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My Friends③] 임하나, 오래된 태블릿에서 판화까지…지우고 다시 그린 선의 시간

손으로 그리기 어려웠던 시기 시작된 디지털 드로잉…간결한 검은 선과 푸른색에 담긴 시간, 파인아트 프린트로 확장한 초상의 기록

2026-11-04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전시 마감이 다가오던 시기, 임하나(LIMHANA) 작가는 오래된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해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던 때였다. 태블릿의 떨림 보정 기능을 가장 높은 단계로 설정하고, 선을 긋고 지우며 인물의 윤곽을 다듬었다. 간결한 검은 선과 작은 눈, 동그랗게 열린 입으로 이루어진 ‘Hello My Friends’ 연작은 당시의 작업에서 출발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국제 현대미술전 ‘ARTO Open 2026’에 소개된 ‘Hello My Friends’는 초기 디지털 드로잉을 파인아트 프린트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10월 31일 개막한 전시는 그레이디아 스튜디오(Greydea Studio)에서 11월 17일까지 이어진다. 임하나는 일상에서 만날 법한 인물들을 단순한 선과 제한된 색채로 그리며,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키고 싶은 감정을 초상에 담았다.

네 인물은 정면을 바라보는 구도로 그려져 있다. 눈은 작은 검은 점으로, 입은 둥글게 열린 형태로 표현됐다. 코와 얼굴의 굴곡은 대부분 생략하고, 머리카락과 귀, 턱선에는 굵고 가는 곡선을 사용했다. 인물마다 머리 모양과 의상, 주변 소품은 다르지만 얼굴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표현은 비슷하다.

검은 윤곽선은 인물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조형 요소다. 길게 이어지는 턱선과 목의 직선, 짧고 불규칙하게 휘어진 머리카락의 선은 서로 다른 리듬을 만든다. 눈과 입을 최소한으로 표현한 얼굴에는 넓은 흰 여백이 남아 있고, 선의 굵기와 방향에 따라 각 인물의 인상이 달라진다.

임하나(LIMHANA)의 ‘Hello My Friends’ 연작. 디지털 드로잉에서 출발해 파인아트 프린트로 제작된 작품으로, 간결한 검은 선과 푸른색, 일상적인 소품과 짧은 문구가 특징이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태블릿의 떨림 보정 기능은 선의 흔들림을 줄이는 데 사용됐다. 임하나는 작업에 필요한 형태를 얻기 위해 디지털 도구의 보조 기능을 활용하면서도 선의 길이와 곡률, 위치를 직접 조정했다.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신체적 조건이 새로운 도구의 사용으로 연결됐고, 디지털 드로잉은 이후 연작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됐다.

완성된 인물들의 간결함은 제작 과정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다. 몇 개의 선으로 얼굴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눈과 입의 위치, 머리카락의 방향이 인상을 결정한다. 선을 많이 사용하는 대신 필요한 형태를 남기는 방식으로 인물의 특징을 정리했다.

인물의 얼굴에서는 특정한 나이나 국적, 사회적 지위를 짐작하기 어렵다. 정면을 향한 작은 눈과 둥근 입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임하나는 외형적 특징을 세밀하게 재현하기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감정과 내면에 관심을 두고 초상을 구성했다.

사각형 안에 배치된 인물들은 증명사진의 형식을 닮았다. 얼굴을 중심에 두고 주변의 설명을 최소화한 구성에 짧은 영어 문구와 일상적인 소품을 더했다. 인물을 구분하는 정보 대신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사각형 안에 놓였다.

‘Don't Worry’와 ‘Think Positive’는 일상에서 건네는 격려의 말이다. ‘Hello, Summer!!’는 계절을 맞이하는 인사로, 음료와 디저트를 든 인물 곁에 놓였다. 종이배를 든 인물에게는 꿈과 밝은 해안을 연결하는 문장이 더해졌다.

글자는 인물의 왼쪽에 세로로 배치돼 있다. 굵은 검은색 글자와 가는 회색 글자가 구분되고, 얼굴의 곡선과 문자의 수직적인 배열이 대비를 이룬다. 인물의 표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가운데 문구와 소품이 각 초상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디지털 드로잉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은 이후 파인아트 프린트로 제작됐다. 디지털 이미지로 존재하던 선과 색채가 인쇄를 거쳐 물리적인 작품으로 옮겨진 것이다. 검은 윤곽선과 흰 여백, 제한된 색채의 관계는 유지하면서 실제 전시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형태를 갖췄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국제 현대미술전 ‘ARTO Open 2026’ 포스터. 전시는 10월 31일부터 11월 17일까지 그레이디아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며 임하나를 포함한 국내외 작가 109명이 참여한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파인아트 프린트에서는 인물과 글자의 비율, 선의 굵기, 색면의 배치가 하나의 고정된 구성으로 자리한다. 디지털 드로잉 특유의 정돈된 선과 단순한 색채는 인쇄된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직사각형의 구획과 인물의 윤곽, 문구의 배열이 함께 하나의 초상을 이룬다.

‘Hello My Friends’의 색채는 블루에서 모노톤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블루로 돌아오는 변화를 거쳤다. 처음 작업에 사용했던 푸른색은 인물의 감정을 담는 주요 색채였고, 모노톤으로 전환한 시기에는 검은 윤곽선과 흰 여백의 관계가 더욱 두드러졌다.

다시 선택한 블루에는 희망과 슬픔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함께 놓인다. 파란색은 맑고 밝은 인상을 주면서도 고요함과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임하나는 일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키고 싶은 마음을 블루의 다양한 농도에 담았다.

최근 작품에서는 파란색이 의상과 소품에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줄무늬 옷을 입은 인물의 어깨와 가슴에는 선명한 블루가 수평으로 이어지고, 음료를 든 인물에게는 작은 파란색의 강조가 들어간다. 디저트를 든 인물의 짙은 청색 의상은 노란 귀걸이와 붉은 체리의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종이배를 든 인물의 의상에도 짙은 블루가 넓게 사용됐다. 흰 종이배와 검은 외곽선이 파란색 위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며, 손에 든 작은 사물이 자연스럽게 강조된다. 같은 색을 사용하더라도 면적과 위치를 달리해 네 초상의 분위기를 구분했다.

검은 선과 푸른색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다. 윤곽선은 얼굴과 신체의 형태를 정리하고, 블루는 인물이 처한 일상의 분위기와 정서를 더한다. 흰 여백은 두 요소 사이에 간격을 만들면서 인물의 간결한 표정을 유지한다.

임하나(Hana LIM) 작가가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열리는 ‘OSTEN 비엔날레 스코페 2026’ 선정 작가 명단에 올랐다.

임하나가 초기 디지털 드로잉에서 다뤘던 신체적 어려움과 작업의 지속성은 ‘Hello My Friends’의 정서적 배경과도 연결된다. 일상의 평범한 얼굴을 통해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남아 있는 순수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려는 작업이다.

연작 속 인물들은 특별한 사건을 겪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음료를 들거나 디저트를 먹고, 작은 종이배를 손에 쥔 모습이 전부다. 짧은 격려와 인사가 더해진 초상에는 일상의 평범함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Hello My Friends’의 제작 과정에서 회복은 추상적인 관념에 머물지 않았다. 손으로 그리기 어려웠던 시기에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작업을 이어갔고, 초기 드로잉은 판화를 거쳐 새로운 물성을 갖게 됐다. 작품의 간결한 외형과 달리 제작 과정에는 신체적 제약과 시간의 압박 속에서도 작업을 지속했던 경험이 남아 있다.

임하나의 ‘Hello My Friends’는 검은 윤곽선과 푸른색을 중심으로 한 인물 연작이다. 오래된 태블릿에서 출발한 드로잉은 파인아트 프린트로 옮겨졌고, 블루와 모노톤을 오간 색채의 변화도 작품에 축적됐다. 작은 눈과 둥근 입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일상의 짧은 인사말과 함께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키고 싶은 감정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