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파월, 사막의 순환①] 미국 서부의 끝없는 도로, 철조망과 사막에 남은 시간

애덤 파월 첫 개인전 'The DESERT is a CIRCLE', 11월 14일 도쿄 개막 도로와 트레일러, 반복되는 풍경 속에 담긴 미국 서부의 일상과 이동의 흔적

2026-10-30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둥글게 감긴 철조망이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가까이 있는 고리는 크게 벌어지고, 멀어질수록 점점 좁아져 하나의 원 안으로 모인다. 철조망 너머에는 자동차와 건물,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구름이 흩어진 맑은 날씨와 달리 도로를 가로지르는 철조망의 날카로운 윤곽은 삭막하다. 탁 트인 풍경에 접근을 막는 시설물이 겹치면서 미국 서부의 익숙한 도로 풍경이 낯설게 바뀌었다.

뉴욕 사진가 애덤 파월(Adam Powell)이 미국 서부의 사막과 도로, 모텔과 인물을 담은 작품으로 일본 도쿄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전시 제목은 'The DESERT is a CIRCLE'. 오는 11월 14일부터 2027년 1월 11일까지 도쿄 시부야의 DIESEL ART GALLERY에서 개최된다.

영국 에식스 출신인 파월은 뉴욕에서 음악과 패션, 현대문화를 중심으로 사진 작업을 이어왔다. 개인 작업에서는 거리와 일상에서 발견한 풍경을 촬영하거나 직접 상황을 구성하는 방식을 함께 사용해 왔다. 시간의 반복과 상업문화, 미국 특유의 생활 풍경인 아메리카나(Americana)가 주요 관심사다.

이번 전시에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이 포함된다. 애리조나에서 촬영한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하며, 사람이 드문 사막과 고속도로, 모텔과 인물사진이 이어진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밤마다 다른 숙소에 머무는 여행이지만,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면서 시간의 흐름은 점차 모호해진다.

도로를 따라 설치된 원형 철조망이 멀어질수록 작아지며 깊은 원근감을 만든다. 날카로운 철조망과 푸른 하늘, 도로변의 건물이 대비를 이루는 애덤 파월의 작품. 사진=Adam Powell, Courtesy of DIESEL ART GALLERY.

철조망의 원형 구조는 도로의 진행 방향과 나란히 이어진다. 고리마다 달린 날카로운 돌기는 햇빛을 받아 밝게 반짝이고, 여러 겹의 원이 겹치면서 길 안쪽으로 깊은 공간이 형성된다. 도로와 자동차보다 철조망이 훨씬 크게 자리 잡아 풍경의 중심이 된다.

미국 서부의 도로는 영화와 사진에서 오랫동안 자유로운 여행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광활한 대지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와 자동차,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은 새로운 장소로 향하는 이동의 경험과 연결됐다. 파월의 도로에는 이동을 위한 길과 접근을 제한하는 철조망이 함께 놓였다.

철조망은 본래 일정한 구역을 나누거나 외부의 출입을 막는 시설이다. 도로를 따라 놓인 둥근 고리들은 이동 방향과 같은 쪽으로 이어지지만, 날카로운 돌기는 길에 접근하는 사람을 가로막는다. 도로의 개방감과 시설물의 폐쇄성이 한 공간에서 대비를 이룬다.

카메라의 위치도 일반적인 도로 풍경과 차이가 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을 넓게 담았다면 도로의 길이와 주변 지형이 강조됐을 것이다. 파월은 철조망에 가까이 다가가 반복되는 고리의 형태를 크게 담았다. 가까운 철조망과 멀리 놓인 도로 사이의 거리 차이가 뚜렷해지면서 익숙한 시설물이 기하학적인 구조로 바뀐다.

원형이 반복되는 구성은 전시 제목과도 연결된다. 도로는 한 방향으로 뻗어 있지만 철조망은 같은 형태를 되풀이한다. 직선으로 이동하는 공간 안에 원형의 반복을 배치하면서 여행의 진행과 되풀이되는 경험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미국 서부의 도로와 자동차, 모텔은 사진사에서도 오래된 소재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1950년대 미국을 여행하며 사람과 거리, 자동차와 일상적인 풍경을 기록했다. 사진집 'The Americans'에는 전후 미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담겼다.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는 1970년대 미국의 도로와 모텔, 식당과 주유소를 컬러사진으로 촬영하며 평범한 생활공간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다.

파월의 작업에도 미국 도로사진에서 익숙한 대상들이 등장한다. 차이는 사물을 배치하고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철조망의 반복과 형태를 강조하거나 실재하는 풍경의 위아래를 바꾸는 구성으로 장소에 대한 익숙한 인식을 흔든다. 여행지의 지리적 특성보다 현장에서 마주친 사물의 형태와 공간의 관계가 두드러진다.

붉게 물든 저녁 하늘 아래 검은색 트레일러가 서 있다. 아래쪽에는 뒤집힌 트레일러의 형태가 반복돼 수평선을 중심으로 상하가 마주하는 구성을 이룬다. 사진=Adam Powell, Courtesy of DIESEL ART GALLERY.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검은색 트레일러가 서 있다. 커다란 직사각형 몸체는 어두운 윤곽만 남긴 채 수평선 위에 놓였고, 하늘에는 붉은색과 짙은 청색이 길게 퍼져 있다. 아래쪽에는 트레일러의 형태가 거꾸로 반복된다. 하나의 구조물이 위아래에 놓이면서 정지된 풍경에 시각적인 변화를 준다.

트레일러는 미국의 도로와 물류를 상징하는 일상적인 시설물이다. 장거리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제작됐지만 파월의 작품에서는 움직임 없이 서 있다. 도로를 따라 계속 이동하는 운송 수단이 정지한 순간을 담으면서 바쁜 물류 현장보다 텅 빈 공간과 일몰의 색채가 강조된다.

검은색 트레일러의 직선은 수평선과 나란히 놓였고, 아래쪽에 반복된 형태는 상하의 균형을 바꾼다. 붉은 노을과 트레일러의 실루엣이 다시 나타나면서 같은 공간을 두 차례 바라보는 듯한 구성이 만들어진다.

트레일러를 둘러싼 풍경에는 사람의 모습이 없다. 차량은 멈춰 있고 해는 저물고 있다. 장거리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물체가 정지한 모습은 도로 위에서 반복되는 운송과 휴식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사막의 텅 빈 공간과 인공 구조물 사이의 대비도 선명하다.

철조망과 트레일러는 모두 미국 도로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철조망은 토지와 도로의 구역을 나누고, 트레일러는 물자를 실어 나른다. 파월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두 대상을 반복되는 형태와 강한 원근감, 상하 반전으로 구성했다.

미국 서부를 다룬 대중적인 풍경사진에는 사막의 광활함과 극적인 일몰,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자주 등장한다. 파월의 작품에도 푸른 하늘과 붉은 노을이 있지만 풍경만을 감상하도록 두지는 않는다. 철조망과 트레일러처럼 사람이 만든 시설을 가까이 배치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활동이 남긴 흔적을 함께 담는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여행에서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해도 비슷한 건물과 도로를 반복해서 만난다. 고속도로 주변의 주유소와 모텔, 주차장과 상업시설은 지역이 달라도 비슷한 구조를 갖는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장소에 도착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 계속 나타나는 경험이다.

파월이 관심을 두는 시간의 반복도 이러한 여행 경험과 맞닿아 있다. 낮에는 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밤에는 모텔에 머문다. 다음 날 다시 길에 나서면 또 다른 사막과 도로, 비슷한 숙박시설이 이어진다. 이동한 거리는 늘어나지만 풍경의 차이는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다.

'The DESERT is a CIRCLE'은 서부의 자연을 관광지로 소개하기보다 도로를 따라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공 구조물과 일상적인 장소를 다룬다. 미국적인 풍경을 촬영한 사진이면서 미국에서 생활하고 이동하는 방식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파월은 음악과 패션 분야의 의뢰 작업을 이어오면서 개인적으로 도로와 거리, 인물을 촬영해 왔다. 이번 전시는 여러 해에 걸쳐 진행한 개인 작업을 처음으로 한 개인전에 모으는 자리다. 도로와 모텔을 비롯해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자화상도 함께 소개된다.

도쿄 DIESEL ART GALLERY에서 열리는 전시는 11월 14일 시작해 2027년 1월 11일 막을 내린다. 철조망이 겹쳐지는 도로와 노을 아래 멈춘 트레일러, 미국 서부의 모텔과 사막이 전시의 주요 소재다. 끝없이 뻗은 도로와 반복되는 생활공간 속에서 이동한 거리와 흘러간 시간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