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제스티!’,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희망…괴짜 황제 노턴 1세가 전한 뭉클한 감동
[KtN 문화 현장 리포트 ] 뮤지컬 ‘마제스티’ 프레스콜 대학로 프레스콜서 ‘다리’ 등 주요 넘버 시연…바다를 잇겠다는 엉뚱한 꿈에 담긴 인간애와 연대 엄기준·박재윤·박정원·김우석 등 출연, 배우들의 섬세한 열연과 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로 완성한 따뜻한 울림
[ KtN 김동희 기자 ] 기상천외한 황제 노턴 1세의 이야기로 시대 넘어선 메시지 전한 뮤지컬 ‘마제스티!’가 그 삶을 무대 위에 펼쳐냈다.
골드러시의 열기가 식어버린 1869년 샌프란시스코. 빈부 격차와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고 이민자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번지던 도시 한복판에 낡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스스로를 ‘미합중국 황제이자 멕시코 수호자’라 선포한 노턴 1세. 왕관도 궁전도 없는 괴짜 황제는 어느 날 바다 위에 거대한 다리를 놓겠다는 꿈을 꾼다.
세상은 불가능하다며 비웃지만 노턴은 흔들리지 않는다. 서로를 단단히 붙잡아준다면 거센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뮤지컬 ‘마제스티!’는 황당하게 들리던 한 남자의 꿈을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이야기로 펼쳐낸다.
지난 10월 30일 오후 서울 대학로 NOL 씨어터 우리카드홀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마제스티!’ 프레스콜에서는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주요 장면들이 공개됐다. 검은 모자에 긴 깃털을 꽂고 금빛 견장이 달린 외투를 걸친 노턴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눈을 감은 채 미소 짓는 얼굴에는 세상의 조롱에도 자신만의 믿음을 잃지 않는 인물의 여유와 다정함이 담겼다.
‘마제스티!’는 19세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스로 황제를 선포했던 실존 인물 조슈아 에이브러햄 노턴(Joshua Abraham Norton)의 삶을 바탕으로 한 창작뮤지컬이다. 기상천외한 칙령과 독특한 행보로 알려진 노턴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권력과 언론, 혐오와 차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다룬다.
신문사 수습기자 아서 클라이브는 노턴을 통해 세상을 뒤흔들 기사를 쓰려 한다. 황제의 외투를 붙잡고 한쪽을 가리키는 젊은 인물과 당황한 듯 몸을 기울이는 노턴의 모습에서는 두 사람의 상반된 성격이 드러났다.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표정과 움직임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도 자연스럽게 부딪혔다.
특히 주요 넘버 ‘다리’는 작품이 전하려는 감정을 응축한다.
바다 위에 다리를 놓겠다는 노턴의 선언에 아서는 의문을 쏟아낸다. 깎아지른 절벽과 거센 물살, 세찬 바람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한다. 긴 다리가 흔들리고 바닷바람에 녹슬면 어쩌느냐는 물음에도 노턴은 망설이지 않는다.
강철로 만들고 양쪽에 거대한 주탑을 세운 뒤 튼튼한 줄로 연결하면 된다고 답한다. 녹을 막기 위해 칠할 색까지 정한다. 빨간색이다.
살아 있는 동안 완공된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노턴은 꿈을 거두지 않는다. 언젠가 다리가 놓인 세상이 당연해질 것이라고 믿으며 아서에게 함께 태양을 바라보자고 손을 내민다.
서로를 당겨주기에 흔들려도 버틸 수 있다는 노래는 다리를 지탱하는 원리에서 사람을 지탱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손을 붙잡아주는 작은 용기와 서로를 믿는 마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노턴의 엉뚱한 꿈을 통해 전해진다.
무대 위 배우들이 어깨를 맞대고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는 군무에서는 활기가 넘쳤다. 회색 정장과 갈색 조끼, 낡은 외투를 입은 인물들이 하나의 박자에 맞춰 움직였다. 노턴 역시 주변 사람들과 팔을 맞물린 채 함께 발을 굴렀다.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작품이 전하는 연대의 의미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황제라는 호칭보다 함께 웃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돋보였다.
9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연주도 감정의 흐름을 뒷받침했다. ‘황금의 시대’, ‘황제의 칙령’, ‘데일리 크로니클’, ‘헤드라인’, ‘마제스티’ 등 경쾌한 넘버가 도시의 활기를 살렸고, ‘벽’, ‘빨간 펜’, ‘다리’, ‘마지막 칙령’, ‘내가 써야 할 진실’에서는 인물들이 마주하는 갈등과 진실이 보다 깊이 있게 펼쳐졌다.
19세기 샌프란시스코를 형상화한 무대는 벽돌 건물과 계단, 여러 층으로 연결된 구조물로 도시의 복잡한 모습을 담아냈다. 짙은 푸른빛과 보랏빛 조명 아래에서 배우들은 각자의 욕망과 상처를 드러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욕망과 도시를 떠도는 소문, 신문을 통해 확산되는 편견은 오늘날의 사회와도 맞닿아 있다. 아서는 자극적인 기사로 성공하려는 마음과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노턴의 독특한 행동을 따라가던 기자는 점차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지팡이에 두 손을 포갠 채 홀로 선 노턴의 모습은 떠들썩한 군무와 또 다른 여운을 남겼다. 커다란 모자와 금빛 견장, 낡은 외투는 여전히 우스꽝스러웠지만 턱을 들고 먼 곳을 바라보는 표정에는 쉽게 꺾이지 않는 자존심과 외로움이 함께 담겼다.
사람들에게 조롱받으면서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노턴의 모습은 애틋함을 더했다. 세상을 바꿀 권력은 없지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컸다. 배우의 익살스러운 연기 속에 섞인 진지한 눈빛과 절제된 움직임이 괴짜 황제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렸다.
신문과 지폐를 손에 든 인물들이 노턴을 둘러싼 대목에서는 배우들의 긴밀한 호흡이 돋보였다. 놀란 듯 입을 벌린 노턴과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은 웃음을 만들어내면서도 돈과 권력, 언론이 얽힌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드러냈다.
‘마제스티!’의 이야기는 가짜 뉴스와 혐오, 차별이 반복되는 시대에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누군가를 비웃고 배척하는 일은 쉽지만, 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믿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노턴이 꿈꾼 다리는 바다 양쪽을 연결하는 건축물을 넘어 갈라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희망으로 확장된다.
노턴 1세 역은 엄기준과 박재윤, 아서 클라이브 역은 박정원과 김우석이 맡았다. 약 5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김우석의 참여도 관심을 모았다. 마르타 코르테즈 역에는 이정화와 허윤슬, 킬리언 오닐 역에는 양승리와 우재하가 출연한다. 강성진과 김수로 등 개성 있는 배우들도 함께 무대를 채운다.
김수로 프로듀서와 김성연 작가, 성종완 연출이 참여한 창작뮤지컬 ‘마제스티!’는 지난 10월 25일 개막해 오는 11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NOL 씨어터 우리카드홀에서 공연된다.
바다 위에 다리를 놓겠다는 노턴의 꿈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현실의 역사와도 만났다. 실제 노턴 1세는 1872년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연결하는 다리 건설을 촉구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 브리지는 노턴 사후인 1936년 개통됐다.
무대 위에서 노턴은 아서에게 함께 태양을 바라보자고 손을 내민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서로를 붙잡아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노래로 번진다. 웃음을 자아내던 괴짜 황제의 꿈이 가슴 뭉클한 위로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뮤지컬 ‘마제스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무너지지 않을 다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따뜻한 선율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