금으로 제작된 물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은색과 검은색 제품도 외형만으로 내부 재질과 표면 처리 방식을 판단할 수 없다. 소재와 제작 방식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장기간의 사용성과 가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검은색 왕관형 향초는 금색과 은색 제품에 비해 표면의 반사가 절제돼 있다. 작은 구형 장식과 곡선이 검은색으로 통일되면서 물체의 윤곽이 강조된다. 밝은 색상에서는 반사광이 눈에 들어오지만 검은색에서는 장식의 높이와 곡선의 방향, 둥근 몸체의 비례가 상대적으로 선명해진다.

검은색 왕관형 향초. 몸체와 장식 전체를 어두운 색으로 통일해 반복되는 곡선과 구형 장식, 둥근 용기의 형태가 드러나도록 했다. 사진=Clive Christia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왕관을 검은색으로 처리한 방식은 역사적 상징을 전달하는 데 색상만큼 형태가 중요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금빛 장식이 없어도 위로 연결된 곡선과 둥근 장식, 왕관 특유의 윤곽을 통해 동일한 상징을 알아볼 수 있다. 상품의 시각적 정체성이 특정한 색보다 반복되는 형태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은 브랜드가 하나의 상징을 여러 제품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활용된다. 향수병과 향초, 디퓨저는 크기와 사용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왕관의 형태를 공유하면서 같은 브랜드의 상품으로 인식된다. 특정 문양을 반복해 상품의 종류를 넓히는 방식은 패션과 주얼리, 시계, 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고가 소비재 시장에서 역사적 상징의 역할은 더욱 복잡하다. 소비자는 제품의 재료와 기능을 구매하면서 브랜드가 축적한 역사와 이미지를 함께 받아들인다.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은 설립연도와 창업자의 이야기, 왕실과의 관계, 상징적인 문양을 상품의 가치를 설명하는 요소로 활용한다.

클라이브 크리스찬의 왕관도 이러한 구조에 놓여 있다. 1872년의 사용 허가는 과거 크라운 퍼퓨머리의 역사에 속하고, 1999년 이후에는 클라이브 크리스찬의 브랜드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2026년에는 향수를 담는 병을 넘어 가정용 향초의 형태까지 확장됐다. 과거의 상징이 서로 다른 시대의 상품에 반복적으로 적용된 것이다.

장식의 역사와 상품의 가격 사이에는 브랜드가 축적한 인지도가 작용한다. 왕관의 유래를 아는 소비자는 19세기 영국 향수업과 왕실의 관계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같은 제품을 다른 소비자는 화려한 왕관의 외형이나 실내 장식 효과 때문에 선택할 수도 있다. 역사와 디자인, 개인의 취향이 하나의 물건에서 서로 다른 구매 이유를 형성한다.

금색 왕관은 이러한 소비문화에서 가장 직접적인 장식성을 갖는다. 금빛 표면은 오래전부터 의례용 물건과 귀금속, 장식공예에 널리 사용됐다. 왕관을 금색으로 마감하면 역사적으로 권위와 부를 나타내던 색채가 함께 적용된다.

금색 왕관형 향초. 몸체를 감싸는 곡선 장식과 반복된 구형 요소에 금속성 광택을 적용해 왕관의 상징성을 강조한 디자인. 사진=Clive Christia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금색 제품은 다른 장식품과의 조합에 따라 실내에서 차지하는 시각적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무광 소재와 단순한 가구가 중심인 공간에서는 금색 왕관의 장식이 두드러지고, 금속성 가구와 조명, 복잡한 장식이 많은 공간에서는 여러 물체가 비슷한 인상을 만들 수 있다.

왕관의 색상과 형태가 강하게 드러나는 제품일수록 주변 공간의 성격이 중요해진다. 작은 물체라도 장식이 복잡하면 실내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부분을 만들 수 있다. 같은 왕관형 향초를 여러 개 배치할 경우에는 물체 사이의 간격과 높이, 표면의 반사가 전체적인 인상에 영향을 준다.

화려한 장식품을 선호하는 소비와 절제된 형태를 선호하는 소비는 서로 다른 미적 취향에 기반한다. 복잡한 세공과 금속성 광택을 선호하는 사람은 물체 자체의 장식적 특징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반면 단순한 형태와 자연스러운 소재를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왕관의 장식이 공간에서 지나치게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개인의 취향은 상품이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는 사실과 별도로 형성된다. 장식이 화려한 물건과 형태가 단순한 물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적절한지는 실내공간의 성격과 사용하는 사람의 생활방식, 제작 품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7'은 주요 소비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안목자본(Power of Taste Capital)'을 제시했다. 상품과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가치 있는 것을 구분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분석이다. 소비자의 판단과 취향이 상품의 선택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고가 장식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와 상징적인 문양, 화려한 외형은 상품을 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 선택에서는 용기의 형태와 재질, 제작 품질, 공간과의 조화, 사용자의 취향이 함께 작용한다.

안목자본이라는 소비문화의 관점에서는 브랜드의 역사에 익숙한 것과 좋은 물건을 구분하는 능력도 서로 다른 요소다. 왕관 문양의 유래를 알고 구입하는 소비자와 실제 디자인의 비례와 소재, 사용성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소비자는 같은 제품에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예술품과 장식용 생활용품의 관계도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예술품은 제작자의 창작과 작품의 독창성, 제작 시기와 맥락, 재료와 제작 방식 등을 바탕으로 평가된다. 산업디자인 제품은 일정한 형태를 반복 생산하면서 기능과 사용성, 제작 품질을 함께 고려한다. 조각적인 외형을 가진 향초는 두 영역의 시각적 특징을 일부 공유하지만 실제 제작과 유통의 성격은 생활용품에 속한다.

Fine Objects의 왕관형 향초도 산업디자인의 영역에서 분석할 수 있다. 같은 장식을 여러 색상으로 제작하고 향료의 종류에 따라 제품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왕관의 조형성을 통해 실내 장식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외형을 확보하면서 향초의 기능을 결합했다.

대량생산 제품에서도 재료와 제작 방식의 차이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표면 마감이 얼마나 균일한지, 장식의 연결 부분과 용기의 구조가 정교하게 제작됐는지, 반복적인 사용과 보관에 적합한지에 따라 제품의 실제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 역사적 상징에 대한 선호와 물건 자체의 완성도를 함께 살피는 접근이 필요하다.

클라이브 크리스찬의 왕관은 19세기 영국의 역사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향수와 생활용품을 구별하는 브랜드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향초에 왕관을 적용하면서 소비자는 향과 함께 역사적 이미지, 장식적인 외형을 구매하게 된다. 왕관의 형태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실내에 남아 브랜드의 존재를 드러낸다.

2026년 Fine Objects에서는 왕관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금색과 은색, 검은색으로 반복해 서로 다른 조형적 인상을 만들었다. 향초의 향료와 사용시간에 더해 역사적 상징과 외형이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요소로 제시됐다. 1872년의 왕관 문양 사용 허가에서 1999년 브랜드 재편, 2026년 향초 출시로 이어진 과정은 오래된 상징을 현대 소비재의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흐름이다.

왕관의 역사적 배경은 고가 향기 제품을 구별하는 수단이 됐고, 장식적인 형태는 실내공간에서 제품을 사용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2027년 소비 트렌드가 주목한 안목자본의 관점에서도 역사와 브랜드의 인지도, 실제 디자인의 조형성과 제작 품질을 함께 살펴보는 소비자의 판단이 중요해지고 있다. 왕실의 상징에서 출발한 왕관은 154년이 지난 지금, 고가 생활용품의 디자인과 소비문화를 설명하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