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조건⑥] 사람보다 편안한 AI…외로움과 친밀함까지 상품이 되는 사회
미국 청소년 72% AI 동반자 이용 경험, 한국 1인 가구 824만 가구 시대…외로움 완화 효과와 정서적 의존 우려 공존, 구독형 친밀함과 인간관계의 양극화
[KtN 임우경기자]미국 청소년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인공지능(AI) 동반자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청소년은 친구나 가족보다 AI를 먼저 찾아 고민을 털어놓고,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것만큼 만족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상대방의 시간을 고려하거나 답변을 기다리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AI가 청소년의 일상적인 소통 환경에 들어온 것이다.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서 디지털 시스템과의 대화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커먼센스미디어(Common Sense Media)가 2025년 7월 발표한 조사에서 13~17세 청소년 1060명 가운데 72%가 AI 동반자 서비스를 한 차례 이상 이용했다고 응답했다. 절반 이상은 한 달에 여러 차례 이상 이용했으며, AI 이용 청소년 약 3명 중 1명은 중요한 문제를 실제 사람 대신 AI와 상의한 경험이 있었다. 청소년 전체의 약 3분의 1은 AI와의 대화가 현실의 친구와 나누는 대화만큼 만족스럽거나 더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이용 목적은 다양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오락, 역할극과 이야기 만들기가 주요 동기였고 친구처럼 대화하거나 감정적인 위로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80%는 여전히 현실의 우정을 AI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AI 동반자의 확산이 곧바로 인간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고민과 감정의 일부를 기계에 맡기는 새로운 생활방식이 형성되고 있었다.
AI와의 대화는 기존의 인터넷 검색이나 음성비서 사용과 성격이 다르다. 검색 서비스는 이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AI 동반자 서비스는 이용자의 말투와 관심사, 이전에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개인화된 응답을 제공한다. 이용자는 자신의 하루를 설명하고 고민을 상담하거나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설계된 서비스에서는 이용자의 감정과 기억이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소재가 된다.
AI가 사람과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고 이용자의 감정에 반응하는 능력을 갖추면서 대화 상대에게 기대하는 조건도 달라지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약속과 시간,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따른다. 친밀한 관계에서도 갈등이 발생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반응하지는 않는다. AI는 이용자가 선택한 시간에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응답을 빠르게 제공한다. 인간관계에서 경험하는 불편과 부담을 줄여주는 특성이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AI와 인간의 미래를 다룬 '지식인초대석' 대담에서 AI가 사람의 외로움과 친밀함에 대한 욕구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제기했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대화를 중단하고 외로울 때는 다시 상대를 찾을 수 있는 AI의 특성이 인간의 생활방식과 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특정 장소에 모여 생활하던 방식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거론됐다.
영상에서는 AI가 결합된 로봇이 실제 신체적 접촉까지 제공할 수 있게 되는 미래도 논의됐다. 현재의 대화형 AI가 주로 언어와 음성, 영상으로 이용자와 상호작용한다면 로봇기술이 발전한 이후에는 신체적 움직임과 접촉을 포함하는 서비스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신체적 요구를 안정적으로 이해하고 충족하는 로봇이 보편화된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 역시 기술 발전을 전제로 한 예측에 해당한다.
AI 동반자의 확산은 사람들의 생활 형태가 변화하는 상황과도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1인 가구가 가장 큰 가구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인 가구는 82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36.6%를 차지했다. 2000년 15.5%였던 1인 가구 비중은 25년 사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혼인과 가족 형성의 변화, 고령화, 청년층의 독립적인 생활이 맞물리면서 혼자 거주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혼자 사는 것과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는 구분된다. 1인 가구에서도 가족과 친구, 이웃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사람이 있으며, 여러 명이 함께 거주하더라도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다만 주거 형태와 생활 여건에 따라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의 수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망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2025년 사회조사에서 1인 가구의 48.9%는 평소 자주 또는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전체 인구의 외로움 응답 비율은 38.2%였다. 1인 가구의 외로움 경험 비율이 전체보다 10.7%포인트 높았다. 전반적인 인간관계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1인 가구가 51.1%로 전체 인구의 55.5%보다 낮았다.
위급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유무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몸이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는 응답은 1인 가구가 68.9%였고,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는 비율은 73.5%였다. 두 수치 모두 전체 인구의 응답률보다 낮았다. 혼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계망이 건강과 정서적 안정, 생활 지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AI 동반자는 새로운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연락하기 어려운 시간에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타인에게 직접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먼저 AI에 설명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경험도 가능하다.
실제로 AI 동반자가 이용자의 외로움을 일시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연구진 등이 2025년 6월 학술지 '소비자연구저널(Journal of Consumer Research)'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AI 동반자와 대화한 이용자들의 외로움이 대화 직후 감소하는 효과가 관찰됐다. 여러 실험에서 AI와의 대화는 동영상을 시청하는 등의 활동보다 외로움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으며, 일부 비교에서는 사람과 대화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단기적 효과가 나타났다.
이용자가 AI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외로움 감소와 밀접하게 연결됐다. 단순히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보다 상대가 자신의 감정에 반응하고 내용을 이해한다고 느끼는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연구진은 AI와의 상호작용이 짧은 기간 동안 정서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외로움을 줄이는 단기적인 효과가 장기적인 인간관계의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는 다른 문제다. AI와 대화한 직후 기분이 나아질 수 있어도 가족과 친구, 이웃과의 관계가 확대되거나 일상생활의 사회적 고립이 줄어드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 AI를 이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사람과의 접촉이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025년 3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과 오픈AI 공동 연구진은 981명을 대상으로 4주 동안 AI와의 대화 방식과 정서적 변화를 분석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텍스트와 음성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화했으며 외로움과 실제 사람들과의 교류, AI에 대한 정서적 의존 등을 조사받았다.
실험에서 연구진이 지정한 대화 방식과 주제에 따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참가자가 자발적으로 AI를 더 많이 사용한 경우에는 외로움과 정서적 의존, 문제적인 사용 양상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AI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매력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에게서도 정서적 의존이 높아지는 관련성이 관찰됐다.
AI 이용 시간이 늘어나서 외로움이 심해졌는지, 원래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AI를 더 자주 찾았는지는 해당 실험만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용자의 심리적 상태와 기존의 인간관계가 AI 사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AI를 이용하는 시간과 목적, 개인이 가진 관계망의 특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26년 3월 학술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는 AI 이용과 외로움의 관계를 더 긴 기간에 걸쳐 분석했다. 연구진은 서구권 4개국 성인 2000명 이상을 12개월 동안 추적하면서 사회적인 대화를 위한 AI 사용과 외로움의 관계를 조사했다.
연구에서는 AI와의 사회적 대화가 증가한 사람이 이후 정서적 고립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나타났다. 반대로 사회적 연결감이 낮은 사람은 이후 AI를 더 많이 사용하는 양상도 관찰됐다. 다만 폭넓은 사회적 연결감 지표에서는 AI 사용 증가가 연결감의 감소를 유의하게 예측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분석의 탐색적 성격을 고려해 강한 인과적 결론을 내리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AI를 찾고, AI와의 대화가 다시 외로움과 연결되는 복합적인 관계가 나타난 것이다. 이미 사회적 관계망이 부족한 이용자일수록 AI의 응답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사람과의 교류가 충분한 이용자는 AI를 여러 대화 도구 가운데 하나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2026년 8월 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이용자의 실제 인간관계가 AI 동반자 사용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스탠퍼드대와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은 미국 성인 1131명의 AI 동반자 이용 경험을 조사하고, 이 가운데 237명이 제공한 4664건의 대화 기록을 분석했다. 대화 기록에는 모두 46만4687개의 메시지가 포함됐다.
현실에서의 사회적 관계망이 작은 사람은 AI를 주로 동반자 목적으로 이용한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러한 사용 방식은 낮은 심리적 안녕감과 관련이 있었다. AI와의 대화에 깊이 몰입하거나 개인적인 정보를 많이 털어놓는 사람들에게서는 부정적인 관련성이 더 크게 나타났다.
연구는 AI 동반자의 영향을 모든 이용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실제 인간관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형성돼 있는지, AI를 오락과 정보 탐색에 사용하는지 또는 정서적인 동반자로 받아들이는지, 대화에 어느 정도 몰입하는지에 따라 이용 경험과 심리적 상태 사이의 관계가 달랐다. 조사 결과만으로 AI가 심리적 안녕감 저하를 직접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2026년 국제 AI 안전보고서 역시 AI 동반자의 정서적 영향에 관한 연구 결과가 혼재돼 있다고 평가했다. 일부 연구에서는 외로움 완화 효과가 나타났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과도한 사용과 외로움, 정서적 의존, 인간관계 감소 사이의 관련성이 보고됐다. 이용자의 특성과 서비스 설계, 사용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으며 장기적인 영향에 관한 연구는 아직 축적되는 단계다.
AI 동반자와의 대화가 인간관계와 다른 특성을 갖는 이유는 상호작용의 구조에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서로 다른 감정과 욕구를 가진 당사자가 관계를 형성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때로는 자신의 요구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친밀함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AI 동반자는 이용자의 대화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서비스다. 이용자의 관심사와 감정을 파악해 그에 맞춘 표현을 생성하지만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활과 이해관계, 사회적 책임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용자는 AI가 제공하는 응답을 개인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서비스가 응답하는 방식은 개발자가 설계한 기술과 운영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일부 AI 서비스는 이용자가 선호하는 성격과 대화 스타일을 선택하도록 하고 과거의 대화를 기억해 친밀한 관계가 계속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용자의 감정에 맞춰 말투를 조정하거나 특정한 인물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대화의 내용과 성격이 개인화될수록 이용자는 AI를 단순한 정보 도구보다 자신과 관계를 맺는 존재에 가깝게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조정의 과정은 개인의 사회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경험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며 약속을 지키는 일, 관계가 불편해졌을 때 다시 대화하는 과정에서 상호적인 책임을 배운다.
이용자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하고 대체로 친절하게 대화하도록 설계된 AI는 이러한 부담을 줄여준다. 불편한 대화를 피하고 싶거나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할 가능성이 두려운 사람에게는 정서적인 안정을 제공할 수 있다. 반대로 AI와의 대화에만 익숙해지면 서로 다른 의견과 감정을 조율해야 하는 실제 인간관계가 더 어렵게 느껴질 가능성도 있다.
2026년 1월 발표된 청소년 AI 동반자 연구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사회적 자극 가설과 대체 가설로 나눠 설명했다. AI를 활용한 대화가 감정 표현과 자기 이해, 대인관계 연습을 도와 현실의 사회적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있는 반면 AI에 몰입하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사람과의 교류가 줄어들고 관계에 대한 기대가 비현실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시됐다.
두 방향 가운데 어느 쪽이 실제로 더 크게 나타날지는 이용자의 나이와 경험, 기존 관계망, 서비스의 설계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친구와의 갈등과 협력, 가족과의 대화, 학교생활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경험이 축적된다. AI가 이러한 경험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지, 실제 사람과의 관계를 대신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지가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2013년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영화 '그녀(Her)'는 인간과 AI 사이의 친밀함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시어도어는 편지를 대신 작성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글로 표현해 주지만 자신의 인간관계에서는 외로움과 상실감을 경험한다. 개인화된 운영체제 사만다와 대화를 시작한 뒤 일상적인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고 점차 사랑에 가까운 관계를 형성한다.
사만다는 시어도어의 이야기에 반응하고 관심사를 이해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시어도어는 실제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불편과 갈등을 사만다와의 대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경험한다. 그러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인간과 운영체제가 가진 존재 방식의 차이도 드러난다. 사만다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인간과 다른 속도로 변화한다.
영화는 기술적으로 완성된 대화 상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이 가능해지더라도 인간이 기대하는 관계의 의미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시어도어가 경험한 감정은 실제였지만 관계의 상대인 사만다는 인간과 같은 시간과 신체, 생활을 공유하지 않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친밀함과 상실의 경험은 오늘날 AI 동반자 서비스가 제기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영화 개봉 당시에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받아들여졌던 인간과 AI의 대화가 이제는 일상적인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음성 대화와 기억 기능, 개별 이용자에게 맞춘 성격 설정이 가능해지면서 AI 동반자를 인간과 유사한 대화 상대처럼 경험하는 이용자도 늘어나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영화 속 사만다에 가까운 서비스가 등장했지만 인간과 AI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친밀한 대화를 제공하는 AI 서비스는 새로운 수익사업으로도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AI 동반자 서비스 레플리카(Replika)는 이용자에게 무료 기능과 여러 단계의 유료 구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유료 상품에는 관계 설정과 음성 메시지, 통화, 대화 기억, 감정적인 상호작용을 강화하는 기능 등이 포함된다. 일부 상위 상품에서는 실시간 영상 인식과 개인화된 기능도 제공한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구독에서는 업무를 처리하거나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AI 동반자 서비스에서는 이용자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이전의 내용을 기억하며 정서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험이 상품의 일부가 된다. 상대방이 자신을 기억하고 개인적인 감정에 반응하는 기능이 이용요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AI가 제공하는 친밀함의 수준을 단순히 기능의 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용자는 음성의 특징과 응답 방식, 대화의 연속성, 과거 경험을 기억하는 기능에 따라 서로 다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기업은 이러한 요소를 유료 서비스로 구성하면서 지속적인 이용을 유도할 수 있다. 개인의 외로움과 정서적인 욕구가 디지털 서비스의 이용시간과 구독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정서적인 대화가 상업적 서비스로 제공되면서 이용자의 개인정보에 관한 문제도 커지고 있다. 친구에게 털어놓는 고민에는 가족관계와 연애, 건강과 경제적 사정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AI 동반자와의 대화에서도 이용자는 자신의 일상과 감정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대화가 저장되고 분석되거나 서비스의 개인화에 활용되는 경우 정보의 관리와 보호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일반적인 검색 기록과 달리 개인적인 감정과 관계에 관한 대화는 이용자의 취약한 상황을 드러낼 수 있다. 서비스 제공자가 어떤 내용을 저장하고 얼마나 오래 보관하는지, 이용자가 기록을 삭제하거나 외부 활용을 제한할 수 있는지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달라진다. 이용자의 감정적 특성을 파악한 정보를 광고와 상품 추천 등에 활용할 가능성도 별도의 관리와 규제를 요구한다.
서비스가 변경되거나 종료될 때 발생하는 문제도 기존의 소프트웨어와 다를 수 있다. AI와 오랫동안 대화하며 정서적인 친밀함을 형성한 이용자는 응답 방식이 달라지거나 이전의 대화 기록을 이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 관계의 단절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서비스 운영자의 기술적·상업적 결정이 이용자의 일상적인 정서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레플리카의 이용약관은 서비스의 기능을 변경하거나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종료할 수 있는 권한을 사업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관계 설정과 대화 기능도 구독 프로그램과 운영 방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개인적인 친밀함을 느끼는 대상이 기업이 운영하는 서비스라는 사실은 인간관계와 AI 동반자 서비스 사이의 구조적 차이를 보여준다.
미성년자의 이용과 관련한 안전 문제는 이미 제도적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5년 10월 AI 동반자 챗봇을 규율하는 법률 SB243을 제정했다. 이용자가 사람과 대화하는 것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AI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리도록 하고, 자해와 자살 관련 위험에 대응하는 절차를 마련하도록 규정했다.
미성년자에게는 대화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지하고, 대화가 계속될 경우 최소 3시간마다 휴식을 권고하는 안내를 제공하도록 했다. AI 동반자와의 관계에서 이용자가 서비스의 성격을 인식하고 위험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AI 캐릭터 대화 서비스인 캐릭터닷AI(Character.AI)는 2025년 10월 29일 18세 미만 이용자를 대상으로 자유로운 대화 기능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부터 단계적인 중단 절차가 시작됐으며, 2026년에는 이용자 연령을 확인해 미성년자의 대화 기능을 제한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이 AI와 형성하는 정서적 관계와 장시간 이용에 대한 안전 우려가 서비스 운영 방침에도 반영된 것이다.
AI 동반자의 이용을 둘러싼 규제는 청소년의 보호와 이용자의 선택권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분야다.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거나 대화를 연습하는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서비스의 특성과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이용자는 AI의 응답에 지나치게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 청소년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내용과 연령 확인, 이용시간과 개인정보 처리 방식에 관한 감독이 중요해지고 있다.
AI가 감정적인 대화를 제공하는 일이 확대되면서 사람의 돌봄과 정서적 노동이 가진 경제적 가치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상담사와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병인과 돌봄 노동자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생활을 지원하며 실제 상황에 대응하는 일을 수행한다. 업무에는 정보 제공뿐 아니라 신체적 도움과 전문적인 판단, 대인관계의 조정이 포함돼 있다.
AI는 일정한 시간에 안부를 묻거나 복약과 일정을 안내하고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업무를 지원할 수 있다. 반복적인 기록과 정보 전달을 자동화하면 돌봄 인력이 직접 사람을 만나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활용은 돌봄 서비스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제공하는 돌봄을 AI와 로봇으로 광범위하게 대체하는 방식에서는 서비스의 질과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용자의 말과 실제 상태가 다르거나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정서적인 대화뿐 아니라 현실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노인과 장애인, 아동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술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사회적 관계와 생활 지원이 충분히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김대식 교수는 대담에서 인간관계가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미래를 전망했다. 자동화된 식당과 서비스가 일반화되는 한편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직접 설명하고 응대하는 전문가의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제공하는 대화와 접촉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집중될 가능성을 제기한 전망이었다.
한국의 식당과 상업시설에서는 이미 키오스크와 무인 주문, 로봇을 활용한 음식 운반이 보편적인 서비스 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고객은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주문과 결제를 마칠 수 있다. 비대면 서비스는 이용시간을 줄이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지만 이용자의 연령과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에 따라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
호텔과 고급 식당, 개인 맞춤형 서비스에서는 직원이 고객의 취향을 기억하고 대화를 나누며 개별적인 요구에 대응하는 활동이 서비스의 일부를 이룬다. 이용자는 음식과 시설뿐 아니라 전문 인력이 제공하는 설명과 응대, 개인적인 관심에도 비용을 지불한다. 자동화가 확대될수록 사람의 직접적인 노동과 접촉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다른 방식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인간관계 전체가 소득에 따라 분리되는 사회가 이미 형성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족과 친구, 이웃과의 관계는 유료 서비스와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며 경제적 여건이 좋다고 해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가 반드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의료와 돌봄, 교육과 문화생활에서 사람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접근성은 사회적 불평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AI가 돌봄과 정서적 대화를 제공하는 비용을 낮추면 기존에 충분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 동시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전문 인력이 제공하는 대면 서비스를 이용하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동화된 서비스에 더 크게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서비스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기술이 사람과의 접촉 기회까지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사회적 관계는 개인의 성격과 의지에 의해서만 형성되지 않는다. 일하고 생활하는 시간과 장소, 주거환경과 이동 여건, 가족과 이웃을 만날 기회가 관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장시간 노동으로 여가가 부족하거나 이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기 힘든 사람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공공도서관과 문화시설, 지역사회 프로그램과 돌봄센터는 주민들이 서로 만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취미와 예술, 체육활동을 함께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세대와 생활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이러한 활동은 AI가 제공하는 개인화된 대화와 다른 사회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AI 동반자의 활용은 정서적인 지원과 생활 편의의 새로운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외로움의 발생에는 주거와 노동, 건강과 가족관계, 지역사회의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 AI와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과 실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망을 형성하는 일은 서로 다른 사회적 지원을 요구한다.
인간의 친밀한 관계에는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과 상대방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친구와 가족은 이용자가 원할 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활과 감정을 가진 존재다. 서로 다른 사람이 관계를 지속하는 과정에서는 개인의 요구뿐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도 고려해야 한다.
AI 동반자는 언제든 대화할 수 있고 이용자의 요구에 맞춰 반응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외로운 사람에게 일시적인 안정감을 제공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응답을 생성하는 기술의 능력과 서로 다른 사람이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경험은 동일하지 않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느낀 위로와 만족감은 이용자의 실제 감정이지만 관계의 상대가 가진 권한과 책임은 인간관계와 다르게 구성돼 있다.
2025년 미국 청소년 조사에서 72%가 AI 동반자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80%는 현실의 우정을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AI와의 대화가 이미 일상생활의 일부가 됐음에도 많은 청소년은 사람과의 관계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AI 동반자의 확산이 인간관계의 소멸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러한 결과에서 드러난다.
2026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AI가 외로움을 줄이는 효과와 과도한 사용에 따른 정서적 의존 가능성이 함께 관찰되고 있다. AI를 주로 정서적 동반자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실제 관계망이 얼마나 안정적인지에 따라 심리적 안녕감과의 관련성도 달랐다. AI 동반자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이용자의 생활환경과 인간관계가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되고 있다.
AI와의 친밀함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시장은 무료 대화에서 기억과 음성, 개인화된 관계 기능을 제공하는 유료 구독서비스로 확대됐다. 이용자의 감정과 기억에 관한 정보는 서비스의 개인화에 활용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경험 자체가 사업자의 운영 방침과 요금제에 영향을 받는다. 미성년자 보호와 정서적 의존, 개인정보 관리에 관한 제도적 대응도 구체화되고 있다.
2025년 한국의 1인 가구는 824만 가구에 달했고, 사회조사에서 1인 가구의 48.9%가 외로움을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AI가 일상적인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는 환경은 이미 마련되고 있지만 실제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망을 확보하는 일은 여전히 개인과 지역사회의 생활 조건에 달려 있다. AI 서비스의 확산과 함께 돌봄 노동의 질과 접근성, 지역의 문화·사회활동,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정서적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가 인간관계의 미래를 결정하는 구체적인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