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발렌시아가가 말하는 스키웨어, 설원을 벗어난 겨울옷의 새로운 비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2026 스키웨어, 기능성 방한복에 패션의 조형성 결합 커진 실루엣과 달라진 신체 비례, 퍼와 가죽의 질감까지… 스키장과 도시를 연결한 겨울 패션의 변화
[KtN 박인경기자]발렌시아가(Balenciaga)의 2026 스키웨어에서는 재킷의 소매가 크게 부풀고, 넓은 팬츠가 부츠 윗부분을 덮는다. 몸을 감싸는 두꺼운 패딩은 허리의 윤곽을 감추고, 풍성한 퍼 모자는 얼굴의 크기와 비례까지 바꿔 놓는다. 스키장에서 체온을 보호하고 움직임을 돕던 의류가 도시의 일상복으로 확장되면서 겨울옷의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가 디자인한 이번 컬렉션은 기능성 방한복과 발렌시아가 특유의 오버사이즈 실루엣을 결합했다. 높은 칼라의 파카와 리버서블 블루종(reversible blouson), 크롭 푸퍼(cropped puffer), 스노 팬츠에 데님과 니트웨어, 트랙수트를 더했다. 스키장에 필요한 보온과 방풍 기능을 유지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는 겨울 의류의 구성을 넓혔다.
사진가 애덤 피터 존슨(Adam Peter Johnson)이 촬영한 캠페인은 눈 덮인 산악지대 대신 파리의 고전적인 실내 공간을 선택했다. 장식적인 벽면과 높은 창문, 가구가 놓인 방 안에 눈이 쌓이고 모델들은 두꺼운 방한복을 착용한다. 실제 스키장에서는 몸을 보호하는 기능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실내에서는 소매의 크기와 팬츠의 폭, 부츠의 형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발렌시아가는 2025년 스키웨어 캠페인에서도 도시 생활과 겨울 스포츠웨어를 연결했다. 당시에는 파리의 거리와 일상적인 이동 공간에서 기능성 의류를 보여줬다면, 올해는 실내로 눈을 들여왔다. 도시에서 스키웨어를 입는 모습을 넘어 겨울 스포츠의 환경 자체를 실내 공간에 옮긴 셈이다. 스키웨어가 특정 장소에서만 착용하는 옷이라는 기존의 구분은 더욱 옅어졌다.
스키웨어는 본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두꺼운 충전재는 체온으로 데워진 공기를 유지하고, 방풍 소재는 차가운 바람의 유입을 줄인다. 높은 칼라는 목 주변을 감싸고, 넉넉한 팬츠는 겨울 스포츠에 필요한 움직임을 확보한다.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여유와 부피가 발렌시아가에서는 의복의 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디자인 요소가 됐다.
밝은 뉴트럴 톤의 재킷은 어깨와 소매에 충분한 공간을 두고, 팬츠는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넓은 폭을 유지한다. 상하의의 색상을 통일하면서 몸의 윤곽보다 옷 자체의 크기가 강조된다. 허리에는 검은색 로고 가방을 배치해 넓게 이어지는 실루엣을 나눴다. 부피가 큰 겨울옷에서도 허리 위치와 색상 대비를 활용해 신체 비례를 조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성이다.
발렌시아가 창립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는 신체를 따라가는 재단뿐 아니라 몸과 의복 사이의 공간을 활용한 조형적인 디자인으로 패션사에 이름을 남겼다. 피치올리의 스키웨어 역시 몸에 밀착하는 옷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방한을 위해 확보한 공간이 어깨와 소매, 허리와 하체의 윤곽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점에서 기능성 의류와 발렌시아가의 디자인 전통이 만난다.
몸에 맞는 옷을 입어 허리와 어깨, 다리의 윤곽을 드러내던 방식에서는 신체의 비례가 옷의 형태를 결정했다. 넉넉한 패딩과 와이드 팬츠에서는 의복의 부피가 신체의 외형을 바꾼다. 어깨가 좁은 사람은 풍성한 소매로 상체의 폭을 넓혀 보일 수 있고, 하체가 발달한 사람은 넓은 팬츠로 다리의 윤곽을 완만하게 정리할 수 있다.
옷이 커질수록 길이와 비례를 조정하는 일도 중요해진다. 상체가 작은 사람이 지나치게 긴 재킷을 선택하면 허리 위치가 낮아 보일 수 있고, 넓은 팬츠가 신발 위에 많이 쌓이면 다리의 세로 비례가 짧아진다. 오버사이즈는 단순히 큰 옷을 선택하는 방식과 다르다. 어깨의 폭과 허리선, 바지통과 밑단 길이가 맞아야 의복의 여유가 자연스러운 실루엣으로 이어진다.
몸에 밀착하는 검은색 긴소매 상의와 밝은색 와이드 팬츠의 조합은 두꺼운 패딩을 입는 방식과 다른 접근이다. 상체의 윤곽은 간결하게 드러내고, 허리 아래부터 팬츠의 폭을 넓혔다. 같은 스키웨어 컬렉션 안에서도 몸을 전체적으로 감싸는 착장과 특정 부위에만 볼륨을 집중하는 착장이 공존한다.
발렌시아가가 제안한 넉넉한 실루엣은 특정 체형에만 어울리는 형태로 제한되지 않는다. 체형에 따라 옷의 부피를 어느 부위에 배치하고 길이를 조정할지 선택하는 방식에 가깝다. 몸의 윤곽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밀착형 이너웨어를 활용할 수 있고, 여유로운 옷차림을 선호하는 사람은 어깨와 하체의 부피를 함께 키울 수 있다.
겨울옷의 어울림을 결정하는 요소도 다양해졌다. 재킷과 팬츠의 크기뿐 아니라 얼굴 가까이에 놓이는 퍼 소재와 모자, 높은 칼라가 전체적인 인상에 영향을 준다. 머리 양옆을 감싸는 귀마개는 얼굴의 가로 폭을 넓혀 보이게 하고, 이마를 깊게 덮는 퍼 모자는 얼굴의 세로 길이를 짧아 보이게 한다. 턱 아래까지 올라오는 칼라는 목과 얼굴의 경계를 감추면서 눈매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짙은 버건디 퍼 모자와 같은 색상의 하이넥 아우터는 얼굴을 중심으로 색상과 부피를 집중시킨다. 이마를 감싸는 모자와 턱 아래까지 올라오는 칼라 사이로 눈과 코, 입 주변이 드러난다. 일반적인 니트 모자와 코트의 조합보다 머리와 목 주변의 면적이 커지고, 풍성한 소재가 얼굴의 윤곽을 감싸면서 인상도 달라진다.
얼굴이 긴 사람은 머리 양옆의 볼륨으로 세로 비례를 완만하게 조절할 수 있고, 얼굴이 짧거나 둥근 사람은 이마가 드러나는 정도와 칼라의 높이에 따라 다른 효과를 얻는다. 피부색과 모자의 명암 차이,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범위도 중요하다. 얼굴 가까이에 놓이는 액세서리는 보온을 위한 장비이면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의 인상까지 바꾸는 요소가 된다.
발렌시아가가 겨울 액세서리에 적용한 변화는 가방과 신발에서도 이어진다. 르 시티(Le City), 르 7(Le 7), 로데오(Rodeo) 등 기존 가방에는 메리노 시어링(merino shearling)과 왁스드 스웨이드(waxed suede), 가죽 소재를 적용했다. 익숙한 가방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표면을 털로 감싸거나 서로 다른 질감을 결합해 겨울 의류와의 조화를 달리했다.
가방은 일상적인 옷차림에서 비교적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색상과 소재가 강하면 전체 스타일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검은색 패딩이나 차콜 코트에는 핑크색 털 가방이 뚜렷한 대비를 만들고, 아이보리나 베이지 계열의 옷에는 크림톤 시어링 백팩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겨울옷의 색상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가방의 소재와 색상만으로 다른 인상을 만들 수 있다.
핑크색 털 소재에 갈색 가죽 손잡이와 금속 장식을 더한 가방은 부드러운 질감과 단단한 구조가 함께 드러난다. 짙은 색 코트와 착용하면 가방의 형태가 강조되고, 밝은 색상 아우터에 조합하면 전체적인 색의 대비가 완만해진다. 퍼 소재를 겨울옷 전체에 적용하지 않고 가방에만 사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스키웨어에서 시작된 소재의 변화가 일상적인 가방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시어링과 스웨이드, 가죽은 각각 표면의 질감과 부피가 다르다. 같은 크기의 가방이라도 털이 풍성하면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고, 매끄러운 가죽이 더해지면 가방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어깨에 거는 위치와 스트랩의 길이에 따라 옷과 가방 사이의 간격도 달라진다.
발렌시아가의 두꺼운 부츠는 가방보다 직접적으로 신체 비례에 영향을 준다. 발목을 넉넉하게 감싸는 알래스카(Alaska) 부츠와 두꺼운 밑창의 겨울 신발은 발의 부피를 크게 만든다. 넓은 스노 팬츠와 함께 착용하면 하체의 풍성한 실루엣이 발끝까지 이어지고, 비교적 좁은 팬츠와 조합하면 신발의 크기가 강조된다.
두꺼운 밑창과 둥근 앞코, 넉넉한 발목 구조는 일반적인 겨울 부츠보다 발의 면적을 크게 보이게 한다. 와이드 팬츠와 함께 착용하면 의상과 신발의 부피가 연결되지만, 키가 아담한 사람은 바지 밑단이 신발 위에 지나치게 쌓이지 않도록 길이를 조절해야 한다. 발목이 가는 사람은 풍성한 신발 입구로 볼륨을 더할 수 있고, 종아리가 발달한 사람은 부츠의 높이와 입구의 폭을 고려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스키웨어가 도시의 일상복으로 활용될수록 옷의 형태와 실제 기능을 구분해 선택하는 일도 중요해진다. 두꺼운 밑창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더라도 눈길과 빙판에서의 접지력은 고무 소재와 바닥 무늬, 지면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풍성한 패딩 역시 외형의 크기만으로 보온성을 판단할 수 없다. 충전재와 외피, 바람이 유입되는 구조, 몸에 맞는 정도가 실제 착용감에 영향을 준다.
발렌시아가는 이번 컬렉션에 체온 조절을 고려한 다운 아우터와 방풍 소재, 보온용 레이어링 의류를 적용했다. 일부 아우터에는 전문 구조대의 위치 탐색을 돕는 RECCO 반사 장치도 포함됐다. 별도의 전원이 필요하지 않은 수동 반사 장치로, 전용 탐지기를 사용하는 구조대의 수색을 지원한다. 눈사태 발생 시 개인이 사용하는 구조용 송수신기와는 기능이 구별된다.
기능성 의류를 패션으로 활용하는 일에는 두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스키장에서는 체온 유지와 땀 관리, 활동성, 장비와의 호환성이 중요하고, 도시에서는 실내외 온도 차이와 이동 방식, 옷의 무게와 길이를 함께 고려하게 된다. 같은 패딩이라도 추운 야외에서 오랫동안 활동할 때와 난방이 된 실내를 자주 오갈 때 요구되는 착용감이 다르다.
피치올리의 2026 스키웨어는 바로 두 생활환경을 하나의 옷장 안에 놓았다. 스키장에서 사용하는 파카와 스노 팬츠에 데님과 니트웨어, 트랙수트를 더하고, 방한용 모자와 부츠를 일상복과 조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기능성 의류가 일상복과 만나는 과정에서 디자인의 역할도 커졌다. 외투의 어깨선과 허리 위치, 팬츠의 길이와 신발의 부피가 착용자의 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스키웨어가 도시에 들어온다는 것은 단순히 스키장 옷을 거리에서 입는다는 뜻만은 아니다. 계절과 날씨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옷을 개인의 체형과 취향, 생활 방식에 맞춰 다시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겨울 스포츠웨어에 익숙한 사람은 기능성과 활동성을 우선할 수 있고, 평소 스트리트 패션을 즐기는 사람은 넉넉한 실루엣과 두꺼운 신발을 선택할 수 있다. 단정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사람도 퍼 모자나 가방 한 가지로 겨울 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고가의 기능성 의류와 장비가 일상적인 겨울 패션으로 확장되는 흐름에서는 사용 목적에 맞는 선택이 더욱 중요해진다. 실제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보온성과 방풍, 안전 관련 기능이 중요하지만, 도심에서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착용 빈도와 관리, 기존 옷과의 조합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설원을 위한 기능과 도시에서의 실용성이 언제나 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발렌시아가의 2026 스키웨어는 겨울옷을 선택하는 기준에 기능성과 신체 비례, 개인의 취향을 함께 놓았다. 몸을 감싸는 패딩과 넓은 팬츠, 얼굴 주변을 덮는 퍼 모자, 두꺼운 부츠는 각각 보온을 위한 구조를 갖추면서도 착용자의 외형을 달리한다. 기능성 방한복의 넉넉한 형태가 패션의 조형적 요소로 활용되고, 얼굴과 몸의 비례를 조절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2025년 도시의 거리에서 선보였던 발렌시아가의 스키웨어는 2026년 눈 내리는 파리의 실내 공간으로 옮겨왔다. 높은 칼라의 파카와 스노 팬츠, 보온용 이너웨어는 물론 데님과 니트, 시어링 가방과 부츠까지 하나의 겨울옷 구성에 포함됐다. 설원에서 필요한 보온과 활동성, 도시에서 요구되는 착용감과 스타일의 균형이 같은 컬렉션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
발렌시아가가 말하는 스키웨어는 스키장이라는 장소보다 겨울이라는 계절을 입는 방식에 가깝다. 두꺼운 옷의 부피를 감추기보다 의복의 형태로 활용하고, 방한을 위한 소재에 색상과 질감의 차이를 더한다. 어디에서 입느냐에 따라 옷의 기능과 가치가 달라지지만, 몸을 보호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비례를 선택한다는 기본은 같다. 피치올리의 스키웨어는 겨울옷을 통해 신체와 의복, 생활환경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