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워홀①] 앤디 워홀의 자화상, 피아제 시계에 남은 위장무늬

1986년 자화상에서 얼굴 지우고 색과 무늬만 재구성…워홀이 소장한 피아제 시계 7개, 2024년 공식 협업으로 이어진 관계

2026-11-06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미국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이 1986년 제작한 자화상의 위장무늬가 스위스 시계 제조사 피아제(Piaget)의 손목시계에 등장했다. 피아제는 11월 5일 워홀의 작품에서 착안한 '앤디 워홀 카모플라주(Andy Warhol Camouflage)'를 공개했다. 소달라이트와 터키석, 옐로골드와 핑크골드로 위장무늬를 제작하고 화이트골드 케이스에 넣었다. 세계 생산량은 86개다.

시계에 옮겨진 것은 워홀의 얼굴이 아니라 얼굴을 가렸던 위장무늬다. 1986년 자화상에서 워홀은 자신의 얼굴에 군복에서 볼 수 있는 불규칙한 무늬를 겹쳤다. 얼굴의 윤곽과 백금발 가발이 남아 있는 가운데 눈과 코, 입의 일부가 색채에 가려진다. 피아제는 인물과 검은 배경을 제외하고 위장무늬만 골라 다이얼에 사용했다. 작가의 자화상에서 분리된 색과 형태가 손목시계의 장식으로 바뀐 것이다.

소달라이트와 터키석, 옐로골드와 핑크골드로 구성한 카모플라주 다이얼. 원작의 위장무늬를 서로 다른 재료의 색과 질감으로 옮겼다. 사진=Piage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워홀은 196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와 소비재를 미술의 소재로 사용하며 이름을 알렸다. 캠벨 수프 통조림과 코카콜라 병, 마릴린 먼로의 얼굴처럼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반복 제작했다. 광고와 상업 인쇄물에서 사용하던 제작 방식을 회화에 도입했고, 같은 이미지라도 색상을 바꾸거나 배열을 달리해 여러 작품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얼굴도 주요 소재였다. 워홀은 사진과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여러 차례 자화상을 제작했다. 유명인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그렸던 작가가 자신의 얼굴까지 작품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은색 가발과 선글라스 등 외모를 구성하는 요소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워홀의 얼굴은 작품 속 인물이면서 동시에 작가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1986년 자화상에서는 얼굴을 드러내는 방식이 달라졌다. 검은 바탕에 떠 있는 얼굴 위로 위장무늬가 겹쳐졌다. 얼굴은 일부 가려졌지만 머리카락과 눈의 윤곽, 표정은 남아 있다. 위장무늬는 군사적으로 사람과 사물을 주변 환경에 숨기기 위해 사용한다. 워홀은 얼굴을 감추는 무늬를 강한 색상과 대비시켜 오히려 자신의 얼굴이 더욱 눈에 띄도록 만들었다.

1986년 자화상은 워홀의 생애 마지막 시기에 제작됐다. 워홀은 1987년 2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후기 자화상은 얼굴을 가리는 방식과 검은 배경, 강한 색상 대비 때문에 명성과 사생활, 죽음에 관한 해석으로 이어져 왔다. 대중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작가가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무늬를 선택했다는 점도 작품의 주요 특징으로 다뤄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이 소장한 'Self-Portrait [Camouflage]'는 1986년 제작된 가로·세로 약 203cm의 회화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과 실크스크린 잉크를 사용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호주 빅토리아국립미술관에도 위장무늬를 활용한 워홀의 1986년 자화상이 소장돼 있다. 작품마다 위장무늬의 색상과 얼굴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다.

피아제는 워홀의 자화상에서 얼굴과 머리카락, 검은 배경을 가져오지 않았다. 다이얼에는 짙은 남색과 밝은 청색, 노란색과 분홍빛을 띠는 금속의 불규칙한 무늬가 이어진다. 원작에서 얼굴을 가렸던 부분이 다이얼 전체를 차지한다. 인물이 사라진 자리에 보석과 금속의 색상, 서로 다른 형태의 경계가 남았다.

피아제 '앤디 워홀 카모플라주'. 화이트골드 케이스에 푸른색과 금색으로 구성한 위장무늬를 넣고 짙은 파란색 가죽 스트랩을 연결했다. 사진=Piage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원작에서는 위장무늬와 얼굴이 함께 존재한다. 얼굴을 가리는 색채가 인물의 정체성과 연결되면서 작품의 의미가 형성된다. 피아제의 시계에서는 위장무늬만 독립적으로 사용됐다. 군복에서 비롯된 색채와 형태가 고급 시계의 다이얼을 장식하는 무늬가 됐고, 워홀의 자화상이 지녔던 인물 표현은 사라졌다.

워홀의 작품이 상업적인 상품과 만나는 과정도 새로운 일은 아니다. 워홀은 생전에 광고와 대중매체, 소비문화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작품을 반복 제작하고 상업적인 이미지를 미술관과 갤러리로 가져왔다. 피아제의 시계는 반대로 미술 작품에 사용된 이미지를 고가 소비재에 적용했다. 워홀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했던 미술과 상품의 관계가 다른 형태로 이어진 셈이다.

피아제와 워홀의 인연은 작가가 살아 있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워홀은 생전에 피아제 손목시계 7개를 소유했다. 피아제는 당시 얇은 무브먼트와 귀금속 케이스, 장식용 보석을 이용한 시계를 제작하고 있었다. 워홀의 소장품 가운데에는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생산된 레퍼런스 15102도 포함돼 있었다.

레퍼런스 15102는 일반적인 원형 케이스와 다른 형태를 갖췄다. 둥근 사각형에 가까운 케이스 가장자리를 여러 겹의 곡선으로 둘렀다. 당시 피아제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장클로드 게이트(Jean-Claude Gueit)가 설계한 제품이다. 케이스 폭은 45mm로, 얇은 무브먼트와 넓은 귀금속 케이스를 결합한 디자인이었다.

1970년대 피아제의 시계에는 무브먼트의 두께를 줄이는 기술과 화려한 장식이 함께 적용됐다. 손목시계의 기계적 기능을 유지하면서 금속과 보석의 색상, 케이스의 형태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워홀이 소장한 레퍼런스 15102 역시 케이스 외형이 두드러지는 제품이었다.

피아제는 2014년 레퍼런스 15102의 디자인을 계승한 '블랙 타이 빈티지(Black Tie Vintage)'를 선보였다. 둥근 사각형 케이스와 여러 겹으로 이어지는 금속 테두리를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기계식 무브먼트를 적용했다. 워홀이 생전에 소장한 제품의 디자인을 다시 활용했지만 당시 컬렉션에는 작가의 이름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

2024년 피아제는 앤디 워홀 시각예술재단(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과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워홀의 이름을 컬렉션에 사용할 권리를 확보했고, 기존 블랙 타이 컬렉션은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작가가 소유했던 시계의 디자인을 계승하는 관계에서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공식적으로 활용하는 협업으로 확대됐다.

워홀이 피아제 시계를 소장했다는 사실과 피아제가 워홀의 작품을 상품에 사용할 권리는 구별된다. 작가가 생전에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착용했다고 해서 제조사가 사후에 작품과 이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아제는 재단과의 계약을 통해 관련 권리를 확보한 뒤 워홀의 작품을 활용한 한정판 제작에 나섰다.

앤디 워홀 재단은 워홀의 유언에 따라 1987년 설립됐다. 작가의 작품과 이름에 관한 권리를 관리하고 현대미술의 창작과 전시, 연구 등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작품의 상업적 사용에서 발생하는 수익도 재단의 활동을 뒷받침한다. 피아제와의 협업에는 고급 시계 제조사의 상품 개발뿐 아니라 작가의 유산을 관리하는 재단의 사업도 연결돼 있다.

피아제는 2025년 재단과의 협업으로 '콜라주(Collage)' 한정판을 선보였다. 분홍색 오팔과 녹색 크리소프레이즈, 노란색 서펜틴을 사용해 다이얼을 만들었다. 워홀의 작품을 인쇄한 이미지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장식용 보석의 색과 형태로 재구성했다.

2026년 카모플라주에는 소달라이트와 터키석, 옐로골드와 핑크골드를 사용했다. 짙은 청색과 밝은 청색을 이루는 보석 사이에 금속 조각을 배치해 위장무늬를 완성했다. 옐로골드는 새틴 마감으로 처리하고 핑크골드는 광택을 냈다. 같은 색상 계열이라도 재료의 성질과 표면 가공에 따라 빛의 반사가 달라진다.

다이얼 제작에는 모두 27개의 개별 조각을 사용했다. 서로 다른 재료를 무늬에 맞게 자르고 맞물리도록 배치하는 상감세공이다. 장식용 보석을 이용하는 스톤 마케트리(stone marquetry) 방식으로, 평면에 색상을 인쇄하는 작업과는 다른 가공 기술이 필요하다.

카모플라주 다이얼을 구성하는 개별 조각. 보석과 금속을 무늬에 맞춰 가공한 뒤 정해진 위치에 배치한다. 사진=Piage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피아제는 1960년대부터 장식용 보석을 시계 제작에 활용했다. 라피스라줄리와 오팔, 비취, 산호 등 다양한 색상과 질감의 소재를 귀금속 케이스와 결합했다. 카모플라주에 사용된 상감세공도 오랫동안 축적한 보석 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워홀의 위장무늬를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장식 기술을 새로운 도안에 적용했다.

워홀은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하나의 이미지를 여러 차례 반복 제작했다. 피아제는 같은 계열의 이미지를 개별 보석과 금속을 가공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실크스크린에서는 인쇄와 색상 배열이 중요하지만 보석 상감세공에서는 재료의 절단과 두께, 조각 사이의 간격, 표면의 높이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워홀의 이미지가 다른 재료와 제작 방식을 만나면서 원작과 구별되는 형태를 갖게 됐다.

원작 자화상과 시계의 차이는 제작 주체에서도 나타난다. 1986년 자화상은 워홀이 생전에 제작한 회화다. 카모플라주는 워홀 사후 39년이 지난 2026년 피아제가 만든 손목시계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공식적으로 활용했지만 워홀이 직접 제작하거나 완성한 제품은 아니다. 미술시장에서 평가하는 워홀의 원작과 시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피아제 한정판은 제작 이력과 가치 평가 기준이 다르다.

피아제가 사용한 45mm 케이스는 워홀이 소장했던 시계의 외형을 계승했다. 둥근 사각형을 여러 겹의 금속 곡선으로 감싼 형태는 유지하고, 중앙에는 1986년 자화상의 위장무늬를 넣었다. 워홀이 소장한 피아제 시계와 워홀의 후기 회화를 한 제품에 결합한 구성이다.

2024년 공식 라이선스 계약 이후 피아제는 2025년 콜라주에 이어 2026년 카모플라주를 출시했다. 카모플라주는 1986년 자화상에서 인물을 제외한 위장무늬를 27개의 보석·금속 조각으로 재구성하고, 작품 제작 연도에 맞춰 생산량을 86개로 제한했다. 워홀의 생전 소장품에서 출발한 피아제와의 관계는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사용하는 한정판 시계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