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조건⑦] 운전하지 않는 인간, 일하는 로봇…도시와 주거의 변화
미국 웨이모 주간 자율주행 50만 건 넘어, 서울 강남도 심야택시 19대 운행…주차장·주거·배송체계 재편 가능성 속 이동권과 생활공간의 새로운 변화
[KtN 임우경기자]2026년 8월 서울 강남의 심야 자율주행택시가 7대에서 19대로 늘어났다. 이용자는 카카오T에서 차량을 호출하고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운전석에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시험운전자가 탑승하지만 주행의 상당 부분은 자율주행 시스템이 담당한다. 2024년 9월 시범운행을 시작한 뒤 올해 4월 유료 서비스로 전환됐으며, 7월 말까지 누적 탑승 건수는 1만5140건을 기록했다. 자동차 운전이 사람의 노동에서 기계가 수행하는 업무로 옮겨가는 변화가 한국의 도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는 자율주행택시가 이미 상용 교통수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알파벳 계열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Waymo)는 2026년 9월 기준 매주 50만 건 이상의 유료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피닉스 등에서 시작된 서비스는 미국의 여러 도시로 확대됐으며, 9월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운전자가 없는 자동차의 등장은 교통수단의 자동화를 넘어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의 쓰임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는다면 자동차를 소유하고 주차하는 방식부터 이동 중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 도로와 건물의 관계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형성된 현대 도시가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자동차는 20세기 도시의 구조를 형성한 핵심적인 교통수단이었다. 도로는 자동차의 이동을 중심으로 확장됐고, 주거단지와 상업시설에는 대규모 주차장이 들어섰다. 도심의 건물은 이용자가 차량을 가지고 방문한다는 전제 아래 주차 공간을 확보해 왔다. 주거지의 입지와 상업시설의 접근성, 개인의 출퇴근 시간에도 자동차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자율주행차는 자동차를 사용하는 기존의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운전자가 직접 차량을 조작할 필요가 줄어들면 이동 중 독서와 업무, 휴식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차량이 다른 이용자를 태우러 이동하거나 별도의 주차시설을 찾아갈 수도 있다. 이러한 기능은 자동차의 보유와 이용, 주차 공간의 관계를 바꾸는 기술적 조건이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와 건축가 유현준은 AI와 도시의 미래를 다룬 '지식인초대석' 대담에서 자율주행 기술이 도시의 건축과 생활방식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유현준 건축가는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면 주차장의 상당 부분을 다른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재의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자동차를 세워두기 위해 사용하는 공간의 일부를 주거와 상업, 시민의 활동을 위한 시설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주차장은 건축과 생활환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설이다. 공동주택에는 지하주차장과 차량 진출입로, 승강기와 연결되는 이동 동선이 마련된다. 주차시설의 규모와 구조는 건축비와 토지 이용, 입주민의 생활 편의에 영향을 준다. 차량의 보유대수와 주차 수요가 달라지면 공동주택의 설계에서도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목적지에 사람을 내려준 뒤 별도의 장소로 이동한다면 상업시설과 업무지구의 주차 수요는 줄어들 여지가 있다. 특히 이용자가 차량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자율주행 서비스가 확대되면 한 대의 자동차가 하루 동안 여러 사람을 운송할 수 있다. 같은 이동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차량과 주차 공간의 규모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2026년 2월 국제학술지 'IEEE 지능형 교통시스템 회보(IEEE Transactions on Intelligent Transportation Systems)'에 게재된 연구는 공유 자율주행차의 보급에 따른 주차 수요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진이 구축한 시뮬레이션에서는 특정 조건에서 주차 수요가 약 80%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도심에서 차량을 장시간 세워둘 필요가 줄어들면서 주차 수요가 외곽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관찰됐다.
연구는 동시에 자율주행차의 빈차 운행이 늘어날 경우 전체 주행거리가 상당히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승객을 내려준 차량이 다음 이용자를 찾아 이동하거나 주차비를 피하기 위해 도로를 계속 주행하면 기존의 주차 수요가 교통량 증가로 전환될 수 있다. 주차 공간을 줄이는 효과와 도로의 혼잡을 늘리는 효과가 함께 나타난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도입됐다고 해서 실제 도시의 주차장이 연구에서 제시한 비율만큼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차량을 개인이 소유하는지, 공동으로 이용하는지, 이용료와 주차비를 어떻게 부과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이 계속 집 근처에 차량을 세워둔다면 자율주행 기능이 추가되더라도 주차 수요는 크게 줄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공유 자율주행차가 대중교통과 연계돼 널리 이용되면 주차시설의 일부를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계획을 검토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율주행차의 기술 수준뿐 아니라 도시의 교통정책과 주차시설 운영, 주민의 자동차 소유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주차장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전망을 모든 도시의 미래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2026년 9월 국제학술지 '교통연구 B(Transportation Research Part B)'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자율주행차의 원격 주차 기능이 도심의 토지 이용 효율을 높일 가능성을 분석했다. 자율주행차가 승객을 목적지에 내려준 뒤 다른 주차시설로 이동할 수 있다면 도심에서 필요한 주차 공간의 위치와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주차시설의 재배치는 도시의 토지 이용과 교통량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도심에서 주차장을 줄이더라도 차량을 외곽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교통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도로의 정체와 에너지 사용, 주차시설 운영비가 달라질 수 있어 교통과 건축을 분리해 판단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주차장 자체의 운영 방식을 바꾸는 기술도 제도화 단계에 들어섰다. 국토교통부는 2026년 3월 차량을 맡기면 로봇이 자동으로 이동시켜 주차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 규정 개정안을 입법·행정예고했다. 차량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사람이 주차 구역까지 직접 이동할 필요를 낮추는 기술이다.
주차로봇은 자동차가 스스로 도로를 주행하는 기술과는 다르다. 주차장 내부의 정해진 환경에서 차량을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사람의 승하차 공간과 차량을 보관하는 공간을 구분할 수 있어 기존 주차시설의 설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차 공간이 줄어든 도시는 보행자와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공간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건물 주변과 도로변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던 일부 면적을 보행로와 녹지, 휴식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다. 상업시설 앞에 넓은 주차장이 필요한 구조가 달라지면 건물과 보행로의 연결 방식도 변화할 수 있다.
다만 자율주행차가 이용자를 내려주는 승하차 공간은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 도로변에서 차량이 정차하고 다시 출발하는 과정에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버스와 일반 자동차의 이동이 함께 이뤄진다. 승하차 시설이 부족하면 주차 수요가 줄어드는 대신 도로변의 일시적인 정차와 혼잡이 증가할 수 있다.
도심의 자율주행 교통체계에서는 주차시설보다 승하차 공간의 배치가 중요해질 수 있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병원과 학교, 상업시설 등 사람들이 자주 이동하는 장소에는 차량이 안전하게 승객을 태우고 내릴 수 있는 구역이 필요하다. 도로와 보도의 연결, 횡단보도의 위치,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시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은 자율주행차의 보급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운전이 어려운 고령자와 장애인에게 자율주행 서비스는 새로운 이동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차량을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이용자가 독립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웨이모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차량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완전 자율주행 차량과는 별도로 운전자가 탑승하는 접근성 지원 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휠체어를 고정하거나 승하차를 돕는 작업에는 실제 인력이 참여한다. 운전의 자동화와 승객의 신체적 이동 지원이 서로 다른 기술과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이동서비스에서는 차량의 출입구 높이와 탑승 공간, 호출 기기의 접근성, 긴급 상황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 AI가 차량을 안전하게 운전하더라도 이용자가 자동차에 탑승하고 목적지에서 건물 안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는 별도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교통기술의 발전이 실제 이동권의 확대로 연결되려면 도시의 보행환경과 건물의 접근성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
서울의 자율주행 정책도 이러한 생활 편의의 확대와 연결돼 있다. 강남 심야 자율주행택시는 평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제한된 구역에서 운행한다. 2026년 4월 유료화 이후 7월 말까지 6176건의 탑승이 이뤄졌으며, 서울시는 이용 수요와 안전성을 고려해 차량을 19대로 늘렸다.
서울시는 상암 지역에 운전자가 없는 레벨4 자율주행택시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레벨4는 특정한 도로와 기상 등 정해진 운행 조건 안에서 시스템이 모든 운전 업무를 담당하는 단계다. 어떤 도로와 환경에서도 주행할 수 있는 레벨5와는 구분된다. 강남 심야 자율주행택시는 안전을 위해 시험운전자가 동승하는 서비스로, 운전자 없이 상용 운행하는 미국의 일부 로보택시와도 운영 조건이 다르다.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 이동 중 활동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직접 운전할 필요가 줄어든 사람은 이동시간을 휴식과 독서, 업무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장거리 이동이 잦은 직장인은 차 안에서 회의나 자료 검토를 수행할 수 있고, 가족 단위 이용자는 이동 중 서로 대화하거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
자동차 내부의 설계 역시 운전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 방식에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운전석과 조작장치의 비중이 낮아지면 승객의 편의와 안전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다만 실제 도로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급제동, 비상 상황에 대비해야 하므로 자동차의 좌석과 안전장치를 임의로 배치할 수는 없다. 이동 중 업무와 휴식을 지원하는 설계는 차량의 안전성과 함께 발전해야 한다.
주거지의 위치를 선택하는 기준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출퇴근 시간의 일부를 다른 활동에 사용할 수 있다면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도심의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기보다 외곽 지역에서 더 넓은 주택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 기술이 주택 가격을 낮추거나 도시의 인구 분산을 자동으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도심에는 직장과 문화시설, 의료와 교육,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집중돼 있다. 자율주행차가 이동의 부담을 줄이더라도 도심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려는 수요가 유지될 수 있다.
장거리 통근이 편리해지면 오히려 도시 외곽의 개발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더 먼 지역에서 출퇴근할 수 있게 되면서 이동거리가 증가하고 도로 이용량이 늘어날 수 있다. 교통기술의 발전으로 이동 비용이 낮아지면 이용자가 이동 횟수나 거리를 늘리는 현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자율주행차의 보급이 도시의 환경과 주거비에 미치는 영향은 토지 이용과 대중교통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대담에서 자율주행차의 보급이 도시의 공간을 다시 배치할 가능성을 논의했다. 자동차를 주차하기 위해 사용하던 면적의 일부가 줄어들면 건축과 도시설계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마련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김대식 교수는 이동과 생활의 자동화가 확대된 이후 도시의 데이터 처리시설과 기술 인프라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AI의 보급은 데이터센터와 통신시설, 전력 공급시설의 확충을 요구한다.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하는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은 실시간 응답이 중요한 서비스에서 활용될 수 있다. 자율주행과 로봇, 스마트 기기의 사용이 증가하면 도시의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수요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지하주차장을 데이터센터 등 다른 시설로 전환하는 구상은 건축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다. 데이터센터에는 서버의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와 전력 공급, 냉각과 환기, 소방·방재, 통신시설이 필요하다. 자동차 주차를 목적으로 설계된 공간을 그대로 대규모 연산시설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차 수요가 감소해 공간이 남더라도 시설의 전환은 건물의 구조와 안전 기준, 경제적 비용에 따라 결정된다.
AI의 도시적 확장은 도로와 건축물뿐 아니라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5년 9월 메타(Meta)는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스마트 안경 'Meta Ray-Ban Display'를 출시했다. 카메라와 마이크, 스피커에 더해 안경 렌즈 한쪽에 정보를 표시하는 기능을 갖춘 제품이다. 손목에 착용하는 신호 인식 장치를 통해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일부 기능을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스마트폰에서는 이용자가 기기를 꺼내 검색하거나 화면을 조작하면서 정보를 확인한다. 스마트 안경은 일상적인 시야 안에 정보를 표시하거나 음성으로 안내할 수 있다. 길을 걷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동안 필요한 정보를 얻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지 않고도 일정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이 상용 제품으로 등장했다.
김대식 교수는 대담에서 스마트 안경을 비롯한 새로운 기기가 AI 시대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용자가 바라보는 환경을 AI가 함께 인식하면 검색 기록을 기반으로 정보를 제공하던 기존 서비스보다 일상적인 상황에 맞춘 지원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스마트 안경의 카메라와 AI 기능은 이동과 일상생활에서 여러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낯선 길을 걸을 때 주변 정보를 확인하거나 외국어로 된 표지판을 번역하고, 방문한 장소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일상적인 시야에 정보가 결합되면서 사람의 감각과 디지털 기술 사이의 관계도 변화한다.
이러한 기능은 시각과 청각에 제약이 있는 사람의 정보 접근을 돕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주변 환경을 음성으로 설명하거나 들리는 말을 자막으로 제공하는 기능은 일상적인 소통과 이동을 지원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이용환경과 장애 유형에 따라 필요한 기능이 다르므로 기술의 접근성과 정확성, 사용자의 선택권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스마트 안경이 이용자의 시야와 주변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인식하는 환경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거리를 걷는 사람이나 카페에 앉은 손님, 공공시설의 이용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스마트 기기에 촬영되거나 분석되는 사실을 알기 어려울 수 있다. AI가 주변 환경을 이해하는 능력이 높아질수록 이용자뿐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의 정보도 기술적 처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의 기억과 생활 경험이 디지털 기록으로 축적되는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과거에는 사진을 촬영하거나 메모를 작성해야 특정한 경험을 기록할 수 있었다. 스마트 안경과 AI가 결합되면 일상적인 이동과 대화, 주변 환경에 관한 정보를 더 쉽게 저장하고 다시 찾을 수 있다. 기술을 활용한 기억의 확장은 개인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기록과 보관, 삭제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중요해진다.
AI가 도시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발전하더라도 이용자가 실제 공간을 경험하는 과정은 계속된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사람마다 주목하는 건물과 소리, 냄새와 움직임이 다르다. 디지털 안내는 주변 환경에 관한 정보를 보완할 수 있지만 개인이 특정한 장소에서 느끼는 감각과 경험을 모두 대신하지는 않는다.
생활공간의 자동화는 집 안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LG전자는 2026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가정용 로봇 'LG 클로이드(LG CLOiD)'를 공개했다. 로봇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오븐에 음식을 넣는 동작, 세탁을 시작하고 수건을 개켜 정리하는 작업 등을 시연했다. 사람의 가사노동을 줄이기 위해 AI와 로봇, 가전제품을 결합한 기술이다.
클로이드는 양팔과 다섯 손가락을 갖춘 손을 사용해 물건을 다루며, 바퀴를 이용해 집 안을 이동하도록 설계됐다.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연결된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기능도 갖췄다. 전시장에서 공개된 기술 시연은 가정용 로봇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일반 가정에서 모든 가사노동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로봇이 보편화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이 생활하는 집은 공장과 다른 환경을 갖고 있다. 가구의 배치와 물건의 크기, 바닥의 상태가 주택마다 다르며 어린이와 반려동물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조리와 세탁, 청소 같은 활동에는 물건을 정확하게 집거나 옮기는 능력뿐 아니라 주변 사람의 안전을 고려하는 판단이 필요하다.
AI가 물리적인 환경을 이해하고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술은 피지컬 AI(Physical AI)로 불린다. 언어와 이미지 등 디지털 정보를 처리하는 생성형 AI에서 나아가 현실의 물체와 공간을 인식하고 행동을 수행하는 기술이다. 자동차의 자율주행과 산업용 로봇, 가정용 로봇의 발전이 이러한 흐름과 연결돼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는 2026년 1월 CES에서 새로운 전기식 휴머노이드 로봇 'Atlas'를 선보였다. 이어 9월에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 로봇 훈련시설을 열고 실제 자동차 제조환경에서 부품의 운반과 배열 등 작업을 학습하도록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8년부터 Atlas를 자동차 제조현장의 일부 업무에 투입하고 2030년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는 계획을 제시했다. 반복적인 동작과 무거운 물건의 취급 등 작업을 로봇이 담당하도록 하는 방향이다. 산업용 휴머노이드의 도입도 생산현장의 실제 작업에 맞춰 훈련하고 안전성을 검증하는 단계부터 진행되고 있다.
산업현장에 도입되는 로봇과 가정용 로봇은 요구되는 조건이 다르다. 공장에서는 작업 구역과 물체의 종류, 작업의 순서를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가정에서는 공간이 작고 생활용품의 종류가 다양하며 사람의 동선도 계속 바뀐다. 로봇이 실제 주거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업하려면 물체를 다루는 능력과 함께 안전성과 유지관리, 수리와 운영 비용을 충족해야 한다.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되면 주택의 설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로봇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의 폭과 바닥의 높이 차이, 가구의 배치, 전원 공급과 충전 위치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봇이 세탁기와 건조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사용하도록 설계된 주택에서는 기기의 위치와 접근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유현준 건축가는 대담에서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로봇이 보급되면 생활공간의 동선이 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봇이 사람과 같은 공간을 사용하면서도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구조가 중요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주택에서는 로봇이 이동하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러한 전망은 주거문화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과거 일부 대규모 주택에서는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사람이 이동하는 통로와 거주자의 생활공간을 구분해 설계하기도 했다. 로봇을 위한 별도의 이동시설과 작업공간을 갖춘 주택이 등장한다면 기술을 통해 과거의 공간 분리 방식이 다른 형태로 재구성될 가능성도 있다.
가정용 로봇의 도입이 모든 주택에서 별도의 통로와 공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로봇청소기는 기존의 주거환경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발전해 왔고, 새로운 가정용 로봇도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 적응하도록 설계될 수 있다. 주택의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방식과 기존 공간에 로봇을 맞추는 방식은 기술의 성능과 비용, 거주자의 생활방식에 따라 선택될 수 있다.
가정용 로봇의 가격과 유지비도 주거환경의 변화를 결정하는 요소다. 고가의 로봇을 구매하고 관리할 수 있는 가구와 기술을 이용하기 어려운 가구 사이에는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시간 동안 집안일을 수행하더라도 자동화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여가와 돌봄, 다른 경제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지는 것이다.
가사노동을 줄이는 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고령자와 장애인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거나 일상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기능이 중요할 수 있다. 어린 자녀를 돌보는 가구에서는 안전과 감독, 가족 구성원 사이의 역할 분담이 중요해질 수 있다. 가정용 로봇이 제공하는 편익은 개인과 가구의 생활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집 밖에서는 배송과 물류를 자동화하는 기술이 도시의 생활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중국의 배달 플랫폼 기업 메이퇀(Meituan)은 선전과 상하이 등 여러 도시에서 드론 배송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 7월 기준 누적 배송 주문이 100만 건을 넘어섰으며, 회사는 도시의 일부 지역에서 상시적인 배송망을 구축하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드론 배송은 지상의 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정해진 공중 경로를 통해 물품을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교통이 혼잡하거나 지형 때문에 이동시간이 긴 지역에서 배송 시간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의료용품과 소형 화물처럼 신속한 운송이 중요한 물품에도 활용할 수 있다.
도심의 모든 건물과 주택으로 드론이 직접 물품을 배송하는 방식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다. 드론은 비행 가능한 구역과 안전한 이착륙 시설, 배송물을 전달받는 장소를 필요로 한다. 건물의 밀집도와 장애물, 기상조건과 소음, 항공 안전 규정에 따라 운행할 수 있는 범위도 달라진다.
중국에서 운영 중인 드론 배송은 정해진 경로와 수령시설을 활용하는 방식이 주요한 운영 형태다. 무인기가 물품을 운송하더라도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이 수령시설로 이동하거나 지상의 배송망과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중 배송망과 지상의 물류시설, 건물 내부의 이동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드론이 도시의 생활공간에 가까워질수록 소음과 안전 문제도 중요해진다. 주거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비행하는 무인기의 소리가 생활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고층건물과 전선, 사람의 이동을 고려한 운항 관리도 필요하다. 기존 도로의 혼잡을 줄이는 기술이 다른 형태의 환경 부담을 발생시킬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김대식 교수와 유현준 건축가도 대담에서 드론이 도시에 가져올 편리함과 함께 소음 문제를 논의했다. 배송과 이동을 위해 많은 무인기가 상공을 이용하게 될 경우 건물과 주거지의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교통수단의 도입은 기술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지뿐 아니라 실제 도시에서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과 연결돼 있다.
AI 기술이 확대되는 도시에서는 자동차와 로봇, 드론과 스마트 기기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작동한다. 도로에서는 자율주행차가 승객을 운송하고, 보도와 건물에서는 배송 로봇이 물품을 이동시키며, 공중에서는 드론이 일부 물류를 담당할 수 있다. 주택 내부에서는 가정용 로봇이 집안일을 지원하고 스마트 기기는 이용자의 생활환경을 인식한다.
이러한 기술이 한 도시에 함께 도입되면 도시설계에서 고려해야 할 조건도 늘어난다. 자율주행차의 승하차 공간과 로봇의 보행 동선, 드론의 비행 경로와 배송시설, 데이터 통신과 전력 공급시설이 각각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도로와 건축물에 새로운 기술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시의 공간은 이동과 경제활동뿐 아니라 일상적인 경험을 형성한다.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가게와 공원을 발견하고 이웃을 만나며 도시의 다양한 소리와 활동을 접한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도로의 풍경과 지역의 변화를 경험한다. 새로운 이동기술은 이러한 경험의 일부를 바꾸지만 사람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의미까지 자동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자동화가 확대될수록 보행자가 직접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주차시설과 차량 통행을 위해 사용하던 일부 면적을 휴식과 문화활동, 지역 주민의 교류 공간으로 바꾸는 선택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량이 빈 상태로 더 많이 운행하고 승하차 시설이 도로를 차지한다면 보행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도시의 공간을 어떤 용도로 배분할지는 교통과 건축, 지역경제와 주민의 생활을 함께 고려하는 결정이다. AI와 로봇이 기술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나더라도 도로와 주거, 공공시설의 사용 기준은 시민의 필요와 제도적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2026년 서울 강남의 자율주행택시 19대는 시험운전자가 동승하는 제한적인 운행구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웨이모는 매주 50만 건이 넘는 운전자 없는 차량 운행을 통해 상용서비스의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가사노동을 지원하는 홈로봇을 공개했고,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실제 공장환경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작업 훈련을 시작했다. 중국의 드론 배송은 일부 도시에서 반복적인 상용 운행 단계에 들어섰다.
자율주행과 피지컬 AI의 발전은 도시의 도로와 주차장, 주거시설과 배송망에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동과 가사노동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고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며 도시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빈차 운행에 따른 교통량 증가와 로봇의 안전, 드론의 소음, 기기 가격과 접근성의 차이도 생활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지 않고 로봇의 도움으로 생활하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집과 거리, 직장과 공공공간에서 일상을 이어간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편리함이 보행과 이동의 자유, 안전한 주거환경, 문화와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연결될 때 도시의 생활 여건도 개선될 수 있다. 2026년의 자율주행차와 가정용 로봇, 드론 배송이 보여주는 변화는 기술의 상용화와 함께 도시의 공간을 배분하는 기준도 새롭게 조정해야 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