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메세나②] 니타 암바니,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시작된 인도 예술 후원
미국 첫 회고전부터 고대 불교미술 특별전까지…릴라이언스 재단의 장기 후원, 인도 미술의 국제 전시와 연구 기반 확대
[KtN 박준식기자]2019년 11월 12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사회는 인도 릴라이언스 재단(Reliance Foundation)의 설립자 겸 회장인 니타 암바니(Nita Ambani)를 명예이사(Honorary Trustee)로 선임했다. 1870년 설립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인도인이 명예이사로 선임된 것은 처음이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인도 미술 전시를 지원해 온 기업가가 국제 미술기관의 이사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당시 미술관 이사장이었던 대니얼 브로드스키(Daniel Brodsky)는 암바니의 후원이 인도 예술과 문화유산의 보존 및 진흥에 기여했으며, 세계 각 지역의 미술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미술관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니타 암바니는 2017년 미술관의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에 참여했고, 같은 해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높이는 인물을 기리는 메트 윈터 파티(The Met Winter Party)에서도 공로를 인정받았다. 명예이사 선임에 앞서 인도 문화예술을 국제적으로 소개하는 후원 활동이 수년간 이어졌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Reliance Industries)를 이끄는 무케시 암바니(Mukesh Ambani) 회장과 니타 암바니의 문화예술 후원은 인도 국내에 한정되지 않았다. 릴라이언스 재단은 미술관의 전시 제작을 지원하고 인도 예술가의 작품이 해외 관객과 만날 기회를 넓히는 데 참여했다. 현대미술뿐 아니라 사진과 조각, 종교미술, 전통 회화까지 후원 분야를 확대하면서 인도 미술사를 국제적인 전시와 연구에 연결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의 협력이 본격화되기 전인 2015년에는 미국 시카고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의 인도 전통회화 전시도 지원했다. 같은 해 9월 13일부터 2016년 1월 3일까지 열린 '신의 문: 크리슈나 회화의 전통(Gates of the Lord: The Tradition of Krishna Paintings)'은 힌두교의 크리슈나 신앙과 관련된 회화 및 직물 장식의 역사를 다룬 전시였다.
전시장에는 인도와 미국에서 수집한 작품 100점 이상이 소개됐다. 크리슈나의 한 형상인 슈리나트지(Shrinathji)를 묘사한 피치와이(Pichwai) 회화와 세밀화, 드로잉, 역사적 사진 등이 포함됐다. 인도 라자스탄 나트드와라 지역에서 이어져 온 회화 전통을 미국 관객에게 소개하면서 종교적 용도로 제작된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살폈다. 니타·무케시 암바니 부부와 릴라이언스 재단은 주요 후원자로 참여해 작품 대여와 전시 개최를 지원했다.
2016년 3월 18일에는 뉴욕 메트 브로이어(The Met Breuer)에서 인도 추상미술가 나스린 모하메디(Nasreen Mohamedi)의 회고전이 개막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현대미술 프로그램을 확대하기 위해 운영한 메트 브로이어의 개관 전시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 미술관에서 모하메디의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소개한 첫 회고전으로, 그해 6월 5일까지 이어졌다.
1937년 태어나 1990년 세상을 떠난 모하메디는 인도 독립 이후 성장한 현대미술 세대의 주요 작가다. 인물과 풍경을 재현하는 대신 선과 격자, 기하학적 구성으로 독자적인 추상미술을 발전시켰다. 연필과 잉크로 그린 가는 선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거나 서로 교차하며 공간의 깊이와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흑백 사진에서도 건축물의 직선과 그림자, 계단과 바닥의 구조를 포착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모하메디는 인도 무굴 건축과 고전음악뿐 아니라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현대건축, 서구 문학과 철학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인도에서 활동했지만 특정 지역의 전통 양식에 머물지 않고 국제적인 추상미술의 흐름과 연결되는 작업을 남겼다. 당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서술되던 미니멀리즘과 현대 추상미술의 역사에 인도 작가의 작업을 함께 놓을 수 있는 근거가 됐다.
회고전에는 회화와 드로잉, 사진, 일기 등 130점 이상의 자료가 출품됐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Museo Reina Sofía)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공동 주최하고 인도 뉴델리의 키란 나다르 미술관(Kiran Nadar Museum of Art)이 협력했다. 인도와 유럽, 미국의 미술기관들이 작품과 연구 성과를 모아 한 작가의 전 생애를 조명한 전시였다.
니타·무케시 암바니 부부와 릴라이언스 재단은 회고전의 주요 후원을 맡았다. 후원금은 인도 작가의 작품을 미국에 소개하는 데 필요한 국제 전시 협력을 뒷받침했다. 작품의 대여와 운송, 보존 관리, 전시 기획, 도록 발간과 연구 활동이 결합되는 해외 회고전에서 기업의 장기적인 재정 지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7년 10월 10일 릴라이언스 재단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인도 미술 전시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후원 약정을 체결했다. 특정 전시 한 편에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인도 예술의 역사와 발전을 여러 전시에 걸쳐 소개하기로 한 것이다. 미술관은 현대 인도 미술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고대 불교미술과 17세기 무굴미술 등 다양한 시대와 분야를 다룰 계획을 마련했다.
후원 약정 이후 처음 열린 전시는 사진가 라구비르 싱(Raghubir Singh)의 '갠지스강의 모더니즘: 라구비르 싱 사진(Modernism on the Ganges: Raghubir Singh Photographs)'이었다. 2017년 10월 11일부터 2018년 1월 2일까지 메트 브로이어에서 개최된 전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싱의 사진 작업을 조명했다.
1942년 인도 라자스탄에서 태어난 라구비르 싱은 컬러 거리사진을 발전시킨 인도 사진가다. 홍콩과 파리, 런던, 뉴욕 등에서 생활하면서도 인도 도시와 사람들의 일상을 주요 촬영 대상으로 삼았다. 거리의 차량과 보행자, 시장과 건축물, 유리창에 비친 반사 이미지 등을 복잡한 구도로 구성했고, 강렬한 색채를 활용해 인도 도시의 밀도와 움직임을 담았다.
전시에는 사진 85점이 소개됐다. 싱의 작품과 함께 영향을 주고받은 동시대 사진가들의 작업, 인도 궁정회화도 전시됐다. 무굴시대 세밀화의 색채와 구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사진, 사티아지트 레이(Satyajit Ray)의 영화 등 싱의 작업을 형성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살폈다.
라구비르 싱은 인도의 풍경을 서구 관객에게 전달하는 기록사진가를 넘어 독자적인 현대사진의 언어를 발전시킨 작가로 다뤄졌다. 사진 속 인도의 도시와 사람들은 사회적 기록인 동시에 색채와 구도에 대한 미학적 실험의 대상이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싱의 작업을 서구 모더니즘과 인도 시각문화가 만나는 영역에서 분석했고, 릴라이언스 재단은 전시의 주요 후원자로 참여했다.
2019년 6월 4일에는 조각가 미리날리 무케르지(Mrinalini Mukherjee)의 미국 첫 회고전 '경이로운 자연(Phenomenal Nature)'이 메트 브로이어에서 개막했다. 9월 29일까지 이어진 전시에는 섬유와 도자, 청동으로 제작한 작품 57점이 출품됐다. 1949년 태어나 2015년 세상을 떠난 무케르지는 인도 전통 공예기법을 현대 조각으로 발전시킨 작가다.
무케르지는 삼베와 밧줄 등 섬유 재료를 묶고 엮어 대형 입체 조각을 제작했다. 직조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매듭을 만드는 방식으로 식물의 줄기와 뿌리, 꽃잎, 인체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구현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공예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전통적인 장식품과는 구분되는 현대 조각의 표현을 추구했다.
1990년대에는 도자 작업을 시작했고 2003년부터 청동 조각도 제작했다. 도자와 청동 작업에서도 식물과 인체, 동물의 특징이 결합된 유기적인 형태가 이어졌다. 전시에는 1991~1992년 제작한 대형 섬유 조각 '브릭시 나타(Vriksh Nata)' 등이 포함됐다. 섬유와 매듭을 활용한 조각이 회화나 금속 조각과 동등한 현대미술의 표현 수단으로 다뤄졌다.
전시 기획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남아시아 미술 담당 큐레이터 샤나이 자베리(Shanay Jhaveri)가 맡았다. 니타·무케시 암바니 부부와 릴라이언스 재단은 주요 후원자로 참여했으며 앤디 워홀 시각예술재단(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등도 재정을 지원했다. 미술관의 전문적인 연구와 전시 기획에 여러 민간 후원자가 참여하는 구조였다.
모하메디와 무케르지의 회고전은 인도 현대미술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공통점을 지닌다. 두 작가 모두 여성 예술가였으며 인도 고유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흐름과 연결되는 작업을 남겼다. 모하메디는 추상미술과 미니멀리즘의 역사를, 무케르지는 공예와 조각 사이의 위계를 다시 살펴보게 했다. 두 전시에서는 인도 작가들의 작품이 지역적 특수성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미술사의 여러 흐름과 함께 논의됐다.
니타 암바니는 2019년 11월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명예이사로 선임됐다. 2016년 현대미술 회고전 후원에 이어 2017년 장기 후원 약정을 체결하고 사진과 조각 전시를 지원한 뒤 이사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1891년부터 인도 아대륙의 미술품을 수집해 왔으며 조각과 회화, 직물, 사진 등을 소장하고 있다. 오랜 수집·연구 기반에 인도 기업가의 재정 지원이 더해지면서 인도 미술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이어졌다.
명예이사 선임 이후에는 인도 고대미술 분야에서도 대규모 후원이 이뤄졌다. 2023년 7월 21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개막한 '나무와 뱀: 인도 초기 불교미술, 기원전 200년~서기 400년(Tree and Serpent: Early Buddhist Art in India, 200 BCE–400 CE)'은 초기 불교미술의 성립과 발전을 다룬 특별전이었다. 같은 해 11월 13일까지 이어진 전시에는 인도 각지와 영국, 유럽, 미국의 기관에서 빌려온 작품 125점 이상이 출품됐다.
전시의 주요 작품은 인도 남부 데칸 지역의 초기 불교 유적에서 출토된 석조 조각과 불교 유물이었다. 석회암 조각을 비롯해 금과 은, 청동, 수정, 상아로 제작된 유물들이 소개됐으며, 고대 사원 유적에서 발견된 일부 작품은 처음으로 일반 관객에게 공개됐다.
불교가 성립하기 전 인도 지역에서 숭배하던 나무와 뱀, 자연의 정령들이 초기 불교미술에 수용되는 과정도 다뤄졌다. 보리수는 깨달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뱀의 형상을 한 나가(Naga)는 불교 유물과 성지를 보호하는 존재로 표현됐다. 불탑을 장식한 부조에는 부처의 생애와 불교 설화를 전하는 인물과 동물, 건축물이 새겨졌다.
전시는 인도 초기 불교미술이 종교적 신앙뿐 아니라 교역과 문화교류 속에서 발전한 역사도 살폈다. 인도에서 발견된 로마 청동 조각과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출토된 인도산 상아 조각 등은 고대 인도와 로마 사이에 이뤄진 교역을 설명하는 유물로 소개됐다. 종교미술을 통해 고대 인도의 사회와 교역, 조각기술의 발전을 함께 다룬 것이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남아시아·동남아시아 미술 담당 큐레이터 존 가이(John Guy)가 기획을 맡았으며 인도 문화부와 협력해 전시를 준비했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는 로버트 H. N. 호 패밀리 재단 글로벌(The Robert H. N. Ho Family Foundation Global), 프레드 아이커너 펀드(Fred Eychaner Fund)와 함께 주요 후원자로 참여했다.
2023년 7월 17일 열린 개막 행사에는 니타 암바니와 맥스 홀라인(Max Hollein)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관장, 타란지트 싱 산두(Taranjit Singh Sandhu) 주미 인도대사, 에릭 가세티(Eric Garcetti) 주인도 미국대사, 인도 국립박물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고대 인도 문화유산을 다루는 전시가 미술관과 기업, 인도 정부기관의 협력을 통해 마련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나스린 모하메디 회고전에서 시작된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후원은 현대사진과 조각을 거쳐 고대 불교미술까지 범위를 넓혔다. 2016년과 2017년, 2019년 전시에서는 릴라이언스 재단과 암바니 부부가 주요 후원자로 참여했고, 2023년 불교미술 전시에서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가 공식 후원기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인도 기업의 문화예술 참여가 현대미술 전시와 고대 문화유산의 연구·전시를 함께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대규모 특별전은 작품 대여와 운송, 보존, 보험, 도록 제작, 학술 연구 등 상당한 비용이 필요한 사업이다. 고대 유물이나 여러 국가의 소장품을 한자리에 모으는 전시일수록 기관 간 협의와 전문인력의 참여가 중요하다. 릴라이언스의 후원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인도 미술을 다양한 시대와 장르에 걸쳐 소개하는 전시를 마련하는 데 재정적인 기반이 됐다.
미술관의 기획과 연구는 전문 큐레이터와 협력 기관들이 담당했다. 나스린 모하메디 전시에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키란 나다르 미술관이 참여했고, 미리날리 무케르지 회고전은 남아시아 미술 전문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초기 불교미술 전시는 인도 정부기관과 해외 소장기관의 협력을 통해 성사됐다. 기업의 후원과 미술관의 학술적 전문성이 각자의 역할을 맡으면서 국제 전시가 진행된 것이다.
고액 후원자의 참여는 미술관에도 지속적인 운영 재원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한다. 동시에 기업과 개인은 문화예술 후원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과 인적 교류망을 넓힐 수 있다. 후원자의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미술관의 작품 선정과 전시 해석, 연구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운영 원칙도 중요하다. 특히 기업 자본이 문화유산의 전시와 연구를 지원할 때에는 후원금의 역할과 전시 기획의 책임을 구분하는 구조가 장기적인 협력의 기반이 된다.
니타 암바니는 해외 미술관 후원과 함께 인도 국내의 문화예술 지원도 이어왔다. 릴라이언스 재단은 뭄바이 엘레판타 페스티벌(Elephanta Festival)과 타블라 연주자 자키르 후세인(Zakir Hussain)을 기리는 음악회 '아바지(Abbaji)' 등을 후원했다. 해외에서는 인도 예술가와 문화유산을 국제적인 미술관의 전시·연구에 연결하고, 국내에서는 전통 공연과 음악을 지원하는 활동을 병행했다.
2023년 3월 31일 뭄바이에 문을 연 니타 무케시 암바니 문화센터(Nita Mukesh Ambani Cultural Centre·NMACC)는 해외 미술관 후원에 이어 상설 문화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단계로 이어졌다. 뉴욕에서 인도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지원했던 릴라이언스 재단이 뭄바이에서는 해외 공연과 전시를 유치하고 인도 예술가에게 발표 공간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2015년 시카고미술관의 크리슈나 회화 전시부터 2023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초기 불교미술 특별전까지 니타 암바니와 릴라이언스의 국제 후원은 여러 시대의 인도 예술을 대상으로 이어졌다. 현대미술가의 첫 미국 회고전, 인도 사진가의 작품 세계를 정리한 특별전, 전통 공예기술을 현대 조각과 연결한 전시, 고대 불교 유물의 국제 대여 전시가 주요 활동으로 남았다.
2019년 첫 인도인 명예이사 선임은 이러한 후원 활동이 축적된 결과였다. 니타 암바니는 세계적인 미술관의 후원자이자 인도 문화예술을 국제적으로 소개하는 기업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이어온 협력에서는 기업의 재정 지원이 작품의 국제 이동과 연구, 전시 기회 확대에 활용됐다. 인도 미술의 국제적인 위상은 후원자의 명성뿐 아니라 실제 전시에 참여한 작가와 작품, 학술 연구와 기관 간 협력의 축적을 통해 형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