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 티타임의 해체①] 찻주전자에 남긴 네 땀, 완벽한 형태를 비튼 메종 마르지엘라
누데이크와 첫 협업 'OOPS', 1989년 시작된 비앙케토 기법을 도자기와 생활용품에 적용 흰색 덧칠과 불규칙한 곡선, 바느질 장식으로 달라진 찻잔과 주전자의 디자인
[KtN 임우경기자]은백색 찻주전자 몸체에 네 땀을 본뜬 장식이 새겨졌다. 둥근 몸체와 부드럽게 휘어진 주둥이, 곡선형 손잡이는 전통적인 찻주전자의 모습을 유지하지만 표면에는 오래 사용한 물건처럼 희끗한 질감이 남아 있다. 뚜껑에는 작은 금속 고리가 달렸고, 매끄럽게 마감해야 할 외관에는 일부러 균일하지 않은 흔적을 더했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가 국내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NUDAKE)와 손잡고 찻주전자와 찻잔, 받침, 텀블러를 선보인다. 10월 30일 서울 성수동 하우스 노웨어 서울(HAUS NOWHERE SEOUL)의 누데이크 티하우스에서 공개하는 첫 협업 컬렉션 'OOPS'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의류와 신발에 사용해 온 비앙케토(Bianchetto) 기법을 식기에 적용했다. 흰색으로 덧칠한 표면과 네 땀의 바느질 장식, 비틀린 곡선이 찻주전자와 찻잔에 들어갔다. 누데이크는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찻잔 받침과 티백을 구성해 기존 다구의 형태와 사용 방식에 변화를 줬다.
정교하게 다듬은 표면과 균형 잡힌 형태는 오랫동안 도자기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둥근 찻잔의 테두리와 안정적인 받침, 손에 맞게 휘어진 주전자 손잡이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사용의 편의를 고려한 결과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익숙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표면을 거칠게 처리하거나 일부 곡선을 비틀었다. 사용하기 편리한 도구에 장식적인 불규칙성을 더한 구성이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비앙케토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립자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중고 가구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디자인 스튜디오에 배치했다. 서로 다른 색상과 사용 흔적을 지닌 가구를 흰색으로 통일하면서도 원래의 형태와 표면 질감을 남겼다. 이후 의류와 신발, 가방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흰색 페인트는 기존 물건의 색을 덮지만 형태까지 없애지는 않는다. 나무의 결이나 가죽의 주름, 물건의 이음매는 덧칠한 표면 아래에 남는다. 사용하면서 페인트가 갈라지거나 벗겨지면 바탕 소재가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새것처럼 매끄럽게 마감하기보다 원래의 형태와 사용 흔적을 함께 남기는 방식이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1989년 선보인 타비(Tabi)에도 백색 덧칠을 적용했다. 발가락이 갈라진 독특한 형태의 신발에 흰색을 입히면서 착용에 따라 표면이 달라지도록 했다. 페인트 아래에 남아 있던 소재와 착용하면서 생긴 자국이 겹쳐져 신발마다 서로 다른 외관을 갖게 되는 구조다.
비앙케토는 새 제품의 완성된 외관을 오래 유지하는 일반적인 도장과 차이가 있다. 표면에 생기는 마모와 색의 변화를 반드시 감춰야 할 결함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균일하지 않은 질감을 남기고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질 수 있는 외관을 허용한다.
찻주전자에 사용한 백색 마감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도자기의 둥근 몸체와 주둥이, 손잡이를 그대로 두면서 표면의 색과 질감을 바꿨다. 은백색으로 처리된 몸체에서는 빛이 닿는 부분과 어둡게 남는 부분의 차이가 나타난다. 장식적인 문양을 크게 그려 넣지 않아 주전자의 곡선과 표면의 질감이 한층 두드러진다.
뚜껑 위의 금속 고리는 작지만 눈에 띈다. 둥근 주전자와 고리의 곡선이 이어지고, 손잡이와 주둥이는 양옆에서 균형을 이룬다. 기본 형태는 차를 따르는 전통적인 주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를 만드는 부분은 몸체에 남긴 바느질 장식과 표면의 마감이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네 땀은 의류 라벨을 고정하는 바느질에서 비롯됐다. 옷의 안쪽에 부착한 흰색 라벨을 고정하면서 바깥쪽에는 네 개의 작은 실 자국이 남는다. 커다란 글자나 문양을 사용하지 않고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든 디자인이다.
일반적인 의류 제작에서는 라벨과 봉제 흔적을 필요에 따라 안쪽으로 감춘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라벨을 고정한 실 자국을 겉으로 남겼다. 옷의 구조를 이루는 작은 부분이 장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브랜드를 식별하는 요소가 됐다.
찻주전자 몸체에 새긴 네 땀은 실제 바느질과 다르다. 천에서는 실이 소재를 연결하거나 고정하지만 단단한 식기에서는 바느질의 형태만 남는다. 의류의 제작 과정에서 비롯된 흔적을 도자기 표면의 장식으로 바꾼 것이다.
봉제선과 안감, 라벨을 노출하거나 옷의 구조를 분해해 다시 구성해 온 메종 마르지엘라의 작업 방식은 이러한 변형과 연결된다. 의류를 완성한 뒤 감추는 부분을 밖으로 드러내고, 익숙한 물건에 다른 재료나 구조를 적용해 왔다. 찻주전자에 남긴 바느질 장식에서도 본래의 기능을 잃은 제작 요소가 새로운 장식으로 사용됐다.
주전자를 기울이자 갈색 차가 주둥이에서 흘러내린다. 찻잔 대신 바닥으로 떨어진 액체는 불규칙한 자국을 남기고, 주전자는 한쪽으로 기운 상태를 유지한다. 차를 따르는 동작은 익숙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차를 준비하는 과정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찻잎을 넣고 물을 부은 뒤 적당한 시간 동안 우려낸 차를 찻잔에 따른다. 주전자에서 흘러나온 차는 잔 안에 담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닥에 쏟아진 차는 닦아내야 할 실수로 여겨진다.
'OOPS'라는 이름은 일상에서 예상하지 못한 실수가 발생했을 때 사용하는 영어 감탄사에서 가져왔다. 찻주전자에서 차를 흘리는 연출도 같은 맥락이다. 반듯하게 정리된 식탁과 정확한 동작을 전제로 하는 일반적인 티웨어 이미지와 달리 차가 엎질러진 순간을 디자인의 일부로 다뤘다.
액체가 흘러내리는 모습은 사전에 만든 도자기의 형태와 다르다. 주전자의 손잡이와 주둥이는 정해진 곡선을 유지하지만 차는 기울기와 중력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바닥에 남는 자국도 액체의 양과 떨어지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제작된 물건의 규칙적인 형태와 순간적으로 생기는 불규칙한 흔적이 함께 놓였다.
차를 흘리는 연출이 곧 주전자의 사용성을 바꾼 것은 아니다. 손잡이와 주둥이, 뚜껑은 여전히 차를 담고 따르기 위한 구조다. 물건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피하려고 했던 실수를 디자인의 소재로 삼았다.
메종 마르지엘라와 누데이크의 협업은 찻잔과 받침에서도 비슷한 변형을 적용했다. 찻잔의 윗부분은 일정한 원형에서 벗어나 완만하게 굴곡졌고, 두 개의 찻잔을 놓는 받침은 하나로 이어졌다. 반듯한 원형과 독립된 받침을 기본으로 하는 일반적인 다구와 구별된다.
도자기는 오랫동안 대칭과 비대칭, 매끄러운 표면과 거친 질감을 모두 활용해 온 공예 분야다. 물레에서 빚은 균일한 그릇과 손으로 형태를 조정한 그릇은 제작 과정부터 차이가 있다. 손으로 빚은 도자기에서는 미세한 굴곡과 두께 차이가 남기도 한다.
최근 생활 디자인에서도 수공예의 흔적을 강조한 그릇과 비정형적인 곡선을 활용한 제품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일률적인 형태보다 제작 과정에서 생기는 차이와 소재의 질감을 강조하는 흐름이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불규칙한 외관을 제작 과정의 우연에 맡기기보다 처음부터 정해진 디자인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수공예의 자연스러운 편차와 구분된다.
비뚤어진 찻잔의 테두리도 제작 과정에서 우연히 변형된 결과가 아니라 의도된 형태다. 반듯하지 않은 곡선을 설계하고 이를 제품으로 완성했다. 완벽하게 동일한 규격을 추구하는 산업 제품과 차이가 있지만, 디자인된 불규칙성이 곧 우연한 제작 결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비앙케토 역시 처음부터 오래 사용한 듯한 표면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실제 세월의 흔적과 구별된다. 사용하기 전부터 나타나는 거친 질감은 제작자가 정한 마감 방식이며, 이후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마모와 변색은 사용자의 손길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도자기에 적용된 백색 마감과 비틀린 곡선은 외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사용감과도 관계가 있다. 찻잔은 입술이 닿는 테두리의 두께와 각도에 따라 마시는 감각이 달라지고, 주전자는 손잡이의 형태와 무게중심, 주둥이의 구조가 차를 따르는 동작에 영향을 준다. 독특한 형태를 가진 식기일수록 실제 사용에서 손에 닿는 부분과 안정성이 중요해진다.
찻잔의 테두리가 불규칙해도 차를 마시는 데 불편함이 없다면 외형의 변형은 장식적인 선택으로 남는다. 반대로 입술에 닿는 부분이 지나치게 두껍거나 액체가 일정하지 않게 흐른다면 사용 경험도 달라진다. 형태의 변형과 기능의 완성도는 구별해서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휴대용 티 텀블러에는 찻주전자보다 간결한 형태를 적용했다. 원통형 몸체에 검은색 뚜껑을 결합하고, 앞면에는 메종 마르지엘라와 누데이크의 이름을 작게 표기했다. 주전자에서 강조했던 둥근 곡선과 금속 고리 대신 직선적인 몸체와 단순한 색상 대비가 중심을 이룬다.
주전자와 텀블러는 차를 담는 도구이지만 사용하는 환경은 다르다. 주전자는 식탁에 놓고 여러 잔에 차를 따르는 용도이며, 텀블러는 개인이 차를 담아 휴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손잡이와 주둥이를 갖춘 주전자, 뚜껑이 달린 원통형 텀블러는 서로 다른 사용 목적에 맞춰 형태가 결정됐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용도가 다른 두 제품에 비슷한 백색 마감을 적용했다. 주전자에는 네 땀과 고리 장식을 더하고, 텀블러에서는 불필요한 장식을 줄였다. 같은 디자인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물건의 구조와 사용 목적에 따라 장식의 정도를 달리했다.
찻주전자의 은백색 표면과 텀블러의 절제된 외관은 흰색을 활용해 여러 물건을 하나의 디자인으로 연결하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기존 방식과 맞닿아 있다. 1989년 서로 다른 중고 가구를 흰색으로 덮었던 작업이 의류와 신발을 거쳐 생활용품으로 이어진 흐름이다.
패션 하우스가 식기와 가구, 생활용품을 제작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의류에서 사용하던 문양과 색상을 식기에 적용하거나 가구와 조명에 브랜드의 디자인 특징을 반영하는 방식도 널리 사용된다. 메종 마르지엘라와 누데이크의 협업은 브랜드의 상징적인 문양을 표면에 넣는 데서 더 나아가 기존 식기의 일부 형태까지 변형했다.
찻주전자에서는 백색 마감과 네 땀 장식이, 찻잔에서는 불규칙한 테두리가, 받침에서는 두 개의 원을 연결한 구조가 각각 사용됐다. 서로 다른 제품에 같은 변형을 반복하지 않고 용도에 따라 형태를 조정했다. 패션에서 출발한 비앙케토와 바느질 장식은 주로 표면에 남았고, 찻잔과 받침에는 물건의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 적용됐다.
누데이크는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받침과 티백을 이번 협업에 포함했다. 두 잔을 독립적으로 놓던 받침을 연결하고, 따로 사용하던 티백도 하나의 구조로 묶었다. 개별 식기로 구성되던 티타임의 익숙한 방식에 두 사람이 같은 도구를 공유하는 조건을 더한 것이다.
두 개의 찻잔을 하나의 받침에 놓으면 각각 자유롭게 옮기던 식기의 배치가 달라진다. 함께 차를 마시는 상황은 강조되지만 잔과 받침을 따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편의성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형태를 바꾸는 선택이 사용자의 동작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식기에 옮긴 비앙케토와 네 땀은 패션에서 오래 사용해 온 디자인 요소다. 의도적으로 비튼 찻잔과 연결된 받침은 익숙한 다구의 형태를 바꿨고, 차가 흘러내리는 연출은 실수로 남을 법한 흔적을 디자인과 연결했다.
10월 30일 서울 성수동에서 공개되는 'OOPS'에는 찻주전자와 찻잔, 받침, 텀블러뿐 아니라 두 개의 티백을 연결한 홍차 제품도 포함됐다. 흰색으로 덧칠한 표면과 반듯하지 않은 곡선, 서로 이어진 식기가 하나의 컬렉션을 이룬다.
1989년 중고 가구에 남겼던 백색 덧칠은 37년이 지난 2026년 찻주전자의 표면으로 옮겨왔다. 도자기의 둥근 몸체와 차를 따르는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 의류의 바느질과 사용 흔적을 연상시키는 마감을 더했다. 'OOPS'의 찻주전자는 새로운 기능을 갖춘 도구라기보다 익숙한 물건의 완성된 형태를 조금 다르게 다듬은 식기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오랫동안 다뤄 온 비앙케토의 표면과 의도적인 불규칙성이 차를 마시는 일상의 도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