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심장소리', 타워크레인 농성과 우울증 사이에 놓인 소년의 불안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11월 2일 넷플릭스 공개 전도연·김건우 출연, 설경구 목소리 참여…28분에 담긴 노동과 가족의 균열

2026-11-03     홍은희 기자
이창동 감독의 첫 단편 연출작, '심장소리' 사진=Netflix Kore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홍은희기자]어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아버지는 타워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이다. 집에 있어야 할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자 어린 아들은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이창동 감독의 단편영화 '심장소리'는 가족에게 닥친 위기를 한 소년의 불안과 움직임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으며, 11월 2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28분 분량의 영화에서 김건우는 소년 철이를, 전도연은 어머니를 연기한다. 설경구는 타워크레인에서 농성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출연한다. 부모가 처한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의 부재는 철이에게 동시에 닥친다.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소년의 불안은 점점 커진다.

철이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집으로 향한다. 영화는 철이가 달리는 과정을 따라가며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두려움에 집중한다.

어머니의 우울증과 아버지의 고공 농성은 별개의 사건처럼 놓여 있지만 철이의 일상에서는 분리되지 않는다. 노동 현장의 갈등으로 집을 떠난 아버지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어머니 사이에서 소년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른들이 감당하는 문제가 아이에게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이창동 감독의 첫 단편 연출작, '심장소리' 사진=Netflix Kore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타워크레인은 노동 갈등이 발생한 장소이면서 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높은 곳에서 농성하는 아버지는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거리와 가족을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 겹치면서 철이가 겪는 불안의 배경을 이룬다.

어머니의 우울증 역시 소년의 행동과 분리되지 않는다. 영화는 질환 자체를 상세히 설명하기보다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 구성원이 느끼는 두려움을 다룬다. 철이에게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일이다. 집까지의 거리는 소년이 불확실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구간이 된다.

이창동 감독은 소년의 움직임과 표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달리는 동작이 반복되는 동안 인물의 호흡과 표정이 달라지고, 관객은 철이가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결과를 알 수 없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이어지는 이동이 영화의 긴장을 형성한다.

'심장소리'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베이징당대예술기금회(BCAF)가 우울증을 주제로 영화 제작을 제안하면서 만들어졌다. 정신건강을 소재로 삼았지만 질환의 증상을 설명하는 방식보다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안에 무게를 뒀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서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환경이 맞물려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박하사탕'에서는 한 인물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변화를 따라갔고, '밀양'에서는 상실을 겪은 여성과 주변 공동체의 관계를 다뤘다. '버닝'은 청년들의 불안과 계층 간 거리를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로 배치했다.

'심장소리'에서는 노동 갈등과 정신건강 문제가 한 가족의 일상에 함께 놓인다. 아버지의 농성은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철이에게는 아버지가 집에 없는 이유가 된다. 어머니의 우울증도 의학적 진단에 머물지 않고 연락이 끊긴 순간 소년이 느끼는 공포와 연결된다.

이창동 감독의 첫 단편 연출작, '심장소리' 사진=Netflix Kore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8분이라는 상영시간은 이야기의 범위를 철이의 행동에 집중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가족이 처한 상황을 모두 설명하거나 사건의 배경을 길게 제시하기보다 한 소년이 집으로 달려가는 시간을 중심으로 서사를 압축했다. 노동과 질병이라는 서로 다른 문제가 아이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짧은 이동 과정에 겹쳐진다.

각본에는 오정미 작가가 참여했다. 전도연과 설경구는 이창동 감독의 장편영화 '가능한 사랑'에도 출연한다. 두 작품은 제작 규모와 서사 형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노동 문제와 가족관계를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심장소리'는 2022년 영화제 상영 이후 4년 만에 온라인으로 공개됐다. 영화의 중심에는 거대한 사건의 전모보다 어머니의 전화를 기다리며 집으로 달려가는 소년이 있다. 타워크레인 위의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는 어머니, 두 사람 사이에서 불안을 감당하는 아이의 시간이 28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