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조건④] 노동보다 자본이 중요해지는 사회…기술 소유가 가르는 새로운 계층

2025년 미국 민간 AI 투자 2859억 달러, 핵심 기술과 인프라 소수 기업에 집중…한국 순자산 상위 10% 점유율 46.1%, AI 생산성의 분배와 경제적 독립·민주주의의 변화

2026-10-30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2025년 미국의 민간 인공지능(AI) 투자는 2859억 달러에 달했다. 전년보다 급증한 투자금은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를 중심으로 집중됐다. 세계적으로도 기업의 AI 관련 투자와 인수합병 규모가 5817억 달러에 이르렀다. 생성형 AI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본의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노동자가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기존의 경제구조에서 AI 모델과 연산시설을 소유한 기업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가 발표한 '2026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민간 AI 투자액은 중국의 약 23배였다. 다만 중국의 정부 주도 투자와 정책금융은 민간 투자 통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두 나라의 전체 투자 규모를 직접 비교하는 수치는 아니다. 같은 해 주목할 만한 주요 AI 모델의 90% 이상은 기업에서 개발됐다. 고성능 AI의 연구와 개발이 대학과 공공연구기관보다 막대한 자본과 연산시설을 확보한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AI 시대, 일과 기술의 미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AI는 이미 생산성을 높이는 산업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고객지원과 소프트웨어 개발, 마케팅 등에서는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고 문서 작성과 분석 시간을 줄이는 효과가 관찰됐다. 기업은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하거나 업무에 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서비스 가격 인하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기업의 이익과 자산가치 상승으로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이 늘어나는 일과 생산으로 발생한 부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는 별개의 경제 문제다. 노동자는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기업의 소유주는 이익과 배당, 주식 가치의 상승을 통해 자산을 늘린다. AI가 사람의 지적 업무를 대신하는 범위를 넓힐수록 노동에 대한 보상과 기술을 소유한 자본에 대한 보상 사이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생성형 AI가 세계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면서 자본수익의 증가는 자산 불평등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기술이 고소득 전문직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활용되면 노동소득 내부의 격차도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충분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고 성과가 폭넓게 분배된다면 다수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2026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생성형 AI 연구 종합보고서에서는 업무별 생산성 향상 효과가 확인됐지만 경제 전반의 대규모 일자리 대체는 아직 제한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AI를 사용한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시간 절감이 실제 임금과 고용 증가로 연결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기술의 효율성이 곧바로 개인의 경제적 풍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과 자산을 통해 얻는 소득의 차이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매달 급여를 받는 노동자는 임금과 생활비의 차액을 저축하고 투자할 수 있다. 이미 상당한 규모의 주식과 기업 지분을 보유한 사람은 기업의 성장에 따라 자산가치가 늘어날 수 있다. 같은 기술 발전을 경험하더라도 자산을 보유한 정도에 따라 경제적 성과를 얻는 방식이 달라진다.

한국의 자산 분포는 이러한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다. 국가데이터처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2025년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순자산은 4억7144만 원이었다. 순자산이 많은 상위 10% 가구가 전체 순자산의 46.1%를 보유했고, 순자산 지니계수는 전년 0.612에서 0.625로 상승했다.

전체 가구의 57.0%는 순자산이 3억 원 미만이었으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가구는 11.8%였다. 자산 규모뿐 아니라 자산을 구성하는 항목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보유 수준은 가구마다 달랐고, 소득이 증가해도 주거비와 부채 상환 부담에 따라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금에는 차이가 발생했다.

한국의 자산 격차가 AI 때문에 형성됐다고 볼 근거는 없다. 부동산 가격과 금융시장, 소득의 차이, 상속과 증여 등 여러 요인이 오랜 기간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이미 자산 보유 수준에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경제에서 AI 산업의 이익이 소유주에게 집중된다면 기존의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AI와 인간의 미래를 다룬 '지식인초대석' 대담에서 범용 인공지능(AGI)이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크게 바꿀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기계가 광범위하게 대체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하락하는 반면 AI 개발과 운영에 필요한 자본의 중요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담에서는 AI 기술과 자본을 소유한 소수가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갖게 되는 '기술 봉건주의(technofeudalism)' 가능성도 제기됐다.

AGI가 실제로 어느 시점에 구현될지, 인간의 노동을 어느 범위까지 대체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20~3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도 현재의 관측 결과가 아닌 미래의 기술적 성취를 전제로 한 가정이다. 모든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극소수만 부를 얻는 사회 역시 이미 도래한 현실은 아니다.

현재의 AI 산업에서는 막대한 자본을 확보한 기업들이 기술 개발과 시장 형성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하려면 전문 연구인력과 대규모 학습자료, 반도체와 서버, 전력과 냉각시설을 갖춰야 한다. 모델 개발이 끝난 뒤에도 이용자의 요청을 처리하려면 연산 비용과 시설 유지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2025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세계 AI 시장 규모가 2023년 1890억 달러에서 2033년 4조8000억 달러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같은 보고서에서는 2022년 기준 100개 기업이 세계 기업 연구개발비의 약 40%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AI 연구와 관련 인프라가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경제권에 집중되면서 기술을 개발하는 국가와 활용에 의존하는 국가 사이의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규모 AI 인프라는 기술 경쟁의 기반이면서 새로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반도체를 확보한 기업은 자체 AI 서비스를 운영할 뿐 아니라 다른 기업에 연산능력과 모델 사용권을 판매할 수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중소기업과 창업자는 이러한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기보다 외부 기업이 제공하는 클라우드와 AI 모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AI를 활용해 사업을 시작하는 비용은 낮아질 수 있지만 사업을 운영하는 동안 필요한 기반 기술에 대해서는 사용료를 지속적으로 지급해야 할 수 있다.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모델 호출과 데이터 처리, 클라우드 운영 비용이 새로운 비용 항목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기업과 외부 서비스를 사용하는 기업의 관계는 시장 경쟁에도 영향을 미친다. AI 모델의 가격과 사용 조건, 데이터 접근 권한을 결정하는 기업은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서비스 제공 조건이 변경되거나 가격이 인상될 경우 외부 모델에 의존하는 사업자의 비용과 수익 구조도 달라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6년 7월 AI 시장의 경쟁구조를 분석하면서 반도체와 데이터, 클라우드 인프라 등 일부 분야에서 시장 집중이 지속될 위험을 지적했다. AI 모델 개발 분야에서는 새로운 기업의 등장과 성능 경쟁, 가격 하락이 나타나고 있지만 핵심 인프라를 확보한 기존 기업의 우위는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시장이 처음부터 소수 기업의 독점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방형 모델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일부 AI 서비스의 이용가격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중소기업과 개인이 고성능 AI를 활용해 과거보다 적은 비용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도 확대됐다.

그럼에도 핵심 반도체와 클라우드, 대규모 학습시설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AI 모델을 활용하는 비용이 낮아지는 변화와 AI 산업의 핵심 자산을 소유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높아지는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기술 이용의 대중화가 산업 소유구조의 분산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경 넘은 '아리랑'의 변주… BTS, 각 나라 문화와 호흡하며 남미 대륙 뒤흔들다 사진=2026. 10.13. @bts_bighit (방탄소년단(BTS)이 진행 중인 대규모 월드투어 'BTS WORLD TOUR 'ARIRANG''이 전 세계 공연 시장에서 차별화된 무대 연출로 관객 반응을 끌어올리고 있다.)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업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예상된다. 생성형 AI는 글과 이미지, 음악과 영상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다. 개인 창작자와 소규모 제작사가 과거에는 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했던 작업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작품과 서비스의 제작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비의 감소가 창작자의 소득 증가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유통하는 플랫폼과 이용자의 관심을 확보하는 채널, 광고와 결제시스템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갈 수도 있다. 제작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줄어들더라도 유통과 추천 알고리즘을 보유한 기업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AI가 대량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환경에서는 창작물의 공급이 빠르게 늘어난다. 이용자가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창작물의 수가 증가할수록 개별 작품이 주목받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 작품의 제작능력과 별개로 이용자에게 작품을 노출하고 유통할 수 있는 권한이 문화적·경제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독립영화 제작자와 음악가, 작가와 시각예술가에게 AI는 제작의 부담을 줄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유통 플랫폼의 수익 배분과 저작권 처리, AI 학습자료의 사용 조건은 창작자의 생계와 직접 연결된다. 기술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인 창작활동에 필요한 소득을 확보하는 일은 별도의 문제로 존재한다.

기술 소유와 노동의 관계는 전통적인 산업에서도 달라질 수 있다. 제조업체가 AI를 이용해 설비 운영을 최적화하고 불량률을 낮추면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의료기관과 금융회사가 AI로 분석 업무를 개선하면 서비스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실제 가격 인하와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는지는 경쟁 환경과 노사관계, 기업의 수익 배분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노동자와 소비자가 얼마나 누리는지에 따라 AI가 경제적 격차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기술을 활용한 기업이 비용을 줄이면서도 고용과 임금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확대하면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성과도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신규 채용을 줄이고 증가한 이익을 주주에게 집중적으로 배분하면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격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인과 그렇지 못한 직장인 사이에서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자신의 전문지식에 AI를 결합해 업무의 범위를 넓히는 사람은 더 높은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개인의 보상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어떤 업무를 평가하고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임금과 승진에 반영하는지에 따라 실제 소득의 차이가 발생한다.

AI가 만든 경제적 성과를 폭넓게 나누기 위한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2024년 생성형 AI의 확산에 대응하는 재정정책을 분석하면서 사회보장제도와 실업 지원, 노동자의 직업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을 강화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노동소득의 비중이 줄어들 가능성에 대비해 자본소득과 기업이익에 대한 과세체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AI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에는 신중한 접근을 권고했다. 자동화에 일률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면 생산성 향상과 기술혁신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자본 소득에 대한 과세를 합리적으로 설계하고 기술 도입으로 발생한 이익이 노동자와 사회에 폭넓게 분배되도록 하는 방안에 무게를 뒀다.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Sam Altman)은 2021년 발표한 'Moore's Law for Everything'에서 AI 발전에 따른 부의 분배 문제를 다뤘다. 노동보다 자본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 대비해 기업과 토지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세수를 국민에게 배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올트먼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시가총액의 2.5%에 해당하는 주식을 기금에 납부하고 민간 소유 토지에도 2.5%의 세금을 부과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를 재원으로 성인 시민들에게 현금과 주식을 배분해 경제성장의 성과를 직접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실제 시행된 제도는 아니지만 AI로 늘어난 부를 노동소득만으로 분배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AI 연산자원의 일부를 시민들에게 배분하자는 '보편적 기본 연산능력(Universal Basic Compute)' 구상도 논의되고 있다.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대신 AI를 활용할 수 있는 연산자원을 제공해 경제활동과 창작, 학습에 이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연산자원에 대한 접근을 경제적 권리로 확대하려는 발상이다.

연산자원을 직접 배분하는 방식에서는 실제 이용과 환산, 관리 비용이 발생한다. 개인이 받은 연산능력을 현금이나 다른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는지, 사용하지 않은 자원을 어떻게 처리할지, AI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이 어떤 조건으로 자원을 제공할지도 정해야 한다. 경제적 지원의 효율성과 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제도적 구상이다.

한국에서는 AI 인프라와 기술 개발에 대한 공공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정부가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연구개발과 산업 활용을 지원하면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해외 기반모델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독자적인 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공공재원이 투입되는 사업에서는 개발 성과와 관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과 시민의 범위도 중요해진다.

국가의 AI 투자 성과가 일부 기업의 수익으로만 귀결된다면 공공재정이 산업 발전에 기여한 정도와 사회 전체가 얻는 혜택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 중소기업과 지역 산업이 필요한 연산자원과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은 공공투자의 성격과 연결된다.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이용권과 연구성과의 개방, 공공서비스의 개선도 함께 고려할 부분이다.

AI 시대의 경제적 독립은 개인이 보유한 자산의 규모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노동소득이 감소하거나 불안정해질 경우 주거비와 교육비, 의료비 등 지속적인 생활비를 감당하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보유한 가구는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일부 비용을 충당할 수 있지만 충분한 자산이 없는 가구는 임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자산을 늘리는 일이 개인의 경제적 안정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투자소득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에는 손실 위험이 있고, 자산을 형성하기 위한 자금 자체도 개인의 소득과 생활비, 기존 재산에 따라 달라진다. 고용과 임금의 불안정을 개인의 자산관리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

기술 봉건주의에 관한 우려는 경제적 격차가 정치적 영향력의 격차로 확대될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AI 기업이 정보 유통과 경제활동의 주요 기반시설을 소유하면 서비스의 이용 조건과 데이터 접근, 콘텐츠 노출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정 기업의 기술을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폭넓게 사용하게 될 경우 기술 공급자의 결정이 사회 여러 분야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커진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투표권은 재산이나 납세액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받거나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치적 권리가 줄어드는 제도도 민주주의의 원칙과 다르다. 경제적 권력의 집중이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로는 투표권의 차등보다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영향력과 정보 유통의 통제, 시장 지배력의 확대에 있다.

대규모 기술기업은 자본과 전문인력,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바탕으로 정책과 산업 규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AI 시스템이 공공행정과 언론, 교육과 문화산업에서 폭넓게 사용될수록 기업이 설정한 기술적 조건과 운영 방침이 사회적 선택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시장 경쟁과 정보 접근의 공정성,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의 책임성은 기술 소유와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문제다.

AI 기업의 시장 지배력에 대응하는 방법은 독점 규제와 공정경쟁 정책, 데이터 이동권, 공공 인프라 투자 등으로 나뉜다. 이용자가 다른 서비스로 이동할 수 있도록 기술적 호환성을 높이고 기업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 소수 기업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다. 공공기관이 기술을 구매할 때 서비스의 안정성과 개인정보 보호, 장기적인 비용을 함께 평가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술의 소유와 접근을 둘러싼 변화는 시민의 일상적인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I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누구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교육과 창작, 정보 활용의 기회가 넓어진다. 반대로 중요한 기능이 높은 사용료를 지불하는 이용자에게 집중되면 개인의 소득과 자산에 따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1000조 원, 반도체 공급 확장 1100조 원 등 총 2100조 원 규모의 국내 투자 구상을 공개하며 SK의 미래 성장축을 ‘지능 인프라’와 ‘메모리 공급망’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사진=2026. 06.29  방송화면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고성능 AI 모델과 전문 데이터베이스, 연구용 연산시설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기업과 개인의 활동 범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대기업은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고가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지만 영세사업자와 개인 창작자는 제한된 비용 안에서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도구의 접근성에서도 경제적 격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기술이 생산을 효율화하면 일부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주거와 의료, 교육처럼 토지와 시설, 전문인력, 제도적 조건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는 AI의 발전만으로 비용이 급격하게 감소한다고 보기 어렵다.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낮아진다는 전망과 생활비가 함께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광범위하게 대체하는 미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재의 노동시장에서는 대규모 일자리 감소보다 직무별 생산성 차이와 신규 채용의 변화가 먼저 관찰되고 있다. 자본에 대한 보상이 노동보다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기술의 발전 수준과 기업의 경쟁, 정책적 대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25년 한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순자산 상위 10%가 전체 순자산의 46.1%를 보유한 현실은 AI 시대의 소득 분배 문제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자산 보유의 차이가 이미 큰 사회에서 새로운 기술의 성장으로 발생한 이익을 일부 소유주에게 집중적으로 배분한다면 노동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통로는 좁아질 수 있다.

AI로 높아진 생산성이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안정, 시민의 공공서비스, 창작자의 정당한 보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기업과 자본에 대한 과세, 기술 인프라의 공공적 활용, 중소기업과 개인의 접근권 확대, 공정한 시장 경쟁은 경제적 성과를 사회 전체가 나누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다.

인간이 일해서 얻는 소득이 생활의 중심인 사회에서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낮아지는 변화는 생존과 존엄의 문제로 연결된다. 기술을 소유한 사람과 사용료를 지불하는 사람,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확대될 경우 경제적 독립의 조건도 달라진다. AI 산업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본과 공공재원이 어떤 경제적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가 노동자와 시민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는 앞으로의 소득 분배와 사회보장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2026년 AI 산업에서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과 활용하는 기업, 자본을 보유한 개인과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개인의 조건이 이미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시장 경쟁을 통해 기술 이용의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임금과 공공서비스, 사회적 보상으로 연결하는 일이 경제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떠올랐다. AI의 경제적 성과를 소수의 자본 소유자가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와 함께 노동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