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 티타임의 해체③] 밟힌 자두를 홍차로, 1500개 유리잔에 담은 티타임
메종 마르지엘라·누데이크 'OOPS', 검붉은 자두와 탄 프렌치토스트에서 출발한 차와 디저트 백색 용기와 찻잎 포장, 유리잔 설치와 글라스 하프 연주까지… 맛과 소리로 넓어진 감각 디자인
[KtN 임우경기자]검붉게 익은 자두가 가죽 구두에 짓눌리는 순간이 홍차의 출발점이 됐다. 과육이 터지고 즙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차의 향미로 옮기고, 프렌치토스트가 새까맣게 타버린 상황은 바스크 치즈케이크에 적용했다. 차를 따르는 찻주전자는 은백색으로 덮었고, 찻잎을 담은 용기에는 오래된 도자기를 연상시키는 굴곡을 남겼다. 완성된 음식의 단정한 모습보다 제작 과정에서 일어날 법한 실수와 예기치 않은 변화를 디자인의 소재로 삼았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와 누데이크(NUDAKE)가 10월 30일 서울 성수동 하우스 노웨어 서울(HAUS NOWHERE SEOUL)에서 공개하는 첫 협업 컬렉션 'OOPS'다. 찻주전자와 찻잔, 받침에 적용한 비앙케토(Bianchetto) 기법은 홍차와 디저트, 찻잎을 담는 용기와 포장으로 이어졌다. 차를 준비하는 도구의 형태뿐 아니라 음식의 맛과 향을 구성하는 방식에도 두 브랜드의 디자인 특징을 반영했다.
누데이크는 검붉은 자두와 가죽 구두라는 조합에서 홍차의 향미를 구상했다. 과일의 단 향과 허브, 흙내음을 연상시키는 향을 겹쳐 익숙한 홍차에 다른 감각을 더했다. 함께 구성한 바스크 치즈케이크에는 프렌치토스트가 검게 타버린 모습을 연결했다. 실제로 일어난 실수를 재현하기보다 눌리고 타버진 사물의 이미지를 차와 디저트의 기획에 사용한 것이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의류와 신발에서 다뤄 온 사용 흔적과 불완전한 외관은 음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옷에서는 흰색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봉제선이 드러나는 형태로 남았다면, 이번 협업의 홍차와 디저트에는 압력과 열에 의해 재료가 달라지는 순간이 반영됐다. 단단한 식기와 형태가 쉽게 변하는 음식이 같은 이름 아래 놓였다.
은백색 찻잔 위로 갈색 차가 가늘게 흘러내린다. 잔의 몸체에는 빛을 받아 밝아지는 부분과 어둡게 남는 부분이 생기고, 차의 짙은 색은 금속성 표면과 대비된다. 찻잔 아래에는 가장자리가 부드럽게 굽은 받침이 놓였다. 장식적인 색상을 더하지 않은 식기에 차의 색이 들어오면서 서로 다른 재료의 표면이 구분된다.
찻잔의 은백색 표면은 메종 마르지엘라가 1989년부터 사용해 온 백색 덧칠에서 비롯됐다. 오래된 가구와 의류, 신발에 적용했던 비앙케토를 도자기와 생활용품에 옮긴 것이다. 찻잔은 일정한 원형에서 조금 벗어난 테두리를 갖고 있지만 차를 담고 입술에 대는 기본적인 용도는 유지한다.
따뜻한 차를 마실 때는 색과 향, 온도와 촉감이 함께 작용한다. 찻잔을 손에 쥐었을 때 느끼는 무게와 표면의 질감, 입술이 닿는 테두리의 두께, 코 가까이 올라오는 향이 차를 마시는 경험에 영향을 준다. 찻잔의 색상과 표면이 달라지면 같은 차를 담더라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인상은 달라질 수 있다.
홍차의 갈색은 밝은 백색 식기에 담겼을 때 더욱 뚜렷하게 구분된다. 차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액면의 높이와 빛을 받는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찻잔의 장식이 많지 않아 차 자체의 색이 강조되는 구성이다.
차를 마시는 도구의 색상은 단순한 장식 이상의 역할을 한다. 흰색 도자기는 차의 색을 관찰하기 쉽고, 짙은 색의 그릇은 차와 용기 사이의 대비를 줄인다. 다구의 형태와 재료를 선택하는 일에는 차를 손에 들고 마시는 동작뿐 아니라 차의 색을 감상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OOPS'는 잔의 표면을 은백색으로 처리하면서 갈색 홍차와 대비시켰다. 차를 따르는 순간에는 액체의 흐름이, 잔이 채워진 뒤에는 차의 색과 찻잔의 굴곡이 드러난다. 형태가 고정된 식기와 계속 움직이는 액체가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유지한다.
홍차의 향미는 이러한 시각적 구성과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검붉은 자두와 가죽 구두의 조합은 강한 이미지를 만들지만, 홍차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맛과 향은 찻잎의 종류와 블렌딩에 따라 달라진다. 과일과 허브, 흙내음 계열의 향을 조합한 구성은 향미의 방향을 나타내며, 눈으로 받아들이는 자두의 색상이나 구두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향은 과일이나 식물을 직접 사용하지 않아도 특정한 대상을 연상시킬 수 있다. 홍차의 산화와 가공 과정에서 생긴 향에 다른 재료를 더하면 꽃과 과일, 나무와 흙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향미가 나타난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향을 맡으면서 이미 알고 있는 음식이나 장소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누데이크는 홍차의 맛을 설명하는 데 익숙한 과일 이름만 사용하지 않고 자두가 짓눌리는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했다. 검붉은 자두의 색과 과육이 터지는 모습, 가죽 구두라는 일상적인 물건이 함께 등장한다. 과일의 단맛을 연상시키는 소재에 다소 거친 이미지를 더한 구성이다.
가죽 구두는 패션과 연결되는 물건이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도구는 아니다. 먹는 재료인 자두와 몸에 착용하는 신발을 한데 놓으면서 일반적인 식품의 이미지와 다른 조합이 만들어졌다. 패션 브랜드의 세계를 차와 연결하는 방식이 단순히 로고를 붙이거나 포장 색을 맞추는 데 머무르지 않은 부분이다.
바스크 치즈케이크에도 비슷한 설정이 사용됐다. 프렌치토스트가 지나치게 구워져 새까맣게 타버린 순간을 디저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원래 윗면이 짙게 구워지는 특징을 지닌다.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표면의 짙은 색과 내부의 부드러운 질감이 대비되는 디저트다.
프렌치토스트를 태우는 실수와 바스크 치즈케이크의 짙게 구운 표면은 외형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하나는 조리 과정에서 피하려는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지는 결과다. 검게 변한 음식의 표면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OOPS'라는 이름과 연결된다.
차와 디저트의 조합은 시각적인 색상에서도 차이를 이룬다. 홍차는 붉은 기운을 띠는 갈색이고,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짙게 구운 표면과 밝은 내부가 대비된다. 검붉은 자두와 탄 프렌치토스트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실제 음식에서는 각각 다른 재료와 조리 방식으로 이어졌다.
흰색 차 보관 용기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둥근 뚜껑 위에는 작은 고리 장식이 달렸고, 몸체에는 세로로 길게 이어지는 굴곡이 남아 있다. 용기 아래에는 짙은 색의 가루가 흩어져 있으며 양옆에는 붉은 자두가 놓였다. 흰색 용기의 단정한 형태와 짙은 과일의 색상이 대비된다.
용기의 세로 굴곡은 장식적인 선을 반복하면서 몸체의 입체감을 높인다. 평평한 표면보다 빛과 그림자의 차이가 뚜렷해지고, 작은 고리가 달린 뚜껑은 찻주전자의 금속 고리와도 형태가 연결된다. 전체적인 색상을 흰색으로 제한한 대신 표면의 굴곡과 장식으로 차이를 만든 구성이다.
차를 보관하는 용기는 찻잎을 외부의 빛과 습기, 냄새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홍차는 보관 환경에 따라 향이 달라질 수 있어 용기의 밀폐성과 재료가 중요하다. 장식이 많은 용기라도 실제 보관에 사용하는 경우에는 뚜껑이 안정적으로 닫히는지와 내부 소재가 적절한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메종 마르지엘라와 누데이크의 차 보관 용기에는 장식적인 외형과 보관 도구라는 두 가지 성격이 함께 있다. 둥근 몸체와 뚜껑, 고리는 전통적인 용기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표면을 세로로 나누고 흰색으로 마감했다. 찻주전자와 찻잔이 차를 마시는 순간에 사용된다면 보관 용기는 차를 준비하기 전부터 생활공간에 놓이는 물건이다.
홍차 제품은 두 종류의 한정 잎차 구성으로도 제작됐다. 찻잎을 보관하는 용기에 장식적인 형태를 적용하면서 차를 모두 사용한 이후에도 용기가 남도록 구성했다. 식품을 담은 포장이면서 반복해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의 성격을 함께 갖는 방식이다.
차와 커피, 향 제품에서는 내용물을 담은 용기가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사용돼 왔다. 제품을 사용한 뒤 버리는 포장과 계속 보관하거나 재사용하는 용기는 제작 목적이 다르다. 전자는 내용물의 보호와 정보 전달이 중심이고, 후자는 물건 자체의 형태와 내구성, 사용 후의 활용까지 고려하게 된다.
최근 생활용품 디자인에서는 포장과 제품의 경계를 좁히는 방식도 나타난다. 보관 용기를 장식적인 사물로 만들거나 내용물을 사용한 뒤에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하는 경우다. 차 보관 용기 역시 식탁이나 선반에 놓이는 생활용품이면서 포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흰색 용기를 장식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재사용이 가능한 형태와 실제 재사용 여부는 다르며, 용기의 제작 재료와 생산 과정, 폐기 방식까지 함께 고려해야 환경적 영향을 판단할 수 있다. 장식적인 재사용 가능성과 자원 절감의 효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OOPS'의 용기는 차를 보관하는 기능과 함께 메종 마르지엘라의 백색 디자인을 일상적인 사물에 적용한 결과다. 찻잎의 양이나 종류가 달라져도 용기의 외관은 유지된다. 식품의 내용물이 소모된 뒤에도 사물의 형태가 남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일회용 포장과 차이가 있다.
흰색 직사각형 상자에는 두 브랜드의 이름이 검은색으로 표기됐다. 옆에는 찻잎이 담긴 투명한 포장이 놓였고, 짙은 자두가 함께 배치됐다. 상자의 표면은 단순하지만 투명한 포장 안쪽에는 찻잎의 불규칙한 색과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차 포장에는 일반적으로 찻잎의 종류와 향미, 원산지 등을 나타내는 정보가 들어간다. 색채와 그림을 통해 맛을 연상시키는 방식도 널리 사용된다. 과일 향을 강조한 차에는 과일 그림을, 꽃향을 강조한 차에는 꽃의 형태를 적용하는 식이다.
'OOPS'는 흰색과 검은색을 중심으로 포장을 구성했다. 복잡한 그림을 넣기보다 작은 글자와 간결한 형태를 유지하고, 찻잎과 자두를 함께 배치해 내용물의 색과 형태가 드러나도록 했다. 포장 자체의 색은 절제하면서 차가 지닌 감각적인 특징은 주변의 사물로 나타냈다.
투명한 포장은 흰색 상자와 다른 역할을 한다. 상자가 브랜드와 제품을 구분하는 외부 포장이라면 투명한 부분은 찻잎의 실제 형태를 드러낸다. 가늘고 불규칙한 찻잎의 모양과 짙은 색이 균일하게 정리된 흰색 상자와 대비된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의류에서 안감과 봉제선, 제작 흔적을 드러냈던 방식과도 시각적인 공통점이 있다. 완성된 제품의 외관을 정리하면서 내부 구조나 재료를 감추지 않는 구성이다. 포장 안쪽에 놓인 찻잎을 드러내는 일은 의복의 봉제 구조를 노출하는 작업과 기능적으로 같지는 않지만, 완성된 표면과 내부의 재료를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흰색 상자와 투명한 포장, 검붉은 자두는 각각 다른 질감을 가진다. 상자는 평평하고 반듯하며, 포장은 얇고 유연하다. 자두는 둥글고 표면의 색이 짙다. 재료의 형태와 색상을 나누어 배치하면서 한 가지 물건에 시선을 집중시키기보다 서로 다른 사물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게 한다.
누데이크가 식품을 다루는 방식에도 이러한 구성이 이어져 왔다.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낯선 형태로 만들거나 일반적인 음식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재료의 외관을 활용해 왔다. 식품의 맛과 형태를 별개의 요소로 다루기보다 음식이 놓이는 방식과 시각적인 인상까지 함께 구성하는 접근이다.
디저트와 차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할 때는 맛보다 외형이 먼저 전달된다. 색상과 형태, 재료의 질감은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향과 맛은 실제로 먹거나 마셔야 경험할 수 있다. 강한 이미지가 제품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더라도 최종적인 평가는 실제 향미와 식감에 따라 달라진다.
'OOPS'에서 검붉은 자두와 가죽 구두는 차의 맛을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 홍차의 향미를 이해하도록 돕는 시각적인 이야기로 사용됐다. 탄 프렌치토스트 역시 바스크 치즈케이크의 조리법을 설명하기보다 짙게 구운 음식의 외관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다.
차와 디저트의 기획이 식기와 포장에 머물지 않고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메종 마르지엘라와 누데이크는 성수동 하우스 노웨어 서울에 약 1500개의 유리잔을 활용한 설치물을 마련한다. 폴란드 출신 아티스트 듀오 글라스듀오(GlassDuo)의 글라스 하프(glass harp) 연주도 함께 예정돼 있다.
유리잔은 차와 음료를 담는 생활용품이지만 소리를 내는 악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 글라스 하프는 물을 담은 유리잔의 가장자리를 젖은 손가락으로 문질러 진동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연주한다. 잔의 크기와 형태, 물의 양 등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며 여러 개의 유리잔을 배열해 선율을 만든다.
글라스듀오는 유리잔을 이용한 연주로 활동해 온 폴란드의 음악가 듀오다. 일반적인 현악기나 관악기 대신 유리의 진동을 이용해 소리를 낸다. 차를 마시는 데 사용하는 잔과 같은 재료가 음악을 만드는 도구로 바뀌는 셈이다.
약 1500개의 유리잔을 활용한 설치물은 개별적으로 사용할 때와 다른 규모를 갖는다. 한두 개의 유리잔은 음료를 담는 생활용품이지만 수많은 잔을 일정한 공간에 모으면 배열과 반복, 빛의 반사가 강조된다. 투명한 유리는 주변의 조명과 배경을 통과시키거나 반사하기 때문에 배치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적인 효과를 만든다.
유리잔을 이용한 설치와 글라스 하프 연주는 같은 재료를 시각과 청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설치물에서는 유리의 투명성과 반복되는 형태를 살펴볼 수 있고, 연주에서는 유리의 진동과 공명이 중심이 된다. 차를 마실 때 손으로 잡는 그릇이 전시장에서는 형태와 소리를 가진 사물로 사용된다.
유리를 이용한 소리의 실험은 새로운 예술 형식만은 아니다. 물을 담은 유리잔에서 음을 내는 글라스 하프는 오래전부터 연주돼 왔으며, 18세기에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유리그릇의 진동을 이용한 악기인 글라스 하모니카(glass harmonica)를 고안하기도 했다. 일상적인 그릇을 악기로 활용하는 방식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메종 마르지엘라와 누데이크는 유리잔을 이용한 기존의 연주 방식을 차와 식기의 협업 행사에 연결했다. 도자기와 홍차, 유리잔 설치물과 음악 공연을 하나의 공간에 구성하면서 관람과 식음 경험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했다.
미술 전시에서도 관람객의 감각을 여러 방향으로 활용하는 작업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설치미술은 작품을 벽에 걸어 감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간 전체를 구성하고, 사운드 아트는 소리와 청각을 주요 재료로 사용한다. 향이나 음식, 촉감을 함께 활용하는 전시도 존재한다.
상업적인 브랜드 행사에서도 공간과 소리, 향을 결합하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상품을 진열하는 데서 벗어나 관람객이 특정한 환경 안에서 브랜드의 디자인을 경험하도록 구성하는 접근이다. 이러한 행사는 미술 전시와 비슷한 형식을 취할 수 있지만 작품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전시와 상품을 소개하는 브랜드 행사는 운영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OOPS'의 유리잔 설치와 글라스 하프 공연도 차를 마시는 경험과 브랜드 행사가 결합된 구성이다. 차를 담는 용기를 전시의 재료로 사용하고, 유리잔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공연에 활용한다. 찻주전자와 찻잔에서 시작된 디자인이 일상적인 식기와 공연의 재료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설치물의 규모와 공연의 완성도는 별개의 평가 대상이다. 1500개라는 유리잔의 수량은 공간을 채우는 재료의 규모를 나타내지만, 실제 설치의 조형성은 잔의 배치와 조명, 관람객의 동선에 따라 달라진다. 글라스 하프 역시 유리잔을 사용한다는 특징보다 연주와 음향, 공연 공간의 조건에 따라 음악적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메종 마르지엘라와 누데이크의 협업은 의류에서 사용해 온 디자인 요소를 식기와 음식, 전시 공간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적용했다. 찻주전자에는 백색 마감과 네 땀 장식이 남았고, 찻잔과 받침에는 불규칙한 곡선과 연결 구조가 사용됐다. 홍차에는 짓눌린 자두의 이미지를, 디저트에는 검게 탄 프렌치토스트의 모습을 결합했다.
물건의 형태를 변형하는 일과 맛을 구성하는 일은 사용하는 재료부터 다르다. 도자기는 형태를 유지하지만 음식은 조리 과정에서 변하고, 차는 물에 우려내는 동안 색과 향이 달라진다. 유리잔은 음료를 담는 도구로 쓰이다가 연주에서는 소리를 내는 재료가 된다. 'OOPS'에 포함된 물건과 음식은 각자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감각을 통해 연결됐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불완전한 표면과 사용 흔적은 이번 협업에서 하나의 주제로 이어졌다. 흰색 덧칠은 오래된 물건의 질감을 남기고, 비뚤어진 찻잔은 반듯한 원형에 변화를 준다. 짓눌린 자두와 탄 프렌치토스트는 식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피하려는 상황을 음식의 디자인으로 옮겼다. 실수와 불규칙함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일부를 선택해 의도적으로 구성한 결과다.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찻잔의 형태보다 차의 온도와 향, 맛이 먼저 중요할 수 있다. 식기를 감상하는 사람은 백색 표면과 비틀린 곡선에 관심을 둘 수 있고, 설치와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은 유리잔의 배열과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같은 협업 안에서도 실제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경험하는 부분이 달라진다.
10월 30일 오전 11시 서울 성수동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누데이크 티하우스에서 'OOPS' 컬렉션이 공개된다. 홍차와 바스크 치즈케이크, 찻주전자와 찻잔, 연결형 티백과 잎차 제품이 함께 구성되며 약 1500개의 유리잔 설치와 글라스듀오의 공연도 예정돼 있다.
1989년 중고 가구를 흰색으로 덧칠하면서 시작된 메종 마르지엘라의 디자인 방식은 2026년 차를 마시는 식탁으로 옮겨왔다. 검붉은 자두를 짓누른 상황은 홍차의 향미 구상으로, 탄 프렌치토스트는 디저트의 외관을 다루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유리잔은 차를 담는 용기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재료와 소리를 내는 악기로 사용된다. 익숙한 물건의 형태와 용도를 조금씩 바꾸는 실험이 차와 식기, 음악과 전시 공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