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조건①] 첫 직장부터 좁아지는 기회…일로 자신을 증명하던 시대의 변화
미국 AI 관련 직종 청년 고용 격차 19% 확대, 한국 청년 고용률도 하락…경력을 쌓을 기회가 줄어드는 노동시장, 직업과 인간의 가치를 둘러싼 새로운 변화
[KtN 임우경기자]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에 가져온 변화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AI 활용도가 높은 직종을 중심으로 20대 초반 근로자의 고용이 다른 직종에 비해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직원들의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유지되는 반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업하는 청년들의 진입 기회가 좁아지는 양상이다. 기술 발전에 따른 고용 변화가 기존 직원을 대량 해고하는 방식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청년 고용 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가데이터처가 10월 16일 발표한 '2026년 9월 고용동향'에서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4.0%로 전년 같은 달보다 1.1%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15~64세 고용률은 70.6%로 0.2%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노동시장의 고용률이 소폭 개선되는 동안 청년층의 취업 여건은 오히려 악화됐다. 청년 실업률도 5.4%로 전년보다 0.6%포인트 높아졌다.
AI가 한국 청년 고용률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경기 둔화와 기업의 인력 운용, 산업구조 변화, 청년 인구의 감소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관찰되는 AI 관련 직종의 고용 변화는 한국 노동시장이 앞으로 직면할 수 있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업무 자동화가 신입 직원의 역할을 먼저 줄일 경우 청년들이 직업을 배우고 전문성을 축적하는 과정에도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는 2026년 8월 12일 수정 발표한 연구에서 AI 활용도가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22~25세 근로자의 고용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종의 고용 증가 추세를 따랐을 경우보다 약 19% 낮다고 분석했다. 급여관리기업 ADP의 수백만 명 규모 근로자 자료를 활용해 2026년 6월까지의 변화를 살펴본 결과다.
연구에서는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청년 고용 격차가 2025년 7월 기준 15%에서 2026년 6월 기준 19%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변화는 기존 직원의 퇴사보다 신규 채용의 감소에서 주로 발생했다. AI가 인간의 업무를 직접 대체하는 성격이 강한 직종에서 고용 부진이 두드러졌고, 직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용도로 활용되는 직종에서는 고용이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19%라는 수치는 해당 청년층의 전체 일자리가 같은 기간 19% 감소했다는 뜻이 아니다. AI 노출도가 서로 다른 직종의 고용 증가 추세를 비교한 상대적 격차다. 연구진 역시 경제 전반에서 대규모 일자리 대체가 발생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AI와 청년 고용 변화 사이에 관련성이 관찰됐지만 기술 도입이 고용 격차를 직접 일으켰다고 확정하기에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26년 8월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여건이 여러 회원국에서 악화되고 있지만 현재의 증거만으로 AI가 이러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청년 고용의 부진은 대규모 언어모델이 널리 활용되기 전부터 나타났으며, 경기 변화에 민감한 청년층의 고용 특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AI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를 한 가지 방향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기술은 일부 업무를 자동화하는 동시에 다른 업무의 생산성을 높인다. 기업은 인력 채용을 줄일 수도 있지만 비용 절감과 사업 확장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 산업과 기업, 직무에 따라 노동자가 경험하는 변화도 달라진다.
미국에서 제기된 청년 고용의 변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신입 직원이 담당하던 업무의 성격에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간단한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수정하면서 프로그램의 구조를 익힌다. 고객지원 업무에서는 반복적인 상담과 기록 정리를 통해 고객의 요구와 문제 해결 방식을 배운다. 사무직 신입 직원들도 자료 조사와 문서 작성, 일정 관리, 데이터 정리 등 비교적 정형화된 작업을 수행하며 조직의 업무를 이해한다.
생성형 AI는 이러한 작업의 상당 부분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문서 초안을 작성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며 프로그램 코드를 생성하는 기능은 이미 기업의 일상적인 업무에 들어와 있다. 사람이 처음부터 모든 결과물을 만드는 대신 AI가 작성한 내용을 수정하고 검토하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
기업에서는 생산성과 비용을 고려해 인력 구조를 조정할 수 있다. 숙련된 직원이 AI를 활용해 과거보다 많은 업무를 처리한다면 같은 업무량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신규 채용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한 직원에게 맡겼던 반복적인 작업을 AI가 수행하면서 신입 직원을 선발하고 훈련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최근 AI와 인간의 미래를 다룬 '지식인초대석' 대담에서 신입 채용 감소가 청년층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AI를 활용해 반복적인 개발 업무를 처리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신규 인력은 경력을 쌓을 기회부터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미 직장에서 경험을 축적한 사람과 처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사람의 조건이 달라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경력은 책이나 강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면서 오류를 발견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응하고, 동료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판단력이 형성된다. 같은 업무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동안 작업의 순서를 익히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배운다. 숙련된 노동자가 가진 능력에는 지식뿐 아니라 현장에서 축적한 판단과 경험이 포함돼 있다.
AI가 신입 직원의 단순 업무를 대신하고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면 이러한 경험을 얻을 기회도 감소할 수 있다. 경력자를 선호하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처음 일하는 사람은 경력을 쌓기 어려워지고, 경력이 부족한 청년은 다시 채용에서 불리해지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한국 청년들의 첫 취업에는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7월 발표한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서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뒤 처음 임금근로자로 취업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11.2개월이었다. 대졸 이상은 8.5개월, 고졸 이하는 1년 5.1개월이었다.
재학이나 휴학 기간에 직장 체험 경험이 있는 청년층은 41.1%로 전년보다 2.1%포인트 낮아졌다. 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한 경험이 있는 청년층의 비율도 84.8%로 1.6%포인트 하락했다. 청년들이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직업 경험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교육과 훈련을 거쳐 취업하는 기존의 경로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그동안 대학과 직업훈련기관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청년들은 취업 후 실무를 익히며 전문성을 높여왔다. 프로그래밍이나 사무자동화처럼 비교적 짧은 기간의 교육으로 노동시장 진입을 준비할 수 있었던 분야에서도 AI 활용 능력과 실제 실무 경험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은 사람이 기본적인 코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채용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워졌다. AI가 생성한 코드의 오류를 찾아내고 보안과 성능을 검토하며 실제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프로그램을 완성하려면 소프트웨어 구조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필요하다. 기업이 요구하는 실무 능력의 수준은 높아질 수 있지만 이를 갖추기 위한 첫 취업 기회는 제한될 수 있다.
AI가 신입 직원의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에릭 브리뇰프슨(Erik Brynjolfsson) 등 연구진이 미국 고객지원 업무 종사자 5179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AI 보조 도구 도입 이후 시간당 처리하는 업무량이 평균 14% 증가했다. 경험이 적거나 업무 숙련도가 낮은 직원들의 생산성은 평균 34% 높아졌다. 숙련된 직원의 문제 해결 방식이 AI를 통해 초보 직원에게 전달되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같은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방식과 직원이 더 빨리 배우도록 지원하는 방식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신입 직원이 AI의 제안을 검토하고 실제 업무에 적용하면서 전문성을 높일 수도 있다. 반대로 업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AI가 작성한 결과물만 제출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학습과 경험의 축적은 제한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5년 발표한 연구에서 세계 노동자의 약 4분의 1이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직종에 종사한다고 분석했다. 사무·행정직의 노출도가 높았고 금융과 웹 개발, 전문기술 분야에서도 영향이 확대되고 있었다. 전체 직업이 사라지기보다 직업 내부의 업무와 역할이 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었다.
직업의 변화는 임금과 고용 규모를 넘어 개인이 사회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직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어왔다. 학교 교육과 자격 취득, 취업과 승진은 개인의 성장과 성취를 설명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직업은 경제활동을 위한 수단이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에 참여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학력과 직장, 직위와 연봉은 개인의 능력과 성취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기준으로 활용돼 왔다. 대학 진학과 취업 준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는 이유도 안정적인 소득뿐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미래의 생활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청년에게 첫 직장은 월급을 받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능력이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고, 동료와 관계를 형성하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출발점이다. 일의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배우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경험도 직장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성장 경로가 좁아지면 청년은 소득과 경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사회에 참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도 제한받게 된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독립과 주거 마련, 가족 형성 등 이후의 생활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환경에서는 직업적 능력에 대한 평가 기준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지식을 많이 기억하거나 정해진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제는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검토하고 상황에 맞게 적용하며 결과의 책임을 지는 능력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으로 확대되고 있다.
숙련된 직원에게도 변화가 요구된다. 기존의 경험이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지 못하면 업무 방식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AI를 활용하면 분석과 제작, 문제 해결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더 복잡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청년층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속도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AI 도구에 익숙한 청년이 현장 실습과 실제 업무를 통해 전문성을 축적한다면 기존의 직무 구분과 다른 경력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문제는 기술을 사용할 능력과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반드시 함께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의 채용과 교육 방식도 이러한 변화와 연결된다. 신입 직원에게 반복적인 업무를 맡기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 복잡한 일을 담당하도록 하는 전통적인 훈련 구조에서는 AI가 수행하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입문 단계의 교육 방식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생긴다.
기초 업무를 AI가 처리하는 조직에서는 신입 직원이 결과물의 오류를 검토하고 실제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훈련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 실무 전문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AI의 결과를 비교하고 수정하는 경험도 전문성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도입한 기술을 신규 인력의 교육에 어떻게 활용할지는 기업의 인력 운용 방식과 직접 연결된다.
교육기관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학생들이 AI를 사용해 과제를 빠르게 완성하는 것과 해당 분야의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다르다. 결과물을 제출하는 과정만 평가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자료를 조사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는 과정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교육과 실제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형성하는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노동시장에서는 고용과 소득의 안정성도 중요한 문제다. 업무의 일부가 자동화되더라도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임금과 노동시간, 고용 안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반대로 기술 도입의 이익이 기업과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고 노동자의 소득과 채용 기회가 감소하면 경제적 격차는 확대될 수 있다.
AI 시대의 생존을 개인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기업의 채용 정책과 직업훈련, 사회보장제도, 기술 발전에 따른 이익의 분배 방식이 개인의 경제적 독립에 영향을 미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에게 새로운 기술을 배우라는 조언만 반복해서는 노동시장 진입에 필요한 실제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
노동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은 여전히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직업의 유무와 생산성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능력이 개인의 존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굳어질수록 기술 변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 인정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
AI가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경제적 능력과 존재 가치를 구분하는 문화적·제도적 변화도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면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과 직업을 전환하는 노동자에게도 학습과 사회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는 방향이다.
2026년 9월 한국의 청년 고용률은 44.0%에 머물렀고, 미국에서는 AI 활용도가 높은 직종을 중심으로 신입 근로자의 고용 부진이 관찰되고 있다. 아직 AI가 노동시장의 전체 변화를 결정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업의 채용과 업무 배분, 직업훈련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청년들이 취업 후 배우던 업무를 AI가 대신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경력을 형성하는 첫 단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신규 채용과 실무교육을 줄여 단기적인 비용을 절감한 기업도 장기적으로 필요한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숙련된 노동자가 가진 경험과 판단력 역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형성돼 왔다.
AI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시대에도 전문성은 경험을 통해 축적된다. 기업에는 신입 직원이 성장할 수 있는 채용과 훈련의 경로가 필요하고, 교육기관에는 기술 활용과 실무 경험을 연결하는 교육이 요구된다. 청년에게 첫 직장을 제공하는 일은 당장의 인력을 확보하는 문제를 넘어 미래의 전문인력과 사회구성원을 길러내는 일이다. AI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나는 만큼, 인간이 일하고 배우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기회를 유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