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 운영 중단, 파리 패션에서 사라지는 혁신 브랜드… 흔들리는 디자이너 기업의 생존 기반

벨라 하디드의 스프레이 드레스로 세계를 놀라게 한 코페르니, 대주주·유통사와의 분쟁 끝에 사업 중단 Y/프로젝트에 이어 파리 독립 브랜드의 위기 확산… 창의성보다 자금과 유통 지배력이 생존을 좌우하는 패션산업

2026-11-05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2022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벨라 하디드(Bella Hadid)의 몸에 액체 섬유를 분사해 흰색 드레스를 완성했던 코페르니(Coperni)가 사업을 중단한다.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기술로 구현해 세계 패션계의 관심을 끌었던 프랑스 브랜드가 2026년 11월 4일 운영 종료를 발표했다. 파리에서 가장 실험적인 컬렉션을 선보여 온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디자인이나 창작 활동의 종료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대주주이자 독점 유통사와의 금융·경영권 분쟁을 해결하지 못해 사업을 접게 됐다는 점에서 패션산업의 구조적인 불안정성이 드러났다.

코페르니의 공동 창업자 아르노 바양(Arnaud Vaillant)과 세바스티앙 메이어(Sébastien Meyer)는 4일 프랑스 운영법인 코페르니 SAS(Coperni SAS)의 사업 중단을 발표했다. 영국의 패션 유통·브랜드 개발기업 투모로우(Tomorrow Ltd.)와 미지급금 및 계약 관계를 둘러싼 분쟁이 수개월간 이어졌고, 협상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두 창업자는 브랜드를 보존하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코페르니 SAS는 프랑스에서 디자인과 일상적인 사업 운영, 인력 고용을 담당해 온 법인이다.

코페르니 FW25가 선보인 ‘게이머 뷰티’ 트렌드. 사진=Copern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코페르니는 2013년 처음 설립됐으며 2018~2019년 재출범을 거치면서 현재 알려진 브랜드의 형태를 갖췄다. 창업자들이 사업 중단을 알리며 언급한 8년은 재출범 이후의 활동 기간과 연결된다. 운영법인의 사업 종료가 발표됐지만 코페르니라는 브랜드 명칭과 지식재산권이 앞으로 누구의 통제 아래 놓일지, 다른 사업 주체에 의해 다시 사용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프랑스 운영법인의 중단과 브랜드 권리의 최종 소멸은 법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2026년 초부터 코페르니의 사업에는 균열이 나타났다. 2026 FW 컬렉션을 발표할 예정이던 파리 패션위크의 런웨이를 취소했고, 당시 창업자들은 투모로우와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브랜드 운영과 발전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패션쇼 취소는 단순히 행사 하나가 사라진 일이 아니었다.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런웨이는 새로운 시즌의 의류를 공개하고 구매 담당자와 유통업체, 언론과 연결되는 주요 활동이다. 발표 일정이 중단되면 다음 시즌의 수주와 상품 공급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투모로우는 코페르니의 독점 유통사이면서 지분 과반을 보유한 대주주였다. 코페르니의 창업자들은 디자인과 브랜드의 창작 활동을 담당했고, 투모로우는 생산과 도매 유통, 판매대금 정산 등 사업의 중요한 부분을 맡았다. 협업 구조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독립 디자이너가 자체적인 생산·유통 조직을 모두 구축하지 않고도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코페르니 역시 투모로우와의 협력을 통해 국제적인 사업 기반을 확대해 왔다.

매출이 발생한 뒤 자금이 실제 브랜드 운영비로 전달되는 과정에서는 유통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투모로우는 도매 판매대금을 수령한 뒤 계약에 따라 브랜드에 로열티 등 정산금을 지급하고 패션쇼와 캠페인 등에 발생한 일부 비용을 보전하는 구조로 운영됐다. 코페르니 측은 투모로우가 지급해야 할 금액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서 회사의 재정적 압박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유통 파트너가 상품 판매와 자금 흐름을 동시에 관리하는 구조에서 지급이 중단되면 브랜드의 창작 활동과 고용, 생산 일정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분쟁은 투모로우의 소유권 변화와 맞물려 복잡해졌다. 투모로우는 2026년 3월 이탈리아 전자상거래 기업 더 레벨 그룹(The Level Group)의 지주회사 프로제토 11(Progetto 11)에 인수됐다. 기존 경영진이 물러난 뒤 코페르니 창업자들은 브랜드를 되사들여 경영권을 회복하려 했으나 협상은 성사되지 않았다. 프로제토 11 측은 인수 당시부터 코페르니를 둘러싼 소유권과 경영 지배구조 분쟁, 자금 부족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미지급금의 책임과 경영권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은 구분할 필요가 있지만, 분쟁이 지속되는 동안 브랜드의 정상적인 운영은 어려워졌다.

코페르니 FW25가 선보인 ‘게이머 뷰티’ 트렌드. 사진=Copern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6월 11일 파리 법원은 코페르니 SAS에 대한 사법적 회생절차를 개시했다. 프랑스의 기업 회생제도인 '르드레스망 쥐디시아르(redressement judiciaire)'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놓인 기업이 법원의 감독 아래 사업을 유지하면서 회생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절차다. 코페르니는 법원의 보호 아래 직원과 사업을 유지하고 새로운 투자 또는 경영권 회복을 추진하려 했다. 법원의 개입으로 일정 기간 운영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지만 대주주와의 분쟁을 끝내지는 못했다.

투모로우의 재무 상황도 코페르니가 처한 경영환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투모로우의 2024 회계연도 매출은 840만 파운드로 전년보다 34% 감소했다. 매출총이익률은 2023년 76%에서 2024년 41%로 낮아졌고, 영업손실은 750만 파운드로 전년보다 28% 증가했다. 코페르니 자체가 아니라 대주주이자 유통사인 투모로우의 실적이다. 판매와 유통을 담당하는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그 기업의 정산과 생산 체계에 의존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수치다.

투모로우와 관계를 맺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생산과 컬렉션 운영에 차질이 나타났다. 영국 디자이너 마틴 로즈(Martine Rose)는 2026년 3월 외부적인 사유로 예정했던 컬렉션 제작을 진행하기 어려워졌다고 알렸다. 투모로우는 마틴 로즈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었다. 두 브랜드의 사업 상황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유통·투자 조직에 여러 디자이너 브랜드가 의존할 경우 해당 조직의 경영 불안이 개별 브랜드의 활동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위험을 드러냈다.

코페르니의 종료가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브랜드가 창의적인 성과를 통해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아 왔기 때문이다. 2022년 9월 파리에서 열린 2023 SS 컬렉션에서는 모델 벨라 하디드가 런웨이에 등장했고, 현장에서 액체 섬유를 몸에 분사해 흰색 드레스를 제작했다. 분사된 소재는 몸의 형태를 따라 굳어 의복이 됐고, 제작자는 완성된 드레스의 형태를 다듬었다. 스페인 출신 연구자 마넬 토레스(Manel Torres)가 개발한 패브리캔(Fabrican) 기술을 패션쇼에 활용한 작업이었다.

스프레이 드레스는 디지털 기술로 만든 영상이 아니라 실제 물질을 사용해 의류를 제작한 작업이었다. 원단을 재단하고 봉제하는 일반적인 제작 방식과 다른 기술을 공개적인 패션 발표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하디드가 완성된 드레스를 입고 걸어 나가는 과정은 패션과 과학기술을 연결하는 코페르니의 창작 방향을 널리 알렸다. 브랜드의 이름을 세계적인 관심 대상으로 만든 대표적인 작업이기도 했다.

코페르니는 이후에도 새로운 소재와 기술을 제품에 활용했다. 2024년에는 실리카 에어로젤(silica aerogel)을 사용한 '에어 스와이프 백(Air Swipe Bag)'을 선보였다. 에어로젤은 내부 대부분이 공기로 이루어진 매우 가벼운 다공성 소재이며, 항공우주 분야의 연구와 산업용 단열 소재 등에서 활용돼 왔다. 코페르니는 이러한 특성을 가방에 적용하면서 패션 액세서리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범위를 확장했다.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도 제품과 패션쇼에 따라 달랐다. 스프레이 드레스는 옷을 만드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냈고, 에어로젤 가방은 새로운 소재를 작은 액세서리에 적용했다. 일반적인 의류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과 실험적인 소재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은 성격이 다르지만 코페르니는 두 영역을 오가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기술적 실험과 패션 디자인의 만남이 코페르니를 다른 신진 브랜드와 구분해 온 부분이었다.

코페르니 FW25가 선보인 ‘게이머 뷰티’ 트렌드. 사진=Copern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4년 10월에는 디즈니랜드 파리에서 2025 SS 컬렉션을 발표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을 배경으로 디즈니의 공주와 악당에서 영감을 받은 의류를 선보였고, 카일리 제너(Kylie Jenner)가 런웨이에 등장했다. 2025년 3월에는 파리 아디다스 아레나에서 게임 이용자들이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는 랜 파티(LAN party)를 패션쇼와 결합했다. 게임 문화와 디지털 환경을 패션 발표에 접목하면서 전통적인 런웨이의 공간과 형식도 바꿨다.

화려한 런웨이와 기술적 실험은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기업의 재무 안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규모 발표에는 장소와 무대 설치, 제작 인력과 기술 지원, 출연자와 운영을 위한 비용이 발생한다. 패션쇼에서 얻는 관심이 상품 판매와 적정한 수익으로 이어져야 지속적인 제작이 가능하다. 코페르니는 독창적인 발표와 국제적인 화제성을 확보했지만 유통사와의 정산 분쟁을 해결하지 못해 정상적인 운영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

파리에서는 2025년에도 실험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의 폐업이 있었다. 글렌 마틴스(Glenn Martens)의 디자인으로 알려진 와이프로젝트(Y/Project)는 2025년 1월 운영 중단을 발표했다. 2010년 설립된 와이프로젝트는 기존 의류의 구조를 비틀고 변형하는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2017년에는 프랑스 패션상인 ANDAM 패션 어워즈에서 주요 상을 수상했다.

와이프로젝트는 2023년 연간 매출이 약 1100만 유로에 달했던 브랜드다. 그러나 2024년 공동 창업자 질 엘랄루프(Gilles Elalouf)의 사망과 핵심 경영진·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이탈, 자금 압박이 겹쳤다. 2024년 9월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고 인수자를 찾지 못한 채 이듬해 사업을 중단했다. 연간 매출이 일정 규모에 도달하고 패션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더라도 지배구조와 자금조달, 경영진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기업의 지속성이 약해질 수 있다.

와이프로젝트와 코페르니는 폐업에 이른 직접적인 경위가 다르다. 와이프로젝트는 주요 인물의 이탈과 경영·재무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코페르니는 대주주이자 독점 유통사와의 자금 정산 및 경영권 분쟁이 운영 중단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두 브랜드를 동일한 위기로 묶기는 어렵지만 파리에서 국제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안정적인 기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은 남는다.

파리 패션위크는 세계적인 명품기업과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함께 컬렉션을 발표하는 무대다. 대형 패션 하우스는 오랜 기간 축적한 자본과 유통망, 액세서리와 향수 등 여러 제품군을 통해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디자이너 브랜드는 시즌별 의류 판매와 도매 수주, 외부 투자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패션위크에서 얻은 관심을 실제 매출로 전환하는 데에도 생산과 유통, 재고 관리와 자금조달을 담당할 조직이 필요하다.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의 도매 유통에서는 상품을 제작하기 위한 비용과 판매대금이 실제로 들어오는 시점 사이에 간격이 발생할 수 있다. 새로운 시즌의 제품을 만들려면 원단과 부자재를 확보하고 생산업체와 계약해야 한다. 완성된 상품이 유통업체에 전달되고 판매대금이 정산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면 그동안 직원의 급여와 작업실 운영비, 다음 컬렉션의 제작비를 계속 부담해야 한다.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기업일수록 판매와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단기간에 자금 압박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코페르니의 분쟁에서는 상품 판매대금이 누구에게 들어가고 브랜드에 지급할 금액을 누가 관리하는지가 중요했다. 디자이너가 의류를 만들고 브랜드의 명성을 높이더라도 대주주와 유통 파트너가 자금 흐름을 통제하면 창업자가 사업 운영에 필요한 돈을 직접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창업자는 브랜드를 되찾기 위해 협상에 나섰지만 지분과 라이선스 계약, 회사의 소유권이 복잡하게 연결된 구조에서 단기간에 경영권을 회복하지 못했다.

외부 투자와 유통 협력은 독립 브랜드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체적인 생산·판매 조직을 구축하기 어려운 디자이너가 해외 유통망과 사업 경험을 가진 파트너를 만나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금 정산과 상표 사용권, 의사결정 권한이 하나의 파트너에게 집중되는 구조에서는 관계가 악화했을 때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지분 투자와 유통 계약을 체결할 때 정산의 투명성, 계약 종료와 경영권 변경에 관한 조건이 기업의 지속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이유다.

Coperni (코페르니). 사진=예림출판사(Yelim Publishi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명품시장의 성장 둔화도 독립 브랜드의 경영환경을 어렵게 만들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는 2025년 세계 개인 명품시장이 약 3580억 유로로 전년보다 2%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2026년에는 2~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지역별 차이가 크고 유럽과 중동의 소비환경은 상대적으로 약한 흐름을 보였다. 전체 시장이 회복 조짐을 나타내더라도 모든 브랜드의 실적이 같은 속도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대형 브랜드는 가격과 제품군, 판매 채널을 조절하면서 경기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는 특정한 제품이나 일부 도매 유통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 있고, 시즌별 주문이 줄거나 정산이 지연되면 자금 운용에 영향을 받기 쉽다. 패션산업 전체의 매출 규모와 개별 브랜드의 생존 가능성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시장의 회복이 곧 자금력이 약한 기업의 회복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코페르니의 운영 중단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치가 어떻게 평가돼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패션산업에서는 독창적인 컬렉션과 언론의 관심, 소셜미디어의 확산 정도가 브랜드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자주 활용된다. 그러나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다는 사실만으로 매출의 안정성이나 유통 계약의 건전성, 적정한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브랜드의 화제성과 기업의 재무적 지속성은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기술적 실험을 지속하려는 디자이너에게는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소재와 제작 방식을 연구하고 외부 기술기업과 협업하는 과정에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기존 제품을 반복해서 생산하는 방식보다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코페르니가 선보인 스프레이 드레스와 에어로젤 가방은 패션에 새로운 재료와 제작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그러한 작업을 계속하려면 디자인 조직과 생산시설, 자금조달 체계가 유지돼야 한다.

파리의 패션 생태계에도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의 감소는 영향을 줄 수 있다. 대형 명품 하우스는 국제적인 인지도와 사업 규모를 갖추고 있지만 새로운 디자인 실험은 규모가 작은 브랜드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독립 디자이너는 기존 상품의 판매 실적에 상대적으로 덜 얽매인 표현을 시도할 수 있고, 특정한 문화와 기술을 패션에 접목하는 작업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코페르니와 와이프로젝트는 복식의 구조와 제작 방식, 패션 발표의 형식을 달리하면서 파리 패션의 다양성을 넓혀 온 브랜드였다.

독립 브랜드가 줄어들면 새로운 디자이너와 제작 인력이 활동할 수 있는 기업의 수도 감소할 수 있다. 컬렉션 제작에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패턴 제작자와 봉제 인력, 소재 개발자, 스타일리스트와 생산업체가 참여한다. 디자이너 브랜드 하나의 운영 중단은 이러한 협력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코페르니의 창업자들이 종료 발표에서 직원과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유통업체와 패션계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한 것도 브랜드 운영이 두 디자이너만의 활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리 패션위크의 국제적인 위상과 그 무대에 참여하는 모든 브랜드의 경영 안정성은 같은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컬렉션을 발표하더라도 독립 브랜드의 자금과 인력, 생산과 유통은 개별 기업의 계약과 재무 상황에 따라 유지된다. 유명 디자이너가 활동하고 세계적인 명품기업이 모여 있는 도시에서도 상대적으로 작은 브랜드의 사업 기반은 취약할 수 있다. 코페르니의 사업 중단은 패션 수도 파리의 화려한 런웨이 뒤에서 벌어지는 기업 운영의 현실을 드러냈다.

미래의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에는 디자인의 독창성뿐 아니라 경영권과 자금 흐름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외부 투자자를 확보하면서도 창작과 사업 운영에 필요한 의사결정 권한을 어느 정도 유지할 것인지, 독점 유통계약을 체결할 경우 매출과 정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자금 압박이 발생했을 때 대체 유통망과 새로운 투자자를 확보할 여지가 있는지가 기업의 지속성에 영향을 준다. 브랜드의 창작 역량이 사업의 성장으로 연결되려면 판매대금이 안정적으로 회수되고 다음 시즌의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Coperni (코페르니). 사진=예림출판사(Yelim Publishi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업의 소유권과 상표권도 독립 브랜드의 장기적인 활동에 중요한 요소다. 창업자가 브랜드의 디자인 정체성을 구축했더라도 외부 투자 과정에서 지분과 상표 사용권을 이전하거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 이후 사업 운영에 관한 권한이 달라질 수 있다. 코페르니는 운영법인과 지주회사, 독점 유통사의 관계가 분리돼 있었고, 창업자들은 브랜드를 다시 인수하려 했지만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디자인의 창작자와 사업을 통제하는 주체가 달라질 때 발생하는 위험을 드러낸 구조다.

외부 자본이 없는 독립 브랜드 역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직접 판매와 자체 생산을 확대하려면 초기 투자와 운영자금이 필요하고,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는 물류와 유통, 재고 관리에 따른 부담도 커진다. 외부 파트너를 활용하면 사업 확장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 브랜드의 규모와 성장 단계에 맞는 자금조달과 유통 구조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2025년 와이프로젝트에 이어 2026년 코페르니까지 운영을 중단하면서 파리의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처한 환경에도 관심이 모인다. 두 브랜드는 각기 다른 창작 방향을 발전시켜 왔고 국제적인 평가도 받았지만 기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패션계의 명성과 독창적인 디자인, 높은 매출을 기록한 경험이 기업의 존속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코페르니의 두 창업자는 11월 4일 발표에서 지난 8년간의 활동을 특별한 경험으로 평가하며 앞으로도 새로운 창작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혁신과 새로운 시도는 자신들이 지속해 온 중요한 가치이며 앞으로도 탐구하고 재창조할 일이 많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새 브랜드 설립이나 코페르니 재출범 계획은 발표하지 않았다.

코페르니 SAS의 사업 중단 이후에는 법적 절차와 브랜드 권리의 처리, 기존 계약과 사업 관계의 정리가 남아 있다. 코페르니라는 명칭이 다른 주체에 의해 다시 사용될 가능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바양과 메이어의 향후 활동도 공개되지 않았다. 2022년 스프레이 드레스와 2024년 에어로젤 가방, 디즈니랜드 파리의 런웨이로 알려진 브랜드가 2026년에는 자금 정산과 경영권 분쟁을 끝내지 못한 채 프랑스 운영을 중단하게 됐다.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던 코페르니의 종료는 파리 패션의 화려함과 독립 브랜드의 경영 현실 사이에 놓인 거리를 드러낸다.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하는 창의적인 활동은 국제적인 명성을 만들었지만 생산과 유통, 계약과 자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시즌의 컬렉션조차 이어가기 어렵다. 파리에서는 지난해 와이프로젝트에 이어 올해 코페르니의 운영이 중단됐다. 두 브랜드가 남긴 디자인과 별개로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기업의 재무·유통 기반이 앞으로의 독립 패션산업에서 더욱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