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AI 대전환②] AI 에이전트보다 빨랐던 기존 시스템…은행 업무 재설계의 경제학

고객확인 질문 분류·외부 정보 조회에서 규칙 기반 기술 앞서…AI 도입 효과는 업무 배분과 공통 플랫폼 구축에 좌우

2026-10-29     김상기 기자

[KtN 김상기기자]유럽의 한 은행이 고객확인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면서 기존 기술과 성능을 비교했다. 고객에게 추가로 확인할 질문을 선정하는 작업에서는 AI 에이전트보다 규칙 기반 시스템이 더 빠르고 정확했다. 외부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도 AI가 직접 웹을 검색하는 방식보다 전문 업체의 구조화된 데이터 연동 서비스(API)가 속도와 정확도에서 앞섰다.

금융권의 에이전틱 AI(Agentic AI) 도입 경쟁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다. AI가 직접 판단하도록 설계한 기능이 기존 자동화 기술보다 반드시 우수한 성능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은행들은 모든 절차를 AI 에이전트에 맡기기보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기존 프로그램과 AI, 인간 전문가의 역할을 나누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재편하고 있다.

고객확인(KYC)과 자금세탁방지(AML)는 금융기관이 상당한 인력을 투입하는 분야다. 고객의 신원과 자금 출처를 검증하고 거래 내역을 분석하는 과정에는 반복적인 자료 수집과 문서 작성이 포함된다. 유럽 은행들은 이러한 업무의 처리시간을 줄이기 위해 AI를 도입했지만, 자동화 기술의 선택과 운영 방식에 따라 성과에 차이가 나타났다.

2025~2026년 유럽 은행들의 에이전틱 AI 구축 경험에서는 고객확인 절차의 평균 처리시간을 30~70% 줄일 수 있다는 추정이 제시됐다. 단일 기술의 성능 향상보다는 여러 업무를 분해하고 적합한 처리 방식을 배정하는 설계가 생산성 개선의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됐다.

은행의 AI 투자가 개별 업무의 자동화에서 조직 전체의 업무 재설계로 확대되고 있다.

돈은 은행에 맡겨야 안전하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환율 계산은 기존 프로그램, 문서 해석은 AI

고객의 자금 출처를 조사하는 은행 업무에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 처리가 필요하다. 급여와 사업소득, 부동산 수익, 투자소득을 확인하려면 서로 다른 문서에서 필요한 자료를 추출해야 한다. 해외에서 발생한 소득은 동일한 통화로 환산하고, 자료가 빠진 기간의 금액을 계산한 뒤 여러 출처의 정보를 통합해야 한다.

유럽 은행의 한 자금 출처 검증 시스템에서는 환율 변환과 누락된 연도의 소득 보간, 문서 분할, 수치 집계를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프로그램에 맡겼다. 입력값과 계산 규칙이 같다면 동일한 결과를 재현할 수 있는 결정론적 서비스(Deterministic Service)를 활용한 것이다.

반면 형식이 일정하지 않은 문서에서 정보를 추출하거나 서로 충돌하는 증거를 비교하고, 고객의 재산 형성 경위를 서술하는 작업에는 AI 에이전트를 투입했다.

서류에 기록된 금액을 환산하는 일과 고객이 제출한 서로 다른 증빙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일은 필요한 기술이 다르다. 환율 계산에는 정해진 수식과 기준값을 적용하면 되지만, 자료 사이의 불일치를 분석하려면 문서의 맥락과 정보의 관계를 해석해야 한다.

기존 프로그램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계산을 AI 에이전트에 맡기면 실행 과정이 복잡해질 수 있다. AI 모델을 호출하는 비용이 추가되고 결과의 일관성을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반면 일정한 규칙으로 처리하는 기능은 결과를 반복해서 재현할 수 있어 오류 검증과 운영 비용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고객확인 과정에서 나타난 성능 비교도 비슷한 흐름을 드러냈다.

고객에게 추가 질문을 제시하는 업무에서는 사전에 정한 조건에 따라 질문을 분류하는 방식이 AI 에이전트의 판단보다 우수했다. 외부 정보를 조회할 때는 구조화된 API를 활용하는 방식이 AI의 웹 검색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은행은 고객의 위험 수준과 제출 자료에 따라 추가 확인 항목을 결정해야 한다. 일정한 기준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분류 작업에 복잡한 AI 추론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다. 외부 정보 역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제공업체의 시스템에서 정해진 형식으로 받을 수 있다면 웹 검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AI의 역할은 자료 해석과 판단이 필요한 업무에 집중된다. 규칙 기반 프로그램은 계산과 분류를 담당하고, AI 에이전트는 비정형 문서를 분석하며, 금융 전문가는 조사 결과를 검토하는 구조다.

고객 실사에 처리시간 30% 집중…일부 절차가 작업량 절반 이상 차지

은행의 고객확인 절차는 정보 수집과 고객정보 생성, 위험 등급 평가, 고객 실사, 검토 보고서 작성 등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인 고객확인 절차의 평균 처리시간을 구분한 예시에서는 사전 준비와 자료 수집이 약 25%, 고객정보 생성과 위험 평가가 각각 약 15%, 고객 실사가 약 30%, 보고서 작성 및 승인 업무가 약 15%를 차지했다.

전체 작업시간 가운데 고객 실사에 가장 많은 시간이 배정된 셈이다.

고객 실사에는 공개 정보와 외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고, 고객의 소득과 재산 형성 경위에 관한 자료를 교차 검증하며, 조사 결과를 정리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처리 절차가 복잡하고 고객별로 검토해야 할 자료의 종류도 다르다.

고객 실사 내부에서는 소수의 세부 작업이 전체 작업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관찰됐다. 은행들이 모든 절차에 동일한 수준의 자동화 기술을 적용하기보다 처리시간이 집중된 작업부터 분석하는 이유다.

고객정보를 생성하는 과정에서는 신분증이나 제출 서류에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고 누락된 항목을 찾는 기능이 활용된다. 위험 등급 평가에서는 거래 정보와 고객 행동에 관한 데이터를 반영해 기존 위험정보를 갱신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고객 실사에서는 여러 자료를 동시에 분석하고, 담당자가 단순한 정보 검색보다 예외 사항과 판단이 필요한 항목에 집중하도록 절차를 조정한다. 보고서 작성 단계에서는 정해진 양식과 검증된 데이터를 활용해 문서의 일관성을 높인다.

고객확인 처리시간을 30~70% 줄일 수 있다는 추정은 이러한 업무별 변화의 가능성을 반영한다. 실제 절감 폭은 자동화 범위와 기존 시스템, 인간의 검토 절차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디지털 전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하나의 AI로 처리할 업무와 전문 AI가 필요한 업무

유럽 은행들의 에이전틱 AI 시스템은 에이전트의 숫자와 구성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한 은행은 고객이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고객확인 질문을 하나의 범용 AI 에이전트가 처리하도록 설계했다. 질문마다 필요한 조건을 설정하고 같은 에이전트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해당 고객확인 절차에서는 질문 한 개를 제외한 나머지를 공통 에이전트로 처리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여러 종류의 기능을 연결해야 하는 업무에서는 전문화된 에이전트가 사용됐다.

문서에서 정보를 추출하는 에이전트와 자료를 통합하는 에이전트, 서로 다른 증빙을 조정하는 에이전트,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는 에이전트를 각각 배치하는 구조다. 업무별 에이전트 사이에는 계산과 데이터 처리를 위한 기존 자동화 서비스가 연결됐다.

거래 감시 분야에서는 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별도로 검증하는 AI 기능도 구축됐다. AI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개별 주장과 판단을 추출한 뒤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됐는지, 필요한 정보가 빠졌는지, 검토 결과가 적절한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은행에 따라 별도의 검증 에이전트를 운영하거나, 기존 에이전트에 품질 점검 기능을 결합하는 방식이 선택됐다.

여러 에이전트를 연결하는 구조가 모든 업무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동일한 판단 작업을 서로 다른 입력값으로 반복하는 경우에는 범용 에이전트가 효율적일 수 있다. 반면 정보 추출과 계산, 증빙 대조, 서술형 문서 작성처럼 성격이 다른 작업이 이어진다면 기능별 분리가 유리할 수 있다.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에이전트 수보다 업무별 판단 수준과 자율 실행 범위를 먼저 정해야 하는 이유다.

업무 지침을 공유하는 '스킬'…두 번째 AI 구축비 낮추는 구조

은행들이 AI의 적용 범위를 넓히면서 재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업무 지침도 중요해졌다.

처음 구축한 고객확인 시스템을 거래 감시나 제재 대상 심사에 활용하려면 각 업무에 필요한 기능을 다시 개발해야 할 수 있다. 반면 여러 분야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에이전트와 업무 지침, 검증 기능을 분리해 두면 후속 개발에 필요한 작업을 줄일 수 있다.

유럽 은행들은 재사용 대상을 AI 에이전트, 스킬(Skill), 공통 기술 기반, 업무 활용 시스템의 네 수준으로 구분해 구축하기 시작했다.

에이전트는 반복되는 인지적 작업을 수행하도록 설계된다. 여러 문서에서 특정 정보를 추출하거나 고객 질문을 처리하는 기능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별도의 에이전트를 계속 만들 필요가 줄어든다.

스킬은 AI가 업무를 수행할 때 사용하는 기관의 규정과 전문지식, 문서 작성 기준을 별도의 자산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 코드와 분리해 버전을 관리하고 여러 에이전트가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은행의 보고서 작성 스킬에는 문서 양식과 문체, 표기 기준, 필수 기재사항 등을 담을 수 있다. 정책 준수 스킬에는 내부 규정과 적용 기준을 반영하고, 검증 스킬에는 보고서의 완성 여부와 오류를 평가하는 점검 항목을 설정한다.

개별 에이전트의 지시문에 규정과 작성 기준을 각각 넣으면 여러 에이전트가 같은 규정을 서로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이 생긴다. 규정이 개정될 때마다 개별 지시문을 수정해야 하는 부담도 발생한다.

공통 스킬을 사용하면 동일한 기준을 여러 에이전트에 적용하고, 변경된 규정을 일관되게 반영할 수 있다. 금융 전문가는 프로그램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 분야의 스킬을 수정할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다.

고객확인이나 자금세탁방지처럼 규정과 업무 절차의 일관성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기술의 재사용과 함께 업무 지식의 관리 방식까지 바뀌는 셈이다.

플랫폼 구축 약 10주…첫 업무 운영까지 4~6개월

유럽 은행들의 에이전틱 AI 구축 프로젝트에서는 공통 플랫폼 개발에 통상 약 10주가 걸렸다. 개발 시작 후 수주 안에 최초로 사용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지만, 첫 번째 업무를 실제 운영 환경에 적용하기까지는 약 4~6개월이 소요됐다.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는 작업 외에도 여러 기능을 연결하는 운영 체계, 성능 평가, 오류 통제, 보안 장치, 업무 절차 변경 등이 필요했다.

은행들이 두 번째와 세 번째 AI 활용 업무로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구축한 공통 기술 기반이 비용에 영향을 미쳤다.

AI 에이전트의 실행 순서를 관리하는 시스템과 성능 평가 도구, 보안 통제 기능, 개발 절차를 재사용할 수 있는 은행에서는 후속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었다.

한 은행은 분산된 AI 도구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해 에이전트 운영과 검증 기능을 공통으로 관리했다. 개발자들이 동일한 기술 기반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면서 신규 개발자도 일주일 안에 실제 운영용 에이전트 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다른 은행에서는 첫 번째 AI 업무를 구축하기 전에 재사용 가능한 에이전트를 어떤 방식으로 등록하고 누가 관리할 것인지 정했다. 이후 개발팀들이 공통 에이전트 목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소유권과 관리 체계를 마련했다.

거래 분석 시스템을 여러 업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은행도 있었다. 초기부터 프로그램을 기능별로 분리한 결과, 금융범죄 예방을 위해 구축한 기술을 사기 탐지와 신용 관련 업무에도 추가적인 개발을 제한적으로 수행한 뒤 적용할 수 있었다.

첫 번째 AI 프로젝트의 개발비뿐 아니라 후속 업무에 같은 기술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가 은행의 자동화 투자에서 중요한 비용 요인으로 등장했다.

반면 개별 업무마다 별도의 AI 처리 절차를 구축하면 유사한 기능을 반복 개발해야 한다. 성능 평가와 보안 통제, 운영 관리도 업무별로 중복될 수 있다.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공동으로 사용할 기술 자산을 얼마나 구축했는지에 따라 두 번째 프로젝트의 개발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

거래 감시 한 건에 2.50유로…품질관리에도 운영비 투입

AI 시스템을 실제 운영하면 모델 사용료 외에도 품질 검증과 시스템 유지에 비용이 발생한다.

유럽의 한 대형 은행에서는 거래 감시 업무 한 건을 AI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처리하는 한계비용이 최적화 이전 약 2.50유로로 집계됐다. 그중 절반가량은 거래 내용을 분석하는 작업이 아니라 AI 결과를 자동으로 검증하는 품질관리 절차에서 발생했다.

금융범죄 예방 업무에서는 분석 결과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AI가 조사 보고서를 작성한 뒤 사실과 다른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는지,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반영했는지, 내부 규정을 준수했는지 검증해야 한다.

AI 에이전트가 여러 차례 다른 모델을 호출해 결과를 수정하거나 별도의 검증 과정을 거치면 처리비용이 늘어난다.

금융범죄 예방 분야와 구분되는 에이전틱 AI의 일반적인 경제성 분석에서는 최초 답변을 생성하는 작업보다 답변을 개선하고 검증하는 과정에 전체 작업비용의 약 60%가 투입되는 구조도 제시됐다.

은행들은 단순한 세부 작업에 비용이 낮은 모델을 사용하고, 동일한 데이터를 반복 호출하지 않도록 저장하며, 에이전트 사이에 전달하는 정보를 줄이는 방식으로 비용을 조정하고 있다.

모든 결과를 같은 수준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금융범죄 예방 업무에서는 검증 횟수를 줄이는 결정이 내부 통제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운영비 절감을 위해 품질관리 절차를 변경할 때는 위험 수준과 승인 기준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AI 시스템의 운영비는 모델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업무별 실행 횟수와 데이터 처리량, 검증 절차, 인간의 개입 범위가 함께 작용한다.

유럽 은행들의 도입 경험에서는 기술 구축 자체보다 기존 업무와 조직의 운영 방식을 바꾸는 과정이 시범사업의 확대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도 나타났다.

일부 은행은 첫 번째 활용 업무를 구축한 뒤 추가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고, 다른 은행들은 공통 플랫폼과 업무 지침을 재사용해 거래 감시와 사기 탐지, 신용 관련 업무로 적용 범위를 넓혔다.

고객확인에서 AI보다 규칙 기반 시스템이 우수했던 작업과, AI가 복잡한 문서 분석을 맡아 처리시간을 줄인 작업은 같은 금융기관 안에 함께 존재한다. 환율 계산과 자료 분류에는 기존 자동화 기술을 활용하고, 비정형 자료 해석과 증빙 대조에는 AI를 배치하는 방식이다.

유럽 은행들이 구축한 공통 플랫폼과 재사용 가능한 에이전트, 업무 지침은 개별 업무의 자동화를 금융기관 전체로 확장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후속 구축 비용이 줄어든 프로젝트에서는 새로운 AI 모델을 추가하는 것보다 이미 개발한 기능과 검증 체계를 다시 활용하는 방식이 성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