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훈·심근영 ‘탈주와 침묵’ 개막…영월의 아홉 가지 꿈과 빛으로 설계한 공간
11월 6~15일 구띠갤러리에서 공동 전시…문훈의 ‘구운몽’과 심근영의 ‘이방인의 외출’, 건축에 담긴 장소의 기억과 감각 ‘탈주와 침묵(ESCAPE & SILENCE)’
[KtN 박준식기자]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에 호텔과 야구장을 결합한 건물이 들어선다. 텅스텐 크리스털 온천과 시간여행터미널, 우주호텔도 등장한다. 건축가 문훈(Moon Hoon)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배경으로 구상한 아홉 가지 건축적 상상이다. 건축가 심근영(Shim Keunyoung)은 주택과 체류시설에서 빛과 어둠,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한다. 서로 다른 작업을 이어온 두 건축가가 11월 6일부터 15일까지 구띠갤러리에서 열리는 ‘탈주와 침묵(ESCAPE & SILENCE)’에 참여한다.
문훈은 ‘구운몽(Goo Woon Mong / BaKeD DrEaM)’을 통해 영월 상동의 미래를 상상한다. 김만중의 고전소설 '구운몽'에서 가져온 제목에 ‘꿈을 굽는다’는 의미를 더했다. 1968년 태어난 문훈은 어린 시절을 영월 상동에서, 청소년기를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보냈다. 한국과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2001년 문훈발전소(MOONBALSSO)를 설립했다. 건축 설계와 드로잉, 영상 작업을 병행하며 건축의 형태와 기능을 실험해 왔다.
‘구운몽’에는 2024년 제작한 아홉 가지 구상이 담겼다. ‘지하세계’는 호텔과 야구장을 결합한 ‘호디움(Hodium)’을 제안한다. 숙박시설과 스포츠시설을 하나의 건물로 묶은 구상이다. ‘우주온천’에는 텅스텐 크리스털을 활용한 온천 숙박시설이 등장하고, ‘시간여행터미널’은 버스터미널에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을 더했다. ‘우주호텔’은 우주를 주제로 한 숙박시설이며, ‘비전문화센터’는 박물관과 영화관을 결합한 복합문화시설이다.
‘신무당집’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주택을 상상한 작업이다. ‘캐터필러 스테이’와 ‘텅스텐 월드’에는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적용됐다. 야구를 주제로 한 카페까지 포함하면 숙박과 교통, 문화, 주거시설이 기존의 용도와 다른 방식으로 결합한다. 문훈이 구상한 건물들은 실제 도시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시설의 규모와 형태, 이용 방식을 자유롭게 바꿔 놓았다.
상동과 관련된 산업적 기억도 작품에 반영됐다. ‘우주온천’과 ‘텅스텐 월드’에 등장하는 텅스텐은 지역의 특성을 건축 구상에 끌어들인 소재다. 광물 자원을 온천과 움직이는 공간으로 연결하면서 산업적 자산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했다. 고향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과 지역의 특성을 건축 드로잉으로 옮긴 작업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미래도시 구상과 차이가 있다.
영월을 직접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도 함께 소개된다. ‘영월 플레이마트(2020)’, ‘거울동굴 체험공원(2021)’, ‘영월보행교(2022)’, ‘영월 상동 지도(2025)’가 전시 목록에 포함됐다. 상동을 배경으로 한 아홉 가지 꿈과 영월 관련 프로젝트를 함께 배치해 문훈이 지역을 지속적으로 작업의 대상으로 삼아온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문훈은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초대 작가로 참여했고, 2015년 시카고 비엔날레와 2017년 브뤼셀 한국문화원 초대전에도 참가했다. 건축 드로잉은 독일 베를린의 쵸반재단 건축드로잉박물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건축물을 설계하는 일과 별개로 드로잉을 통해 건축적 구상을 발전시켜 온 활동이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심근영은 ‘이방인의 외출: 빛을 향하여’를 선보인다. 서울에서 아키텍츠601을 운영하며 주택과 체류시설 등을 설계해 온 심근영은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뤄 왔다. 건축물의 외형뿐 아니라 사람이 내부에서 생활하며 경험하는 빛과 분위기,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작업에서는 빛을 환대에, 어둠을 침묵에 연결했다.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사람이 느끼는 감각을 건축의 주요 요소로 다룬다.
‘영성의 빛’, ‘빛의 조각’, ‘붉고 흰 빛’은 빛에 대한 관심이 직접 드러나는 주거 프로젝트다. ‘영성의 빛’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한 신봉동 단독주택이며, ‘빛의 조각’은 2021년부터 진행 중인 방배동 3대 주택이다. ‘붉고 흰 빛’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한 이목동 단독주택이다. 주거공간이라는 공통된 조건 아래 빛을 주요 설계 주제로 삼은 작업들이 나란히 소개된다.
자연과 일상의 관계를 다룬 프로젝트도 전시에 포함됐다. 도예가의 스튜디오 하우스 ‘풍경이 흐르는 집’은 창작 활동과 주거 기능을 함께 갖춘 건물이다. 판교 단독주택 ‘풍경 속의 집’, 가평 단독주택 ‘평안재’, 경주의 독채 스테이와 카페라운지로 구성된 ‘경주의 시간’도 선보인다. 오랜 시간 생활하는 주택과 일정 기간 머무는 체류시설은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심근영은 용도와 생활 조건이 다른 건축을 통해 사람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다뤄 왔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는 서초 레지던스 오피스텔 타운 ‘오큘러스’, 화성의 ‘액시스 하우스’, 여수 관광숙박시설과 카페라운지, 시니어 하우스 등이 소개된다. 주택을 중심으로 숙박·체류시설과 복합용도 건축까지 작업 범위가 이어지고 있다. 심근영은 2025년 베니스 ECC 국제 건축 전시에 초청 건축가로 참여했으며, 한국여성건축가협회와 한국실내건축가협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두 건축가의 작품은 전시장 안에서 각각의 영역을 이룬다. 문훈의 아홉 가지 꿈과 영월 관련 프로젝트, 심근영의 주거·체류시설 작업을 중심으로 프롤로그와 건축상회, 미디어 구역, 2025 ECC 베니스 건축 전시 관련 구역 등이 구성됐다. 중앙에는 ‘그레이존’이 배치됐다. 그레이존에는 사람이 특정 장소에 느끼는 애착을 뜻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개념이 제시돼 있다.
문훈에게 영월 상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고향이자 미래의 건축을 구상하는 장소다. 심근영은 사람이 주택과 체류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빛과 자연을 경험하는 방식에 관심을 둔다. 문훈이 고향을 바탕으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을 상상한 반면, 심근영은 거주와 체류라는 구체적인 생활 조건에서 출발한다. 건축의 형태와 기능을 자유롭게 바꾸는 작업과 일상의 공간을 세밀하게 설계하는 작업이 장소에 대한 애착이라는 주제 아래 나란히 놓였다.
‘탈주와 침묵’에는 건축 드로잉과 실제 건축 프로젝트, 진행 중인 설계가 함께 포함됐다. 문훈의 아홉 가지 꿈은 새로운 건축을 구상하는 과정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심근영의 프로젝트는 주거와 체류시설에서 빛과 자연을 다루는 설계에 집중한다. 완공된 건축물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구상을 구분해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구성이다.
전시 개막일인 11월 6일 오후 4시에는 오프닝 리셉션이 예정돼 있다. 오후 4시 30분에는 건국대학교 건축도시전문대학원 김종진 교수가 모더레이터를 맡는 오프닝 대화 포럼이 진행된다. 전시는 15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