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조건⑧] 한국어는 유창해도 문화 이해는 별개…독자 AI와 문화주권의 미래

국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3개 팀 경쟁, 국가문헌 학습데이터 3833만 건 개방…한국어·역사·국가유산의 디지털 전환 속 기술주권과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

2026-11-04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반달 모양의 떡 아래에 솔잎이 놓여 있다. 한국인에게는 명절 음식인 송편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작은 나무함에 담긴 신주를 보고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는 관용구의 의미를 설명하는 일도 한국의 생활문화와 언어적 맥락을 이해해야 가능한 작업이다. 2026년 국립국어원의 인공지능(AI) 평가에서는 이러한 사진과 표현을 활용해 AI가 한국문화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는지 살폈다.

AI가 한국어 문장을 자연스럽게 작성하는 능력과 한국인의 생활문화, 역사와 관습을 이해하는 능력은 구분된다. 외국에서 개발한 AI도 한국어로 질문을 받고 복잡한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 의례와 복식, 음식과 관용구, 역사적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언어의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뿐 아니라 관련 지식과 문화적 맥락이 함께 요구된다.

AI가 정보를 검색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수준을 넘어 교육과 관광, 문화예술과 공공서비스에 활용되면서 이러한 차이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설명을 생성하고 전통문화의 이미지를 제작하며, 박물관과 도서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AI가 수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I 시대 브랜드 전략④] 브랜드 측정 막힌 기업 84%, 예산 축소의 악순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국형 AI 개발 경쟁도 기술의 성능을 높이는 문제에서 국가가 축적해 온 지식과 문화자료를 안정적으로 활용하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해외 기업의 AI 모델을 사용하는 방식과 국내에서 기반모델을 개발하는 방식, 역사와 문화 분야에 특화한 AI를 구축하는 방식이 함께 추진되고 있다.

2026년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의 2차 단계평가를 마치고 업스테이지(Upstage), SK텔레콤(SK Telecom), LG AI연구원(LG AI Research) 등 3개 팀을 다음 단계 참여 대상으로 선정했다. 국내 기업이 직접 개발한 AI 모델의 성능과 기술적 독자성, 이용자의 평가 등을 종합해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같은 달 공개된 세부 평가에서 SK텔레콤은 70.6점, 업스테이지는 69.9점, LG AI연구원은 69.0점을 받았다. 모티프테크놀로지스(Motif Technologies)는 65.8점으로 평가돼 다음 단계에 진출하지 못했다. 평가에는 국제적인 AI 성능 지표와 한국어·신뢰성 등을 포함한 국내 평가, 전문가 심사와 일반 이용자 평가가 반영됐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은 국내에서 고성능 AI를 개발하고 관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국내 연구진과 기업이 직접 모델을 설계하고 학습시키는 능력을 갖추면 해외 기업의 모델 이용 조건과 가격 변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개발한 AI라고 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자동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학습에 사용한 자료의 구성과 품질, 정보의 갱신 방식, 문화적 맥락을 평가하는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모델의 개발 주체와 문화적 이해 능력은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AI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수록 이용자는 제공되는 설명의 정확성도 높을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한국어 문장이 자연스럽고 전문적인 용어가 사용되더라도 역사적 사실이나 문화유산의 명칭, 지역의 생활관습에 관한 내용이 잘못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특히 생성형 AI가 기존 자료를 요약하고 다시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문법적으로 완성된 문장에 포함될 수 있다.

2026년 3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는 주요 생성형 AI 서비스의 한국 문화유산 이미지 생성 결과를 비교한 평가를 발표했다. 전통문화와 국가유산, 음식문화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일부 AI가 한국 고유의 문화적 요소를 다른 나라의 양식과 혼합하거나 중요한 특징을 누락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판소리 관련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중국 경극의 요소가 섞이는 등 한국 전통문화의 고유한 형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결과도 지적됐다. 평가에는 ChatGPT와 Gemini, Grok 등 여러 AI 서비스가 포함됐다. 민간단체가 특정 기간과 평가 기준을 적용해 실시한 조사이므로 모든 서비스의 전반적인 성능을 대표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문화적 특징을 이미지로 표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보여줬다.

전통문화를 구성하는 복식과 건축, 악기와 공연 형식에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른 특징이 존재한다. 한복과 중국의 전통복식, 한국의 궁궐과 주변국의 역사적 건축물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일정한 공통점을 갖지만 구조와 장식, 사용 방식과 역사적 배경에서 차이가 있다. AI가 문화유산을 표현할 때 이러한 구별을 충분히 학습하지 못하면 유사한 시각적 특징을 가진 자료를 혼합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설명하는 AI의 능력은 해외 관광객과 연구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정보 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와 전통예술에 관한 자료를 AI를 통해 접하는 경우 생성된 설명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잘못된 정보가 반복적으로 제공된다면 문화에 관한 인식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AI 서비스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유산진흥원은 2026년 국가유산 데이터를 활용하는 멀티모달 AI 서비스 '하이(HAI)'를 국제무대에 소개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AI·데이터레이크 활용지원 사업으로 개발된 서비스로, 모티프테크놀로지스가 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하이'는 국가유산에 관한 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특징을 반영한 이미지를 생성하도록 설계됐다. 범용 AI가 한국의 전통 요소를 다른 나라의 양식으로 표현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유산 분야의 전문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국가유산을 시각화하는 작업에서는 형태를 비슷하게 만드는 능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문화유산이 제작된 시대와 사용 목적, 재료와 구조, 사회적 의미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전통복식의 형태를 표현하더라도 착용자의 신분과 시대적 배경에 맞는 구성을 선택해야 하며, 건축물을 재현할 때도 구조와 장식, 공간의 용도를 고려해야 한다.

문화유산 전문가의 고증과 AI 기술을 결합하는 작업은 문화적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접근이다. AI의 생성 능력을 활용하면서도 역사와 예술에 관한 전문적인 판단을 기술 개발 과정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특화 기술은 박물관 전시와 교육자료, 문화관광 콘텐츠와 디지털 복원 작업 등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국립국어원은 2026년 7월부터 9월까지 '한국문화 멀티모달 질의응답' 평가를 운영했다. 이미지에 담긴 한국의 전통 의례와 복식, 유물과 유적뿐 아니라 현대 생활양식과 제도, 공공서비스에 관한 이해까지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

문항은 객관식과 단답형, 서술형으로 구성됐다. 송편의 형태와 솔잎의 배치를 살피는 문제, 신주의 명칭과 관련 관용구를 설명하는 문제, 한국의 공공기관과 생활제도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는 문제 등이 포함됐다. AI가 이미지 속 사물의 형태를 인식하는 능력과 그 사물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함께 평가한 것이다.

기네스 팰트로, 김치 손 올리기…잭 블랙·엠마 왓슨·휴 잭맨까지 번지는 한식 열풍  K-푸드의 힘 사진=2025 08.18 최근에는 넷플릭스 K-팝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김밥, 국밥, 컵라면이 화제를 모으며 콘텐츠와 음식이 결합된 문화 파급력을 입증했다. 넷플릭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보다 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신줏단지'라는 표현은 물건의 명칭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조상에 대한 제례와 전통적인 생활문화, 비유적인 표현의 쓰임새까지 이해해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송편의 모양을 구분하는 일에도 음식의 명칭과 재료, 명절의 풍습에 관한 지식이 연결된다.

한국어의 높임말과 호칭, 지역에 따라 다른 어휘와 표현도 AI의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같은 뜻을 전달하더라도 상대방과의 관계와 대화하는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말이 달라진다. 가족과 직장, 공공기관과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표현에는 한국 사회의 관계와 관습이 반영돼 있다.

AI가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을 생성하더라도 대화 상대의 관계와 상황을 잘못 이해하면 부적절한 표현을 선택할 수 있다.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과 실제 사회적 상황에 적합한 문장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언어기술이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맥락을 다루는 능력까지 갖춰야 하는 이유다.

국립국어원은 AI의 한국어 이해와 생성 능력을 높이기 위해 고품질 말뭉치와 한국언어문화 지식자원을 구축하고 있다. 한국어뿐 아니라 문화적 내용을 이미지와 문장으로 함께 다루는 멀티모달 자료, 한국문화 지식그래프 등도 개발하고 있다.

2026년 9월 30일에는 '모두의 말뭉치'를 통해 신규 언어자원 16종을 공개했다. 글쓰기 원시자료와 채점자료, 국어 역사자료, 한국수어 관련 말뭉치, 한국어와 외국어를 연결한 병렬 말뭉치 등이 포함됐다.

한국어와 베트남어, 우즈베크어, 필리핀 타갈로그어, 태국어, 러시아어, 캄보디아 크메르어, 인도네시아어, 힌디어를 연결한 병렬 말뭉치는 AI 통번역과 다국어 소통 기술에 활용할 수 있다. 한국수어 원시자료와 주석자료, 한국수어·한국어 병렬 말뭉치는 음성언어와 다른 언어적 특성을 가진 수어를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어 AI의 발전은 표준적인 문장을 생성하는 능력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 사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과도 연결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한국어 학습자, 수어 사용자와 지역의 언어문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서로 다른 언어적 조건을 반영한 자료가 필요하다.

지역에서 사용되는 어휘와 구술문화, 세대에 따라 다른 표현도 중요한 언어자료다. 서울과 제주, 전라도와 경상도 등 지역의 언어에는 생활환경과 역사적 경험이 축적돼 있다. 전국의 언어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으면 AI가 주로 학습한 표현을 중심으로 답변을 생성할 가능성이 커진다.

언어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작업은 사라져가는 표현을 수집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지역 주민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와 구술자료를 기록하고 의미를 설명하며 다음 세대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일이 포함된다. AI는 이러한 자료를 검색하고 분석하는 데 활용될 수 있지만 자료의 소유와 이용에 관한 지역 공동체의 권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2025년 유네스코(UNESCO)가 소집한 AI와 문화 전문가그룹은 언어와 구술 전통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AI가 기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동시에 자료의 소유권과 접근권, 지역 공동체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소수 언어와 토착 공동체의 지식을 다루는 AI에서는 지역 주민이 데이터 구축과 이용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 논의됐다.

한국에서도 국가가 축적해 온 문헌과 문화자료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는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2026년 9월 17일 국가문헌 기반 AI 학습데이터 약 3833만 건을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공개 대상은 텍스트 데이터 3974책·건과 이미지 데이터 2만1485건, 문자 단위의 글자 데이터셋 약 3830만 건 등이다. 전체 3833만 건 가운데 대부분은 문자를 인식하고 처리하기 위한 글자 단위 자료로, 3833만 권의 문헌이 공개된 것은 아니다.

텍스트에는 1930~1940년대 근대잡지와 1940~1960년대 정부간행물 및 교과서, 국립중앙도서관 발간자료와 AI 학습 이용을 허락받은 오픈액세스 학술논문 등이 포함됐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됐거나 필요한 이용 허락을 확보한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과거의 문헌을 AI 학습과 연구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 사회의 역사적 변화를 더 폭넓게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근대잡지에는 당시의 문장과 표현, 사회적 관심과 문화활동이 담겨 있다. 정부간행물과 교과서에는 제도와 교육, 사회생활의 변화가 반영돼 있다.

과거 문헌을 단순히 이미지로 저장하는 것과 AI가 내용을 검색하고 분석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일은 다르다. 오래된 글자의 형태를 인식하고 원문을 문자 데이터로 바꾸며, 문헌의 작성 시기와 발행기관, 자료의 성격을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같은 단어라도 사용된 시대와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 원문의 정보와 해석을 구분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공개된 자료를 '공유서재'를 통해 제공하고 있으며 연말에는 한글 딱지본 소설 300여 책의 텍스트 데이터를 추가 개방할 계획이다. 근대 문학과 출판문화에 관한 자료를 AI가 처리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작업도 이어지는 것이다.

역사자료의 AI 활용은 다른 국가기관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기록원은 2026년 9월 18일 역사자료와 국가 기록의 연계·공동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두 기관은 AI 기반의 기록정보 검색과 요약, 추천 서비스, 근대 다문자 자료의 인식과 검색·번역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보유한 근대 역사자료와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1948년 정부수립 이후의 기록을 연결해 이용자가 역사와 행정자료를 함께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이다. 서로 다른 기관에 보관된 자료를 연결하려면 기록의 분류체계와 용어, 작성 시기와 관련 기관의 정보를 함께 정리해야 한다.

역사에 관한 AI의 답변은 원문에 접근할 수 있는지에 따라 신뢰성이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사건을 설명할 때 관련 기록의 작성 시기와 기관, 기록이 생산된 배경을 함께 제시하면 이용자가 사실관계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반대로 여러 자료를 종합해 생성한 설명만 제공하면 실제 기록에 담긴 내용과 AI가 재구성한 해석을 구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AI에서는 근거가 되는 기록을 제시하는 기능이 중요하다. 역사적 사건과 문화유산에 관한 설명은 단어의 의미를 찾아주는 서비스와 다르게 해석의 근거와 자료의 신뢰성을 함께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사안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의 기록과 연구 결과를 비교하는 작업도 요구된다.

AI가 관련 문서를 검색한 뒤 답변에 반영하는 검색증강생성(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은 이러한 서비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AI 모델 자체를 새로 학습시키지 않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검색해 관련 내용을 답변 생성 과정에 제공할 수 있다.

RAG는 모델의 가중치를 추가로 학습시키는 사후 학습과는 구분된다. 사후 학습은 모델의 내부 매개변수를 조정하는 방식이며, RAG는 이용자의 질문에 따라 외부 자료를 검색하고 이를 근거로 답변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역사자료와 문화유산의 기록처럼 원문과 작성 시기, 정보의 변경 이력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검색 결과를 원자료와 연결하는 기능이 유용할 수 있다.

AI의 기반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일과 한국의 문화자료를 활용하는 AI 서비스를 구축하는 일은 서로 다른 비용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고성능 파운데이션 모델에는 막대한 연산자원과 연구인력이 투입되지만 특정한 문화 분야에 특화한 서비스는 기존 모델과 전문자료를 결합해 개발할 수 있다.

김대식 교수는 '지식인초대석' 대담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파운데이션 모델을 확보할 필요성과 특정 산업에 특화한 버티컬 AI(Vertical AI)에 투자하는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해외 기업의 개방형 모델을 사용하는 방식만으로는 장기적인 기술 접근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우려였다.

대담에서는 미국과 중국 기업이 제공하는 AI 모델의 이용 조건이 달라질 가능성도 언급됐다. 특히 무료 또는 개방형으로 제공되던 모델이 향후 폐쇄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전망에 주목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 모델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경우 원천기술의 제공 조건이 바뀌면 사업 운영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개방형 AI 모델이라고 해서 모든 기술과 자료가 자유롭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학습된 모델의 가중치를 공개하는 방식과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 학습 코드와 개발 절차까지 공개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모델 가중치를 사용할 수 있더라도 이용 조건과 상업적 활용 범위, 재배포 가능 여부는 라이선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해외 모델을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기술적 위험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보안 수준은 모델의 개발 국가뿐 아니라 실제 시스템의 구성과 접근 권한, 데이터 처리 방식, 검증 절차에 영향을 받는다. 독자적인 국내 모델에서도 보안 취약점과 개인정보 침해, 잘못된 정보 생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AI 기술주권은 특정 국가의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보다 핵심 기술과 데이터, 운영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된다. 해외 기업의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보안과 데이터 처리에 관한 권한을 확보하고, 필요한 경우 다른 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방식도 가능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 AI 개발은 이러한 선택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다. 국내에서 기반모델을 개발하고 다양한 기업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해외 모델에 의존하는 구조를 완화하고 국내 AI 서비스 생태계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AI 기술의 개발과 운영에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과 통신시설, 전문인력 등 여러 자원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개발한 모델이라도 해외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글로벌 공급망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기술적 독립을 완전한 자급자족과 동일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의 AI 정책은 독자적인 기반모델 개발과 산업별 AI 활용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2026년 2월 확정된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2026~2028)'에는 AI 컴퓨팅 인프라와 인재 양성, 산업 전반의 AI 활용 확대 등이 포함됐다. 제조와 의료, 문화 분야에도 AI 기술을 접목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문화 분야에서는 AI의 산업적 활용과 국가가 보유한 문화자료의 공공적 가치가 함께 고려된다. 한국의 역사와 예술, 언어와 생활문화에 관한 자료는 AI 기업의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원이면서 국민이 축적해 온 문화적 자산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의 국가문헌과 국립국어원의 말뭉치, 국가유산 관련 기록은 공공기관이 오랜 기간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다. 이러한 자료를 AI 학습에 활용하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개발될 수 있지만 자료의 수집과 정리, 저작권 처리에 투입된 사회적 비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공공데이터의 개방은 문화자료에 대한 접근을 넓힐 수 있다. 중소기업과 대학, 독립 연구자는 자체적으로 수집하기 어려운 문헌과 언어자료를 활용해 연구와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반면 자료를 활용한 기업이 개발한 서비스를 높은 가격으로 제공하거나 공공기관이 이용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운영한다면 자료의 공공적 이용과 상업적 성과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공공재원이 투입된 AI 사업에서는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공개 범위와 활용 조건도 중요한 요소다. 모델을 어느 범위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문화자료의 출처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공공기관과 연구자가 연구성과를 활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으로 얻는 혜택이 달라질 수 있다.

AI가 학습에 활용하는 문화자료의 저작권도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문학과 미술, 음악과 영상에는 개인 창작자가 가진 권리가 포함돼 있다. 한국의 문화적 내용을 AI에 충분히 반영하더라도 원작자의 허락이나 보상 없이 보호받는 저작물을 사용한다면 창작자의 권익과 충돌할 수 있다.

메가박스 회생절차, 문체부 긴급 간담회…적자는 극장 3사 중 홀로 메가박스뿐/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26년 2월 '생성형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를 발간했다. AI 학습 과정에서 기존 저작물의 이용이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 고려하는 기준을 정리한 자료다.

저작물 이용의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종류와 용도, 사용된 부분의 비중과 중요성, 기존 저작물의 시장과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 네 가지 요소를 종합해 판단하도록 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AI를 개발하거나 웹에서 자료를 수집했다는 사실만으로 공정이용 여부가 자동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이용 조건과 원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문화자료를 AI 학습에 활용하는 과정에서는 자료를 보유한 기관과 실제 권리자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도서관과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이나 문헌이라도 저작권 보호기간이 남아 있거나 별도의 이용 허락이 필요한 경우가 존재한다. 디지털화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모든 상업적 이용을 허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AI를 활용한 문화산업이 성장할수록 원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도 중요해진다. 공공기관이 저작권 관계를 정리한 데이터를 개방하고, 민간 창작자와 권리자가 이용 조건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과 기존 창작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문화적 다양성은 특정 국가의 대표적인 문화만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능력보다 넓은 범위를 포함한다. 한국 안에서도 지역마다 다른 생활문화와 언어, 사회적 경험이 존재한다. 전통문화와 현대의 대중문화, 지역 공동체의 기억과 개인 창작자의 표현은 서로 다른 자료와 관점을 통해 형성돼 왔다.

AI가 한국의 문화를 설명할 때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와 음식, 유명 예술가와 대중문화에 관한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지역과 세대, 공동체에 따른 다양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문화적 상징을 반복적으로 생성하는 방식은 새로운 창작과 지역문화에 관한 이해를 제한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AI에 반영하려면 자료의 양을 늘리는 일과 함께 어떤 자료를 포함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지역의 구술기록과 생활문화, 다양한 세대의 언어와 신체적·사회적 경험을 반영하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공공기관과 연구자뿐 아니라 관련 자료를 생산하고 보존해 온 공동체의 참여도 중요하다.

AI의 문화적 정확성을 평가하는 방식도 넓어지고 있다. 문장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생성하는지와 함께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설명하는지, 전통복식과 음식의 특징을 구분하는지, 자료의 출처를 적절하게 제시하는지 등이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한 '한국문화 멀티모달 질의응답'은 이러한 평가를 구체화한 시도다. 사진에 담긴 송편의 특징을 구분하는 일부터 전통적인 관용구의 의미를 설명하는 일까지 한국의 생활문화와 언어적 맥락을 AI 성능평가에 포함했다. 한국어 문장을 잘 만드는 기술과 한국 사회의 문화적 지식을 다루는 기술을 함께 발전시키려는 접근이다.

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반영한 AI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교육, 국제문화교류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설명하거나 해외의 한국어 학습자에게 언어와 생활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박물관과 도서관에서는 방대한 자료를 검색하고 관련 기록을 연결하는 작업을 지원할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의 신뢰성은 기반모델의 국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문화자료의 품질과 검증 수준, 학습과 검색에 활용한 정보의 권리 관계, 실제 이용자의 평가가 함께 작용한다. 국내 모델과 해외 모델을 활용하는 각각의 방식에서도 전문적인 문화지식과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을 연결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2026년 9월 국립중앙도서관은 약 3833만 건의 국가문헌 AI 학습데이터를 공개했고, 국립국어원은 한국수어와 한국어·외국어 병렬자료 등을 포함한 말뭉치 16종을 새롭게 제공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기록원은 역사자료와 국가 기록의 AI 기반 공동 활용을 위한 시범 검증에 착수했다. 국가유산 분야에서는 전문가의 고증을 반영한 특화 AI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참여한 국내 기업 3개 팀은 다음 단계의 기술 경쟁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AI 모델과의 성능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과 별개로 한국의 문화자료를 정확하게 다루기 위한 데이터 구축과 검증 작업도 확대됐다.

한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유산을 디지털 지식으로 축적하는 일에는 국어학자와 역사학자, 문화유산 전문가와 창작자, 도서관과 기록기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AI 개발기업이 제공하는 연산 능력과 학습기술은 이러한 자료를 활용하는 수단이다. 한국문화에 관한 정보의 정확성과 다양성은 기록을 생산하고 보존해 온 기관과 전문가, 지역 공동체의 참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26년 한국형 AI 개발은 고성능 기반모델 경쟁과 국가문헌의 개방, 언어문화 말뭉치 구축, 역사기록의 연계 활용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AI의 성능과 이용 조건을 평가하는 일뿐 아니라 공공 문화자료의 접근권과 저작권, 지역 언어와 전통문화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일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AI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신뢰할 수 있는 지식으로 전달하려면 문헌과 기록의 품질, 전문적인 고증, 출처와 권리 관계를 관리하는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