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조건⑤] AI가 무대 제작에 들어온 시대…창작자의 경험과 예술의 가치
무용·미술·음악·영상 제작에 확산된 생성형 AI…뉴욕 현대미술관 전시와 크리스티 경매, 창작자의 생계·저작권 논쟁 속 인간의 경험과 신체성 재조명
[KtN 임우경기자]무용 작품 한 편을 제작하면서 음악과 영상, 드라마투르그(dramaturg), 기획 업무를 인공지능(AI)에 맡겼다. 무용수를 포함해 20명 안팎의 창작진이 참여하던 작업에서 별도로 채용하지 않은 창작 인력은 다섯 명이었다. 안무가 김혜연은 2025년 12월 녹화된 '지식인초대석' 대담에서 한 시간 분량의 공연을 AI와 함께 제작한 경험을 소개했다.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일부 전문 업무가 이미 생성형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목이다.
김혜연 안무가는 AI가 참여한 제작 과정에서도 기존의 인간 창작자와 협업할 때처럼 장점과 한계가 함께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음악과 영상, 극작과 기획의 일부를 AI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최종 결과를 완성하는 과정에서는 안무가의 판단과 선택이 계속 작용했다. 제작에 투입하는 인력과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창작자의 역할과 공연 제작의 경제적 구조도 달라진 것이다.
무용계에서 AI의 활용은 이미 실제 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혜연 안무가는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사족보행 로봇 '스팟(Spot)'과 함께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후 생성형 AI와 무용을 접목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신체의 움직임과 기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활동은 무용수가 직접 수행하는 동작뿐 아니라 로봇과 AI가 공연의 구성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확대됐다.
전통적인 무용 제작에서는 안무가와 무용수, 작곡가와 영상 제작자, 조명과 무대디자이너, 극작과 기획을 담당하는 인력이 협업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는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작품의 일부를 만들고, 안무가는 서로 다른 결과를 조정해 공연을 완성한다. AI가 음악과 영상, 무대 구성의 초안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러한 협업의 일부가 소프트웨어와 창작자 사이의 작업으로 바뀌고 있다.
2026년 대한무용학회 논문집에 발표된 생성형 AI 기반 현대춤 창작 연구에서는 안무 제작 과정이 프롬프트 생성과 미적 선별, 재구성, 반복적인 피드백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창작자가 처음부터 모든 동작과 표현을 구체화하기보다 AI가 제시한 여러 가능성을 비교하고 선택하면서 결과물을 수정하는 방식이다. 기술이 창작의 일부를 담당할수록 어떤 결과를 선택하고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는 안무가의 판단에도 비중이 실리게 된다.
AI의 활용은 무용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술에서는 이미지와 영상을 생성하고, 음악에서는 작곡과 편곡을 지원하며, 영화와 광고에서는 콘셉트 이미지와 스토리보드, 배경 영상 제작에 사용되고 있다. 출판과 디자인, 게임산업에서도 초안 작성과 편집, 후반 제작에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제작비와 시간을 줄이면서 다양한 시안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은 창작 현장에서 AI가 빠르게 확산되는 중요한 이유다.
기술이 예술의 제작에 참여하는 역사는 오래됐다. 사진기의 등장 이후 회화는 현실의 외형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역할에서 점차 벗어났고, 영화는 촬영과 편집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표현 방식을 만들어 왔다. 전자음악과 컴퓨터 그래픽, 디지털 영상도 기존의 예술 형식을 변화시켰다. 예술가는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면서 표현의 범위를 넓혀 왔다.
생성형 AI는 이미 존재하는 작품과 이미지, 음악과 문장의 특징을 대규모로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한다. 사람이 직접 붓을 움직이거나 악기를 연주하지 않아도 일정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용자가 요구하는 분위기와 색채, 구성에 맞춰 결과를 바꾸는 일도 가능하다. 기술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전문지식의 수준은 도구와 작업에 따라 다르지만, 과거보다 많은 사람이 복잡한 시각·청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2022년 1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미디어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Unsupervised'를 전시했다. 현대미술관이 200여 년에 걸쳐 축적해 온 소장품 관련 데이터를 AI로 분석하고 변형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추상적인 이미지와 소리를 구현한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대형 LED 설치물이 마련됐으며, AI가 생성하는 시각적 형태가 지속적으로 달라지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아나돌은 미술관의 데이터를 기계학습에 활용하면서 기존 작품을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새로운 형상과 움직임으로 변환했다. 작품은 미술관에 축적된 예술의 역사를 기술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도였으며, 관람객은 고정된 이미지를 감상하는 대신 끊임없이 변화하는 디지털 설치물을 경험했다.
'Unsupervised'에서 AI는 작품을 구현하는 주요 기술이지만 전시의 주제와 설치 방식, 사용할 데이터의 범위, 관객이 작품을 접하는 환경은 작가와 제작진의 기획을 통해 구성됐다. 미술관의 소장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시각화할지 결정한 과정까지 작품의 일부였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예술 작품으로 구성한 인간의 작업이 결합된 형태다.
AI 미술은 미술관 전시를 넘어 상업적인 거래시장에도 진입했다.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는 2025년 2월 20일부터 3월 5일까지 AI를 활용한 미술 작품만으로 구성한 경매 'Augmented Intelligence'를 진행했다. 주요 경매회사에서 AI 미술만을 대상으로 개최한 첫 경매로, 레픽 아나돌과 해럴드 코언(Harold Cohen), 홀리 헌던(Holly Herndon) 등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 온 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됐다.
경매 총판매액은 72만8784달러였다. 아나돌의 'Machine Hallucinations - ISS Dreams - A'는 27만7200달러에 낙찰됐다. 디지털 기술과 AI를 활용한 작품이 기존 미술시장의 거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경매 개최를 앞두고 예술가들의 반발도 일어났다. 2025년 2월 10일 무렵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경매 취소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일부 작품의 제작에 사용된 AI 모델이 저작권자의 허락이나 보상 없이 기존 작품을 학습했다는 우려가 핵심이었다. AI 기술을 활용한 미술을 판매하면서 학습에 사용된 원작자의 권리가 충분히 보호되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크리스티 측은 경매에 참여한 작가들이 이미 예술적 활동을 해 온 창작자들이며 AI를 기존 작업을 발전시키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매에 출품된 모든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논쟁은 AI 미술의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기술 개발에 사용된 원작의 권리와 상업적 성과의 분배를 함께 다뤄야 한다는 점을 드러냈다.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과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은 예술가의 창작 의도와 제작 과정,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가받는다. AI가 작품을 만드는 데 활용됐다는 사실만으로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거나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기술을 사용하는 목적과 표현의 독창성,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가치에 대한 논의에서는 작가의 삶과 경험도 중요한 요소다.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1925년 교통사고 이후 평생에 걸쳐 신체적 고통과 여러 차례의 치료를 겪었다. 작품에는 자신의 몸과 정체성, 인간관계, 멕시코의 문화와 개인적인 경험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1944년 제작한 '부러진 기둥(The Broken Column)'에는 갈라진 몸 안에 부서진 기둥이 척추를 대신하고, 피부에는 여러 개의 못이 박힌 자화상이 담겼다. 몸을 지탱하는 보조기와 눈물을 흘리는 얼굴, 메마르고 갈라진 대지가 함께 구성돼 있다. 신체적 고통을 직접 경험한 작가가 자신의 몸을 상징적인 형태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AI는 칼로의 작품을 학습해 유사한 색채와 인물 구성, 상징적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부서진 기둥이나 인체의 상처처럼 기존 작품에 등장한 시각적 요소를 다른 방식으로 결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러진 기둥'이 제작된 역사적 배경과 작가가 실제로 겪은 고통, 자신의 몸을 작품의 주제로 선택한 과정은 이미지의 외형과 구분되는 요소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색채와 구도뿐 아니라 작가의 생애와 제작 당시의 사회적 환경, 작품에 담긴 의미를 함께 받아들인다. 칼로의 작품에 대한 해석도 신체적 고통과 여성의 정체성, 문화적 배경, 개인적인 관계 등 여러 층위에서 이뤄져 왔다. 작품의 형식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이 예술의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김대식 교수도 예술과 AI를 다룬 대담에서 프리다 칼로를 언급하며 지식과 기술만으로 창작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제기했다. AI가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성과를 내더라도 인간의 삶에서 비롯되는 경험과 감정이 예술 창작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AI가 주관적인 경험이나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과학과 철학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생성형 AI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고통과 기쁨을 경험한다는 근거는 확립되지 않았다. 동시에 AI가 생성한 작품에 관람객이 실제 감정을 느끼고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가능성까지 부정할 근거도 없다. 작품을 만든 주체의 경험과 작품을 받아들이는 관객의 경험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용에서는 신체의 경험이 창작과 직접 연결된다. 무용수는 자신의 무게중심과 관절의 움직임, 근육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면서 동작을 수행한다. 같은 안무를 따라 하더라도 신체의 조건과 훈련 과정, 호흡과 리듬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음악과 공간, 다른 무용수의 동작에 반응하며 실제 공연에서 만들어진다.
AI를 이용해 움직임의 순서를 설계하거나 로봇이 일정한 동작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무용수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균형과 피로, 순간적인 반응과 동료 무용수와의 협응은 공연의 구체적인 조건으로 작용한다. 정해진 동작을 정확하게 반복하는 능력과 몸을 통해 관객에게 표현을 전달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다.
김혜연 안무가는 AI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능력을 설명하면서 감각과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체의 색과 재질을 살피고 사람의 목소리와 억양, 움직임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경험이 창작자의 고유한 표현으로 연결된다는 견해였다.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과 함께 자신의 신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간의 신체성이 모든 예술에서 AI보다 우월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디지털 작품에서는 인간이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복잡한 연산과 시각적 변형이 오히려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반면 무용과 연극, 라이브 음악처럼 공연자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예술에서는 실제 신체의 움직임과 목소리, 즉흥적인 반응이 작품의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차이는 중요하다. 녹음된 연주와 실연, 디지털 이미지와 실제 회화, 영상으로 기록된 공연과 공연장에서 경험하는 무대는 서로 다른 감상 조건을 갖는다. 작품이 전달하는 내용과 완성도뿐 아니라 제작 방식과 공연자의 존재, 관람객이 작품을 경험하는 환경이 가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AI를 통해 정교한 연주와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게 되더라도 실제 연주자의 공연과 작가가 직접 제작한 작품에 대한 수요가 사라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인간이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예술적 성취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기술과 예술가가 결합하는 방식, 관객이 작품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창작과 감상이 공존할 가능성이 있다.
상업예술과 순수예술의 구분도 AI 시대에 달라지고 있다. 광고와 홍보영상, 게임과 방송 콘텐츠처럼 제작 목적과 납기가 명확한 분야에서는 생성형 AI를 이용한 비용 절감 효과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완성해야 할 형식과 전달할 메시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반복적인 시안 제작과 수정 업무를 자동화하기 쉽다.
그러나 순수예술에서도 AI의 활용은 활발하다. 미술관의 디지털 설치와 실험적인 음악, 현대무용과 공연예술에서는 기술 자체를 작품의 주제로 삼거나 새로운 창작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예술의 상업적 목적 유무보다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인간과 기술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가 실제 변화를 설명하는 데 더 적합하다.
AI가 제작에 참여하는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존 창작자의 고용과 보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연 한 편에 필요한 영상 제작자와 작곡가, 극작과 기획 담당자의 업무를 일부 자동화할 수 있게 되면 제작사가 고용하는 인원과 외부에 발주하는 작업의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비용 절감은 제작사와 안무가에게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지만 개별 창작자에게는 일거리와 수입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김혜연 안무가가 소개한 제작 경험은 기술이 창작 인력의 배치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 작품에서 다섯 명의 창작자를 별도로 채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공연예술계 전체의 고용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는 AI를 활용한 새로운 제작과 관리 업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을 만들 때 어떤 전문가와 협업하고 어느 업무에 비용을 지급할지 결정하는 기준은 이미 변하고 있다.
음악과 영상산업에서는 AI가 창작자의 소득에 미칠 영향도 주요 논쟁으로 떠올랐다. 유네스코(UNESCO)는 2026년 2월 발표한 '문화창의성 정책 재구성(Re|Shaping Policies for Creativity)' 보고서에서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2028년까지 세계 음악 창작자 수익의 24%, 영상 분야 창작자 수익의 21%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실제로 발생한 수익 감소율이 아니라 AI 생성 콘텐츠가 기존 창작물의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을 반영한 추정치다.
AI가 음악과 영상을 대량으로 제작하면 콘텐츠의 공급은 늘어나지만 개별 창작자가 얻는 수익은 줄어들 수 있다. 제작비가 낮아진 만큼 새로운 창작자가 시장에 진입할 기회는 확대되지만 기존의 작곡가와 연주자, 영상 제작자는 업무와 보수를 둘러싼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 작품을 생산하는 능력과 창작활동을 통해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능력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영상 플랫폼에서는 추천 알고리즘이 이용자에게 노출되는 작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AI로 제작한 콘텐츠가 빠르게 늘어나면 작품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의 영향력도 확대될 수 있다. 제작을 위해 필요한 기술과 관객에게 작품을 전달하는 유통 경로를 확보하는 일이 모두 창작자의 경제적 활동과 연결된다.
창작에 사용된 기존 작품의 권리도 중요한 논쟁 대상이다. 생성형 AI 모델은 대규모 학습자료를 이용해 이미지와 문장, 음악의 특징을 학습한다. 학습에 포함된 자료에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작품과 허락을 받은 자료, 권리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용 조건이 다투어지는 콘텐츠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AI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과 모델의 학습을 위해 기존 저작물을 사용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저작권 문제를 발생시킨다.
한국에서는 2025년 6월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와 '생성형 인공지능 결과물에 의한 저작권 분쟁 예방 안내서'가 마련됐다. 2026년 2월에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도 발간됐다. AI의 활용이 창작물의 권리 보호와 기존 저작물의 학습, 결과물에 의한 권리 침해 등 여러 문제로 나뉘어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 등록에서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중요한 기준이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와 사람이 결과물을 선택하고 배열하거나 직접 수정해 창작적 표현을 더한 경우는 법적으로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인정되는 부분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지만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부분까지 모두 인간의 저작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저작권청도 2025년 1월 발표한 AI 저작권 보고서에서 인간이 충분한 창작적 표현을 결정한 결과물에 저작권 보호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AI에 단순히 명령어를 입력한 사실만으로 저작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이 AI 결과물을 창의적으로 구성하거나 수정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여 부분을 보호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작품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문제와 AI가 학습에 사용한 원작의 권리를 보호하는 문제는 별도로 다뤄진다. AI를 활용해 완성한 작품에 인간의 창작성이 인정되더라도 학습자료의 수집과 이용이 정당했는지는 다른 법률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 기존 작품의 이용 허락과 저작권료, 공정이용의 범위, 결과물의 유사성에 따른 분쟁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계속 논의되고 있다.
한국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2026년 10월 8일 AI 활용 지식재산권 관련 안내서들을 종합 점검했다. 저작권 분야에서는 창작물 등록과 결과물 분쟁 예방, 학습 과정의 공정이용 기준을 다뤘고 특허와 디자인에서도 인간의 실질적인 기여를 중심으로 권리 인정 기준을 정리했다. AI가 창작과 발명의 여러 과정에 참여하더라도 사람의 창작적 기여를 판단하는 제도적 기준을 유지하려는 흐름이다.
저작권 제도와 함께 문화예술 현장의 계약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AI를 활용한 영상과 음악을 공연에 사용하는 경우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 담당한 범위와 결과물의 이용 권한을 계약서에 반영할 수 있다. 외부 창작자의 작품을 학습자료로 사용하거나 기존 저작물의 일부를 변형하는 경우에는 사용 허락과 권리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 결과물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때 발생하는 수익과 책임의 배분도 계약에 영향을 미친다.
작품의 제작 방식을 관객에게 알리는 문제도 논의되고 있다. 인간이 직접 제작한 부분과 AI가 생성한 부분을 구분해 표시하거나 제작 과정에서 사용한 기술을 공개하는 방식이다. 창작자가 AI를 활용한 정도를 단순한 비율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주요 표현을 누가 결정했고 어느 작업에 AI가 사용됐는지는 작품의 이해와 권리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김혜연 안무가는 대담에서 인간이 만든 작품임을 나타내는 별도의 표시가 등장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AI가 창작에 널리 사용될수록 제작 과정과 창작 주체에 관한 정보가 작품의 가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인간의 작업과 AI의 작업을 구분하는 기준은 예술 분야마다 다르게 마련될 수 있다.
무용에서는 안무가와 무용수의 신체적 수행, 음악과 영상의 제작 방식이 함께 고려될 수 있다. 미술에서는 원본 제작과 디지털 생성, 작품의 수정과 설치 과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영화와 방송에서는 시나리오와 연기, 영상 제작과 후반 작업에 참여한 인력의 권리와 업무 범위가 연결된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수행한 다양한 노동과 창작적 선택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문화예술 지원정책에서도 AI 활용에 따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제작비 지원을 받는 공연과 전시에서 AI를 이용해 인건비와 제작비를 줄인 경우 실제 사용한 비용과 창작 인력의 참여 내역은 지원금의 집행 및 정산과 연결된다. 동시에 기술을 활용해 과거에는 제작하기 어려웠던 작품을 선보이는 창작자에게 새로운 지원 기회가 마련될 수도 있다.
창작자들에게는 AI를 사용하는 기술만큼 자신의 표현을 발전시키는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다. 음악가는 악기를 연습하고 공연을 통해 청중의 반응을 경험하며, 무용가는 몸의 움직임과 공간의 관계를 익힌다. 미술가는 재료와 색채, 형태를 다루면서 자신의 표현 방식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경험은 작품의 제작과 선택, 수정 과정에 축적돼 창작자의 전문성을 형성한다.
AI를 활용하면 다양한 표현을 빠르게 시도할 수 있지만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에는 예술가가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작용한다. 같은 기술을 사용하는 창작자라도 어떤 주제를 선택하고 어떤 결과물을 남기는지에 따라 작품은 달라진다. 예술가가 현실에서 경험한 감각과 기억, 사회와 맺어온 관계 역시 작품의 내용과 표현에 반영될 수 있다.
2022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Unsupervised'는 AI를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설치미술을 구현했고, 2025년 크리스티 경매는 AI 미술이 거래시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흐름을 보여줬다. 동시에 기존 작품의 학습과 이용 허락, 창작자의 보상 문제를 둘러싼 반발도 커졌다. 기술이 예술의 제작과 유통에 참여하는 범위가 확대되면서 작품의 가치와 창작자의 생계를 결정하는 조건도 달라지고 있다.
김혜연 안무가가 AI와 함께 제작한 공연에서 다섯 명의 창작자는 별도로 채용되지 않았다. 기존의 협업 인력이 맡았을 업무를 AI로 처리하면서 공연 제작의 방식과 비용 구조가 바뀌었다. 한편 무용수의 신체와 안무가의 선택, 관객이 실제 공연을 경험하는 과정은 작품의 구성에 계속 참여했다.
생성형 AI는 음악과 영상을 만들고 무대의 일부를 설계하며 미술관과 경매시장에도 진입했다. 예술가의 창작적 선택과 신체적 경험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AI가 제작에 참여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창작자의 전문성과 기여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기존 저작물의 권리를 보호하며, 작품의 경제적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문제도 문화예술 현장의 구체적인 현실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